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4일부터는 같은 경기장에서 패럴림픽이 열린다. 관중은 없어도 여전히 사람이 있을 것이다. 본인이 준비한 것을 쏟아낸 뒤, 마무리는 있다고 분명히 말하는 사람들이. (8월 12일) - P79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걸, 돌아올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기다리는 사람. 그리움의 끝 간 데에는 아마도 저 사람이 서 있을 것이다. (10월 7일) - P87

해가 갈 때마다 나는 올 것을 생각했다. 국 - P97

기억하는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이다. 가장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사람이다. 텅 빈 운동장 앞에서 사람들로 북적이던 시간-떠올리는 사람이다. 자신의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모래성을무너뜨린 아이가 있었고, 스스로 허문 블록을 다시 쌓는 아이가 있다. 지난번을 기억하는 사람만이 다음번을 기약할 수 있다. 기억이 기약이 될 때, 미래는 비로소 구현된다. (2월 24일) - P109

그날 오후, 볼일이 있어 외출했다가 혼자 밥을 먹었다. 식사하기에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빈자리가 많았다.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한 뒤 줄곧 창밖을 내다보았다. - P111

신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그간 익숙해진 삶의 방식을 의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평소와 분명히 다른데도, 으레 괜찮을 거라고 자기 최면을 걸거나 원래 하던 방식이 옳다고 자기합리화를 한다. 신호탄을 무시하면 때때로 몸이 나서서 불발이라고 반응한다. - P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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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짓은 내가 무슨 짓을 해. 그만둔다는 사람한테." - P218

"그렇게까지 극단적인 위험에 상시 노출됐다기는 모호하니까 오케이하신 거고요. 그래도 좀 거슬리는 상황이 있는 건 사
"
실이어서 전화기를 켜두라고 강조하시는 겁니다." - P225

그녀가 엉뚱한 대답을 하는 순간 나는 몸속의 모든 두꺼비집이 올라간 듯 돌아가는 상황을 깨닫고 대답했어. - P231

-더이상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돼. 도와줄게. 나를 믿어. - P232

1그리고 마지막 한 줄로 쐐기를 박은 거야.
-네 판단이 그 사람도 구할 수 있어. - P233

"아직...... 이라고 하는 게 맞나, 믿어줄지는 모르겠지만 없었는데. - P237

목에 주삿바늘이 꽂히기가 무섭게 희미해지는 시야에 문득거미 한 마리가 여덟 개의 다리를 꿈틀거리는 모습이 환영처럼 지나갔어. 텅 빈 거미줄, 주인 없는 집인 줄 알았는데 네것이었구나...... 그 생각을 끝으로 정신을 잃은 것 같아. - P239

"네가 끄지 않겠다고 했을 뿐 버리지 않겠다는 말은 한 적없는 것처럼, 나도 너 좋을 대로 다니라고 했을 뿐 위치를 안알아보겠다는 약속은 안 했으니 도긴개긴이지." - P244

"그러니까 뭐든 상관없다고 한다고 내가."
뒤에 ‘저분을 위해‘를 덧붙이면 유효타를 넘어 결정타가 됐겠지만 그렇게까지는 나도 후환이 두려워서 안 되겠더라. - P249

"물 좀 마실래?" 물냉면이 올라간 평화로운 식탁에서 겨자 필요해? 하고 양념통을 툭 건네는 것 같은 말투여서 뭘 잘못 들은 줄 알았어. 나말고 여기 다른 누가 있나, 나한테 하는 말이 맞나. - P252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나는 어린 날 입속에 넣고도 아까워 깨물지 못한 채 오래도록 혀로 굴린 캐러멜을 생각하고 있었어. 입천장과 혀 사이에서 녹아 사라질 때까지 내내 머금고만 있었던가. 아니면 충분히 녹진해지고 줄어들었을 때 어금니를 댔던가. 그게 사과맛이었나 커피맛이었나…………… - P257

아직도 피부 위에 머물러 있는 것만 같은 지난밤의 감촉을떨어내는 말마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름 등잔을 고쳐 쥐며 어둠의 심부를 비추어보려는 내 마지막 손짓을 뿌리쳤어.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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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집에 오게 된 이유도 그런 거겠지요. 교육은 충분히받고 필요한 일을 실행하는 능력은 있으나 대외적으로는 크게별 볼 일 없는 사람,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썩 잘나간다고볼 수는 없지만 실속도 없지는 않은, 가성비가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사람을 찾았던 거라면 말입니다. 나 자신을 그렇게 표현하는 수밖에 없어서 아쉽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지요.
그런 사람은 정말이지 어느 분야든 간에 하고많답니다. - P210

"선생님이 나를 여기서 꺼내준다면 그렇게 할 텐데. 나도내가 원해서 여기 있는 거 아니야." - P215

그렇게 말하는 동안 어느새 익숙한 탄성을 발휘하여 오언의얼굴은 평소와 같은 조소를 띠었어. - P218

‘사람들을 상처 입혀서 그들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끄집어내는 거 말고, 당신이 나한테서 듣고 싶은 게 또 있어?‘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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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록 열심히 살 필요는 없다고 가르친 건 부모님이다. 요만한 위장을 달고 나왔으면서 미련하게 그걸 모르네. 저러다 짜구나지. 옆집 개를 두고 엄마와 아빠가 사이좋게 흉보는 동안 일곱 살의 나는 납작한 배를 남몰래 손바닥으로 눌러보았다. 허튼데 힘 빼지 말고 생긴 대로 대충 행복하게 살다 가면 된다는것. 그것이 내가 태어나 자란 곳의 보편적인 세계관이었다. - P301

김밥집에서 마주친 동창에 대해서는 그냥 놔두는 쪽을 택했다. 전화번호를 교환하고 헤어진 며칠 후 문자메시지가 왔다.
시조카가 돌핀에 입학하려고 하는데 혹시 어떻게 안 될지 묻는 내용이었다. 그건 내 권한 밖의 일이라고 구구절절 답장을쓰다가 천천히 지웠다. 아무것도 보내지 않았다. - P307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P509

나중에 들어보니, 우재는 그 순간을 기점으로 나에게 관심이 생겼다고 했다. 기세가 있는 여자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다. 차가운 맥주를 마시러 가자는 제안은 내가 먼저 했다. - P313

‘보답‘이라는 단어를 어떻게 그 자리에 넣을 생각을 했을까.
이 아이는 천재인지도 몰랐다. 머리 가죽이 벗겨질 듯한 압통이 계속되고 있었다. 소정원이 제시한 금액은 한 회당 십만원이었다. - P319

우재는 아까에 비해 꽤 이성을 찾은 상태였다. 다행이었다.
어떤 관계는 매듭 없이 끝난다. 그가 좀더 걷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숲이 보이는 건널목 앞에서 헤어졌다. - P333

. 「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레이스가 달린 팬티‘는 입지 않음으로써 전략적으로 순결을 사수하던 영악한 언니는 이제 자취를감췄다. - P343

이번 정이현의 소설집은 그 선 너머의 자리를 모색하는장이다. 아직 아무도 도착하지 않았기에 그곳은 말 그대로 ‘노피플 존‘이지만 그 공백은 가능성의 다른 얼굴이다. 이 소설집이 담담한 결기로 뻗어간 그 선 너머의 자리를 당신도 함께 응시해주길. - P364

하나의 긴 실을 상상하곤 합니다. 어떤 구간은 직선으로 어떤 구간은 구겨진 채로 또 어떤 구간은 잔뜩 엉킨 채로 존재하지요. 저는 엉킨 부분 앞에서 영원히 끙끙대거나 깔끔하게 끊어버리고 싶다는 충동에 굴복하는 대신, 그 매듭 아닌 매듭을그냥 놔두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생을 이어간다는 말의 무서움을 실감하는 중입니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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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이연은 성민으로부터 ‘다음 주말에 혹 시간 있느냐‘
는 연락을 받았다. 자기가 아는 대표님 댁에서 홈 파티가 열리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요즘 방역 상황이 안 좋아 인원이 많지는 않고 대여섯 명 정도 모일 거‘라면서. ‘누나도 알고 지내기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달라‘고평소보다 말을 길게 했다. ‘그래도 내가 아는 사람 중 누나가가장 유명하다‘면서. - P9

-처음이라니 부담되는데?
성민이 오래전부터 혼자 연습해온 대사를 읊듯 자부심을 담아 말했다. - P14

이연이 짧게 고개 숙였다. 세 사람도 가볍게 상체를 수그렸다. 두 눈에 호의와 호기심을 담고서였다. 그렇지만 그건 나이들며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적당히 낮춘, 까다로운 듯 무심한관심이었다. 실제로 어떨지 모르나 이연은 그렇게 느꼈다 - P16

오대표가 크리스털 디캔터의 우아한 목 부분을 쥐고 물었다. 수십 년간 거위 목을 잡아온 농장주마냥 능숙한 몸짓이었다. 디캔터 안의 검붉은 와인이 이연의 눈앞에서 매혹적으로출렁였다. - P21

박의 말에 이연은 ‘보기보다 내적 긴장도가 높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사실 배우 중에도 외향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않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저 어떤 역과 몫을 해내느라 표를 잘안 낼 뿐이었다. - P25

-나도 이십대 때만 해도 바보같이 빚이 나쁜 건 줄 알았어. 빚에 대한 안 좋은 경험만 있어서. 생각해봐. 어릴 때 대출로 어딘가 투자하는 부모를 본 사람하고, 빚 하면 보증이나 고함, 부모의 불화, 이런 것만 떠올리는 사람하고 뭐랄까, 대출상상력이나 금융 감수성이 다르지 않겠어? - P37

이연은 오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하는 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말했다. - P43

이번 여행 계획을 세우며 내가 예산을 맞추려 전전긍긍할 때도 지호는 "그냥 대충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 P58

-중요하지, 돈은.
나는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실은 제일 중요하지 뭐. - P65

-그래도 우리 쓰지 말자, 그 말.
지호가 결국 짜증 어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뭐라 부르고 싶은데? 언니? 이모님? 저기요? - P80

-은주야 만이 바쁘지. 혹시 잇어버렸나 해서. 우리 딸고맙고 미안해.
여느 때처럼 몇몇 맞춤법이 틀린, 그렇지만 무척 조심스레썼을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가 이곳에서엄마에게 돈 보내는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엄마, 나 출장중이라 해외 송금이 어려울 것 같아. 사흘뒤 한국 가서 바로 부쳐줄게. 늦어서 미안해.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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