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고 있었구나. 아파트 발코니에 선 채 허공에서 여러 방향으로 흩어지는, 그러다가 어둠 속으로 순식간에 빨려들어가기도 하는 눈송이를 하염없이 건너다보며 승준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마치 눈이 내리는 것이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중요한 사안이라도 된다는 듯이. - P9
"태엽이 멈추면 빛과 멜로디가 사라지고 눈도 그치겠죠." - P10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고 알고 싶어하지도 않는 분쟁 지역에 가서 목숨을 담보로 사진을 찍어 세상에 알리는 일을 하면서도 인정과 과시에 대한 조급함 없이시종일관 담담했던 그녀의 태도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 P11
어쩌면 지유가 세상에 온 순간부터 자신은 지유에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고 그는 생각했다. 그런 친구가 자신에게 있었다고. 카메라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으며 빛을 좇던 친구가있었다고 말이다. - P17
반장, 내게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네가 이미 나를 살린 적있다는 걸... 너는 기억할 필요가 있어. - P19
왼쪽 다리의 절반을 잃은 이후 그녀는 더이상 분쟁 지역을활보하며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의족으로 균형을 유지하며걷는 건 가능했지만 단지 그뿐, 빨리 걷거나 뛰는 건 사실상불가능했다. 통증 때문이었다. - P25
콜린의 일생을 한 편의 짧은 영상으로 제작하는 일...... - P26
독일 드레스덴에 소이탄을 퍼부은 영국 공군 소속의 조종사였던 아버지와 평생에 걸쳐 분쟁의 현장을 사진으로 증명하며 반전운동을 한 그의 아들, 그들의 불화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었을것이다. - P27
일산에서의 인터뷰가 1월에 있었고 그가 병실을 찾아온 게같은 해 11월이었으니, 그 질문은 그 기간 동안 그가 열두 살의 그녀를 기억해냈다는 걸, 그러니까 열두 살의 그녀가 배고픔과 외로움을 혼자 해결해야 했던 그 방이 그의 머릿속에서온전히 복원되었다는 것을 의미했다. - P30
어느 순간 태엽이 다 풀린 스노볼은 작동을 멈췄다. 승준은스노볼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그 스노볼의 의미를 승준은많은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러니까 어른이 되어 그녀가 블로그에 남긴 편지를 읽은 뒤에야 알게 될 터였다. "학교에는 비밀로 해줘." - P43
약속은 어렵지 않게 잡혔다. 먼저 만남을 제안한 사람은 승준 자신인데도, 약속 장소와 시간을 조율하는 내내 어색해했던기억이 났다. 그때껏 승준은 인터뷰이와 사적으로 따로 만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럴 필요성을 느껴본 적도 없었으니까.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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