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는 특히 사람을 끔찍이 미워하게 됐다는 점이 힘들었다. 부장의 친절을 가장한 목소리만 들으면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고,
대리의 무능력한 얼굴만 보면 경멸감이 일었다. 그들이 히죽거리며복도를 거니는 모습을 보면 ‘나보다 잘난 것 하나 없는 새끼들이 어쩌다 좋은 자리를 꿰차고 앉더니 그 자리에서 떨려날까 봐 발악을
‘하고 있군 하고 생각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발견하곤 했다. - P211

눈앞에 존재하지만 과거에 속해 있는 것 같은 동네의 분위기가 사람들을 휴남동 서점으로 불러들이는 것인지도. - P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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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계절의 첫 입김을 봤다. 엄마, 아빠, 아이가 나란히길을 걷다가 잠시 마스크를 내리고 호~호~ 하고 차마 마침표를 찍을 수 없어 줄을 바꾼다.
입김에 마침표는 어울리지 않으니까. 그런 건 물결표시가 적당하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멀리 퍼져나가서 공기가 되고, 공기의 결이 되고, 다시 다른사람의 숨이 될 수 있게, 호~ - P107

내가 머무는언어가 시소를이곳은 숨과 수플 사이, 두 개의타는 곳이다. - P108

좀 너무한다 싶은 날에는 올라가서 항의를해볼까 하다가도 아이들의 간지러운 웃음소리에 지고만다. 어쩔 수 없다, 아이가 그렇게 웃으면・・・ 아이의웃음소리를 막는 언어는 한국어로도 불어로도 배운적이 없으니까. 살면서 지금까지 어떤 어른도 내게
"웃음을 뚝 그치지 못할까!"라고 소리친 적은 없었다. - P109

창문 밖 나무 사이로 하얀빛이 쏟아졌다. 늙을 리 없는빛처럼 화가의 그림도, 숨결도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곳에서는 오직 색채만이 시간을 받아들였다. 시간역시 색채를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 P116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책을 마저 읽었다.
머릿속에서 책으로 만난 한트케의 엑상프로방스와내가 밟았던 장소들이 뒤섞였다. 그것은 세잔의시선과 한트케의 문장 그리고 나의 기억이 뒤섞이는일이기도 했다. 그렇게 내가 본 것과 인식한 것사이에 작은 틈이 생겼고, 나는 그 틈 속에서 본다는것의 의미를 어렴풋이 이해했다. 하나의 장소는내면과 외면이 만나는 지점이고, 내가 본 그곳은 나의심상이며, 내가 쓰는 것은 그 심상의 언어라는 것을. - P120

"Enfin, c‘est le printemps."(마침내 봄이야) www불어로 말했더니 그제야 살짝 눈길을 준다. 그리고살포시 앉아 앞발을 내민다.
봄이고 뭐고, 간식 달라는 뜻이다. - P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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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면더 나은 사람이 된다기보다더 나쁜 사람이 되지는않지 않을까요." - P154

"가족도 법도 복지도 아닌 그들을 온전히 받아주는 유일한 공간인 광장을 배경으로 "우연을 운명으로 만드는 사랑이라는 사건을 통해 "서사의 세계에서 발언권을 부여받아 본 적이 없는 인물을
‘세계-내-존재‘로 조심스레 복원시킨 이 젊은 소설가를 평단은 주목했다. - P158

소설이 너무 무겁고 지루한 거? 그렇기 때문에 얻어지는 다른요소들도 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요. 예전에 공부할 때 선생님이그러셨어요. 글이라는 건 결국 유전자다. 처음에 어떻게 쓰든, 다르게 쓰려고 해도 결국에는 자기의 것이 드러나기 마련이고 맞닥뜨릴수밖에 없다고. 그 말에 깊이 공감해요." - P161

"항상 서울에 오실 때도 저한테 연락하세요. 동생은 정규직이니까 걔한테는 전화를 못 하고, 저는 논다고 생각하시는 거죠.(웃음) 엄마나 글 써야 한다고 하면 콧방귀 뀌시면서 그게 무슨 일이라고 그러냐고요." - P165

답이 어디 있을까마는 동지로서 말이라도 하고 나니 좋았다. 잘써야지 노력하면서 계속 쓰는 것. 좋은 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만 엄정하다. 작가의 정의를 어떻게 내리겠는가 물었을 때그가 답했다.
"글쎄요. 주변 환경 때문에 작가라는 자부심은 있지는 않은데, 그냥 혼자 쓸 때 나는 쓰는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는 것 같아요." - P167

곡물도 재고가 많다는 걸 알게 됐죠. 쌀을 원물로 팔기도 하고선식, 죽, 쌀 요구르트도 생산하고 쌀미음을 넣어 마일드한 과일주스를 해보기도 했는데 다 맛이 좀 별로였어요." - P172

미국에서는 인종차별과 학력차별을 하더라고요. ‘너 어느 대학나왔어? 미국의 아이비리그 나왔어? 너 식품공학 전공했어? 파운더(설립자)가 전문가가 아닌데 이 사업을 어떻게 해? 동양인이 미국 주류시장에 진입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이걸 네가 직접 하려고 해? 이런 이야기들을 굉장히 나이스하게 웃으면서 해요. 그걸 극복할 수있는 방법은 오로지 제품력, 우리 상품의 매력 같아요." - P178

환경에 관한 긴 글을 읽는 사람은 그 글을 읽을 필요가 없는 환경운동가밖에 없다는 문장을 어느 글에서 보았다. 너무 맞는 말이라서 충격을 받았다. 글 쓰는 활동가라고 말하고 다니는 사람으로서 마음에 새길 문구였다. 우리끼리만 보는 닫힌 글을 쓰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주 고민한다. 옳은 것을 옳다고 쓰는 글은 의외로힘이 없다. - P179

"전 행복이 건강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건강은 우생학적개념이에요. 행복은 장애가 있어도 행복할 수 있죠. 다만, 구조적 모순을 놔두고 마취제같이 행복을 말하는 건 비판받아야 하지만요.
행복감은 직전의 나보다 그 후의 내가 더 풍성해졌단 느낌이거든요. 복권에 당첨됐어도 내가 풍성해지지만, 그건 올 확률이 거의 없죠. 그에 비해 좋은 책을 읽으면 반드시 행복해져요. 그런데 누가 모르냐, 책 읽을 시간이 어디 있냐 라는 말 때문에 조심스러운 부분이있어요. 읽고 싶어도 못 읽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 P190

"내가 저 일을 하면 자랑스럽겠구나 생각했어요.
폼 나잖아요, 용접공.
저는 그냥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진숙이 좋아요.
나의 삶을 규정할 수 있는 건해고자의 삶이었으니까." - P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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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주변인이 되는 일의 시작은이런 말 한마디가 아닐까 합니다. 그래서 옛날엔 좋아하는 사람이떨어뜨린 물건을 주워주면서 말을 걸고 그랬던 게 아닐까. 이런 고전적 연애 비법에도 다 이유가 있는 거구나! 싶기도 하고요. - P138

아내와 아들을 잃은 한 양치기가 황무지에 계속 나무를 심습니다.
한 사내가 그곳을 방문할 때마다 땅은 조금씩 달라져 있죠. 메말랐던 땅이 떡갈나무 가득한 비옥한 땅으로, 아름다운 환경으로 변화한 거예요. 한 사람의 끈질긴 노력과 그 사람이 심은 나무들이 그땅을 바꾼 거죠. 장 지오노의 소설 『나무를 심은 사람(두레, 2005)』 이야기입니다. - P151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이래서 어려운 일입니다. 겸손해야지,
모든 공을 나에게 돌리지 않아야지 다짐했더라도 막상 그 공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으면 뿔이 나는 것이 사람 마음 아닐까요. - P159

종교와 무관하게, 우리 오늘 밤은 명상하듯 편안하게 기도하는듯한 밤을 보내면 어떨까요. 고민도 욕심도 다 내려놓고 땅에 가장가까운 아기 자세로 납작 엎드려서 말입니다. - P167

피**빗오늘 어떤 라디오에서 들었던 ‘아빠는 어떤 존재라생각해요?‘라는 질문이 종일 머리에서 떠나질 않네요. 나는 어떤 아빠일까? 내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을까? 풍족하지 못한 지금의 보금자리와 용돈이 아이들에게 미안하기만 하네요. - P173

캥**이미 꿈나라에 있어야 할 네 살 아이가 안 자고 라디오 볼륨 시끄럽다고 자꾸 끄라고 하네요. 이젠 내 시간 좀 보내고 싶은 욱함에 유치하게 아이랑 다퉜어요.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러면 엄마가 소리를 좀 작게 해주면 어떨까라네요. 화내서 미안하다고 바로 사과했어요. 지금은 사이좋게 딸아이와 같이 누워서 듣고 있네요. - P172

그때는 못봤지만, 지금은 보게 된 것.
그때는 울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 않게 된 것.
여러분은 어떤 것을 가지고 계시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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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의문문으로 끝나야 하는 게 아닌가? - P70

I고독사라니.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거라면 못된 장난이었다. - P71

노인이 둘러보라며 가리킨 모든 물건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었다. 말린 장미꽃은 1만 2000원, 신발은 8000원, 책상은 2만원, 책상 위에 놓인 연필도 2만 원이었다. 어떤 기준으로 가격이 책정된 건지 알 수 없었다. - P80

김자옥 씨는 자신이 이 세상에 잘못 배달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답을 알지 못할 뿐 아니라 궁금해하지도 않는질문 말이다. 그러나 잘못 배달된 질문이라도 문을 여는 건옳은 질문과 옳은 답이겠지만 벽을 부수는 건 틀린 질문과틀린 답일지도 몰랐다. 김자옥 씨를 수신인으로 한 건 아니지만 책의 페이지와 페이지 사이에서 발견한 포스트잇이 고독사 워크숍으로 자신을 이끌어 주었듯 말이다. - P81

"아니 아니, 사실 이런 ‘허수‘의 존재들, 어디에서도 유효한숫자로 셈되지 못하는 허수들이 곧 우리 고독사 워크숍의 주요 고객이란 말입니다. 살아서 허수인 사람들이 결국은 죽어서만 유효한 숫자, 그러니까 신원 불명의 무연고 사망자가 되어 1743이나 1458과 같이 영원한 숫자로 남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 P84

그 문장을 읽으며 오 대리는 새삼 궁금해졌다. 한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그 소리가 저 멀리서 누군가 한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와 만난다면 그때 내게돌아오는 소리는 같은 소리일까 아니면 다른 소리일까.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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