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삶은 정지하고, 나의 세계도 끝이 난다. 누구도시간을 피해갈 수 없다. 영화는 시간에 저항한다. - P25

그의 페르소나라고 할 수 있는 에단 호크도 흥미로운 인터뷰를 했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모니터 뒤에 숨어서 빛이라든지 프레임에 관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고개를 약간만돌리면 조명이 멋지게 떨어질 것 같다는 식의 말을 리처드가 듣는다면 ‘지금 뭐해요? 광고 찍어요? 우리는 지금 이 사람을 찍고 있는 거예요‘라며 코웃음을 칠 거다." 요컨대 링클레이터의 관심사는 사람이었고 그의 서사 방식은 극중 등장인물이 어떻게 지금 내 옆에 함께하는 것처럼 느낄 수 있게 만들까에 매진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링클레이터가영화의 리얼리티에 대해 사유하는 방식과 관련이 있다. - P31

사유의 시작이 되는 영화가 있다<고령가 소년 살인사건> - P39

대만 뉴웨이브를 대표하는 감독 중 하나인 에드워드 양의 화두는 현대 대만인의 삶을 영화로 빚어내는 일이었다.
영화는 애매한 물건이다. 표현주의와 사실주의, 오락과 예술, 이야기와 현실 사이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고 싶어 하고대부분의 경우 둘 다 놓친다. 영화가 현실에 대응하는 방법은 스스로 한계를 인지하고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 정도다. - P40

싶을 정도로 말은 내내 겉돈다. 그렇다면 방법은 의외로 간단할지도 모른다. 최대한 많은 말을 채워 넣고 난 뒤, 그럼에도 여전히 빈칸이 남아있다고 느낀다면 그 공백이야말로 말이 차마 건드리지 못했던 진심의 영역에 가깝지 않을까. - P50

문이 열려있어야 우연도 시작된다. 이야기의 개연성은 과대평가 됐다. 그것은 닫힌 세계에서나 완벽하게 작동한다. 개연성이 있는지보다 중요한 건 그걸 어디서어떻게 확보했는지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문을 열어둔 채로우연의 순간들이 이야기를 향하도록 기다린다. - P57

얼룩이 번져 사랑이 되었습니다 - P62

얼룩은 다른 영화로도 번져나간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깃발 아래 무언가를 탐닉한다. 줄곧 얼룩에 대해 말했지만그렇다고 얼룩이 곧 사랑의 대체어가 되는 건 아니다. 사랑이 일종의 상태라면 얼룩은 이에 이르는 과정에 남겨진 흔적들의 총합이다. 사랑이라는 점에 도달하기까지의 선, 어쩌면 남겨진 껍데기일지도 모른다. - P68

‘영화가 누구에게 말을 거는가‘라는 질문은 ‘시네마란 무엇인가‘라는 명제와 곧바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 P77

가장 냉혹한 것은 또박또박 흘러가는 시간이다 - P76

. 이것은 비단 공간의 외화면에 국한되지 않고 시간의외화면, 나아가 관객을 향한 빈자리로 확장된다. 가령 두 인물이 대화할 때 단 몇 초의 침묵이 영화 전체의 상태를 끌고갈 수 있다. 어쩌면 영화는 그 침묵의 순간을 물질적으로 재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영화의 매혹은 침묵의 빈자리, 쓸모없는 시간, 사이의 공간을 발생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 P9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휴게소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해 속력을 높일 때였다. 조수석에서 근육질이 말했다.
"소시지가 없어." - P209

시침과 분침은 엇갈린 채 지난밤의 한 지점을 가리키고 있었다. 움직임이 없는 초침. 가만히 늘어진 시계추. 또군, 또야.
근래에는 숙박객이 도무지 없었으므로 긴장이 사라진 탓이라자책하며 그는 시계의 유리문을 열고 태엽 열쇠를 꺼냈다. - P212

어디서부터 걸어왔는지 낡은 검은색 패딩 점퍼에 눈송이들이 축축이 달라붙어 있었다. 구부정한 자세였지만 키는 컸고,
팔다리까지 길어서 어쩐지 사마귀를 연상시켰다. 목까지 여민 점퍼 위로 삐죽 솟은 얼굴에는 주름이 가득했다. - P217

"솔직히 여관은 좀 그래."
부족한 게 많았을 텐데도 내색 않고 자라준 아이였다. 저애의 똑똑함은 이 벽지에서는 귀하다고, 저 동그란 머리 안에는제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작고 빛나는 무언가가 있다고 그는자주 느꼈다. - P219

모래에 반쯤 파묻힌 불가사리. 빗물이 흘러내리는 유리창으로보이는 바다. 깊은 밤 가로등 아래에 앉은 새. 옥상에서 스티로폼 상자에 담아 키우는 채소들. 해변을 오가는 헐벗고 분방한 젊은이들이 좋아할 만한 게 무엇인지 알기 어려웠다. - P222

사마귀가 유리 위 글자를 가리켰다.
"축결혼." - P227

돌아보면 우스운 일이 있었고 울적한 일이 있었다. 정말 있었을까 싶은 일과 정말 없었을까 싶은 일, 이제는 물어볼 사람이 없는 일이 있었다. - P230

높다란 파도들이 정연한 주름을 이루며 밀려오고 있었다.
두 사람은 파도를 향해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 P2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는 너의 왼팔을 가져다 엉터리 한의사처럼 진맥을 짚는다. 나는 이 소리가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 같아. 이 소리는후시녹음도 할 수 없거든. 그러니까 계속 걷자. 당근의 비밀을 함께 듣자. 펼쳐진 것과 펼쳐질 것들 사이에서, 물잔을 건네는 마음으로. - P5

우리가 다녀왔어요?
그럼요, 걷는 동안 몇 번이나 폭발음이 들렸는데 못 들었어요? - P7

발밑으로 돌이 굴러온다. 어디서 굴러온 돌일까. 쥐어보니 온기가 남아 있다. 가엾은 돌이라고 생각하며 - P15

굳은 모양을 보면어떻게 슬퍼했는지가 보인다어떻게 참아냈는지가 - P17

실온에 두면 금세 썩는다고 했다. 알면서도 그대로 두었다. 여름이 상하게 한 것이 나만은 아니라는 확신이 필요해서. - P27

매일의 디테일로 맞서는최선의 사람 - P3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립백 바깥여름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5년 4월
평점 :
품절


패키지도 예쁘고 기분이 산뜻해져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6세의 봉제공 엠마 리스가 체르노비츠의 예심판사 앞에섰을 때 그녀는 추궁받았다. 왜 혁명을 선동하는 삐라를 뿌렸냐고. 그 이유를 대라고 그녀는 일어서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판사가 제지하자 그녀는 더욱 매섭게 외쳤다. 기립하시오! 기립하시오 당신도! 이것이 인터내셔널이오!‘ - P135

미래는 여전히 닫힌 봉투 안에 있었고 몇몇 퇴근길에는 사는 게 형벌 같았다. 미미하지만 확실한 행복을 주워 담았고 그게 도움이 안 될 때는 불확실하지만 원대한 행복을 상상했다. 보일러를 아껴 트는 겨울.
설거지를 하고 식탁을 닦는 서로의 등을 보면 봄날의 교무실이 떠올랐다. 어떤 예언은 엉뚱한 형태로 전해지고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실현되는 것일지도 몰랐다. - P143

먼저 추천 도서를 선정해야 했다. - P154

겨울방학의 절반이 지났을 무렵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과밀의 『자유론』으로 시작해서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로 끝나는 열한 권의 목록을 작성했다. - P155

지적 호기심은커녕 생에 호기심을 잃은 듯한 학생들을 깨우다 지친 날, 사실 주체성이란 드문 자질이 아닌지, 인생을 더 나은 방향으로 영위하려는 꿈과 끼가 모두에게 잠재되어 있다는 믿음은 미신이 아닌지 의심했다. - P158

"이제 애들 다 공산당 선언』 읽히고, 머리에 빨간 띠도 매줘야 되는 거 아냐? 하하하." - P173

지옥이란 입시에 목매는 경우에만 지옥이므로, 다수는 여전히잠을 자거나 게임을 했고, 아예 학교에 오지 않는 학생들도 많았다. 곽은 모두 각자의 스무 살을 향해 나름의 속도로 움직이고 있다고 여기며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그리고 겨울방학이다가올 무렵, 은재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 P17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