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호와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을 들을 때마다 나는 좀 난처해졌다. 솔직히 터놓기 어려워 아는 선배 소개로, 동아리연합회 활동하다가, 하는 식으로 적당히 얼버무리기 일쑤였다. 다른 질문에도그랬다. 걘 어느 대학 다니냐는 질문엔 고대에 다니며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다고, 어디 사냐는 질문엔 창신동에서 부모와 산다고답했다. 완전히 틀린 것도 아니지만 맞는 것도 아닌 정보들그런 식으로 도호에 대해 숨기는 게 많았던 것 같다. - P9
그런 면에서 도호는 적절한 대화 상대였다. 그와 나 사이엔 다음이 없었으니까. - P13
도호는 중학생 때 이후로 한 번도 외박을 해본 적 없다고 했다. 수련회나 수학여행은 물론 오리엔테이션조차 가본 적 없다고 했다. 왜? 놀라 되묻는 내 코를 도호는 가볍게 쥐었다 놓았다. 너도 내가 돼봐. - P25
우리가 왜 네 얘길 하겠어. 그럼 무슨 말한 건데? 왜 나한텐 말 안 해줘? 누구한테 떠들 만큼 유쾌한 얘길 한 게 아니니까 - P36
너 판교 오징어 배라고 들어봤어? 딱 우리회사가 그래. 그 말이 나는 하나도 웃기지 않았다. - P41
-도호야, 초인등 고쳐야 할 것 같아. - P47
비겁할 수 있는 사람과 그럴 수 없는 사람. 엄마가 했던 말이 이따금 떠올랐고, 그럴 때면 나는 어느 편에속하는지 가늠하게 되었다. - P51
여름이 오도록 아빠는 깁스를 풀지 못했고 나는 그때까지 아빠에게 한마디도 걸지 않았다. 날이 차차 더워지고, 깁스 안으로 땀이 차자 아빠는 튀김용 젓가락을 깊숙이 찔러넣어 다리를 살살 긁어댔다. 깁스에서 시큼하고 역한 냄새가 풍겼다.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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