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집 마당에서 귀여운 아기 수박을 봤다. 지금껏 잘 익은 커다란수박만 보다가 툭 치면 금방이라도 엄마를 찾으며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작은 수박을 보니, 앙증맞은 새끼 동물을 봤을 때 나오는 흐뭇한 미소가입가에 번졌다. 마트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채소나 과일의 성장 과정을지켜보는 일은 괴산에 와서 새롭게 하는 경험이다. 빨갛게 여물기 전의토마토, 풍성해지기 전의 브로콜리, 알이 차오르기 전의 포도를 보고 나면무럭무럭 자라나 식탁 위에 올라온 것이 기특하고도 고맙게 느껴진다.
덕분에 자연의 보살핌과 도움 안에서 만들어진 식자재들을 대하는 태도가예전과는 달라졌다. 작았던 열매들이 비바람을 이겨내고 뜨거운 햇볕을버티며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면 그 소중함을 느끼지 않고는 한 입 한입을 베어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 P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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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낮의 집은 아주 고요하고 조금 외로웠다. 아기는 아직 시력이 발달하지 않아서 나를 보지 못하지만, 문 뒤에 숨어 옷을 올렸다. 터지고 늘어진 아랫배와 젖이 흐르는 가슴 두 쪽을 가지고 겨드랑이에 양배추 크림을 골고루 펴 바르던 풍경. 큰일이 일어날 것같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비슷함으로 포장한 비밀이 부풀어 올랐고 밤마다 꺼내달라 울었다. 그때 시가, 시가슬그머니 나타났다. 아직 마르지 않은 젖을 억지로 먹이던 어느 밤에 누군가 라디오에서 시를 낭독했고, 나는 그 시를 녹음해서 밤마다 들었다. 자리가 없어 서성거리다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한 나의 표정을 시가 붙들어 놓았다. 양배추 크림을 바르던 나의 슬픔은 이런 것이었다. - P205

그러니까 선생님이 틀렸다. 시는 나 같은 사람이 쓰는 거다. 약간의 기쁨과 충분한 슬픔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사람,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서 가는 사람,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고 모호해서 희미한 사람. 하지만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표정을 짓고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 - P206

비교적 솔직한 편인데, 시를 쓴다는 말은 삼키고 숨겼다. 나는 부끄럽고 시는 애달팠다. 하지만 슬픔은 스물에도 마흔에도 예순에도 찾아오는 법이다. 그럴 때 나를 달래는 이가 시이고 시일 것임을 안다. 나의 표정을 짓는 나의 단어.
자, 나는 시를 쓴다.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 P209

자, 나는 시를 쓴다.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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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정확한 자료를 갖지 못한 채 결정을 내린다. 또는 구체적인 통계 수치를 안다고 할지라도 그것을 합리적으로 이용하려들지 않기도 한다. 우리의 기억으로 통계 자료를 대신하고 ‘대표성 휴리스틱‘을 감행한다. 예를 들어 도박을 즐기는 사람은 규모가 작은 곳보다 기계가 많은 커다란 카지노에서 훨씬 더 많은 돈을 투자한다. 기계가 많은 탓에 돈을 따는 모습을 더 자주 목격할 수 있다 보니 자신이 딸 확률을 무의식적으로 높게 평가하기 때문이다. - P76

세 번째 가능성은 일종의 자기 최면이다. 중요한 일, 이를테면 시험, 면접, 첫 데이트 등을 앞두고 있다면, 항상 과거에 잘 했던 경험을 떠올려라. 그러면 한층 더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으며 성공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 P78

예를 들어 소문과 선입견이 강한 위력을 갖는 이유는 바로 ‘첫머리 효과‘ 때문이다. 예를 들어 뒤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으니 새로 이사 온 이웃집 여자의 성깔이 보통 사나운 게 아니다. 그럼 일요일에 불현듯 소금 빌리러 가기가 어려워진다. 사실이웃집 여자는 아주 상냥하고 친절함에도 말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여러 좋은 인상에도 처음 들은 정보가 굳건히 자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처음과는 상반된 새로운 정보가 들어와도 첫 번째 정보는 우리의 기억 속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고 요동하지 않는다. 이른바 ‘첫인상‘이라는 게 강력한 이유가 달리 있는 게 아니다. 첫인상은 우리의 뇌리에 확실하게 찍히고, 우리 뇌는 첫 정보와 비슷한 정보를 기억하길 좋아한다. - P80

우리가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문제는 스트레스에 적절히 반응하는 방법이다. 우리는 누구나 스트레스를 느낀다고 말한다. 그런데 그 스트레스라는 게 대체 뭘까? 스트레스라는 말은 원래 물리학에서 쓰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어떤 물질에 가해지는 압력을 스트레스라고 불렀다. 20세기 초에 들어서 생리학자 한스 셀리에 Hans Selye가 이 개념을 심리학에 끌어들였다. 스트레스는 우리 몸이 특정 요인에 반응하는 상태로, 이 요인을 일러 스트레스 요인 Stressor‘이라 한다. 스트레스 요인은 우리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사건으로, 우리로 하여금 거기에 적응하도록 요구한다. - P88

스트레스 연구는 오랜 동안 사람과 동물을 상대로 이뤄져 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스트레스에는 하나의 보편적인 대응방식만 있다고 간주되었다. 싸우느냐 아니면 도망가느냐. 영어로 말하면 ‘fight or flight‘ 이다. 학자들은 개와 인간은 스트레스 요인을 직접 공격하거나 아니면 피해 달아난다고 믿었다. 그러나 여성에게서 전혀 다른 유형을 찾아냈다. 그것은 곧 ‘보살핌과 친교Tend and Befriend이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남성들이 공격적이 되는 반면, 여성은 자신과 아이들을 보살피며 인간관계의 범위와정도를 넓히고 다지면서 스트레스에 대응한다. - P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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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모르는 사람의 이야기에는 반응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과 별 차이 없다고 생각하던 주변 사람의 집이 몇 억이 올랐다고 하면 그제야 자기 집값을 찾아보게 된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이 더욱 부동산에 울고 웃게 된 것은 아닐까? 김 부장 이야기에는 그와 같은,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무릎을 칠 만한 소재와 스토리가 가득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어디에도 없지만 어디에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 할 만하다. 김 부장, 송과장, 정 대리, 권사원은 바로 여러분일 수도 있고, 여러분 주위의 아는 사람일 수도 있다. 이들의 이야기는 과연 어떻게 될까? 그래서 더욱 두근거린다. 다음다음이 더욱 기대되는 이야기다.
-신사임당, 경제 유튜버, <킵고잉> 저자 - P14

회사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상사 3명을 한 인물로 합쳐서 묘사하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부동산, 주식 투자를 권장하는 의도는 전혀 없습니다.
소중한 것은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을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이 시대 모든 직장인들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 P7

"이걸로 할게요."
이왕 사는 거 최 부장보다 더 좋은 걸로 사자며 그냥 지른다.
"할부 몇 개월로 할까요?"
직원이 묻는다.
"일시불이요."
김 부장 사전에 할부란 없다. 자존심이다. 내가 이 매장을나가는 순간까지 나는 멋있는 사람으로 보여야 한다.
내가 이 매장을 나가면 여기 직원들은 나를 완전 다른 눈으로 보겠지. 멋있는 사람이라고 수근거리겠지. - P20

김 부장은 피가 거꾸로 솟는다.
서울 중위권 대학을 나온 아들은 대기업에 취직해서 연수도 받고 비슷한 조건의 직장 동료와 결혼해서 아이를 가져야 한다. 이게 당연하다. 김 부장은 한 번도 의심해본 적이 없다. 자신이 걸어온 길을 아들도 그대로 걸어가기를바란다. - P34

업무 시작 시간이 되자 팀원 모두가 자기 일을 시작한다.
파티션 너머로 송과장과정 대리가 보인다. 부동산 거래한다고 휴가를 쓴 송과장이나 외제차를 끌고 다니는 정대리나 둘 다 꼴도 보기 싫다.
송 과장과정 대리는 김 부장이 일을 시키면 맡은 일에 플러스 알파를 해오는 유능한 팀원들이다. 거기에 더해 김부장의 기분과 감정을 항상 잘 맞춰준다. 두 사람 모두 팀의 주축 멤버이다. 업무 공백이 생기면 보고 자료나 각종장표를 만들 사람이 없다. - P41

"
"아니야, 아들 취직하면 새 차로 뽑아줘야지. 중고는 무슨……….
사줄 돈도 없다. - P45

필드에 나가는 일요일이다.
오전 4시 30분. 김 부장은 24시간 김밥천국에 가서, 자신과 상무가 먹을 김밥을 산다. 최부장 것도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대인배처럼 보이기 위해 한 줄을 추가한다. 김부장과 상무의 김밥은 3,500원짜리 참치김밥, 최 부장 것은2,000원짜리 그냥 김밥이다. 구분을 하기 위해 봉지에 각각 따로 담는다. - P50

김 부장은 시세를 확인한다. 매물이 별로 없다. 가장 최근시세를 봤는데 김 부장 아파트와 6억 차이가 난다. 최부장네는 5억이 더 비싸고 상무 집은 6억이 더 비싸다. 내 집은 살 때와 비교해 두 배가 되었고, 최근에 3억이나 올랐는데 그보다 더 비싸다.
현기증이 난다. - P58

아들의 방문이 닫히는 것을 지켜보던 아내가 말한다.
"그리고 사업하는 사람들이 왜 사기꾼이야? 회사 망하면누가 책임 져? 직원들이 책임 안 지잖아. 사장이 다 책임지지. 그 대가로 직원들보다 돈 많이 버는 거잖아."
"흥, 원가는 10만 원인데 20만 원에 파는 게 사기지 뭐야."
"당신이 좋아하는 스타벅스커피, 그거 원가 몇십원밖에안 해. 그런데 몇천원에 팔아."
"그건 스타벅스잖아, 스, 타. 벅, 스." - P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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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 서서 산쪽을 바라보면 얼굴 모양의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웃고 있는지 울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담담한 표정의 바위를 보면, 종종나에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던 사람들의말이 떠오른다. 아마도 감정을 숨기는 버릇 때문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소리 내서 우는 방법을 알지 못했던 나는 성인이 되고 난 후에도 여전히숨죽여 우는 것이 익숙하다. 억지로 소리를 내서 울어보려고 해도 쉽지않다. 서운하고 화가나는 일이 있어도 꾹꾹 담아두는 경우가 다반사다.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나만 티를 내지 않으면 모든 상황이평화로우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 P41

마을 정자에 택시 번호가 적혀있었다. 전화를 걸면 정말 택시가 올까의심이 될 정도로 꽤 오래전에 써놓은 것 같았다. 길거리에서 쉽게 택시를잡을 수도 없고, 제대로 된 버스 정류장도 없는 우리 마을은 읍내에서자동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마트, 은행, 우체국, 약국, 병원등은 모두 읍내에 모여 있기 때문에 필요한 것이 생기면 이동 시간만 왕복1시간을 잡고 집을 나서야 한다. 그래서 가끔은 이 모든 곳을 걸어서 갈수있었던 도시 생활이 그립기도 하다. - P45

나는 일렁이는 마음을 모으는 수집가라도 된 마냥 수시로 일상의이곳저곳을 탐색하고 주변의 많은 것을 더 보고 들으려고 애쓴다.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자에게 더 자주 찾아오는 이 순간이 나를 지금보다좀 더 풍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기 때문이다 - P49

종종 햇빛이 빛나는 오후에는 집 앞에 나가 하천을 바라본다. 윤슬이반짝이는 하천을 보며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애쓰는 것이다. 마음을무겁게 만드는 일을 쌓아두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지만 어쩐지 그 다짐은매번 용기를 잃고 작아진다. 이는 주로 인간관계에서 오는 답답함과불안함이다. 멈춰진 대화를 다시 시작하고, 서로의 오해를 풀고, 속상했던순간을 고백하는 일은 어쩌면 빠르면 빠를수록 울적한 상태에서 벗어날 수있을 텐데도 번거롭고 귀찮다는 핑계로 깊숙한 곳에 자리 잡은 돌덩이를그대로 방치해둔다. 사실 귀찮다는 것은 핑계일 뿐이고, 상대방의 마음은나와 같지 않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더 크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언제나 어렵다. 잔잔한 물결만이 걱정도 의심도 없이 나를 위로하며 흐른다. - P59

장연면 오가리에는 수령이 800년 가까이 된 커다란 보호수가 있다.
천연기념물 제382호로 지정된 느티나무로 경사지 위쪽에 한 그루, 아래쪽에한그루가 있는데, 각각의 높이는 29m, 25m, 둘레는 7.66m, 9.24m가 될정도로 웅장하다. 괴산은 느티나무의 고장이다. 괴산의 ‘괴‘는 느티나무괴(槐)이며 그 이름에 걸맞게 수령 100년 이상인 느티나무가 110그루,
300년 이상이 50그루나 있다. 꼭 보호수가 아니더라도 동네 곳곳에서마을을 지키고 서 있는 듬직한 느티나무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 P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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