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꼭 한번 보고 싶다고 전해 주세요. 정말로요. 늘 궁금했다고요. 꼭 한번 찾아간다고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마디 더 한다.
만난 적이 없어요. 한 번도요. - P73

오셨어요.
그 애다.
그린은 아직 안 왔어요. 늦는대요. - P75

나는 계단 한쪽에 쪼그리고 앉는다. 충고를 해야 할까. 당부를 해야 할까. 타박을 해야 할까.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좋을까. 나는 아침 일찍 잠깐 들르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는다. 그런 후에는 날이 훤히 밝을 때까지 잠들지 못하고 내내 뒤척거린다. - P85

이런 순간 삶이라는 게 얼마나 혹독한지 비로소 알 것 같다. 하나의 산을 넘으면 또 하나의 산이 나타나고 또 다음 산이 나타나고, 어떤 기대감에 산을 넘고 마침내는 체념하면서산을 넘고, 그럼에도 삶은 결코 너그러워지는 법이 없다. 관용이나 아량을 기대할 수 없는 상대. 그러니까 결국은 지게 될싸움. 져야만 끝이 나는 싸움. - P91

왜 우리 때만 해도 안 그랬잖아요. 안 되면 안 되는 줄 알고 되면 고마워하고 그럴 줄 알았잖아요. 법 없이도 살았죠.
근데 요즘 사람들은 떼쓰고 억지 부릴 줄만 알아요. 저 아까운 시간을 저렇게 길에 다 내버리고 있다고요. - P95

지금도 안 늦었어. 적당한 사람과 결혼해라. 애도 낳고. 젊었을 땐 누구나 한 번씩 실수를 하잖니.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면 그뿐이야. 나는 네 엄마야. 내가 아니면 누가 너에게 이런말을 해. 네가 어떻게 살든 남들은 아무 관심도 없고 상관도안 한다. - P103

나는 젠의 엉덩이에 욕창이 생겼다고 말한다. 상한 과일처럼 온통 짓무르고 주먹 하나를 밀어 넣을 정도로 크다고 말한다. 그래서 도저히 기저귀를 재사용할 수 없다는 말도 한다. 간호사는 세탁기를 정지하고 물을 뺀 다음 조그마한 창을 반쯤 연다. 그런 다음 분명히 선을 긋는다. - P111

저흰 7년이나 만났어요. 7년이 얼마나 긴 줄 아세요? 그런데도 왜 저와 그린이 아무 사이도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지모르겠어요. 좀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그런 다음에는 남은 빵이 담긴 접시와 컵 두 개를 치우고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 P125

나는 고개를 젓는다. 손발이 묶인 채 어디로 보내질지도모르고 누워 있는 저 여자가 왜 나로 여겨지는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너무나도 분명한 그런 예감을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기댈 데도 의지할 데도 없는 게 저 여자의 탓일까. 이런생각을 하게 된 나는 이제 딸애에게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
‘고 단념해 버린 걸까. 어쩌면 나도, 딸애도 저 여자처럼 길고긴 삶의 끝에 처박히다시피 하며 죽음을 기다리는 벌을 받게될까. 어떻게든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은 걸까. - P129

근데요. 여사님. 전 속이 다 시원했어요. 아까 하신 말씀요.
답을 찾지 못한저 ㅇ그냥 그랬어요. 먹고살기 바빠서 잊어버리고 잊어버리고 그랬는데 사실 다 맞는 말이잖아요. - P135

적의와 혐오, 멸시와 폭력, 분노와 무자비, 바로 그 한가운데에 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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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기억도 있어요. 독일 문학행사 때 함께 갔던작가와 호텔 앞의 공원을 산책했어요. 근데 그 작가가유치원 꼬마들의 행렬에서 눈을 못 떼더라고요. 한아이가 자기 얼굴을 다 가리는 커다란 나뭇잎을 들고 걷다가 떨어뜨리는 바람에 그걸 줍느라 자꾸 뒤처지고있었어요. 그 아이를 보는 작가의 애잔한 눈길, 숲과호수의 냄새, 새소리와 인솔 교사의 외치는 목소리. 그이후로 공원에 가면 가끔 머릿속에 그 장면이 재생됐어요. - P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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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생각하는 소설은 단순합니다. 저는 이야기란인물들이 원하는 것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고군분투라고 말하니 너무 거창하네요.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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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각인 것 같아요. 소설을 쓰다 막히면 눈을 감고 이렇게 중얼거립니다. 자, 그래서 지금 이 인물이 어디에 서 있지? 무엇이 보이지? 그리고 주인공을 둘러싼 풍경을 모두 상상해봐요. 주인공을 360도 회전하게만들어보는 것이지요. 그다음에 오 분이고 십 분이고걷게 만들어봅니다. 그래도 잘 안 써지면 버스를 타게만들기도 하고, 동네 공원에 멍하니 앉아 있게 만들기도 해요. 그러면서 인물의 눈에 무엇이 보일지를 먼저상상해요. 그리고 그 보이는 것에 청각과 촉각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때 그 부분을 상상해보는 것 같아요. 저는 무엇이 보이지?→무엇이 들리지? 무엇을생각하지? 이런 순서로 장면을 상상하는 편이에요.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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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의 세계에서 봤을 때는 완벽하게 불행해야만 하는 어떤 사람이 전혀 불행하지 않게 살 때, 그는 사실의 세계가 아니라 자신만의 진실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만의 진실이 바로 사실의 세계에 저마다 다는 주석, 혹은 자막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게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방법은 이야기를 통해서입니다. 저만의 진실로 누군가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게 사실은아닐지언정 제게는 진실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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