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나는 원했던 대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 P19

다시 봄이 오자 안개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렸고, 한낮에도 하늘은 납빛으로 어두웠다. 집안에 언제나 떠다니던 차고 습한 기운이 나를 짓눌렀다. 이웃집에 살던 아랍 사람들은 이사를 갔고, 나는 여전히 마늘을 쌓고 멸치를 다듬었다. - P27

지금도 그날을 추억하면 빗속을 뛰어가는 언니와 나의 모습은 손끝에 닿을 듯 생생하고,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울고싶어진다. - P39

새벽의 기차역 풍경을 알고 있지요? 우리가 오래전 처음 헤어졌던 곳도 새벽의 기차역이었어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국경을 건너는 기차에 올라타려던 내게 당신 부부가 작별의 말을 건네던 장면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 P43

한스가 물었습니다.
"난, 관광객들이 없으면 그 아이들이 상대적 빈곤을 느끼지는않아도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 달러를 벌기 위해 구걸하듯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 삶에 익숙해지지는않아도 될 거라고 말이죠."
"당신, 취했어? 왜이래?" - P63

죽은 고양이를 처음 본 것은 내가 열여덟 살에서 열아홉 살로넘어가던 겨울이었다. 눈 소식이 유난히 없었던 그해 겨울, 잣눈,
싸라기눈, 눈, 국어사전에서 눈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이름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눈이 오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노트에 베껴 적으며 지루한 겨울을 나고 있었다. - P75

"세상에.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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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레 희자를 얼마나 아끼는지도 다 안다.
-아즈마이, 내레…- 기냥 울어버리라우. - P203

"귀리는 좀 어때?"
나는 정자 쪽으로 걸어가서 할머니 곁에 앉았다.
"안 좋아요. 오늘은 고개도 잘 못 들더라구요. 밥을 못 먹은 지도꽤 됐어요. ‘ - P211

-기계 언제 적 일인데, 기억도 잘 안나.
-거짓말 마라.
어마이 우리 지나간 일 잡고 살지 맙시다. 개성에서의 일 난다잊었어 - P217

"얼마 전에 할머니 꿈을 꿨어."
엄마가 이어서 말했다. - P328

-그래, 그래.
희자와 증조모, 그리고 경순이 방으로 들어가 담요를 같이 덮고서새비 아주머니를 바라봤다.
- 이틀째 드신 게 없어요. - P290

나는 여전히 그런 일들을 잊지 못한다. - P282

"어떻게…… 너한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니."
엄마가 힘없이 물었다. 마치 내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어서묻는다는 듯이. - P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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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
"희령이다." - P139

- 아이고, 희자야. 우리 이제 다른 이야기 할까.
그러자 희자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 언니는 다 잊었구만.
-잊기는, 모두 기억한다. 근데 희자 너레 그때 이야기를 너무 많이 하니까. - P148

나는 공터 뒤로 펼쳐진 바다를 바라봤다. 세 살 때 나는 증조할머니와 할머니와 엄마와 함께 지금 공터가 된 이 자리에 있었다. 같이 밥을 먹고 잠을 자고 웃었겠지. 나는 세 살의 내가 머물렀던 할머니의집을 그려볼 수 있었다. 그리고 늘 함께 붙어다녔던 언니의 모습도. - P169

엄마가 멕시코에서 돌아온 주 주말에 서울에 올라갔다. 그날은 장시간 운전할 자신이 없어서 시외버스와 택시를 갈아타고 집으로 갔다. 엄마의 피부는 보기 좋게 그을었고 표정도 예전보다 밝아 보였다.
"엄마 귀 뚫었어?"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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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철학책은 […] 자전적이다. 비록 사람마다 얼마나 그런지말하기는 어렵지만, [책은] 그것을 쓴 사람의 전기와 연관되어 있다.
따라서 이 책의 경우도 [나의 전기와 이 책이 얼마나 연관되어 있는지를말하기는 어렵다. 나는 언제 이것을 쓰기 시작했는지,
또는 얼마나 오랫동안 이것을 써왔는지 말할수 없다.
다만 아주 어렵게 그 마지막날짜를 기록할수 있을 뿐이다.
- 도나텔라 에스테르 디 체사레 * - P9

이 책은 사유의 짧지 않은 여정을 담고 있다. 그것은 잘 그려진 지도를 들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한 계획된 여정은 아니었다. 그저 매번 어떤 질문에서 촉발된 하나의 사유 과정이 작은 매듭을 짓고 나면, 다시금 그 매듭을 풀거나 끊어야 할 날카로운 질문이 떠올랐고,
그 질문으로부터 새로운 사유의 과정을 이어 가야 했다. 그렇게 이어진 길을 따라 지금 여기에 서 있다. - P9

그래서 주변화된 삶이 있는, 말하지 못하는 경험이 있는 곳에서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세계에 드러나지 않아 존엄도 권리도 주장하지 못한 삶의 이야기들을 드러내야 한다고 생각하며연구와 작업을 시작했다. 지식담론의 권력으로 재단하지도 말고,
감히 그들의 이야기를 대리(代理)할 수 있다고 오판하지도 말고, 타자/소수자/서발턴이 스스로 말할 수 있도록 언어를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작업하고자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질문과 만났다. - P10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정리할 수 있기를 기대했던 이 작업은, 펼쳐 읽기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곧 발견하게 되는 것처럼, 여전히 답이나 해결보다 더 많은 물음과 고민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 P15

말하는 인간호모 로쿠센스(Hono Logina) - P20

이거야, 잘 들어 봐, 피콜로 귀와 머리를 열어야 해. 날 위해 이해해 줘야해.
그대들이 타고난 본성을 가늠하시오.
짐승으로 살고자 태어나지 않았고오히려 덕과 지를 따르기 위함이라오. (레비, 2010: 174) - P23

노동, 작업, 행위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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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지 나간 아버지로부터는 소식이 없었다.
엄마는 고달프고 고단하고 고적했다. 그런고달프고 고단하고 고적한 날의 어느 밤에엄마는 달빛을 이용해 그림자놀이를 했다.
엄마는 그림자놀이를 달빛 아래서 하고 동네 사람들은 햇빛 아래서 하는 게라고 나는생각했다. - P31

언제 한 번이라도 다리 쭉 펴고큰대자로 누워볼 수 없게옹색한 거처에서. - P15

고향을 생각하고, 집을 생각하면 따뜻하고기분 좋은 것만은 아니다. 고향을 생각하는마음 깊숙한 곳에 또아리 틀고 있는 스산함, 황량함의 감정을 나는 쉽게 말해오진못했지만 부정할 수는 없다. 헐벗은 산천,
버림받거나 잊혀진 세상의 오지. 그것이 내고향의 일면이기도 하다. 내가 태어난 마을은 정확히 서향이다. 해는 언제나 우리 동네 뒤에서 떠서 앞으로 진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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