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우리는 스스로 서로의 언덕이 되었다. - P141

나는 누가 아프다는 소리를 들으면 내 몸이 아파도 뛰어간다. 몸도 마음도 많이 아파봤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해줄 게없더라도 손 한 번 발 한 번 잡아보러 간다. 밤이 이슥해져 사위가 고요한 시간, 아픈 사람들은 내게 전화를 건다. 나는 창에 기대 전화를 받으며 나를 필요로 하는 이의 벽이 되려고 노력한다. - P142

"사실은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고 싶어요. 전공이 문예창작이라 도서관에서 독서지도나 글쓰기 수업도 할 수 있고요. 옛날에 놀이방을 몇 년 운영해서 아이 돌보미나 방과 후하원 도우미 일도 할 수 있습니다. 봉사활동으로 호스피스를20년 이상 해와서 환자 돌보는 것도 가능하고요. 미술이랑 문학, 음악, 상담 치료 쪽으로 1급 자격증이 다 있어서 상담 치료도 가능합니다, 솔직히." - P147

일주일이 지났다.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씻어놓은 지오래되어 누런 쌀을 냉장고에서 꺼내 밥하라는 원장과 부딪혔다. 손가락으로 쌀을 비비니 식혜 밥알처럼 끈적이면서 쉽게 뭉개졌다. 이 쌀은 내가 오기 전부터 있었다. 몇 번을 씻어도 이상한 냄새가 나서 밥을 할 수 없다고 했지만, 원장은 괜찮다고 자꾸 그 쌀로 밥을 하라고 요구했다. 괜찮다고 우기는원장을 이길 수 없어 밥을 안쳐놓고 심란했다. 커피색 밥이 되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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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셰어생들이다 같이 술을 마실 때면 꼭 진우 옆에 앉아서 전날 자신이 코를 골지는 않았냐며 살갑게 말을 걸었다. 둘이 사귀게 된 날 밤에는 술에 취해 진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진우와 거실을 나눠 써서다행이라고 했다. 자신은 잠드는 것이 어려운데 진우가 잠든 후에 내는 고른 숨소리가 백색소음처럼 심리적인 안정을 준다는 거였다. - P235

진우는 서인을 때리고 싶었다. 뺨을 갈기고 그 작은 어깨를 잡아 마구 흔들고 싶었다. 둘 다 죽여버리겠다고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다. 몇 주에 걸쳐서 같은 싸움을 계속하는 동진우에게 점점 더 명확하게 다가온 것은 서인이 돌아간다면진우의 비자가 취소되어버린다는 사실이었다. - P239

"천장을 만지면 돌이 떨어질 수도 있어서 위험하대."
서인은 가이드가 천장을 만지면 안 된다고 몇 번이나 말했다고했다. 그제야 진우는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자신을 향해 있는 것을 알아챘다. 진우는 사람들의 시선에 떠밀리듯 엉거주춤한 자세그대로 벽에 기댔다. 발은 앞으로 내민 채 엉덩이를 벽에 붙이고상체는 여전히 기울이고 있었다. 천장이 점점 낮아지는 것 같았고, 몸이 점점 더 접히는 것 같았다. - P249

진우는 주머니에 있는 오반지를 생각했다. 진우는 서인에게 반지를 내밀며 무릎을 꿇은 적이 없었다. 사람들의 박수를 받으며 입장해 서인에게 입을맞춘 적도 없었다. 초음파 사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린 적도, 서인의 눈을 닮은 아이를 보며 경탄한 적도 없었다. 진우와 서인은 빛나는 순간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빛나는 순간 진우는 그들이 늘그것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것이 그들에게 절대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붉은 햇빛이 차 안에 가득 들어찼다. 진우는 온통 붉기만 한 세계를 바라보았다. - P253

악취를 풍기는 방식으로 해충을 쫓으려 한다. 나를 쫓으려고 흰 개들이 짖는다, 목줄에 묶인 채 - P266

새가 죽으면.
그가 새의 몸을 가지고 떠나다. - P269

∞병든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아픈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자주 아픈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시름시름 앓는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체력이 좋지 않은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알을잘 낳지 못하는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알을 낳지 못하는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살이 잘 찌지 않는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체구가 작은 닭(쓸모없음/폐기처분). 근육이 너무 많은 닭(쓸모없음/폐기처분). 날고 싶은 닭(쓸모없음/폐기처분). 호기심이 많은 닭(쓸모없음/폐기처분). 고집이 센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질투가 많은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선한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산만한 닭(쓸모없음/폐기처분). 똑똑한 닭(쓸모없음/폐기처분). 그리 똑똑하지 못한 닭(쓸모없음/폐기처분). 화를 잘 내는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잘 웃는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잘우는 닭(쓸모없음/폐기처분). 소심한 닭(쓸모없음/폐기처분). - P278

새로 살기 위해. - P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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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산책 길에서 벌침에 쏘였다내 뺨에 침을 꽂고 날아간 벌은잠시 후 비틀거리다 허무하게 죽어갔다벌은 나에게 왜 그리 한 걸까실수로 자기 집을 밟은 적인 나를죽이지도 쓰러뜨리지도 못하면서일생의 단 한 방, 목숨의 침을 쏘고왜 기꺼이 죽어가기를 각오한 걸까 - P44

나 또한 우리 삶을 망치는 것들에 맞서적의 심장을 찌르는 비수가 되어기꺼이 죽기를 각오한 날들이 있었다단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뛰어든 나는적들에게 겨우 벌침 한 방 정도였을까 - P44

봉기蜂起라는 것!
벌떼처럼 일어나 달려든다는 것아주 작은 최후의 무기인 벌침을 품고 일어서저 거대한 구조악의 실체를 쏘아버린다는 것시대가 변하고 모순이 변하고 적 또한 변해도저들이 정말로 두려워하는 단 하나는목숨 걸고 달려드는 작은 자들의 봉기,
무장봉기라는 것 - P45

감옥은 아무나 가나감옥 선배인 내가 좀 알지세상과 타인에 해악질 않고약자와 생명을 망치지 않고그냥 감옥살이하는 게어디 가능이나 한가 - P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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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경 속의 세계는 극장 스크린이나 TV처럼 함께 볼 수도 있는 게 아니라 오롯이 혼자 누리는세계다. 내가 보던 만화경을 다른 이에게 권할 때 할 수 있는 말은 "봐 봐" 정도인데, 그래서 다른 이가 본 것이 내가 본 것과일치하는지는 장담할 수 없다. 동시에 본 것이 아니므로 시차가 발생한다. 혹시라도 그 사이에 만화경 속 세계가 변한다면? - P176

짐을 찾고 공항을 벗어나 집으로 돌아가는 길, 그 길의 가로등은 유독 커서 달과 헷갈리는데, 어쩌면 가로등이 큰 게 아니라그 길목의 달이 유독 작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둥글고 밝은 것들에 둘러싸여 달리는 길, 그중에 어떤 것이 진짜 달인지 헤매는과정은 여정의 끝에 붙은 보너스 게임이다.
밤의 공항에 내려앉는 것도 좋지만 밤의 공항을 발판으로 삼아 낯선 곳으로 점프를 시도하는 것도 좋다. 사람들마다 선호하는 비행 스케줄이 있을 텐데 내게는 자정쯤 출발하는 비행기가 최고다. 물론 적어도 몇 시간 날아간다는 전제 하에 고른 것이다. 공항에 밤 아홉 시 정도에만 도착해도 충분하니 낮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떠나기에도 부담이 없고, 자는 시간에 이동하니결과적으로는 여행을 하루 앞당겨 시작하는 셈이다. 시간과 관련된 것이야말로 득템 중 득템 아닌가. 게다가 밤의 공항은 썰물 때의 바닷가처럼 한적하고 헐렁하다. - P178

여행은 오작동한 기억을 오래 남긴다. - P183

이게 전부가 아닐 것 같은 기분에 더 응용을 해 봤다. ‘늦어서’로 검색하면 다양한 활용 예시가 나온다. ‘늦어서 죄송합니다’도있지만 ‘늦어서 죄송한 마음 가득입니다‘도 있고 ‘늦어서 죄송해요‘ 도 있다. 다시 ‘늦었습니다‘를 메일함의 검색창에 입력해봤더니, 이런! 96건의 ‘늦었습니다‘가 소환됐다. - P190

나는 작가를 부추기는 ‘감‘이 두 개고, 그중의 하나가 마감이라고 말하곤 했다. 다른 하나는 영감인데, 어떨 때는 마감이 엄청난 스피드로 영감을 동반하기도 한다고 말이다. 그러나 메일함을 계속 뒤지는 동안 이 또한 무색해졌다. 늦어서 미안하다던내 메일들이 모두 영감 동반자는 아니었으니까. 어떤 지각들은 통장 사본이나 신분증 사본 등 단순 서류 배달에 대한 것이고,
딱히 창조적이지 않은 그 지각들은 이렇게 말했다. 영감은 모르겠고 우릴 늦게 보낸 건 단지 습관이라고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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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민과 세아가 무단 외출을 하고 난 뒤 미애와 선우의 관계가틀어지고, 엄마들이 선우를 모임에서 제명하는 결말에 이르러 미애가 화를 내는 모습은 엄마들뿐 아니라 독자 역시 당혹스럽게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도 그럴 것이 언제나 엄마들의 것을 감사히 받는 역할을 수행했던 미애가 그들의 정당성을 질책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미애의 분노는 정당함이나 ‘올바름‘과는 다소 다른 결을 지닌다. 엄마들과의 관계에서 미애에게 가장중요한 것은 그들이 얼마나 올바른가를 판가름하는 것도, 자신이얼마나 무해하게 감사할 줄 아는 인간인지를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 P227

진우와 서인은 끝없이 펼쳐진 붉은 흙 위를 달리고 있었다. - P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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