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은 이야기가 된다 - 시간이 만드는 기적, 그곳의 당신이라는 이야기
강세형 지음 / 김영사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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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언제나 이야기를 남긴다. 

시간이라는 단어와 항상 짝을 이루는 것은  '변화'였던 것 같습니다.
무섭게 바뀌는 세상의 속도에 비해 그 시간 안에 있는 '나' 그리고 '우리'는 얼마나 잘 적응하는지가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는 말과 함께 말입니다. 

변화는 늘 시나브로 찾아옵니다.
다시 말해 잊혀지는 것들은  어느 날, 그리고 조용히 사리지고 없습니다. 
하지만 사라지는 것들 중에서 남아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그들과 함께 했던 시간 중에서 남겨진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물론  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을 기억하게 하고 추억하게 하는 것은 오래전  함께 보았던 영화나 함께 들었던 음악, 잠시 같이 머물던 장소뿐만 아니라 지금은 사라진 물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은 내비게이션 덕분에 처음 가는 길에 대한 두려움이 전혀 없습니다.
전 이놈을 볼 때마다 그 이전에 지도책 하나 들고 골목골목에 있는 곳을 과연 나의 뇌가 찾아냈던가 하는 의구심이 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고 또 하나, 절대 운전하면서 길을 묻지 않던 친구도 떠오릅니다.  남자의 자존심은 절대 길을 묻지 않는다는 ... 그래서 모임이 끝날 때쯤 나타나는 일이 몇 번 있었습니다.  
네비게이션을 작동하면서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는 것도 아이러니 하면서  좋네요. 

모든 인생에는 거의 읽히지 않는, 분명코 큰 소리로 읽히지 않는 그런 페이지가 있기 마련이다. 

우리의 이야기가 그런 것 같습니다.
'큰 소리로 읽히지 않는' 그런 페이지가 다 각자에게 있기 마련인가 봅니다.
앞으로는 비록 내가 원해서 간 자리가 아니라도 지금보다는 더 적극적으로 앉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거의 읽히지 않는, 아니 그도 가치 있게 보지 못하는  그 만의 페이지가 있을테니가 말이죠.  또한 그 페이지는 내가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겪어보지 못한 이야기가 있는 페이지이기에.
그가 어리든, 성별이 다르든, 성격이 다르든, 그는 이미 몇 십 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사람이니까요.아
만약 그도 찾지 못했던 페이지를 나의 목소리로 다시 들려준다면 아마 그것 또한 가치 있는 일일테지요. 



이 책은 작가가 사랑한 영화, 책이 시간과 만나서 하나의 이야기로 구성된  책입니다.
소개된 내용 중에는 이미 본 영화나 책도 있지만,  역시 사람마다 중심으로 읽는 페이지는 다릅니다.
그래서 좋습니다.
'난 왜 그 페이지를 보지 못했을까?' 하는 자조 섞인 말은 이제 의미 없습니다.
'나니까' 보았던 그 페이지를 한 번 더 생각하고 그곳에서 잃어버린 이야기를 다시 찾게 되는 방법을 이 책에서 찾았습니다.
물론 '어 저런 페이지도 있었던가?' 하는 생각은 지나간 영화나 책을 다시 꺼내들어야 할 목록에 올려놓게 만듭니다. 

언제나 낯선 이를 소개받는 것은 기쁜 일입니다.
이번 책을 통해서  빨리 만나고 싶은 작품이 생겼습니다. 로알드 달의 작품입니다. '찰리와 초콜릿 공장'을 쓴 작가네요~ :) 
강세형 작가는 로알드 달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못돼 처먹은 동화 작가이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그래서 그 누구보다도 해피엔딩을 좋아하는 '악동'이니까. 

당신은 이야기의 힘을 믿습니까?
이야기에 온 세상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믿습니까? 

'생활에서 연기를 하면서 살아가야'하는,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현실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야기'라고, 
나는 믿고 있다. - 작가의 프롤로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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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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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그대는 그대가 꿈꾸는 세상이 있는가? 
내가 꿈꾸는 세상은 함께 사는 세상보다는  오직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저 체제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익숙해졌다고 하기에는 이기적이다. 
개인에 매몰되어 있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당신도 그러한 사람이라면 젊은 사상가 뤼트러흐 브레흐만이 쓴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분명 그대의 생각에 또 하나의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 것이다. 

위의 질문이 아니라도 작가가 던지는 아래 질문에 그대 스스로 답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이 책은 새로운 사상으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1980년대 이후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는데도 점점 더 열심히 일하고 있을까? 
- 어째서 빈곤을 완전히 퇴치하고도 남을 만큼 부유해졌는데도 인구 수백만 명이 여전히 빈곤에 허덕일까? 
- 어째서 개인소득의 60% 이상을 자신이 어쩌다 태어나게 됐을 뿐인 국가가 좌지우지할까?

위의 질문에 대해서 많은 미디어는 원인을 어김없이 인간의 게으름을 비판한다. 
우리는 미디어의 이런 비판에 대해서 대항할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작가가 이 책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돈의 재분배(기본소득), 시간의 재분배 (주당 근로시간의 단축) , 과세의 재분배(노동이 아닌 자본에 부과하는 세금), 로봇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유토피아 1. 주당 15시간 근무.

2030년의 이야기이다. 유토피아인가? 
작가가 가져온 역사의 다양한 사례는 이것을 구현하는 방법이지 실행되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1300년 경 달력은 일 년 중 3분의 1이 축제였다. 
- 1855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석공들은 최초로 하루 8시간의 근로시간을 보장받았다. 
- 1926년 헨리 포드는 최초로 주당 5일 근무제를 실시했다. 
- 1930년 12월 1일 대공황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켈로그는 하루 6시간 근무제를 도입. 

위의 사실이 믿어지는가?
그런데 왜 이런 좋은 시절은 오지 않는 것일까? 작가가 지적하는 것은 시간을 돈으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부터 였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도 시간을 돈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와 같은 유토피아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에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라고 생각의 전환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유토피아 2, 기본소득 

기본소득 제공에 대한 문제는 최근 로봇세와 함께 갑론을박되는 주제 중 하나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제공에 대한 다양한 사례 또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의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오래전 성공적으로 다루어졌지만 어느 날 없어진 이 문제를 복원시키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오늘날 기본소득은 WELL FARE 개념보다는 Work Fare 개념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Well Fare이다. 
16세가 앨리지베스 여왕 1세가 시행했던 구민법,  1795년 영국의 스핌햄랜드의 공공 구제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측정법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더불어서 강조한다.
삶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을 뺀 국내총생산(GDP)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 지수를 측정할 수 있는 정신적 대역폭과 같은 지수 말이다.  

작가의 주장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 하고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나 또한 그의 주장은 정말 실현 가능성이 있는 유토피아일까?라고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의 다음과 같은 말들에서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수록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가까이에 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문명의 토대를 쌓은 것은 자신의 드럼 소리에 맞춰 행진한 몽상가들이었다. 
세대를 내려오는 동안, 각성한 몽상가가 없었다면 인류는 여전히 가난하고 굶주리고 더러울 것이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어리석을 것이며 질병에 시달리고 추할 것이다. 

각성한 몽상가! 
작가는 당신과 같은 각성한 몽상가를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버트런드 러셀 또한 우리가 왜 진취적인 기상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행복하려면 이런저런 즐거움뿐 아니라 희망과 진취적인 기상과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완성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상상과 희망이 살아 있고 꿈틀거리는 세상이다." -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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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의 시대 - 공감 본능은 어떻게 작동하고 무엇을 위해 진화하는가
프란스 드 발 지음, 최재천.안재하 옮김 / 김영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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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ge of EMPATHY.
탐욕의 시대가 가고 공감의 시대가 왔다.


진짜 그러한가?
우리가 바라는 삶의 모습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으면 학자들은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되고 있는지 그 원인을 밝히려 한다.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탐욕에 눈이 먼 본성을 타고났는가? 아니면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하는 인간으로 진화를 했는가?
동물행동학자 프란스 드 발이 '공감'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을 인간에게 보여준다.
인간만이 다른 이의 상처에 아파한다면서 가진 영장류의 자부심은 이제 다른 동물들의 모습 앞에서 조용히 꼬리를 내려야 한다. 아니 오히려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은 인간이 동물보다 못한 공감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영화 혹성탈출에서 유인원의 리더인 시저가 보여주는 공감의 리더십은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닌 것이다. 

안타까운 사건들이 끊이지 않지만, 책을 읽는 동안 일어난 몇 가지 사건들은 인간의 퇴화의 길로 접어든 것은 아닐까 의심 들게 한다. 

한 가족의 가장인 버스기사에 대한 무자비한 인터넷 테러.
사실 확인은 두 번째이고 인터넷 매체들은 일면에 올리기에 바빴다. 그들이 단 한 번이라도 그 기사 내용으로 받게 될 가족의 아픔에 대해서 공감할 수 있었다면 사실 확인을 먼저 하는 절차를 거쳤을 것이다. 나도 처음에 그 기사를 접하고 나서 얼마나 많은 욕을 해댔는지... 
살인을 저지른 이들 혹은 사이코패스의 공통점 중의 하나가 공감능력의 절대 부족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었다. 그렇게 보면 지금 다수의 사람은 사이코패스로 진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순전히 이기적인 동기와 시장의 힘으로만 형성된 사회는 부를 생산해낼 수는 있어도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단합이나 상호 신뢰를 이끌어내진 못한다 이것이 가장 행복도가 높게 측정되는  곳은 가장 부유한 국가가 아닌 시민들 간에 신뢰도가 가장 높은 나라에서 나오는 이유이다. 

드 발이 만약 인간의 조건 하나를 바꿀 수 있다면 왜 인간의 유대감의 범위를 넓히고 공감의 범위를 넓히려고 했는지 충분히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생존 경쟁이 자연의 본질이라는 패러다임이 오랜 시간 동안 사회를 지배해왔다. 지금도 이 패러다임은 남아서 끊임없는 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왜 자연 선택은 우리로 하여금 다른 사람과 장단을 맞추어 다른 사람이 괴로워하면 괴로움을 느끼고 다른 사람이 기뻐하면 기쁨을 느끼도록 인간의 뇌를 디자인했을까?

우리의 뇌는 디자인대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공감은 1억 년 이상으로 오래된 뇌 영역과 관련  있다. 이 능력은 오래전 근육성 운동 따라 하기 및 감정 전이와 함께 발생했고, 그 후 층층이 쌓이는 진화적 과정을 거쳐 결국 타인이 느끼는 바를 느낄 분 아니라 타인이 원하거나 필요로 하는 바를 이해하는 조상을 낳게 되었다. 


소통은, 공감은 운동 근육과 같아서 배우기만 하고 갈고닦지 않으면 절대 탄탄해지지 않는다. 
이제  무뎌져 있는 공감능력을 끌어 내자.
그것이 개인이 사회에 끼칠 수 있는 아름다운 공헌이 될 수 있는 길이기에. 
내가 달라지면 관계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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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오직 재미있게 이동진 독서법
이동진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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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년에 300~400편에 가까운 영화를 보는 사람.
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서 그의 직업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렇지만 매일 1~2편의 영화를 보고 글을 써야 하는 입장이라고 생각한다면 부러움은 오래 머물지 못한다. 오히려 기대하는 영화가 나왔을 때  보는 내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런데 그의 독서력만큼은 정말 부럽다. 내가 인정하고 닮고 싶은 달변가가 있다. 
당연히 이동진 평론가도 그중의 한 명이다. 그의  팟캐스트는 특별히 깊은 이해가 필요하거나 다른 사람의  관점이 필요할 때 찾아서 듣는다. 그럴때 이 작가에 대한 느낌은 '정말 말 잘한다'와  그처럼 박식해지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책에 관한 한 쇼핑중독자, 허영 투성이, 고집불통.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개될 때가 유달리 반갑다고 한다.
나도 그렇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누군가가 소개해 줄 때 은근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그에게 책 읽기는 재미다.
그냥 재미가 아니라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일은 아니더라도 재미중에서 책읽기 목록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다면 우리나라는 독서강국이 될 수 있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책읽는 것이 재미가 될 수 있을까? 

"책을 읽는다는 건, 그 지적인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가장 편하고도 체계적인 방법이에요. 그러니 책을 좋아하고 책 읽는 습관을 가진 사람이라면, 책 한 권으로도 자신의 지적인 호기심을 채우는 것이 얼마나 즐거울까요." - 23쪽

호기심을 많이 갖는 것보다 즐거운 인생이 있을까?
일에 대한 호기심, 사람에 대한 호기심, 자연과 우주에 대한 호기심, 그리고 무엇보다 삶에 대한 호기심이 있는 사람의 하루가 어찌 즐겁지 아니하겠는가. 

그의 독서법은 깊이에 앞서 넓이를 강조한다. 

"깊이의 전제는 넓이입니다. 그 반대는 성립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깊이가 전문성이라면 넓이는 교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지적인 영역에서 교양을 갖추지 않는다면 전문성도 가질 수 없죠. 사람들은 대체로 깊어지라고만 이야기하는데, 깊이를 갖추기 위한 넓이를 너무 등한시하는 것 같아요. 넓이를 갖추는데 굉장히 적합한 활동이 바로 독서입니다." - 27쪽  

공감이 가는 의견이다.
서로 다른 것을 섞어서 창조를 하는 시대에 한 곳을 깊이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독서가 오늘날 더 필요하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는 쌓여있는 과학서적으로 교양을 넓히는 독서에 보다 집중을 해야겠다. 

문학은 왜 읽어야 하나?

난 소설을 다른 분야와 비교하면 많이 읽지 않는 편이다.
딱히 소설이 싫어서가 아니다.  책을 한 번에 5권씩 읽는 편이기에 소설을 읽으면 영화의 롱 테이크 기법처럼 꼭 한 번에 읽어야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이동진 작가의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보니, 자주는 읽지 못하더라도 가끔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가 인생에 대해서 어떻게 완벽하게 파악하고 예측할 수 있겠어요. 인생에는 변수가 정말 많거든요. 그런데 소설은 그런 변수들을 통제하고 정리해서 만들어낸 이야기잖아요. 그것이 관계에 대한 문제인지, 인간이 고독을 즐길 수 없는 무능력에 관한 문제인지, 과연 어떤 문제인지를 보게 해주죠.
(...)
문학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하나 더 들자면, 문학은 언어를 예민하게 다루기 때문입니다. 언어는 너무나 중요합니다. 보통 언어는 도구라고 생각하지만 저는 도구가 아니라 생각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어요.
(...)
문학은 오랜 세월 말에 쌓여 있는 수많은 먼지 같은 것을 털어서 그 말의 고유한 의미나 다른 의미를 들여다보게 만듭니다. 이렇게 우리의 생각 자체이면서 표현 방식이기도 한 언어를 가장 예민하게 다루는 문학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다고 봐요." - 30~31쪽 

책은 어떻게 읽어야 할까?

속독을 권장하는 사람도 있다.  빨리 읽는 것이 재미있을까? 개인적으로 속독을 하는 편이 아니라 이동진 작가의  느리게 읽기에 공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첫 장을 넘기고 나서  마지막 장을 덮기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 하는 것은 여전히 내가 읽는 책의 잣대가 되고 간혹 이것이 책을 즐겁게 읽어야 하는 것에 걸림돌이 되고는 한다.
  

"세상에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이 있습니다. 빠르게 완료하지 못할 일들이 있습니다. 그러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들은 대부분 오래 걸리는 시간 자체가 그 핵심입니다. 
책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것은 책과의 만남, 그 글을 쓴 저자와의 소통, 또 책을 읽는 나 자신과의 대화입니다.
(...)
독서 행위의 목적은 결국 그 책을 읽는 바로 그 시간을 위한 것 아닐까요. 그 책을 다 읽고 난 순간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독서를 할 때 우리가 선택한 것을 바로 그 책을 읽고 있는 스 긴 시간인 것입니다."  - 58쪽 

연인과 데이트를 할 때의 그 순간순간이 소중하듯이 책 읽기도 바로 그 시간이 최고의 시간이라고 생각을 하고 읽도록 해야겠다. 한 권을 빨리 읽는 강박에서 벗어나는 순간이다. 

어떤 책을 고를 것인가? 

나의 경우에는 책이 책을 고르는 경우가 많다. 한 권의 책을 읽고 나면 깊이나 혹은 넓이를 위한 자연 선택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에는 전문가의 추천에 따르는 경우가 많다. 
다음으로는 블로그에 올라오는 서평들을 보고 구미가 당기는 책을 선택하는 경우이다. 
신간을 많이 읽는 작가가 그 만의 좋은 책을 고르는 방법이 있어 소개한다. 

첫째, 서문은 읽는다. 훌륭한 책은 반드시 서문이 좋다. 
둘째, 차례를 본다. 차례는 건축에서 설계도와 같은 것이다. 짧은 시간에 이 책이 얼마나 튼튼하게 구조화되었는지 알 수 있다. 
셋째, 3분의 2쯤 되는 페이지를 펼쳐본다. 이 지점이 저자의 힘이 가장 떨어질 때이기 때문이다. 이 부분마저 훌륭하다면 그 책은 정말 훌륭하다.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차례를 한 번 더 살펴본다. 
총 3부 구성으로 되어 있는 책에서 2부는 굳이 넣을 필요가 있었을까?
물론 어느 정도 페이지를 갖추기 위한 목적도 있겠지만, 결론적으로 본인이 선택하는 좋은 책의 조건에는 들어맞지 않는 모순이다. 
내용도  1부와 중복되는 것도 많고 책의 3분의 2 지점을 펼쳤을 때 힘도 떨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 대화 편에서 배운 것을 하나 옮기자면 줄거리 요약이다. 
영화를 보거나 소설을 읽고 나서 줄거리를 요약해 본 적은 없다.  그저 그 작품의 소회 정도만 밝혔을 뿐이다. 그런데 그의 주장을 듣고 나서 생각이 달라졌다.  2부를 읽기 잘 했다. :) 

"줄거리를 요약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지적 활동이에요. 줄거리 요약을 잘하는 사람이 강연도 잘하겠죠. 대화도 잘하고." - 115쪽 

그에게 좋은 삶이란 무엇일까?

"시간을 흘려보내는 삶, 시간 속에서 어떻게 흘러갈 것인지를 잘 선택하는 삶, 그것이 좋은 삶이잖아요. (...) 시간을 흘려보내는 인간이 선택할 수 있는 검증된, 유쾌한, 훌륭한 방식 중 하나가 책 읽기라는 거죠. " - 147쪽

당신은 지금 좋은 삶을 살고 있는가?

그가 추천한 500권의 도서 목록에서 내가 읽은 책을 확인해보니 53권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17,000권에서 500권을 고르기 위한 그의 수고가 고맙다. 
500권의  추천도서 목록을 보면서 지금 당장 사고 싶은 책이 마구 쏟아진다. 
아직 책상에는 읽어야 할 책이 속살을 드러내지 못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말이다. 

이 책의 가치를 누군가 묻는다면,
500권의 도서목록을 얻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한 가치를 얻을 수 있노라고 자신있게 권하고 싶다. 
따라서 500권의 도서 목록은 생략하는 것으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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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데우스 - 미래의 역사 인류 3부작 시리즈
유발 하라리 지음, 김명주 옮김 / 김영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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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전주곡에 불과했다. 
         인간이 무엇이 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질문 없이 우리는 제대로 된 시대를 살아갈 수가 있을까?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 <호모 데우스>와 깊은 사랑에 빠졌다. 

속독이 아니라 지적 호기심에 한 호흡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을 몇 권이나 만날 수 있을까?  

유발 하리리나  리처드 도킨스의 책이  쉽게 읽히는 이유는 이들이 방대한 내용이지만 책을 너무 쉽게 잘 쓴다는 것이다.   
그뿐인가! 책 중간중간 Ah-ha 혹은 WOW와 같은 감탄사를 유발하는 멋진 비유와 통찰력 있는 문장을 만난다면. 

이번 책에도 그러한 문장들이 있어서  몇 개 먼저 소개를 한다. 

핵무기가 없었다면 비틀스도, 우드스톡도 상품이 넘쳐나는 슈퍼마켓도 없었을 것이다.
로마교황청은 12세기 유렵의 실리콘 밸리였다.
정부라는 거북이는 기술이라는 토끼를 따라잡지 못한다.
- 자동차가 마차를 대체했을 때, 우리는 말을 업그레이드하지 않고 퇴역시켰다. 어쩌면 호모 사피엔스도 똑같은 일을 당할 때가 왔는지도 모른다.
- 역사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뒤를 돌아보는 대중이 아니라, 앞을 내다보는 소수의 혁신가들이다.

우스개 소리지만 위의 내용을 완벽하게 정리를 하면  어디 가서 아는 체할 수 있을 듯 하다. :) 
역사적 사건이나 지난 과거에 대한 사실을 메타포로 정의 내릴 수 있는 멋진 통찰을 가지고 있는 사람! 유발 하라리는 분명 내 뇌의 한 구석에 그런 사람으로 자리 잡혔다. 그래서 그의 다음 책도 가능하면 제일 먼저 볼 것이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를 통해서  현재 인간이 인류의 중심이 된 이유를 밝혔다. 
인지혁명, 농헙혁명, 과학혁명이 바로 그것이었다.   
이는 인간의 과거를 다루었다.


그러나 이번 책 <호모 데우스>는 <사피엔스> 마지막 장에 다루어지는  '과학 혁명'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었다. .  이 책을 읽기 위해서  <사피엔스>를 꼭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책의 일부에는  <사피엔스>에서 주장한  내용이 있기에  걱정 없이 '미래의 역사'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즐거움 뒤에는 왠지 섬뜩함마저 든다.
마치  '터미네이터'나 ' '매트릭스' '토탈리콜' 같은 영화를 보고 난 이후의 느낌처럼 말이다. 

인공지능과 생명공학은 분명 세계를 탈바꿈시킬 테지만, 단 하나의 결정론적 결과가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책에 제시된 모든 시나리오는 예언이라기보다는 가능성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이미 인공지능이나 생명공학 기술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으로 발전을 해가고 있다. 
따라서 이것으로 무장한 새로운 개체에 의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유전공학, 나노 로봇 기술, 인공지능 등을 잘못 이용할 경우 인류에게 재앙이 올 수 있으리라는 상상은 충분히 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의미에서 작가가 책을 통해 던진 몇 가지 질문들은 상당한  시사점이 된다. 

이슬람교는 유전공학을 어떻게 다룰까?
사회주의는 새롭게 부상하는 비노동 계급을 어떻게 대할까?
자유주의는 빅데이터로 인한 빅 브라더의 출현에 어떻게 대처할까?
실리콘밸리는 결국 새로운 기기만이 아니라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내지 않을까?
구글과 페이스북이 우리가 좋아하는 것과 우리의 정치적 신호를 우리 자신보다  더 잘 알게 되면 민주주의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생명공학은 전례 없는 생물학적 빈부격차를 목도하게 될까? 

작가가 던진 질문들이  하나하나 의미가 있지만 그중에서 빅데이터에 관한 내용과 구글과 페이스북이 정치적 신호를 먼저 안다면 민주주의에 어떤 일이 일어날까? 와 같은 질문들은  특히나 더 의미가 있었다.  
책을 읽으면서  위에 대한 질문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갈 수도 아니면  반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빅데이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책을 읽는 것이 아니라 책이 개인을 읽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리고 상품이 우리의 선택보다 먼저 말을 거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것은 인간의 삶에 편리함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도래하는 시대에 새로운 기술 종교들이 알고리즘과 유전자를 통한  구원을 약속한다면? 
즉 21세기의 의학의 목표가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사람의 성능을 높이는 쪽이라면? 
이렇게 탄생한 초인간, 즉 스스로 신이 되려고 하는 호모 데우스가 보통 인간을 19세기 유럽인이 아프리카인을 대한 것처럼 대한다면? 

그렇다고 하더라도 당신은   지금 밀려올  과학 혁명을 받아들일 것인가?
그러나 선택은 개인의 몫이 아니다.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탄생하는 신흥 종교를 '기술 인본주의교'와 '데이터교'로 정의했다. 

무서운 것은  컴퓨터 과학과 생물학에  뿌리를 두고 있는 데이터교의 출현이다.  

인류가 실제로 단일한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라면 그 산물은 무엇일까? 데이터 교도들은 '만물 인터넷 Internet of all Thing이라 불리는 새롭고 훨씬 더 효율적인 데이터 처리 시스템이 그 산물이 될 거라고 말한다. 이 과업이 완수되면 호모 사피엔스는 사라질 것이다. 
만물 인터넷이 실제로 운영되기 시작하면, 우리는 엔지니어에서 칩으로, 그런 다음에는 데이터로 전락할 것이고, 결국 세차게 흐르는 강물에 빠진 흙덩이처럼 데이터 급류에 휩쓸려 흩어질 것이다. 

인간 한 명 한 명이 데이터로 전락하고 마는 시대가 온다면 ... 
정말 끔찍한 이야기이다. 

그래서 유발 하라리는  책을 덮은 후에도 다음 질문이  독자의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희망했다. 

유기체는 단지 알고리즘이고, 생명은 실제로 데이터 처리 과정에 불과할까?
지능과 의식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을까?
의식은 없지만 지능이 매우 높은 알고리즘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알게 되면 사회,정치 , 일상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이미 단 1초 만에 인간이 1년 동안 축적할 수 있는 지식을 갖춘 인공지능의 등장 앞에서 위의 질문들은 기술의 발전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도 역할을 할 것이다. 

7만 년 전 인지혁명이 호모 사피엔스를  지구의 중심에 두었다면, 과학 혁명으로 탄생할 호모 데우스는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을 밀어낸 것 같이  인간을  지구에서 몰아낼 수 있을 것인가? 

역사를 공부한다는 것은 의미의 그물망들이 생기고 풀리는 것을 지켜보고, 한 시대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였던 것이 후손에 이르러 완전히 무의미해진다는 것을 깨닫는 일이다.  (207쪽) 

역사는  우리에게 어떤 선택을 하라고  강요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과거보다는 더 나은 선택과 더 많은 선택의 여지를 제공하는 것은 사실이다.  

호모 사피엔스에 대한 통찰은  '호모 데우스' 시대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섬뜩함이 아니라  공존할 수 있는 지혜를  가져다줄 것이다. 
실질적인 방법을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노력을 하겠지만,  개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유발 하라리가 던져준 세 가지 질문에 대해서 깊게 생각해 보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을 것 같다.  


PS,   이 책에서 핵심으로 다루고 있는 내용 중의 하나가 '알고리즘'이다. 
작가 스스로 21세기를 지배할 개념으로 바로 '알고리즘'을  이야기했다. 즉 그동안 인간이 해왔던 모든 알고리즘을 기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보면  왜 이 개념이 중요한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책에서 예시로 나왔던  채소수프를  만드는  알고리즘에 사람이 하는 일 대신 자동으로 실행할 기계가 대신한다면? 
비단 인간을 기계로 대체할 수 있는 것들이 채소수프 만드는 일뿐이겠는가? 

증권거래 또한 알고리즘에 의해 관리되고 있다. 
의사들도 알고리즘의 표적이다. 
인간 약사들이 약을 처방할 때 일어나는 실수는 평균 1.7퍼센트이다. 이로 인한 처방 오류가 미국에서만도 매년 5,000만 건 이상에 이른다.


모든 알고리즘에서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 있을까?
이미 인간의 감각, 감정, 생각조차 알고리즘에 제어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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