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이연은 성민으로부터 ‘다음 주말에 혹 시간 있느냐‘
는 연락을 받았다. 자기가 아는 대표님 댁에서 홈 파티가 열리는데 같이 가지 않겠느냐‘고. ‘요즘 방역 상황이 안 좋아 인원이 많지는 않고 대여섯 명 정도 모일 거‘라면서. ‘누나도 알고 지내기 나쁘지 않은 사람들이니 긍정적으로 생각해달라‘고평소보다 말을 길게 했다. ‘그래도 내가 아는 사람 중 누나가가장 유명하다‘면서. - P9

-처음이라니 부담되는데?
성민이 오래전부터 혼자 연습해온 대사를 읊듯 자부심을 담아 말했다. - P14

이연이 짧게 고개 숙였다. 세 사람도 가볍게 상체를 수그렸다. 두 눈에 호의와 호기심을 담고서였다. 그렇지만 그건 나이들며 타인에 대한 기대치를 적당히 낮춘, 까다로운 듯 무심한관심이었다. 실제로 어떨지 모르나 이연은 그렇게 느꼈다 - P16

오대표가 크리스털 디캔터의 우아한 목 부분을 쥐고 물었다. 수십 년간 거위 목을 잡아온 농장주마냥 능숙한 몸짓이었다. 디캔터 안의 검붉은 와인이 이연의 눈앞에서 매혹적으로출렁였다. - P21

박의 말에 이연은 ‘보기보다 내적 긴장도가 높은 사람이구나‘ 생각했다. 사실 배우 중에도 외향적일 것 같지만 그렇지않은 친구들이 많았다. 그저 어떤 역과 몫을 해내느라 표를 잘안 낼 뿐이었다. - P25

-나도 이십대 때만 해도 바보같이 빚이 나쁜 건 줄 알았어. 빚에 대한 안 좋은 경험만 있어서. 생각해봐. 어릴 때 대출로 어딘가 투자하는 부모를 본 사람하고, 빚 하면 보증이나 고함, 부모의 불화, 이런 것만 떠올리는 사람하고 뭐랄까, 대출상상력이나 금융 감수성이 다르지 않겠어? - P37

이연은 오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하는 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말했다. - P43

이번 여행 계획을 세우며 내가 예산을 맞추려 전전긍긍할 때도 지호는 "그냥 대충대충 해. 별 차이 없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별 차이‘에 대한 감각이 지호와 나의 큰 차이였다. - P58

-중요하지, 돈은.
나는 어두운 얼굴로 답했다.
-실은 제일 중요하지 뭐. - P65

-그래도 우리 쓰지 말자, 그 말.
지호가 결국 짜증 어린 한숨을 내뱉었다.
-그럼 뭐라 부르고 싶은데? 언니? 이모님? 저기요? - P80

-은주야 만이 바쁘지. 혹시 잇어버렸나 해서. 우리 딸고맙고 미안해.
여느 때처럼 몇몇 맞춤법이 틀린, 그렇지만 무척 조심스레썼을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제서야 내가 이곳에서엄마에게 돈 보내는 일을 까맣게 잊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엄마, 나 출장중이라 해외 송금이 어려울 것 같아. 사흘뒤 한국 가서 바로 부쳐줄게. 늦어서 미안해.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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