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한비야 지음 / 푸른숲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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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진보적인 여성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감정을 지닌 인간의 일기장이 얼마나 매력적인 읽을거리인지를 일년 육개월여만의 신작 <중국견문록>에서 자신감있게 입증한다.
나는 그녀의 독자인 것이 즐겁다.
망설이는 이들의 첫걸음에,흔들리는 이들의 마음안에
끝까지만 가면 되는거야..라고 큰 목소리로 외쳐주는
내 곁에 있는 작가의 따스함.
김용택시인의 서평에서 지금까지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사람이 한비야라는 글을 읽은 기억이 난다.
생생함과 따스함.본인의 미덕을 숨김없이 책으로 드러내는 멋진 작가.
그녀의 소망대로 난민구호활동가로서의 앞으로의 삶도 응원하지만 앞으로 그녀의 멋진 글들 역시 기대하고 응원한다.

...한비야의 전작 <중국 견문록>을 읽고 썼던 서평의 마지막 문단이다. 물론 동일하게 나는 그녀의 독자인 것이 즐겁고 아직도 그녀의 행보가 더욱 더, 무척이나 기대가 된다. 그리고 난민구호활동가로서의 삶에 감동하고 그녀의 멋진 글에 한번 더 감동한다.

오 년만의 신작. 기다림이 길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해도 믿음직한 그녀이지만 잘 보이지 않아, 그 소식을 들을 수 없어 조금 염려스럽기도 했고 궁금하기도 했으나 최종적으로는 그녀를 믿었다. 당연히 그녀는 훌륭히 자신의 또 다른 영역을 개척하리라 생각했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며 고운 잇속을 가득 보이는 시원한 미소로 돌아오리라 철썩같이 믿었다.

누나가 돌아왔다.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강한 청유형의 문장을 머리에 달고 누나가 포부도 당당히 돌아왔다. 어디 월남에서 돌아온 쌔까만 김상사가 이와 같이 의기 양양할 수 있으랴. 한비야는 멋진 여성, 당당한 직업인이기 이전에 약속을 지키는 작가다. 오 년간 그녀는 약속한 대로 열심히 일하고 살고 느끼고 감동했고 그 소소한 감정들을 전해주기 위해 일기 쓰듯 체록한 소중하고 고마운 문장들을 행간에 실린 그리움과 안타까움까지 버리지않고 펼쳐 놓는다. 세계를 돌던 설레임이나 우리 땅을 밟은 뿌듯함, 낯선 대륙의 학생으로서 느꼈던 열정과포부를 넘어 이 책에는 긴급 구호 팀장으로 세계의 사지에서 느낀 어머니의 절절함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동포의 눈물겨운 애정과 우정이 적실만큼 묻어 있다.

'~하라'는 말이 기분 나쁘게 들리지 않는 멋진 사람. 사려깊게 생각하고 시원스럽게 말해주는 선생님. 내게 한비야는 그런 사람이다. 작가가 누군가에게 인생의 목표를 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고 믿음에 확신을 줄 수 있다면 선생님이 아니고 뭐라 호명할까. 그녀는 결코 자신의 삶을 강요하지 않지만 독자들에게 정체된 삶을 산다는 것에 대한 자기반성과 부끄러움을 끄집어 낸다. 새장 밖의 삶을 살라며 새 들을 끄집어 내진 않지만 창 살 사이의 하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멋지게 역설한다. 그녀를 따라 우리 땅을 밟았던 기억은 아직도 잊지 못할 소중한 기억이다. 내 두발이 걸었던 길목마다 그녀가 먼저 새겨놓은 삶의 따스함이 나를 덥혔고 피곤한 쉼터마다 동일하게 아름다운 우리 산천이 시야에 걸렸다. 그렇게 한비야는 독자 곁에 누구보다 가까이 자리하는 작가다. 그녀의 강연을 들었거나 혹은 그녀와 대화를 나누어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어투와 문체가 동일한 느낌을 주는 작가는 드물다. 그녀의 글이 쉽게 읽히고 빠르게 공감을 얻는 것은 그것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귀엽게 자신을 칭찬하고 엄하게 자신을 채찍질하는 한 인간의 근사한 태도 역시 빼놓을 수 없이 매력적이다. 조금 과장섞인 듯한 비유지만 이 책은 한비야 매력의 집대성이다. 꿈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온 자가 마침내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고 그 건강한 집요함이 빚어내는 움직임은 감탄스러울 정도이다.

한 여성의 힘은 이렇게 크다. 그녀가 꾹꾹 눌러밟은 지구 곳곳의 아픈 흔적들은 보는 이의 마음을 쓰리게 한다. 아프가니스탄의 난민들과 팔레스타인의 장벽, 네팔의 굶주림과, 아프리카 대륙에 번진 불치병의 흔적, 그리고 북녘 개마고원의 감자꽃밭까지. 오 년이라는 시간 동안 참 쉼도 없이 언제나 그렇듯이 부지런했다. 아이들의 맑은 눈을 볼 수 있는 천운도 그대로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장기도 여전하다. 다만 그녀의 책이 한 권 한 권 쌓일때마다 더 근사하듯 맑은 감정과 고운 심성을 찰지게 다지는 단단한 매듭이 강인하다. 그녀는 세상 속에서 부딪혔던 세계 여행에서의 경험을 부딪힌 세상의 매듭을 풀어내고 위무하고자 쓰다듬는 손길로 쓰고 있다. 쾌재를 불렀다. 그녀가 낯선 땅에서 힘든 미션들을 마무리하는 모든 구절에서. 마치 곁에 있는 것처럼 기도하고 응원했다.

앞으로 또 그녀가 어떤 삶을 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마도 책 말미에 쓰여있는 것처럼 세계의 모든 산맥을 밟고 그 경험을 또 다시 전달해 주리라 믿는다.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는 그 교과서적인 쉬움을 모두가 어렵다 말할때 받아쓰기 하듯 정직하게 보여주는 그녀가 있어서 무척이나 고맙다. 약속을 하나 한다면 언제까지 난 그녀의 팬이라는 것. 어떤 걸음이던 그녀를 지지하겠다는 것.그녀가 걷는 길목마다 덕분에 마음에 만개한 고마운 꽃다발을 뿌려놓고 싶다는 것. 즈려밟고 가시게, 아프지도 외롭지도 않게 그렇게 길을 가시라고, 돌아오는 길목에 노란 손수건을 달아 언제고 그렇게 환영하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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