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작은 개는 너무 커서그의 하늘을 뒤덮고 있다.
그의 슬픈 눈망울을 완성하려고태양은 종종 등을 돌려 얼굴을 가린다. - P97

어린 시인이 떠나간 자리엔어린 시인이 남아 있다 - P80

없다고 생각하면 없는 거라고어른이 된다는 건 폭격 속에서도꿋꿋이 식탁을 차릴 줄 아는 거라고 - P61

씨앗처럼 작아진 사람이 구름으로 떠오릅니다.
멀리멀리 흘러갑니다 만지면 따뜻할 것 같습니다 - P55

0만년설을 녹이기 위해 필요한 건 온기가 아니라 츠의 아닐까안에서부터 스스로 더 얼어붙지 않으면 - P39

우리는 쪼그려 앉아 호수를 보았다 묘사할 수는 없지만그것은 아름다웠고 처음 보는 빛으로 가득했다 호수를 곁에두고 우리는 전에 없던 대화를 나누었다 반딧불이의 숲은어땠어? 어떤 반짝임에 대해, 지켜지지 않은 약속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길이었어 그런데 너는 어렸을 때 어떤 아이였어? 네 최초의 기억은 뭐야? 같은, - P35

뒤덮을 흙이라면 충분했다 얼마든 달아날 수도 있었다. - P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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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이월 그해의 마지막 밤이었습니다.
조금 춥고 적막한 나의 방창턱에 뜨거운 물 한잔을 올려두고 앉아간밤의 꿈을 돌이키고 있었습니다. - P122

이상하고 아름답게 일렁이는 하얀 빛깔의 증기를 바라봅니다.
천사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걸까,
문득 생각해보았습니다. - P124

내가 태어나고 세살이 되던 해, 어머니와 아버지가 헤어 지고, 내가 열여섯이 되던 해, 아버지가 물속으로 사라지고.
나는 아무도 모르게 가슴속에 항아리를 품고, 이집 저집 떠도는 신세가 되고, 열일곱엔 이런 일도 있었는데요, 이팝나무 군락을 홀로 거닐던 봄밤. 크게 바람이 한번 불고, 우연히눈을 준 이팝나무 한그루 잔잔하게 몸을 떨고 있었습니다.
무언가 뛰어내린 듯 미미한 진동, 바로 거기서 내 첫 고양이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맨다리 위에 살짝 쿵, 머리를 박고 뭉그대던 파란 고양이, 달빛 닮은 노란 눈동자 빛내며 나를 오래 기다렸다고 말해주었을 때, 일순, 바람이 멈추고.
내 첫 고양이는 사랑을 쟁취하려다 한쪽 눈을 잃고, 잃어버린 한쪽 눈으로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는 고양이였어요.
아직도 나는 지난 사랑을 생각할 때면 조용히, 내 첫 고양이를 떠올립니다. - P141

백번의 사랑을 잃고 백두번째 사랑에 빠져 걷고 있는 이 밤. 지금 여기. 저 멀리 쫑긋 세운 하얗고 작은 두 귀, 멍한 두 눈이 보입니다. 내가 잃어버린 흰 개.
나는 힘껏 달려봅니다. 안아봅니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품고너무 오래 헤맨 나의 하얀 개. 따듯한 목욕. 옛날이야기. 담요위의 잠. 부드럽고 깨끗한 음식. 작고 허름한 내 방 안에서 순한 숨을 내쉬는 작은 개. 내게 이렇게 해보라는 듯이. 나는 하얀 개를 따라 누워봅니다. 눈을 감아봅니다. 어수선한 몽상의이미지를 하나하나 거두어봅니다. 하얗게 지워지는 머릿속.
순하고 느린 숨, 흰빛. 끝으로 나의 두 눈동자를 지워봅니다.
한없이 아름답고 가벼운 여름밤 내 가슴 위를 지나갑니다. - P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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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씨가 간도 커. 콩밥 먹고 싶나?"
"아저씨, 왜 겁주고 그래요? 전 쌀밥보다 콩밥 좋아해요." - P52

헤어진 그날, 하염없이 퍼붓던 눈과 길바닥에 피를 뚝뚝흘리던 우리의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오른다, 칠순이가까워오는 지금도, - P60

17년이 지났는데도 이혼은 여전히 내게 실감 나지 않는불행이다. 경제적 어려움보다 심리적 어려움 때문에 늘 두려움에 떤다. 서툴게 이혼했기 때문이다. 이혼의 과정에서 서로이기려고 집착한 결과다. 살면서 거리 두기를 잘못해 싸웠던것처럼, 헤어지면서 적당한 거리 조절에 실패한 이혼은 서로에게 깊은 상처를 남긴다. 그 상처의 빚은 특히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언제 어떤 형태로든 또 다른 갈등으로 떠오른다.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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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언제나 같은 자리를 맴도네그를 이끄는 것은 발이 아니라네누군가의 마지막 숨놓을 수 없는 시간이 그의 손에 들려 있어서 - P82

내 손을 거쳐간 펄떡임을 기억합니다.
먼바다의 이야기를 싣고뜬눈으로 도착한 손님들이제 나는 아무 동요 없이 그들의 목을 내려칠 수 있습니다.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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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어머니의 유고집을 펴내며
"우리 엄마 정말 곱다. 엄마, 고생했어. 장하다. 정말 애썼어요." - P4

돌아가시기 한 달 전 매일신문 시니어문학상 논픽션 부문에 당선된 실버 취준생 분투기가 뒤늦게 SNS와 여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모양이었습니다.
머니는 크고 작은 문학상을 타며 창작의 결실을 얻고, 시나리오 작업으로 더 큰 꿈을 꾸고 계시던 때에 돌아가셨습니다. 살어
아 계셨다면 실버 취준생 분투기〉를 향한 독자들의 관심에가슴 벅차셨을 겁니다. 하지만 유가족으로서 갑작스럽게 몰아치는 대중의 주목이 두려웠습니다. 어머니의 삶을 담은 이야기가 자칫 조각조각 자극적으로 편집되고 왜곡될까 봐, 누군가의 필요에 따라 이용될까 봐 조심스러운 마음이 컸지요.
책 출간을 염원하셨지만, 당신 손으로 마무리하지 못한 글이기에 ‘어머니가 이 글을 출판하기를 원하셨을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습니다. - P6

어머니 글의 힘은 솔직함과 사랑에서 오는 듯합니다. 어머니는 결핍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가난했으나사랑을 품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자기 마음에 누구보다 솔직했기에 눈치를 보거나 세상의 굴레에 갇히지 않았지요. 당신의 경험과 생각, 때로는 소박하지만 당신에게는 절실한 것조차 타인에게 나누어주는 일에 거침이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가장 소외된 자였으나, 단순함과따스함으로 세상의 견고한 아성을 비틀고 그 위에서 자유로이 뛰놀았지요. - P7

"어데 갔다 이래 오래 있었누? 니 팔랑대며 드나들지를않으니 밥맛이 다 없어지드라. 할아버이 밥 잡수라고 부르러가다가 보니 니 신발이 있길래 왔제."
며칠이나 살고 가려나 하시더니 할머니는 벌써 마음에내가 앉을 의자 하나 놓으셨나 보다. - P16

그때 나는 깨달았다, 고통은 사람을 나락으로 떨어트리기도 하지만때로는 사람과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묶어주는 역할도 한다는것을, 함께 가려면 우선 내가 건강해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우리의 고통을 최소화하기 위해 나를 소중하게 여기기시작했다. 이렇듯 사람은 고통을 통해 자신의 뿌리를 깊이 내리고 성장하게 된다. - P25

"전화로 하지, 이 더운데 뭐 하러 거기까지 갔냐?"
가까운 가족조차 내가 청각장애로 애를 먹는다는 걸 잊을 때가 많다. 대신 전화해달라고 부탁을 하면 이상한 눈으로쳐다본다. 그럴 때마다 전화 통화가 불가능해서라고 설명해도, 또 도돌이표다. - P35

이 삶의 답답한 경계를 허물 수 없어 오늘도 글을 쓴다.
글은 나의 탈출구다. 나의 슬픔, 나의 한탄, 나의 목마름, 나의안타까움. 하지 못한 많은 말을 글로 토해내며 글로나마 나를위로한다. - P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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