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는 순간 이게 다 무슨 소린가 싶어서, 그러니까 캠핑은 무엇이고 말벡은 무엇이며 와인 선물은 또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주춤했으나, 일단 이 상황을 자연스럽게 넘기지 않으면 안 될 것같은 강렬한 예감에 그 모든 얘기가 낯설지 않은 것처럼 양쪽 입꼬리를 느릿하게 끌어올렸다. - P113
영원이라는 단어를 자신의 이름으로 선택한 엄마의 마음은 좋아했다. - P41
"또 봐도 재밌어." "이미 본 거였어?" "응, 매일 보고 싶은데 일주일에 한 번만 방영하잖아." "볼 때마다 울어?" - P21
-음악 틀까? 눈점이 말했다. 구- 빗소리 커서 괜찮지 않아? 그 - 너무 커서 무서워.
게이 정체성에서가 아니라 예술에서 비롯되었음을믿기 위해. 그렇게 ‘나‘는 "게이 정체성에 천착"(130쪽)하는 일을소설쓰기와 동일시한다. 다시 말해 ‘나‘의 삶이 곧 예술이 된다. 내 삶이 곧 예술이므로 내가 경험한 모든 것이 예술의 질료라는생각의 위험은 사소설적 경향을 띠는 동시대 소설이 당면한 문제가 아닌가. - P144
비당사자를 당사자로 개입하도록 하는 이 요청은 당사자를 사건의 직접적 경험자로만 한정하는 배타적인 당사자성과 부딪힐때 곤혹스러울 수 있다. 본래 법률 용어인 ‘당사자‘는 사건의 이해에 직접적으로 개입된 자를 일컫는 말인데,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가 연대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주고 발화 가능성과 폭을 넓히기 위한 개념으로 의미가 확장되었다. 그러나 당사자의 경험만을 절대시하면 오히려 비당사자를 생산하게 되기도 한다. - P146
기영의 집에 가는 길이었다. 밤 아홉시가 조금 안 된 시간이었다. 서로 일이 바빠 보름 만에 만나는 것이었으므로 이번 주말은기영의 집에서 함께 보내기로 약속을 해두었었다. 퇴근 후 나는언제나처럼 필라테스 학원에 가 한 시간 정도 운동을 했다. 조금지쳤고 동시에 조금 기운이 났다. 사물함에서 옷을 꺼내기 전에휴대폰부터 확인했다.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 길에 아이스크림을샀다는 기영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기다리지 못하고 아이스크림을 한 숟갈 폈으니까 서두르라고, 물론 아이스크림은 아직 냉동고에 있을 것이고 기영의 말은 그저 나를 빨리 보고 싶다는 표현을 에둘러 한 것이라는 걸 나는 잘 알았다. 함께한 시간이 길어지면 당연히 서로에 대해 아는 게 많아져서 상대가 헛소리를 해도다 알아먹을 수 있으니까. - P151
그건 이상한 기분이었다. 기영이 보고 싶어 죽겠으면서도 혼자서 공원에 앉아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러는 사이 공원은 이제 이 도시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소가 되었다. - P153
사람들이 나를 남자로 착각하는 일은 종종 있었다. 나는 백칠십오 센티미터의 키에 머리가 짧고 화장도 하지 않는데다 몸매가드러나지 않는 옷을 주로 입었다. 길을 가는데 총각이나 아저씨, 하고 나를 부르며 길을 묻는다든가, 찜질방에서 파란색 옷을 주며 남자 탈의실로 안내를 한다든가 하는 일들이 있었다. 언젠가인도로 여행을 갔을 때 함께 간 친구는 예외 없이 madam‘으로불렸지만 나는 때때로 ‘sir‘로 불렸다. 한참이나 내게 호객행위를하던 릭샤꾼이 포기하고 돌아서며 근데 너 남자야, 여자야? 하고대놓고 묻던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익숙했다. 남자로 오해당하면기분 나쁘지 않으냐고 누가 물어본 적이 있었다. 오해당하는 건괜찮았다. 때로는 안전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성가신 건 내가여자라는 사실이 밝혀졌을 때였다. - P155
사전에는 개가 개를 낳지‘ 라는말도 있었다. 그건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은 유전된다는 뜻이어야했는데, 못난 아버지 밑에서 못난 자식이 난다는 뜻이었다. 나는 개에 관련된 단어들을 더 검색해보다가 지쳐버렸다. - P163
사람들은 이 공공의 장소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리하게 셔틀콕을 주고받고 있는 것 같았다. 목격자를 찾습니다. 라고 쓰여 있는 현수막이 아직 버젓이 붙어 있었지만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런 불운한 일은 자신들에게 일어날 리가 없다. 는 것처럼, - P1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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