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들은 그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자기 안에 중요한 뭔가를 만들어. 한 번은 반드시 그걸 바깥으로 꺼내야하고" - P23

별거 아닌 것들의 별것을 향한 몸부림. 그 말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별거 아닌 것을 말할 줄 아는 용기도. 엄마의 그 말이 없었다면 나는 아무것도 쓰지 못했을 테니까. - P25

당신의 어쩔 수 없음은 무엇인가? - P26

엄마의 바람과 상관없는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틀 바깥으로 나갈 수 있을 만큼 용기 있지 않았고, 틀 안에서 순응할 만큼 순종적이지도 않않는데 어쩌면 그것이 나의 영원한 모순이 아닐까 싶다. - P29

침묵을 듣는 일은 가벼워야 한다. - P34

제가 원하는 것은 생명이 유동하는 것, 매일매일 변하는 것, 어떤 새로운 것, 습관적인 것인데! 미칠 듯한 순간, 세계와 자아가 합일되는 느낌을 주는 찰나, 충만한가득 찬 순간 등 손에 영원히 안 잡히는 것들이 나의 갈망의 대상입니다.* - P37

여자라는 이유로 서로에게 조심하라며 윽박지르거나, 조심성이 없다고 탓하다가 미안해졌던 많은 일들이 결코 우리의 잘못은 아니었다는 것을. - P43

"눈앞에 보이는 게 끝이 아니라 그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 갈망할 수 있는 것 같아. 나는 늘눈앞에 보이는 것 그 앞에서 멈췄던 것 같고." - P47

이 시의 첫 줄에서 말하는 영원히 안녕이란 뜻의 ‘Adieu‘
는 슬픔에 고하는 작별이고, 둘째 줄의 안녕은 ‘Bonjour‘,
눈앞에 있는 슬픔을 맞이하는 인사다. - P53

"오래된 노래야?"
내가 물었고,
"오래된 노래야?"
엄마가 답했다. - P55

한국어가 서툰 그는 ‘오래된‘과 ‘아름다운‘을 헷갈린다. - P59

‘여긴 괜찮으니까 어서 가라고 말하며 남아 있는 사람들. - P62

"새... 러안 사므를 지삭키는 너에게… 맞아?"
그는 내게 편지를 돌려주며 물었고, 나는 그에게 천천히 또박또박 엄마가 쓴 글자를 읽어줬다.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너에게." - P70

"다 그리고 싶어"
언젠가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이기도 하다. 하얀 캔버스와 사과와 꽃병과 접시 앞에서. - P77

화가가 되지 못했던 엄마가 그린 그림은 사실상 모두연습에 불과했고, 그 연습 끝에 엄마가 완성한 진짜 작품은 연습했던 시간, 엄마의 인생이라는 것을 나는 잘 알고있다. 내가 쓰는 글 역시 모두 연습이고, 이 연습 끝에 탄생하게 될 진짜 작품은 좋은 글을 쓰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간, 나의 인생이라는 것도. - P81

고독이라면 모를까, 외로움은 우리를 자기만의 방이 아닌 타인의 방문 앞으로 데려다놓을 뿐이다. - P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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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건넌방에서 시작됐다. 작은 창으로 손바닥만한 세상이 보이던 방, 그 방에 스물세 살의 여자와 아기가있었다. - P7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출산을 죄책감이라고 했다. 출산은 아기를 놓아버리는 것이며, 태어난 생명의 첫표명은 고통이라고. 실제로 출산 후 여자가 느꼈던 감정은 행복이나 충만함이 아닌 두려움과 불안이었다. - P7

‘있었다‘로 시작해서 ‘살았어‘로 끝나는 이야기들. - P8

"이야기로 나아가기"
내가 여자에게서 들었던 말이다. - P10

나는 엄마의 이야기로부터 ‘있다‘의 세계를 향한 믿음을 키웠고, 그것은 내 글쓰기의 토대가 됐다. - P12

나의 셰에라자드, 엄마의 이야기는 창조에 가까웠다.
이야기 속에서 엄마는 발견했고, 떠났고, 만들었다. - P12

그렇다면 하찮은 이야기를 해보면 어떨까. - P20

"사람이 참 하찮은 것에 매달려 살아" - P23

"여자들은 어쩔 수 없지."
그런가? - P23

"여자들은 그 어쩔 수 없는 것 때문에 자기 안에 중요한 뭔가를 만들어. 한 번은 반드시 그걸 바깥으로 꺼내야하고" - 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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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당신이 이런 처지라면, 새집을 재생과 희망의 공간으로 꾸미기위해서 무슨 일을 할까? 여전히 가난하고 아프고 슬픈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그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린다. "교란되고 망가진 땅에서도 새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을 품기 위해서, 새집에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비싼 모종이나 씨앗을 살 돈은 없다. 그가 활용할 수 있는 땅은 예전에 석공장이 있던 터여서 돌투성이이고, 식물이쉽게 자랄 만한 땅이 못 된다. 그래서 그는 야생의 정원을 만들기로 한다. 야생화와 잡초의 정원, 약초의 정원을 만들기로 한다. - P9

야생화와 잡초의 정원, 약초의 정원을 만들기로 한다. - P9

아이에게는 충분히 비옥한 토양일 수 있음을 믿게 된다. "꽃을 피우는 구근이 하나 있다면 썩어버리는 구근도 하나 있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므로, 우리는 "그냥 심는 것 그리고 그것이 자라리라고 믿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게 된다. 야생의 정원에서는 정말로 언제든 무언가는 자라기 때문이다. 우리가 이곳에서는 아무것도 자랄 리 없다고 지레 절망하고 슬퍼할 때에도. 이것이 들풀의 구원이다. - P10

"아니." 나는 말한다. 그것은 다른 삶의 유적이다. 솔직히 이제는 이물건 중 무엇도 필요하지 않다. 사랑하는 사람을 붙들어둘 수도 없는 마당에, 물건은 뭣 하러 붙들고 있겠는가? - P20

* 요정들이 아이를 바꿔치기하지 못하게 막으려면데이지 꽃을 엮어서 아이의 목에 걸어주라 - P23

이것이 우리가 사는 미래다. 내가 상상한 미래는 이렇지 않았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어차피 상상대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 - P25

우리에게 재건할 기회를 준 이 집에 고맙다. 이 집은 과거가 없다. 그점이 마음에 든다. 나는 유령을 원하지 않는다. 유령이라면 이미 충분히데리고 있고, 그들의 목소리가 너무 시끄럽다. 이 집은 침묵한다. 그래서 숨이 트인다. 폐산업용지에 들어선 단지의 집들은 모두 똑같이 생겼다. 벽은 모두 회색이고, 빈방은 모두 흰 목련색이고, 빈 풀밭이 마당으로 딸려 있다. 내가 기대했던 집과는 다르지만, 그래도 나는 이곳이 필요하다. - P29

옛사람들은 폭풍우, 화재, 마법으로부터 집을 보호하기 위해서 벽에 하우스릭을 길렀다. 학명 ‘셈페르비붐‘은 ‘늘 살아 있다‘는 뜻이다. 어린 순과 잎은 먹을 수 있고 오이와 맛이 비슷하다. 항염증 효과가 있어 약초학에서 화상, 덴곳, 궤양, 대상포진, 결막염, 기타 피부 및 눈 질환에 찜질제로 널리 쓰인다.
하우스릭은 돌이 많은 땅, 벽, 지붕, 부서진 건물에서 잘 자란다. - P31

이런 곳에서 아들과 나는 우리만의 마법 정원을 만들기로 결심한다.
나는 정원사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정원사의 모습에는 맞지 않는다. 나는 제때에 심지 않고, 심어야 할 곳에 심지 않는다. 무엇을심어야 하고 무엇을 심지 말아야 하는지 모른다. 그저 호기심과 우연에이끌려서 되는 대로 가꿀 뿐이지만, 내게는 여기 교란되고 망가진 땅에서도 새 생명이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 P32

이 순간은 우리가 벌써 그리워하는 순간, 순수한 기쁨의 순간이다. 우리는 이 순간을 영원히 잡아둘 수 있다고, 우리가 어떤 안정된 상태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만, 세상의 모든 것처럼 이 순간도 지나갈 것이다. - P39

지금은 새벽 세시, 언니가 죽었다… - P40

나는 기다림을 생각한다. 말해진 것들과 결코 말해지지 않은 것들을생각하고, 이 기억에 소리가 없다는 사실을 생각한다. - P45

*중지를 검지 위에 얹어서 손가락으로 십자가 모양을 만드는 동작은 행운을 비는 뜻인데,
누군가 몰래 이 동작을 하며 말할 때는 지금 하는 말이 거짓말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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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렌츠는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나타났다. 안심이 되어 상상도할 수 없는 소리를 내는 비올라를 산책시키고는 내 방문을 두드렸무언가 나와 이야기할 것이 있다고, 남편이 그 이야기의 증인이될 필요는 없으니 자기 집으로 갈 것을 청했다. - P84

에메렌츠는 고맙다는 말을 하지는 않았으나 이에 대해 언급하긴했는데, 이럴 때는 좋지도 싫지도 않다는 제스처를 잊는 법이 없었다.
그녀는 무엇을 숨기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가족 없이 혼자 산다는 것을 손님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으며, 왜 문을 열지 않는지 그리고 왜이렇게 어렵게 사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싶지도 않다고 대답했다. - P88

. "나는 아프지 않고,
사람들에게 해를 끼치지도 않고, 내 방식대로 그렇게 살고 있어요.
의사들과는 말도 섞지 않는다는 건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의사가이래라 저래라 하는 걸 좋아하지 않으니 그냥 놔두세요. 당신은 내가 무언가를 청하면 주기는 하지요. 하지만 미주알고주알 말고 그랬으면 싶네요. 그렇지 않으면 줘도 쓸모가 없어요." - P89

‘아니야, 이건 도가 지나쳤어‘, 나는 그녀가 자신의 발작에 어울리는 다른 관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서 있던 나는 몸을 돌려 어머니의 방에서 그 쓰레기들을 다 치워달라고, 너무 심한 바람이 아니라면, 따라갈 수 없는 그녀의 개인적인 삶의 사건에 대한 조연으로 우리를 선택하지 말아달라고, 무대로서 우리 가정을 택하지말아달라고 요청했다. 그녀가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차분하지만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녀는 이해했다. - P93

다시 남편 옆으로 몸을 뉘었을 때 그는 여전히 꿈결 속이었다. 오늘, 평소와는 다르게 동요된 비올라를 어렵사리 제자리로 돌려보냈다. 이후 비올라는 어머니의 방도 아닌 욕실 문턱에서 잠이 들었는데, 남자처럼 코를 골았다. 마침내 평온해진 것을 들은 셈이었다. - P104

부질없었으나, 에메렌츠는 자신의마음이 끌리는 바에 따라 스스로를 표현했을 뿐이라고, 애써 남편에게 설명했다. 남편이 보고 있는 모든 것은 그녀가 사랑을 느끼게해주려고 한 것이니 그렇게 생각해보라고, 에메렌츠는 극단의 감정을 이렇게 이상하게 보여주는 것일 뿐, 단지 자신이 선택한 것들을스스로의 렌즈에 맞춘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런저런 주제들로건너뛰지 말고, 나중에 내가 모든 것을 정리할 테니 제발 듣기에도공포스러운 소리는 말아달라고 청했다. - P109

"많은 사냥감들이 내던져진 걸 보았지요?" 그녀는 물었다. "다른사람들에게 남겨진 게 없을 정도로 모두 가져왔어요. 기쁘지요?" - P113

파랗게 번쩍이는 그녀의 시선이 나를 향했다. 그 시선에는 흥미,
호감, 관심 대신 맨살의 증오가 먼저 보였다.
"폐품이라니 무슨 말이죠?" 그녀가 물었다. "무슨 뜻인가요? 설명해주세요." - P115

"왜냐면 당신은 장님에다 바보이고 비겁하기까지 해요. 그 때문이에요." 그녀는 하나하나 열거했다. "내가 당신의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 신만은 그것을 알고 계시지만, 그와는 별개로 당신은 그럴만하지 않군요. 아마 나중에 나이가 들면 당신 자신의 취향도, 용기도 생길 날이 있을 거예요.‘ - P117

애정은 온화하고 규정된 틀에 맞게, 또한 분명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누구를 대신해서도 그 애정의 형태를 내가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 P118

"박사님, 코모의 취향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요." 그는 남편을쳐다보았다. "저는 이미 알고 계신 줄 알고 있었어요. 문제는, 고모가 어른에게는 절대 무엇인가를 가져다주지 않기에, 두 분께 줄 선•물을 찾을 때는 항상 두 명의 아이들에게 주려는 것들을 선택했다는 거예요" - P121

우리가 그녀 헌법의 어떤 엄격한 법 조항을 어겼기에, 귀에 상처가난한낱 강아지 모형을 거두지 않았다고 그녀는 이렇게 벌을 주는 것일까? - P123

통찰력 있는 모든 이는 그녀에 대한 나의 지속적이며 한결같은상냥함이 단지 친한 척만 하는 감정을 넘어선 것이라고 벌써 오래전에 눈치 챘을 것이다. 실제로 이 세상에서 이 정도로 나와 관련을맺고 있는 사람은 한 손에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이후 내가 가까이 허락한 사람은 에메렌츠가 유일했는데, 귀에 상처가 난 강아지 조각 때문에 그녀를 잃은 지금에서야 이 생각이 들었다. - P124

에메렌츠는 우리 앞에서 사라졌으나, 마치 대서사시의 등장인물처럼 우리 주변의 세상을 마비시켰고 묽은 대기 속으로 흩어졌다.
그녀는 우리의 일과를 알기에 우리가 언제 거리에 있을지 또는 있을 수 있는지를 짐작하여, 가능하다면 서로 만나지 않도록 시간을조정했다. 그녀와 조우할 수조차 없었던 것이다. - P127

"그래요." 나는 대답했다.
"어디에 둘 건가요?"
"당신이 원하는 곳에요."
"주인님이 계시는 곳도 괜찮은가요?"
"당신이 원하는 곳이라고 얘기했어요."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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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대진의 집으로 향하는 버스는 막히지도 않고 늘제시간에 맞춰 목적지에 도착했다. - P191

시골도 별수없네. 그렇게 생각하며 무인 매표기 앞에 한가득 짐을 내려놓는 할머니를 바라보았다. 도와드려야 한다는생각에 그 근처를 서성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멸치 똥을 따듯이, 민첩한 속도로 행선지를 클릭하고 IC 카드를 정확한 방향으로 투입하여 결제했다. 해나는 무안해져 얼른 터미널을 나섰고 무더운 날씨에 계절을 헤아리다 아직 유월도 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 P192

세상이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자신의 삶을 독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95

여기에 쓰인 모든 소설은 제가 쓴 것이지만 온전히 제 것이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야기를 구상하고 써내려간 것은 저이지만, 소설은 제가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지점에 도달해버렸습니다. 하지만 도달한 그 지점이 최선의 지점이라는 말 또한아닙니다. 저는 종종 상상하곤 합니다. - P359

당시 해나는 돈 나올 구멍을 찾느라 포털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온갖 공모전에 지원하고 있었다. 그러다 국토교통부에서주최하는 ‘생태도시 이름 공모‘를 보게 된 것이었다. 해나의아이디어가 채택되었다는 연락을 받은 것은 그로부터 한 달뒤였다. 부재중 전화 및 통과 주최측의 축하 메시지가 와 있었다. 해나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몇 번이고 상금을 확인한 뒤 이마를 짚고 중얼거렸다. 미쳤다. - P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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