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조승리 지음 / 달 / 202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와 타인의 삶을 이토록 호쾌하게 더듬고 주무를 수 있는 건 감각 이상으로 뜨겁고 섬세한 감정의 완숙 때문이리라 당신의 매일이 빛나는 소리로 채색된 황홀한 축제임을, 덕분에 나 또한 그 축제의 일원이 되었음을 기쁘게 기억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돼지코, 너는 아파트에 살았다.

언젠가부터 너는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기 시작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자전거가 들판을 달려나갔다. 그러다 나란히속도를 맞췄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P211

"안 닦아 먹어도 돼?"
녀석이 엄마 눈치를 보며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들고 있던 토마토를 티셔츠 앞섶에 두 번 문질러 네 것과 바꾸었다. 그리고 토마토를 아삭 베어 물었다. 내가 시범을 보인 이후 돼지코는 오이든 살구든 내가 따주는 모든 과실을 옷섶에 닦아 먹었다. - P213

우리는 다시 찰싹 달라붙었다. 강아지를 보러가고 내 밥을한 술씩 떠먹여주었다.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숨바꼭질하고 울트라맨 놀이를 했다. 돼지코는 어느새 맨손으로 개구리를 잡을수도 있었고 암탉의 눈을 피해 달걀을 꺼내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엄마, 지긋지긋한 그 자식 다시 부산으로 전학 갔어! 걔네아빠가 잡으러 와서는 돼지코 엄마 뒈지게 팼다잖아! 외양선타고 외국 나간 사이에 노름으로 쫓겨다니다 여기까지 왔던 거래, 난 이제 그 자식 꼴 안 봐서 좋은데, 쟤는 하나뿐인 친구 없어져서 어떡한대."

그녀가 만삭의 배를 쓰다듬으며 슬픈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기가 엄마 기분을 살피는 것 같다고. 그래서인지 태동도 거의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기가 눈치보는 천덕꾸러기처럼얌전히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나는 무어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말없이 마사지만 했다. - P225

"사실 아기를 낳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기를 사랑할수가 없었어요. 내가 낳았다니까 내 아기구나 하고 감정 없이젖을 물렸어요. 그러다 아기와 눈이 마주쳤어요. 아기가 그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심장이 찌릿하고 아프더라고요. 슬픔만 심장이 아픈 게 아니에요. 너무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을 맞닥뜨렸을 때도 심장에 통증이오더라고요.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어요."

"너를 지켜내서 다행이야!"
엄마가 내 등을 쓸며 말했다.
그녀도 자신의 아기를 바라볼 때마다 생각할 것이다.
"너를 낳아서 참 다행이야."

"창피했어!"
엄마의 고백을 듣고 나는 피가 반쯤 빠져나가버린 것처럼허탈해졌다.
‘나는 부모에게 창피한 존재구나!‘
"내 자식이 장애인이 된 것도, 그곳에 내가 가는 것도 다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었어!"

"아까 지하철에서 내가 소리치는 거 들었어? 완벽하게 몰래 가져가서 짠 하고 내놓으려고 했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내 속도 모르고 꽃다발이 엄청 예쁜데 어디서 샀냐고 묻지 뭐야. 순간 자기가 들었을까봐 나도 모르게 ‘몰라요!‘ 하고 소리를질러버렸네."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 P237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새로 만난 누군가와 같이 음식을 먹을 만큼 친해지기 전까지는 상대의 하관을 보지 못한 채로 살아갈지 모른다는 생각도종종 들었다. 그런데, 그래서, 그게 뭐・・・・・・ 라는 생각이 들 만큼 현실감각이 없어지고 있었다 - P13

그런 이야기를 다 들은 후에 보미는 더더욱 같은 환경이었을 수가 없지 않나, 말했다. 호두에게는 내가 있었다는 점이, 나에게는 호두가 있었다는 점이 돌이킬 수 없는 변인이었다. 나는 그런 것들을 다 헤아리지 못했다. - P17

"어때, 아파?"
"안 아프다." - P21

"믿을 수 있다고...... 믿었어. 친구니까."
‘배신은 원래 친한 사이에 가능한 거잖아" - P30

"그럼 나중에는 매달 천원씩만 갚으라고 해."
민재의 완납을 영원히 나중으로 미뤄버리면 안부를 확인할수 있었다. - P37

상욱은 선미처럼은 살지 말아야지 생각했다. 늘 겸양을 떨며 하기 싫은 것을 하고, 막상 하고 싶은 건 양보하는 모습을곁에서 오래 지켜보며 상욱이 다 마음이 상했다. 터울이 많이나 선미는 거의 엄마처럼 상욱을 돌보며 많은 것을 포기했다. - P43

"당한 건 아닌가 하고요?"
확실히 그에 대한 상상은 입 밖으로 내뱉기에 주저하게 만드는 불길함이 있었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추측일 뿐인데도 몸서리가 쳐지는 말이었다. 하지만 선미는 영 다른 말을했다.
"저지른 건 아닌가 하고요." - P47

상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좋죠."
"그리고 사실 전 비건이거든요."
"네?"
"승리했다고 ‘오늘은 치킨 먹는 날‘이라는 메시지가 나오는게 달갑지는 않죠."
상욱은 그게 도대체 뭔 소리야..... 생각했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 P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춤하거나 퇴색하지 않은 유일한 감정은 단순한 지적인 친밀감뿐이었다. 거기에 꾸민 친절은 전혀 없었다. 감상적인 기분으로 투덜대는 말도 전혀 없었다. 우리의 벗들은대화와 지식의 대상으로 여겨졌을 뿐, 애정의 대상은 전혀아니었다. - P51

세상은 변한다. 예전의 감정을 되살릴 수 없다. - P4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화를 끊기 전 별 기대 없이 어디야? 하고 물으니 민재는고동이야, 지금 고동에 있어, 하고 대답했다. 고동이라니, 그게 도대체 어딘데, 하고 물으려는데 민재는 그럼 잘 지내, 말하고는 내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작별인사를 했다. - P9

"왜 딴소리야."
"다들 참 열심히 산다. 그지?"
"도대체 뭔 소리냐고..
‘고동에 있대."
"거기가 어딘데." - P1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