드라마를 쓰다
매거진 t 편집부 엮음 / 씨네21북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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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는 매일 왕국에 들어선다. 준비랄 건 단순해서 그저 드러 눕거나 기대어 앉거나 세상에서 가장 스스로를 편하고 늘어지게 만드는 자세를 취하고는 네모난 리모트 컨트롤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취향의 호오를 두고 간섭할 누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그 곳 거대하고 까탈스럽지 않은 왕국은 온전히 당신의 소유가 된다. 조금의 인내심만 있으면 그 왕국의 모든 문을 두드려 시시콜콜 잡다한 일상사에 타박을 늘어놓을 수도 있고 그저 귀찮고 내내 한가롭고 싶다면 편안히 그저 편안히 당신의 왕국 속 광대들의 익숙한 친절함을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혼신을 다하는 그네들의 소용돌이에 풍덩하고 빠져 함께 웃고 울고 감정의 진창을 질척하니 즐기다 빠져나오고 싶으면 그저 스윽하고 일상으로의 컴백, 버튼을 다시 한 번 슬쩍 누르기만 하면 된다. 네모난 텔레비젼을 조정하는 네모난 리모트 컨트롤이 선사하는 저렴한 행복추구권은 단순한만큼 안전하고 안전한만큼 반복적이다.

드라마의 왕국, 그 높지 않은 문을 뻔질나게 드나드는 익명의 시청자들은 단순하고 안전한 행복을 어느덧 포기하기 시작했다. 쌍방향 매체들의 친절함과는 거리가 먼 공중파 방송의 시청자들은 어느덧 그 저렴한 매체를 취향의 분명한 표식으로 만드는 방법을 익히고 즐기기 시작했으니, 텔레비전이 일으킨 텔레지변이라 할 만한 일들이 속속 생겨나고 있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그리하여 21세기 드라마 왕국의 로얄 패밀리는 그 선명했던 스타의 지형도와는 거리가 먼 지점에서 정체성을 발견하고 말았다. 적극적인 시청자들은 마치 김기덕의 영화와 홍상수의 영화를 보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헤메이듯 그네들의 삶의 환부를 뜨겁게 위무하는 드라마 작가들의 진심어린 펜끝에 감격한채 그들만의 완벽한 소왕국을 튼실이 건설하고 있는 중이다. 흥행의 보증 수표라 할 수 있는 브라운관의 스타들이 cf화면을 감당해내는 십오초의 단발마 비명에 사라지고 만다는 것을 알아차린 적극적인 브라운관의 우등 관람객들은 말초적인 쌩얼의 쾌감을 과감히 버린채 쌩이야기에 쌩삶에 환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보기 드물고 심히 유쾌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이 책, <드라마를 쓰다>는 마니아라는 계층을 거느린 변화하고 있는 21세기 대한민국 공중파 시청자들의 '스타'들에 관한 팬레터라고도 볼 수 있다. 황인뢰와 노희경, 인정옥과 신정구는 최근 몇년간 시청자들과 텔레비젼이라는 매체를 주의 깊게 보아온 문화향유계층에게는 전혀 낯선 이름이 아니다. 발칙하고 참신하게 자신들만의 이야기를 써내려간 그들의 족적은 단순히 드라마 작가에게서 그치지 않는다.  드라마라는 무시당하기 쉽상인 그릇에 오롯이 담아낸 향기가득한 삶의 편린들이 만들어낸 파장은 무척이나 컸다.

기억하기 어렵지 않다. 불붙은 네티즌 들의 안티놀이 속에서 오롯이 빛을 반짝이던 <궁>의 아름다움, 시청률이라는 링에서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아대던 노희경의 자식들, 그 가족의 탄생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기억들, 복수와 전경, 중아와 시연의 이름만 떠올려도 아,하고 싸해지던 순간의 아픔들, 대략, 즐처드시던 뱀파이어 비둘기 포차의 짜릿한 쾌감을 떠올리고 미소짓기 그리워 하기란 감사하게도 무척이나 쉬운일이다. 이 책의 말미 신정구의 <안녕,프란체스카>에 대해 쓴 씨네 21의 김혜리 기자의 말을 인용하자면 이 책은 '동족'을 알아보는 표식같은 흔적이다. 그들의 속내에 공감하고 일상의 양분으로 성장한 드라마족들에게 이 책은 문집과도 같은 동족의 선물이다. 예민하게 그들의 작업을 들여다보고 감정이 듬뿍 실린 감상을 전하는 필자들의 문체는 팬으로서의 격앙된 흥분을 애써 감추고 담담히 우리가 놓쳤던 모서리의 또 다른 감격들을 단단하게 전달한다. 물론 작가의 인터뷰와 작품론이 주제가 되는 구성답게 전체적인 드라마의 흐름보다는 드라마의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가세계에 집중한 글들이다.

드라마를 보는 아줌마, 드라마에 넋나간 된장녀라는 얄팍한 네이밍 속에 숨은 우리 사회의 진짜 조각들을 맛 보는 쾌감을 분명한 의도로 전달하고 있는 이 책은 텔레비젼 시대의 텔레비젼 세대에게 특히 이 책에 언급된 작가들의 쾌도난담,완소대화에 중독된 이들에게는 치료제임에 동시에 비아그라의 역할을 할 것이다. 책의 전체를 다듬은 백은하의 말답게 웹에서의 스크롤이 아닌 지면을 넘기는 책장의 맛까지 제대로 전달해낸 편집의 묘미도 높이 평가하고 싶다. 기억을 읽어낸 팬덤의 반듯한 열정이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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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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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기는 했어. 근데 너무 현실적이라서 좀,그렇더라"

웹의 클림트, 권신아의 몽환적이고 현실적인 표지의 이 책을 먼저 읽은 스물 여섯, 사직한지 두 달이 되어가는 동생이 내게 넘겨주며 한 말이다.

"오빠는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섹스 앤 더 시티>같은 거 좋아하잖아?"

그렇다면 나는 어쩌면 달콤한,이라는 형용사가 사만다나 캐리따위의 여성 캐릭터를 빗댄 말일까 하는 기대를 갖고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30여분동안 맨헌트에서 건진 것 같은 캘빈 클라인 팬티의 모델과 섹스를 하고 다음 날 브런치를 즐기는 경제력과 성욕이 비현실적인 조합을 갖고 있는 사만다나 프라다매장에서 남자 친구와 관계가 깊어 지기를 당연히 기대하는 샤넬 맹세녀 캐리는 그저 뉴요커일 뿐이었고 그녀 서른 둘의 오은수는 맨하탄을 도버 해협과 비슷하게 느끼는 이 땅 서울의 서른 둘이었다.

너무,현실적이어서 좀 그렇다기 보다는 좀 그렇게 비현실적인 얘기를 기대했던 나에게 이 책은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책을 휙하니 던져버리고 집중할만큼 현실,감이 있었다. 스물 일곱의 남성인 내가 <섹스 앤 더 시티>를 좋아했던 것은 그 여인네들의 판타지 보다는 통찰력에 있었다. 부에 대한 허영이라기 보다는 취향에 대한 허영이 너무 그럴싸했고 아프고 곡절많은 인생을 마놀로 블라닉의 구두굽을 킥킹해버리는 시퀀스들은 통쾌하기까지 했다. 그녀들은 직업인인 동시에 자신의 '퍽커블'함을 양분삼아 그 도시에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진정한 의미의 성인,도시 여성들이었다. 스물 일곱이라는 어리지도 늙지도 않은 나이에 나는 그녀들의  또각또각 힐소리가 사랑니를 뽑아버리는 것처럼 경쾌하게 들렸고 어쩌면 삶이 드라마같다는 생각보다 삶을 드라마처럼 만들어가는 근사한 여성에 대한 별 볼일 없는 남성의 판타지를 오묘하게 충족시켜주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여성 시청자들이 그러했겠지만 나 역시 마지막 시즌의 마지막 장면의 그 로맨틱함에 치를 떠는 동시에 인정해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오은수가 우거지 국물을 마시던 장면에서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조금 슬펐을 뿐이다.

사실이 그렇다. 모든 현실은 그렇게 조금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약간 슬플 뿐이다. 리얼리즘 소설이라는 영역이 어떤 부분까지를 포함하는 장르일까를 살짝 고민했지만 결국 이 책은 나의 서가 목록에 현실적인 여성 소설이라는 장르에 넣기로 했다. 나의 여동생이 공감했던 대로 '오전 내내 방 안에서 뒹굴다가 7시전에 남자 친구를 만나기 위해 화장이나 해대는 '은 그저 인터넷에서 끌어 당긴 문장이 아니었던 것이다. 서른 두 살 그저 평범해서 길거리에 묻혀도 아니 혹은 길거리에서 끄집어내 뒷조사라도 벌려도 펑“謀?오은수와 그녀의 눈에 한심하게 살기로 작정한 것 같은 친구들인 재인과 유희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소설은 남자,아이,직장이 없는 서른 두 살, 서울의 여성들에 관한 생태 보고서가 아닐까 싶다. 문장들은 대체로 겉멋이 든 것처럼 보이지만 단단하고 날카롭다. 비유들은 군더더기가 없이 상황과 감정 묘사에 충실해서 태오라는 순정 만화 주인공 같은 7살 연하의 남성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보는 장면에서도 로맨틱한 향기의 인위적 도용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섹스 앤 더 시티>의 여주인공들이 섹스를 통해서 즐거움을 얻고 섹스의 기쁨으로 아침을 맞이하는 데 익숙하다면 만취는 아니었지만 알콜의 기운을 빌린 섹스에서 오은수가 느끼는 것은 이른 아침 연하의 남자가 배웅해주는 택시 안에서의 시선의 의식 그리고 쾌락에의 부끄럼움이다. 대개 평범하다고 인정하는 것과 정말 평범한 것 사이에는 어떤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현대 도시 사회에서의 취향의 차이는 개별적 조건들보다 더 크게 기능하기도 하는데 오은수의 연애에서는 그 비중이 정확하게 균형을 잡는다. 현실적이게 말이다. 연하의 달콤한 애인과 달콤하지 않지만 미더운 사내 사이에서 그녀가 느끼는 방황은 휘핑 크림을 듬뿍얹은 라떼와 텁텁하지만 개운한 아메리카노 중에서 단 한가지만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과 비슷하게 절망적이다. 결국 그녀의 오더는 성공적으로 주문되지 못했고 일견 연애담으로만 짜내려간 듯한 플롯은 현실속으로 발을 내딛는 상황들을 설명할뿐이었다는 진실을 책장을 덮고서야 알 수가 있었다.

나이가 스물이든 서른이든 아니면 오십이 넘어서든 누구나 달콤한 연애의 환상을 가지고 살아간다. 꽃미남으로 둘러싸인 찜질방에서 낮잠을 자는 을녀나 혹은 나이트에서 돈많고 가벼운 게다가 아름다운 여성과의 부킹을 기대하는 갑남들에게나 그 환상은 냉혹하게도 현실 속에서 존재한다. 어떤 꿈에서 깨오나오는 과정에 우리는 그 순간을 달콤하게 기억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이 소설이 진짜처럼 느껴져서 문단의 마지막 문장을 읽을때마다 뜨끔했던 것 인생의 원나잇 스탠드가 아니라는 차가운 태도 때문이다.그렇게 도시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 비어버린 통장 잔고처럼 달콤하게만 기억되는 치열했던 연애가 얼마나 영양가 있을까하는 답답한 자문이 단지 몇몇에게만 그치는 잠언은 아닐꺼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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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지생태보고서 - 2판
최규석 글 그림 / 거북이북스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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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자면 이것은 만화가 아니다. 파스텔톤을 모노톤으로 사용한 그림들은 영상처럼 번져있고 말풍선 속에 들어있는 대사들은 스물 몇들의 잠언과도 같다. 얼마전 출간된 스물 몇의 작가 김애란이 <달려라 아비>에서 '드디어 풀어냈던' 이 땅의 정직한(대중 매체 속에서 미화되거나 희화되거나 지나치게 비극적으로 혹은 말도 안되게 희극적으로 그려지지 않은) 날 것 그대로의 20대의 이야기를 그에 가장 걸맞는 그림체를 통해 전달하고 있는 뭐랄까 인쇄 매체를 통한 정말이지 보고서에 가깝다.

작가는 이미 이전 작품들에서 만화가 사회를 투영할 수 있다는 믿음을 통한 작업의 정석을 보여주었고 이번 작품집, 연재 모음집은 좀 더 경쾌해진 동시에 그만큼 우울한 청춘들의 초상을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아련하게 가끔은 섬뜩하게 그리고 이야기하고 있다. 월세 이십만원의 습한 반지하방에 모여 사는 같은 과의 네 명의 친구들과 한 명!의 사슴!을 주인공으로 한 이 책은 일단 '습지'라고 명명한 공간에 대한 체득을 통한 설득력있는 해석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반지하방이라는 공간은 단순히 부의 정도를 설명하는 클리셰 이상의 주거와 소통의 공간으로 기능하는 동시에 대안 가족 혹은 새로운 사회 집단의 일상을 정밀하게 묘사하는 든든한 배경으로 소임을 다하고 있다. 대부분의 에피소드들은 이 반지하 공간에서 벌어지는데 공간은 인물들과 동등한 위치와 캐릭터를 부여받고 이 사실적인 이야기의 질감에 한 치도 모자람이 없는 지원사격을 하고 있다.

물론 모든 이야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구성원들 즉, 이야기의 캐릭터이다.캐릭터의 사랑스러움과 친근감의 정도에서 따지자면 이 이야기의 그 남자들은 별 다섯에 투 썸즈 업을 주어도 모라라지 않다. 우리가 어디에서 이런 생활인들을 만날 수 있었던가? 삼순이? 그녀도 글래머에 귀염성 있고 아름다웠도다. 맹순이? 화장만 해바라, 남자하기 나름이라며 줄 선다...어떤 대중매체에서도 볼 수 없었던 살아서 펄떡이는 캐릭터들은 이 작품의 단연코 베스트라 해도 좋을 것이다. 작가의 일기와도 같은 그래서 그의 분신과도 같은 이야기 속의 캐릭터들은 생생하게 이미지와 이야기를 구축하고 뼈에 살을 붙이고 진심의 숨을 불어 넣는다. 생기와 온기가 있는 21세기 청년들을 만화속에서 만나리라는 기대는 애저녁에 하지도 않았는데 이 보물과도 같은 네 남자와 한 사슴!은 어제 술 먹고 헤어진 친구와의 전화통화와도 같은 근접한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스무살을 넘기고 있는 모든 청춘들의 일상은 만화와 가깝다. 하지만 순정은 진정이되 그들의 삶은 순정만화사 아니고 피끓는 주먹은 울지만 그들의 일상 어디에서 그런 액션을  선보일 수 있으랴. 장르의 파괴력이 소통의 거리에 '해'가 된다는 사실은 이 담백한 생태 보고서는 공간과 인물을 통해 묘사한다. 그리고 제대로 형성된 백그라운드를 뛰어노는 일상의 자잘한 얘깃거리들은 단순히 저잣거리에서 국수 국물 처럼 넘길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말씀.

지금 대한민국의 청춘들에게 고함. 혹은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공감.하고자 하는 이들은 이 책을 볼지어다.리얼하고 판타스틱한 스물의 그대들. 나, 당신 그리고 우리의 방구석과 세상을 건너 우주로 당도하고자 하는 꿈의 이야기들이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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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가라, 서커스
천운영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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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운영의 소설을 단 한편이라도 읽어 본 독자는 누구도 그녀의 이름을 쉽게 잊을 수 없으리라 생각한다.어젯밤 내 방에 있는 그녀의 첫 단편집 <바늘>을 들고 간 동생은 아침상에서 '쇠골이 생각나서 밥을 먹기가 싫어' 라며 숟가락을 내려 놓았다. 재미있는 일은 식탁에서 일어난 동생이 바로 자기 방으로 건너가 다시 그녀의 단편집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이제껏 <바늘>과 <명랑>이라는 두 편의 단편집을 발표한 그녀는 말 그대로 '중독성이 강한' 작품들을 선보여 왔다. 다소 엽기적인 상상력과 지나치게 선명한 이미지 구성력 그리고 단단한 문체를 지닌 이 여류 작가는 마이너리그의 애환과 언더그라운드의 비애를 누구보다도 분명하게 인식하고 드러내왔다. 특히 일군의 여성작가들과는 그 흐름을 분명히 다르게 하는 그녀의 행보는 위험스럽기도 했고 조심스럽기도 했다. 아름답지도 애절하지도 비극적이지도 달콤하지도 않은 모호한 감성들을 주르륵 꺼내놓는 그녀의 취향은 추하거나 더럽지 않았으며 지루하지도 단조롭지도 않았다. 몇 십편의 단편들을 통해 그녀가 일궈낸 성과는 만만치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이야기에 능한 동시에 세상의 변화에 적극적인 재미와 의미 모두를 놓치지 않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다. 그리고 어렵게 일궈낸 그녀만의 땅에 깊게 우물을 뚫고 분주히 물줄기를 거두어 들이고 있다.

왜, 장편을 쓰지 않는가에 조금은 궁금해졌을 무렵 <잘 가라, 서커스>가 출간되었다. 망설임없이 단박에 읽어내렸고 조금은 의아한 기분이 들었다. 그녀는 분명하게 변했다. 바늘로 심장을 뚫고 백반가루로 내장을 탈색하던 그녀의 글이 물기를 머금고 있었던 것이다. 이야기는 촉촉하기보다는 축축했고 상황들은 여전히 놀랍고 낯설었지만 동시에 안타깝고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결혼 원정기를 떠난 두 형제가 해화라는 조선족 여성을 한국으로 맞아들이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발이 없는 어머니는 꽃나무 아래에서 새로운 가족을 맞아 들이고 형은 신부를, 동생은 그녀를 사랑하게 되는 비극이 도시 근교의 오리탕집 마당에서 펼쳐진다. 이야기는 동생과 해화, 두 화자가 각 장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전개된다. 감정의 흐름만 있지 소통이 없는 화자들은 같은 이야기를 다르게 하며 다른 감정들을 같은 시각에서 이야기한다. 치밀한 조사를 거쳤으리라 느껴지는 조선족들의 이야기와 생생한 대화, 그리고 중국에서 밀수를 하는 보따리 장사들의 모습들이 극 전편에 걸쳐 펼쳐지며 대단히 중요한 여울목의 역할을 한다. 특히 첫 장면에서 세밀하게 벌어지는 서커스 장면은 기기묘묘한 감정의 곡예를 타고 넘는 등장 인물들의 심리와 오버랩되어 지속적으로 감상에 작용한다. 복합적인 이야기와 그보다 더 복잡한 심리극을 풀어내는 작가의 호흡은 한결 길어지고 편안해졌다. 예전 같았으면 급하게 바튼 숨을 내뱉었을 부분에서 오히려 숨을 고르는 문장들이 한결 믿음직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이 여주인공이었던 그녀의 전작들에서 그녀들이 질렀던 분노가 사그라들어 한숨이 된것은 성숙의 징후로 느껴진다. 선이 가늘고 여릿한 그러나 누구보다 성숙한 여성인 해화라는 캐릭터가 대표하듯 외강내유의 섬짓한 그녀들은 단단한 껍질을 벗고 물컹이는 심정의 속살을 드러낸다. 아픔을 표현하는 방식과 슬픔을 그려내는 방식에서 장반대를 취한 작가의 변화는 인간에 대한 긍정과 사랑에 대한 진심을 분명히 드러낸다.

나는 지금가지의 그녀의 이야기들에 분명 독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길지 않은 단편들을 읽어내리면서 납이나 카드뮴이나 무언가가 내 몸에 축적되고 있다는 망상에 빠졌다. 담배를 자꾸 피고 싶었고 쓰디 쓴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기분도 별로였고 허탈하기도 했고 당황스럽기도 해서 난감했다. 굉장히 좋았는데, 아주 맘에 드는 소설들이었는데 좀 께름직한 감정의 찌꺼기들이 내내 남아 있었다. <잘 가라, 서커스>는 지금까지의 독들을 풀어내는 해독제만 같다. 나는 바닷가에 말처럼 떨어지는 형의 뒷모습에서 비명을 삼킨채 울었고 해화의 유서에서 훌쩍 거렸으며 마지막 장을 덮으며 심하게 먹먹했다. 상처도 위안이고 사랑이라는 작가의 말을 읽으며 아무리 찍어도 피 한 방울 나지 않을거라고 격렬히 오해했던 작가의 박동에 대응하는 내 심장의 고동을 들으며, 책장을 덮으며 잘 가라, 서커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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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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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진보적인 여성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감정을 지닌 인간의 일기장이 얼마나 매력적인 읽을거리인지를 일년 육개월여만의 신작 <중국견문록>에서 자신감있게 입증한다.
나는 그녀의 독자인 것이 즐겁다.
망설이는 이들의 첫걸음에,흔들리는 이들의 마음안에
끝까지만 가면 되는거야..라고 큰 목소리로 외쳐주는
내 곁에 있는 작가의 따스함.
김용택시인의 서평에서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람이 한비야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생생함과 따스함.본인의 미덕을 숨김없이 책으로 드러내는 멋진 작가.
그녀의 소망대로 난민구호활동가로서의 앞으로의 삶도 응원하지만 앞으로 그녀의 멋진 글들 역시 기대하고 응원한다.

...한비야의 전작 <중국 견문록>을 읽고 썼던 서평의 마지막 문단이다. 물론 동일하게 나는 그녀의 독자인 것이 즐겁고 아직도 그녀의 행보가 더욱 더,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그리고 난민구호활동가로서의 삶에 감동하고 그녀의 멋진 글에 한번 더 감동한다.

오 년만의 신작. 기다림이 길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믿음직한 그녀이지만 잘 보이지 않아, 그 소식을 들을 수 없어 조금 염려스럽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그녀를 믿었다. 당연히 그녀는 훌륭히 자신의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리라 생각했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고운 잇속을 가득 보이는 시원한 미소로 돌아오리라 철썩같이 믿었다.

누나가 돌아왔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강한 청유형의 문장을 머리에 달고 누나가 포부도 당당히 돌아왔다. 어디 월남에서 돌아온 쌔까만 김상사가 이와 같이 의기 양양할 수 있으랴. 한비야는 멋진 여성, 당당한 직업인이기 이전에 약속을 지키는 작가다. 오 년간 그녀는 약속한 대로 열심히 일하고 살고 느끼고 감동했고 그 소소한 감정들을 전해주기 위해 일기 쓰듯 체록한 소중하고 고마운 문장들을 행간에 실린 그리움과 안타까움까지 버리지않고 펼쳐 놓는다. 세계를 돌던 설레임이나 우리 땅을 밟은 뿌듯함, 낯선 대륙의 학생으로서 느꼈던 열정과포부를 넘어 이 책에는 긴급 구호 팀장으로 세계의 사지에서 느낀 어머니의 절절함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포의 눈물겨운 애정과 우정이 적실만큼 묻어 있다.

'~하라'는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는 멋진 사람. 사려깊게 생각하고 시원스럽게 말해주는 선생님. 내게 한비야는 그런 사람이다. 작가가 누군가에게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믿음에 확신을 줄 수 있다면 선생님이 아니고 뭐라 호명할까. 그녀는 결코 자신의 삶을 강요하지 않지만 독자들에게 정체된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과 부끄러움을 끄집어 낸다. 새장 밖의 삶을 살라며 새 들을 끄집어 내진 않지만 창 살 사이의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멋지게 역설한다. 그녀를 따라 우리 땅을 밟았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다. 내 두발이 걸었던 길목마다 그녀가 먼저 새겨놓은 삶의 따스함이 나를 덥혔고 피곤한 쉼터마다 동일하게 아름다운 우리 산천이 시야에 걸렸다. 그렇게 한비야는 독자 곁에 누구보다 가까이 자리하는 작가다. 그녀의 강연을 들었거나 혹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투와 문체가 동일한 느낌을 주는 작가는 드물다. 그녀의 글이 쉽게 읽히고 빠르게 공감을 얻는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귀엽게 자신을 칭찬하고 엄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한 인간의 근사한 태도 역시 빼놓을 수 없이 매력적이다. 조금 과장섞인 듯한 비유지만 이 책은 한비야 매력의 집대성이다. 꿈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온 자가 마침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그 건강한 집요함이 빚어내는 움직임은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한 여성의 힘은 이렇게 크다. 그녀가 꾹꾹 눌러밟은 지구 곳곳의 아픈 흔적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쓰리게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난민들과 팔레스타인의 장벽, 네팔의 굶주림과, 아프리카 대륙에 번진 불치병의 흔적, 그리고 북녘 개마고원의 감자꽃밭까지.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쉼도 없이 언제나 그렇듯이 부지런했다. 아이들의 맑은 눈을 볼 수 있는 천운도 그대로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장기도 여전하다. 다만 그녀의 책이 한 권 한 권 쌓일때마다 더 근사하듯 맑은 감정과 고운 심성을 찰지게 다지는 단단한 매듭이 강인하다. 그녀는 세상 속에서 부딪혔던 세계 여행에서의 경험을 부딪힌 세상의 매듭을 풀어내고 위무하고자 쓰다듬는 손길로 쓰고 있다. 쾌재를 불렀다. 그녀가 낯선 땅에서 힘든 미션들을 마무리하는 모든 구절에서.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응원했다.

앞으로 또 그녀가 어떤 삶을 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도 책 말미에 쓰여있는 것처럼 세계의 모든 산맥을 밟고 그 경험을 또 다시 전달해 주리라 믿는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그 교과서적인 쉬움을 모두가 어렵다 말할때 받아쓰기 하듯 정직하게 보여주는 그녀가 있어서 무척이나 고맙다. 약속을 하나 한다면 언제까지 난 그녀의 팬이라는 것. 어떤 걸음이던 그녀를 지지하겠다는 것.그녀가 걷는 길목마다 덕분에 마음에 만개한 고마운 꽃다발을 뿌려놓고 싶다는 것. 즈려밟고 가시게, 아프지도 외롭지도 않게 그렇게 길을 가시라고, 돌아오는 길목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 언제고 그렇게 환영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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