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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ㅣ 문학과지성 시인선 438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4월
평점 :
- 소유하고 싶지만, 시집에는 취향이 없기에 이북으로 본다
- 그런데 첫 페이지 작가의 말부터 그냥 넘길 수가 없네.
첫 번째 시에서 또 넘기지를 못하고 감탄을 연발한다.
- 어떻게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단어를 이렇게 배열할 수 있을까.
시를 즐기진 않지만, 이 작가가 시를 잘 쓰는 건 알겠다.
- 슬픔을 이겨보려는, 외로움에 잠식당하지 않으려는, 아픔에 삼켜지지 않으려고
하는 모습에서 위안을 얻는다.
- 필사하고 싶은 문구가 너무 많았다. 언젠가는 할 수 있으려나.
- 가장 재미있게 읽은 시집 중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다.
그 현란하지만 진정성 있게 고른 단어와 어휘들.
감탄을 자아내는 숨은 의미들.
다 알 수 없지만, 최대한 느껴보려고 몇 번씩 읽어보는 순간들이
시집을 즐겨읽지 않는 나에게는 낯선 경험이었다.
역시는 역시나구나.
- (어느 늦은 저녁 나는)
어느
늦은 저녁 나는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그때 알았다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지금도 영원히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밥을 먹어야지
나는 밥을 먹었다
- (휠체어 댄스)
작가답지 않게 꽤나 격렬한 시라고 생각했는 데
마지막 첨언에 무릎을 친다. 강원래의 공연에 부쳐.
"단지 어떤 것도 날
다 파괴하지 못한 것뿐"
- (조용한 날들)
대관절 무엇이 생명 없음마저 부러워 하게 하는 걸까.
"좋겠다 너는,
생명이 없어서"
- (조용한 날들 2)
생명이란 무얼까. 어떤 생명까지 소중히 해야 하지?
어떤 생명까지라니.. 나는 무얼 생각하고 있는 걸까, 생명에 대해.
한계선을 긋는 건 항상 너무 어렵다. 앞이나 뒤에 긋고는 시련에 빠진다.
"찌르지 말아요
짓이기지 말아요
1초 만에
으스러뜨리지 말아요"
- (심장이라는 사물 2)
죽음이란 무엇일까.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게 될까.
삶이라는 배움을 정말 얻을까. 나는 무엇을 얻고 혹은 잃고 혹은 아무것도 아닐까.
"벽에 비친 희미한 빛
또는 그림자
그런 무엇이 되었다고 믿어져서요.
죽는다는 건
마침내 사물이 되는 기막힌 일
그게 왜 고통인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 (몇 개의 이야기 6)
왜 자꾸 인생을 걸까. 생각해보니 마음을 거는 게 더 좋을 거 같아 깜빡 놀란 싯구.
"인생 말고 마음, 마음을 걸려고 왔어."
- (서시)
어느 날 운명이 찾아와 나에게 말을 붙이면?
저자는 조용히 그를 끌어안고 오래 있을 거라고 한다.
반문한다. 멱살을 안 잡고? 다그치지 않고?
그러다 이해하고야 만다.
그는 말이 필요없이 나를 이해하는 자.
그리고 얼룩진 뺨을 가진 자.
- (유월)
"그러나 희망은 병균 같았다"
"내 몸은 숙주이니, 병들대로 병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