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코, 너는 아파트에 살았다.

언젠가부터 너는 자전거를 타고 통학하기 시작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두 자전거가 들판을 달려나갔다. 그러다 나란히속도를 맞췄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 P211

"안 닦아 먹어도 돼?"
녀석이 엄마 눈치를 보며 내 귀에 속삭였다. 나는 들고 있던 토마토를 티셔츠 앞섶에 두 번 문질러 네 것과 바꾸었다. 그리고 토마토를 아삭 베어 물었다. 내가 시범을 보인 이후 돼지코는 오이든 살구든 내가 따주는 모든 과실을 옷섶에 닦아 먹었다. - P213

우리는 다시 찰싹 달라붙었다. 강아지를 보러가고 내 밥을한 술씩 떠먹여주었다. 온 동네를 뛰어다니며 숨바꼭질하고 울트라맨 놀이를 했다. 돼지코는 어느새 맨손으로 개구리를 잡을수도 있었고 암탉의 눈을 피해 달걀을 꺼내는 방법을 터득하기도 했다.

"엄마, 지긋지긋한 그 자식 다시 부산으로 전학 갔어! 걔네아빠가 잡으러 와서는 돼지코 엄마 뒈지게 팼다잖아! 외양선타고 외국 나간 사이에 노름으로 쫓겨다니다 여기까지 왔던 거래, 난 이제 그 자식 꼴 안 봐서 좋은데, 쟤는 하나뿐인 친구 없어져서 어떡한대."

그녀가 만삭의 배를 쓰다듬으며 슬픈 목소리로 속삭였다.
아기가 엄마 기분을 살피는 것 같다고. 그래서인지 태동도 거의 느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아기가 눈치보는 천덕꾸러기처럼얌전히 숨을 죽이고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프다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나는 무어라 위로할 말을 찾지 못해 말없이 마사지만 했다. - P225

"사실 아기를 낳고 며칠이 지났는데도 나는 아기를 사랑할수가 없었어요. 내가 낳았다니까 내 아기구나 하고 감정 없이젖을 물렸어요. 그러다 아기와 눈이 마주쳤어요. 아기가 그 반짝이는 까만 눈동자로 나를 올려다보는데 갑자기 심장이 찌릿하고 아프더라고요. 슬픔만 심장이 아픈 게 아니에요. 너무 아름다운 것, 사랑스러운 것을 맞닥뜨렸을 때도 심장에 통증이오더라고요. 그렇게 나는 엄마가 되었어요."

"너를 지켜내서 다행이야!"
엄마가 내 등을 쓸며 말했다.
그녀도 자신의 아기를 바라볼 때마다 생각할 것이다.
"너를 낳아서 참 다행이야."

"창피했어!"
엄마의 고백을 듣고 나는 피가 반쯤 빠져나가버린 것처럼허탈해졌다.
‘나는 부모에게 창피한 존재구나!‘
"내 자식이 장애인이 된 것도, 그곳에 내가 가는 것도 다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었어!"

"아까 지하철에서 내가 소리치는 거 들었어? 완벽하게 몰래 가져가서 짠 하고 내놓으려고 했는데 옆에 앉은 아주머니가내 속도 모르고 꽃다발이 엄청 예쁜데 어디서 샀냐고 묻지 뭐야. 순간 자기가 들었을까봐 나도 모르게 ‘몰라요!‘ 하고 소리를질러버렸네."
우리는 키득키득 웃었다. - P237

그 혹은 그녀가 내 향기를 맡고 잠시라도 위로를 받을 수있다면 내 비극의 끝은 사건의 지평선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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