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 초인종소리에 놀라 인터폰을 확인하니 모니터화면으로 웬 젊은 남녀가 웃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두 사람다 마스크를 써 표정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눈가에 분명 웃음이 서려 있었다. - P99

-이거 세계과자점에서 이천 얼마면 사는 거네. 다 합쳐도스물몇 가구인데, 자기들 집값에 비해 너무 약소한 거 아니야? - P103

-・・・・・・ 좋은 이웃이 되겠습니다. - P105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되고 첫 수요일이 다가왔을 때 아침부터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위층에서 천장이 무너질 것 같은 진동과 굉음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공사 소음은 하루종일 이어지다 독서 수업이 시작되는 오후 네시에 이르러 더 커졌다. 거실 형광등이 조각나 사방에 튀지 않을까 싶은 강도였다. - P108

-선생님...... 그렇게 가신 뒤로 시우가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 않아요. 좀 도와주세요. - P113

-가게 평점 좀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P119

이윽고 "땡" 소리와 함께 승강기 문이 열렸다. 나는 그 순간을놓치지 않고, 밖으로 걸어나가며 손바닥에 묻은 알코올을 게시물 위로 스치듯 쓰윽 문질렀다. 알코올에 젖은 종이가 울고 글씨가 번지는 게 상상됐지만 고개 돌려 굳이 확인하지 않았다. - P123

-그럼 혹시 저희 새로 이사하는 집으로 계속 와주실 수 있나요? 여기서 약간 더 멀어져 말씀 여쭈기 죄송한데, 그래도꼭 부탁드리고 싶어요. - P130

-자가래?
남편 말에 나도 모르게 볼이 살짝 달아올랐다. 별말 아닌데왜 수치심이 드는지 알 수 없었다. - P136

"아저씨."
신애는 낮게 말했다.
"저희들도 난장이랍니다. 서로 몰라서 그렇지, 우리는 한편이에요." - P140

-너 왜 되새김질을 하니?
저녁 식탁에서 미주가 기태에게 물었다. - P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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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누구도 답을 알아낸 적 없는질문.
A - P286

당신은 왜 그런 짓을 하는가. - P286

바로 어제 일이나 되는 것처럼, 보자마자 기억해내버렸기때문이야.
선생님의 얼굴을 - P288

이 지경이 되기까지 외면했잖습니까, 당신들이 내 고통을. - P296

. 마찬가지로 무언가를, 또는 누군가를 비로소 이해하는 것은 그가 행하거나 그를 둘러싼 모든 사태가 끝장나기 시작할 때지. - P301

-책이 이상해요뭐가 어떻게 이상할까. - P307

책 사이에 책 아닌 것이 끼어 있었습니다. - P308

. 괜히 전문가가 아니었습니다 - P312

결국 그런 믿음을 저버렸다는 가책이 조금 드는 것은, 내가지금 이상한 게 맞지요? - P315

"어, 괜찮아, 나야말로 무심코 실수했어. 이런 건 내가 신경써야 하는데.‘ - P322

아가씨는 어디로 간 걸까요. - P338

관계라는 게 일찍이 존재나 하는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상처는 사랑의 누룩이며, 이제 나는 상처를 원경으로 삼지 않은 사랑이라는 걸 더는 알지 못하게 되었다. 상처는 필연이고 용서는 선택이지만, 어쩌면 상처를 가만히 들여다봄으로 인해, 상처를 만짐으로 인해, 상처를 통해서만 다가갈 수 있는 대상이세상에는 있는지도 모르겠다고. - P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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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쓰레기는 잘 버렸어야지." - P264

"떠나려고 수작 부렸단 거고. 여기를."
여기를. - P265

"내용은 줄줄 읊지 않아도 되니까, 나를 읽어. - P266

"무슨 말을 하겠어, 난 이제 더는 당신하고 뭐든 개선할 여지도 의지도 없다는 것만 알겠어, 시키는 일은 할게, 난 어차피 그런 일을 위해 고용된 노비니까, 당신한텐 그거면 됐지?" - P267

나는 고개 들어서 오언의 얼굴에 드리워진 패착의 그늘과길 잃어 흔들리는 눈동자를 올려다보며, 마지막 한마디의 선언으로 그를 힘주어 밀어냈지.
"하지만 당신만은 절대로 안 읽어." - P268

"좋아, 각자의 사연팔이는 집어치우고, 이런 꼴 보고 사는건 어때. 마음에 들어?" - P272

그래도 사람의 머릿속을 읽을 때보다는 책을 읽는 편이,
그냥 눈앞의 글자를 읽는 행위에 불과하더라도 한결 살 것 같았어, 사용되는 동사는 같은데도. - P274

이를테면 우물만큼 깊지 않으면서 그렇다고 대문짝만큼넓지도 않게, 다만 이만큼이면 충분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이제는 읽을 수 있는 상처의 역치가 높아져서 이대로 가다간죽음을 담보로 잡은 상처가 아니면 어떤 것도 읽어낼 수 없을지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어. - P280

"신이라는 건 있잖아, 그냥 하나의 오래된 질문이라고 생각해." - P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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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24일부터는 같은 경기장에서 패럴림픽이 열린다. 관중은 없어도 여전히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본인이 준비한 것을 쏟아낸 뒤, 마무리는 있다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들이. (8월 12일) - P79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기다리는 사람. 그리움의 끝 간 데에는 아마도 저 사람이 서 있을 것이다. (10월 7일) - P87

해가 갈 때마다 나는 올 것을 생각했다. 국 - P97

기억하는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사람이다. 텅 빈 운동장 앞에서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간-떠올리는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모래성을무너뜨린 아이가 있었고, 스스로 허문 블록을 다시 쌓는 아이가 있다. 지난번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다음번을 기약할 수 있다. 기억이 기약이 될 때, 미래는 비로소 구현된다. (2월 24일) - P109

그날 오후, 볼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혼자 밥을 먹었다. 식사하기에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많았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한 뒤 줄곧 창밖을 내다보았다. - P111

신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간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의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와 분명히 다른데도, 으레 괜찮을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거나 원래 하던 방식이 옳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신호탄을 무시하면 때때로 몸이 나서서 불발이라고 반응한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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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은 내가 무슨 짓을 해. 그만둔다는 사람한테." - P218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위험에 상시 노출됐다기는 모호하니까 오케이하신 거고요. 그래도 좀 거슬리는 상황이 있는 건 사
"
실이어서 전화기를 켜두라고 강조하시는 겁니다." - P225

그녀가 엉뚱한 대답을 하는 순간 나는 몸속의 모든 두꺼비집이 올라간 듯 돌아가는 상황을 깨닫고 대답했어. - P231

-더이상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돼. 도와줄게. 나를 믿어. - P232

1그리고 마지막 한 줄로 쐐기를 박은 거야.
-네 판단이 그 사람도 구할 수 있어. - P233

"아직...... 이라고 하는 게 맞나,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없었는데. - P237

목에 주삿바늘이 꽂히기가 무섭게 희미해지는 시야에 문득거미 한 마리가 여덟 개의 다리를 꿈틀거리는 모습이 환영처럼 지나갔어. 텅 빈 거미줄, 주인 없는 집인 줄 알았는데 네것이었구나...... 그 생각을 끝으로 정신을 잃은 것 같아. - P239

"네가 끄지 않겠다고 했을 뿐 버리지 않겠다는 말은 한 적없는 것처럼, 나도 너 좋을 대로 다니라고 했을 뿐 위치를 안알아보겠다는 약속은 안 했으니 도긴개긴이지." - P244

"그러니까 뭐든 상관없다고 한다고 내가."
뒤에 ‘저분을 위해‘를 덧붙이면 유효타를 넘어 결정타가 됐겠지만 그렇게까지는 나도 후환이 두려워서 안 되겠더라. - P249

"물 좀 마실래?" 물냉면이 올라간 평화로운 식탁에서 겨자 필요해? 하고 양념통을 툭 건네는 것 같은 말투여서 뭘 잘못 들은 줄 알았어. 나말고 여기 다른 누가 있나, 나한테 하는 말이 맞나. - P252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어린 날 입속에 넣고도 아까워 깨물지 못한 채 오래도록 혀로 굴린 캐러멜을 생각하고 있었어. 입천장과 혀 사이에서 녹아 사라질 때까지 내내 머금고만 있었던가. 아니면 충분히 녹진해지고 줄어들었을 때 어금니를 댔던가. 그게 사과맛이었나 커피맛이었나…………… - P257

아직도 피부 위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지난밤의 감촉을떨어내는 말마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름 등잔을 고쳐 쥐며 어둠의 심부를 비추어보려는 내 마지막 손짓을 뿌리쳤어.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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