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 - 우리가 바라는 세상을 현실에서 만드는 법
뤼트허르 브레흐만 지음, 안기순 옮김 / 김영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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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그대는 그대가 꿈꾸는 세상이 있는가? 
내가 꿈꾸는 세상은 함께 사는 세상보다는  오직 '나'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저 체제가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익숙해졌다고 하기에는 이기적이다. 
개인에 매몰되어 있는 생각을 조금이라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있다면? 
당신도 그러한 사람이라면 젊은 사상가 뤼트러흐 브레흐만이 쓴 '리얼리스트를 위한 유토피아 플랜'은 분명 그대의 생각에 또 하나의  새로운 물줄기를 만들 것이다. 

위의 질문이 아니라도 작가가 던지는 아래 질문에 그대 스스로 답을 찾고자 하는 욕망이 있다면 이 책은 새로운 사상으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 우리는 1980년대 이후 어느 때보다 부유해졌는데도 점점 더 열심히 일하고 있을까? 
- 어째서 빈곤을 완전히 퇴치하고도 남을 만큼 부유해졌는데도 인구 수백만 명이 여전히 빈곤에 허덕일까? 
- 어째서 개인소득의 60% 이상을 자신이 어쩌다 태어나게 됐을 뿐인 국가가 좌지우지할까?

위의 질문에 대해서 많은 미디어는 원인을 어김없이 인간의 게으름을 비판한다. 
우리는 미디어의 이런 비판에 대해서 대항할 시대정신을 가지고 있는가? 

작가가 이 책에서 대안으로 제시하는 내용은 크게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돈의 재분배(기본소득), 시간의 재분배 (주당 근로시간의 단축) , 과세의 재분배(노동이 아닌 자본에 부과하는 세금), 로봇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유토피아 1. 주당 15시간 근무.

2030년의 이야기이다. 유토피아인가? 
작가가 가져온 역사의 다양한 사례는 이것을 구현하는 방법이지 실행되지 못할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 1300년 경 달력은 일 년 중 3분의 1이 축제였다. 
- 1855년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의 석공들은 최초로 하루 8시간의 근로시간을 보장받았다. 
- 1926년 헨리 포드는 최초로 주당 5일 근무제를 실시했다. 
- 1930년 12월 1일 대공황이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켈로그는 하루 6시간 근무제를 도입. 

위의 사실이 믿어지는가?
그런데 왜 이런 좋은 시절은 오지 않는 것일까? 작가가 지적하는 것은 시간을 돈으로 인식하게 되는 순간부터 였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도 시간을 돈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위와 같은 유토피아는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돈이 아니라, 주어진 시간에 어떻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것인가?라고 생각의 전환이 우리에게 필요한 시점이다.

유토피아 2, 기본소득 

기본소득 제공에 대한 문제는 최근 로봇세와 함께 갑론을박되는 주제 중 하나이다. 
하지만 기본소득 제공에 대한 다양한 사례 또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작가의 위대한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미 오래전 성공적으로 다루어졌지만 어느 날 없어진 이 문제를 복원시키고자 하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오늘날 기본소득은 WELL FARE 개념보다는 Work Fare 개념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내용은 Well Fare이다. 
16세가 앨리지베스 여왕 1세가 시행했던 구민법,  1795년 영국의 스핌햄랜드의 공공 구제 프로그램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지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측정법이 필요하다는 것 또한 더불어서 강조한다.
삶의 가치를 측정하는 것을 뺀 국내총생산(GDP) 개념이 아니라, 인간의 행복 지수를 측정할 수 있는 정신적 대역폭과 같은 지수 말이다.  

작가의 주장이 실현 가능한 것인가? 하고 의문을 던질 수 있다.
나 또한 그의 주장은 정말 실현 가능성이 있는 유토피아일까?라고 의문을 갖게 된다. 

하지만 그의 다음과 같은 말들에서 그의 생각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수록 우리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가까이에 있다고 할 것이다.

오늘날 문명의 토대를 쌓은 것은 자신의 드럼 소리에 맞춰 행진한 몽상가들이었다. 
세대를 내려오는 동안, 각성한 몽상가가 없었다면 인류는 여전히 가난하고 굶주리고 더러울 것이고, 두려움에 벌벌 떨고 어리석을 것이며 질병에 시달리고 추할 것이다. 

각성한 몽상가! 
작가는 당신과 같은 각성한 몽상가를 원하고 있는지 모른다. 비단 그들만이 아니라 버트런드 러셀 또한 우리가 왜 진취적인 기상이 필요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인간이 스스로 행복하려면 이런저런 즐거움뿐 아니라 희망과 진취적인 기상과 변화가 필요하다. 우리가 원해야 하는 것은 완성된 유토피아가 아니라, 상상과 희망이 살아 있고 꿈틀거리는 세상이다." - 영국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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