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집은 아주 고요하고 조금 외로웠다. 아기는 아직 시력이 발달하지 않아서 나를 보지 못하지만, 문 뒤에 숨어 옷을 올렸다. 터지고 늘어진 아랫배와 젖이 흐르는 가슴 두 쪽을 가지고 겨드랑이에 양배추 크림을 골고루 펴 바르던 풍경. 큰일이 일어날 것같았지만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비슷함으로 포장한 비밀이 부풀어 올랐고 밤마다 꺼내달라 울었다. 그때 시가, 시가슬그머니 나타났다. 아직 마르지 않은 젖을 억지로 먹이던 어느 밤에 누군가 라디오에서 시를 낭독했고, 나는 그 시를 녹음해서 밤마다 들었다. 자리가 없어 서성거리다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한 나의 표정을 시가 붙들어 놓았다. 양배추 크림을 바르던 나의 슬픔은 이런 것이었다. - P205
그러니까 선생님이 틀렸다. 시는 나 같은 사람이 쓰는 거다. 약간의 기쁨과 충분한 슬픔 사이에서 휘청거리는 사람, 자리를 찾지 못해 서서 가는 사람, 평범해서 눈에 띄지 않고 모호해서 희미한 사람. 하지만 사라져 버리지 않는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닌 나의표정을 짓고 자리를 마련하는 사람. - P206
비교적 솔직한 편인데, 시를 쓴다는 말은 삼키고 숨겼다. 나는 부끄럽고 시는 애달팠다. 하지만 슬픔은 스물에도 마흔에도 예순에도 찾아오는 법이다. 그럴 때 나를 달래는 이가 시이고 시일 것임을 안다. 나의 표정을 짓는 나의 단어. 자, 나는 시를 쓴다.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 P209
자, 나는 시를 쓴다. 쓰지 못할 이유가 없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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