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언은 자신이 가장 자주 가는 곳이 어디인지부터 생각해보기로 했다. 우선은 회사. 회사는 칠 일 중 오일을 나가니까. 그다음은 동네 카페 A. 동네를 걷다가 만만하게 들어갈수 있는 카페였다. - P83

그때 수언은 허무하고 허무했다. - P85

그 사람이 쓰는 사물은 그 사람과 닮았다. 수언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들었고 그럴 때마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다시 한번 집요하게 평가하게 되었다. - P89

연이나 운은 장난스럽고 얄궂어서 두 사람은 기어이 서로를 측은해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되었다. 생각보다 괜찮은 애였구나, 하게 되는 순간. 스물네 살이었다. - P89

-안 한대-왜?
- 시간이 없대 - P92

수언은 늘 솔지의 목소리가 복잡하다고 느꼈다. 고민을 털어놓고 이런저런 의견이나 감상을 말할 때의 목소리에 레이어가 있다고, 곁이 있었다. 수언이 생각하기에 그것은 솔지를 풍부해 보이도록 하는 매력적인 곁이 아니라 쓸데없는 겹이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스스로 처세를 잘한다고 믿는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볼지를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의식하는, (그렇지만 자신은 매우 자연스럽다고 믿는 자의식이 도드라지는 사람의 겹이었다. - P95

고마워...
근데 진짜 막상은 별거 아니야. 그거 됐다고 뭐 바뀌니 - P103

말 안 해도 다 느껴지거든? - P105

- 저녁 먹자. 할 얘기 있어그렇게 대차게 싸우고 또 없었던 일처럼 연락을 하는 것도, 열네 살 이후로 처음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엄마가 아니면 이렇게 안 하지 않나………… 문득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관계는 다른 관계와 조금 다르다는 감각도 있었다. 수언에게서는 사 분 뒤에 짧은 답장이 왔다.
-언제? - P109

어우…………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솔지가 말했다.
미안해. - P111

우리, 싸울 때 제일 많이 얘기했어.
뭘?
그냥, 자기에 대해.
나 누구랑 싸워본 거 처음인 거 같아.
누군 여러 번이냐. - P115

거짓말처럼 폭우가 쏟아졌다. 우산 없이 온몸으로를 맞는 느낌이 시원했다. 맞잡은 손 사이로 빗물이 흘러들었다손등에 닿은 차가운 비가 마주잡은 두 손바닥 사이로 들어가 채문정도로 데워졌다. 맞을 만한 비였다.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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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역사 - '공무도하가'에서 '사랑의 발명'까지
신형철 지음 / 난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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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여진 순간들을 찾아내고 닦아내어 조심스레 건네는 필사적 애정의 기록 간곡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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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살을 찢고 나왔으니나와 너우리의 고향은 차가운 칼이다

자신의 욕망을 분명히 안다는 것, 그걸 평생의 업으로삼겠다고 결정하는 것, 그 자체로 재능이 아닐까. - P157

조금 알게 되니 시가 너무 좋았고 그 좋은 걸 평생즐기며 살고 싶어졌다. 물론 ‘락지자‘로 산다는 게 굉장히어려운 일이라 가장 마지막 퀘스트라는 걸 알게 된 것도 먼훗날의 일이지만. - P160

이렇게 후련한데, 싶은 마음이 된다. (물론 시로도 많은 돈을벌 수 있으면 더 좋겠다. 로또 1등보다 더 간절한 평생의 열망. 왜때문에 시 고료는 안 올라요?) - P161

특히 부동산에 관련된 일은 제주 토박이 친구들의공이 혁혁했다. 제주는 특유의 ‘괸당‘ 문화라는 게 있다.
괸당이라는 말은 제주어로 ‘친척‘ 정도에 해당하는말로, 부정적으로 해석하면 제주 사람들이 이방인에게부리는 일종의 텃세라는 뜻이다. 본인들의 괸당이 아닌사람들에게는 정보나 마음을 나눠 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 P166

현관문이 열리지 않게 꽉 밀면서 고개를 뒤로 돌려곤히 자고 있는 딸을 보았다. 딸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잠에빠지면 잘 깨지 않는 편이다. 그때 깨지 않은 게 얼마나다행이었는지 모른다. 딸의 얼굴을 보니 머리가 더욱 팽팽돌아갔다. 침입자가 문을 열고 들어오면 재빨리 부엌으로가 식칼을 챙겨야지, 그리고 아이를 안고 안방 창문으로뛰어나가서 마당으로 나간 뒤 신지를 데리고 도망가겠다는동선을 머릿속에 수차례 그렸다. 그런 생각을 하는 순간에경찰이 도착했다. 그리고 또 얼마 후 남편이 헐레벌떡도착했다. - P170

비가 내리고 있을 때는따뜻한 곳을 알 수 없고길을 걷고 있을 때는길의 다리를 만질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위태로웠다. 그런 나를 겨우 지탱해 주는 건역설적이게도 내가 돌봐야 하는 존재들, 아기와 신지였다.
하루에 한 번 아기를 품에 안고 신지와 함께 산책하는 시간이없었다면 나는 그 시절을 버티지 못했을 거다. 잘은 모르지만우울증 치료에 햇빛을 쬐는 시간이 포함된다는 이야기를들어 본 적 있다. 내게도 볕이 중요했다. 햇살 사이를 걸으며내 발걸음을 느끼며 아, 그래도 내가 여기 있구나, 나를확인하는 시간이 없었다면, 그런 것 말고는 내가 나임을 알수 있게 하는 단서가 그 어디에도 없었으니까. - P176

올해로 무명서점은 4주년을 맞이했다. 딸의 나이가 네살이니 무명서점과 딸이 함께 커 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무명서점이 없어지지 않고 오랫동안 고산리를 지켰으면좋겠다. 무명서점이 내게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서점원 언니에게 한 번도 말해 본 적은 없다. 말로는 좀쑥스러우니까 이렇게 지면을 빌어 그 마음을 전한다. - P180

포기하는 단어에는 "위험과 기회의 의미가 모두프로듀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자들이반드시 등장하는 거라고, 아이를 낳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그들의 바다로 조금씩 가라앉았다. 결국 이제 진짜 끝이다싶을 정도로 바닥을 쳤다. 그랬기 때문에 조금씩 위로 상승할수 있었던 걸까. -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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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소리야 너 하나도 우스운 거 안 했는데.

나도 모르게 그 사람에 대해 자주 생각하고 있었다. - P278

그러고 보면 얘기하는 걸 좋아하는 건가.....… - P160

그리고 은주는 여행을 선언했다. - P210

연차내고 평일 낮에 조금 기다리고 여러 번 타.
안 무서워요?
이제 안 무서워.
세상이 뒤집어지는데? 어쩌다가 무서우면요? -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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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개가 울고 종이 들리고 달이 떠도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술에서 깨어난 무거운 몸이여오오 봄이여 - P124

책은 다시 읽을 수 있다는 것은. - P246

"최초의 악수"가 비로소 가능해고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이 악수는 "내가 나에게" 하는있는 "최초의 악수"라고 했으니 그 이전에는 악수를 한 적이하는 말이다. 부끄러워만 했던 시절의 윤동주는 자기 자신을한번도 온전히 긍정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 P175

온순한 구성원으로 살아온 사람은 축소해 말해도 결국 ‘구조적 가해자‘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이 점을 자인하는 부끄러움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으리라. - P61

셰익스피어가 소네트를 단 한 편도 쓰지 않았더라도 그는 위대한 시인이다. 『맥베스』에 나오는 ‘인생은, 소음과 분노가 가득하지만 아무런 의미도 없는, 백치가 들려주는 이야기‘나, 『햄릿』에나오는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같은 독백에는 강력한이미지와 압축의 묘미가 있다. 이것들이 시가 아니라면 무엇일까.
2016년 출간된 훌륭한 앤솔러지 영국 대표시선집』의 셰익스피어 파트에 이 독백이 포함돼 있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런 그가 소네트를, 그것도 154편이나 썼으니, 이것은 한 인간이후대의 인류에게 남긴 아름다운 선물이다. - P77

그대가 잃을 수밖에없는 그것

유일한 황제는아이스크림의 황제

여럿이 마시는 사람은 희망이 소중하다고 믿는 사람이고, 혼자마시는 사람은 절망이 정직하다고 믿는 사람일까. 전자가 결국 절망뿐임을 깨달으면 귀가하다 혼자서 한잔 더 할 것이고, 후자가 끝내 희망을 포기 못하겠으면 누군가를 불러내 한잔 더 할 것이다. - P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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