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가을 나는 원했던 대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 P19
다시 봄이 오자 안개비가 시도 때도 없이 내렸고, 한낮에도 하늘은 납빛으로 어두웠다. 집안에 언제나 떠다니던 차고 습한 기운이 나를 짓눌렀다. 이웃집에 살던 아랍 사람들은 이사를 갔고, 나는 여전히 마늘을 쌓고 멸치를 다듬었다. - P27
지금도 그날을 추억하면 빗속을 뛰어가는 언니와 나의 모습은 손끝에 닿을 듯 생생하고, 그러면 나는 어김없이 울고싶어진다. - P39
새벽의 기차역 풍경을 알고 있지요? 우리가 오래전 처음 헤어졌던 곳도 새벽의 기차역이었어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진 채 국경을 건너는 기차에 올라타려던 내게 당신 부부가 작별의 말을 건네던 장면을 떠올릴 때가 있습니다. - P43
한스가 물었습니다. "난, 관광객들이 없으면 그 아이들이 상대적 빈곤을 느끼지는않아도 됐을 거라고 생각해요. 누구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일 달러를 벌기 위해 구걸하듯 돈을 달라고 해야 하는 삶에 익숙해지지는않아도 될 거라고 말이죠." "당신, 취했어? 왜이래?" - P63
죽은 고양이를 처음 본 것은 내가 열여덟 살에서 열아홉 살로넘어가던 겨울이었다. 눈 소식이 유난히 없었던 그해 겨울, 잣눈, 싸라기눈, 눈, 국어사전에서 눈을 가리키는 서로 다른 이름들을 발견할 때마다 나는 눈이 오길 기다리는 마음으로 노트에 베껴 적으며 지루한 겨울을 나고 있었다. - P7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