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 - 혁신적이고 독창적인 전략으로 지구를 누빈 식물의 놀라운 모험담
스테파노 만쿠소 지음, 임희연 옮김, 신혜우 감수 / 더숲 / 2020년 11월
평점 :
줄기 끝에 아름답고 부드러운 깃털 같은 이삭이 달린다. 깃털은 처음에는 진한 분홍색을 띠다가 무르익는 동안 색이 옅어지며 다양한 분홍빛 색조로 변하면서 섬세한 색의 향연을 펼친다. 본문 64쪽
펜니세툼 세타케움이란 수크령속의 종인 학명을 갖고 있는 식물 외양에 대한 식물학자의 표현을 보면 어떤 식물이 떠오르는가?
수크령속은 벼과식물로 우리 주변에 쉽게 볼 수 있는 강아지풀이다. 강아지풀이 친근하지만 한번도 예쁘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자색의 강아지풀 사진은 확실히 아름답다.
학명뿐 아니라 대중적인 이름도 함께 표기하였다면 식물의 이미지가 더 쉽게 다가오지 않았을까?
펜니세툼 세타케움의 학명은 헤리포터의 마법주문이 떠오를만큼 이질적이며 사진이나 그림조차 없기 때문에 미지의 식물처럼 다가와 매우 희귀하고 특별한 식물처럼 여겨진다. 20세기 초 이탈리아에선 에티오피아에서 자생하는 이 볏과식물의 아름다움에 반해 한국에선 잡초인 강아지풀종을 관상용과 사료용으로 제한된 식물원에서 재배하였다가 천적이나 경쟁자가 없어 시칠리아섬에 확산된다.
소련 체르노빌의 핵발전소 폭발로 인간이 거주할 수 없는 땅은 한국의 DMZ처럼 자연보호구역이 되어 방사능사고 이전보다 다양한 생물 서식지가 되었다고 한다. 인간이 개입하여 훼손한 땅에도 자신과 자신의 후손을 방사능에 최대한 보호하며 살아남는 식물들 그리고 인간이 거주하지 않자 멸종했다고 생각되는 동물들이 체르노빌 숲에서 살아간다.
이탈리아의 국민 음식 재료인 토마토와 바질의 원산지는 남미이며 16세기 스페인 출신이 멕시코를 정복하면서 유럽에 들여왔고 그 때만 해도 노란색 열매였으며 천대받다가 19세기에 이르러서 대중화되었다고 한다.
이 책엔 각 지역에 널리 확산된 식물들의 원산지와 그 이동의 역사에 깊게 관여한 인물과 식물의 특징들을 흥미롭게 풀어낸다.
인상깊은 구절
모든 생물종은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관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감상
식물과 동물은 스스로 영양분을 합성할 수 있는지 그리고 움직일 수 있는지로 구분한다.
그런데 이 책은 고착생활하는 식물에게 개척자, 전투원, 생존자, 세계정복이란 수사를 붙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식물들 대부분은 실은 외래종이며 지금의 영토에 침입하여 번성한다.
꽤 역동적인 수사와 침입식물이 식민지에서 자생식물로 적응하는 과정을 도발적 표현들을 사용함으로써 인간의 폭력적인 정복의 서사를 합리화하는 듯한 불편함도 묻어난다.
저자는 인간이 식물을 정복했다고 생각하지만 식물은 식물대로 변화된 환경에 맞게 적응하여 확산되어 왔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 나오는 식물의 이주는 유럽의 제국주의_좋게 말하면 유럽인들이 지구 곳곳을 쑤시며 식민화하면서 딸려온 식물들이 인간의 의도가 개입되거나 혹은 의도와 상관없이 번성하게 된 식물들의 이야기다. 그 식물들과 연계된 역사적인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풀어가면서 인간이 식물 종과 생태에 미친 관계를 식물학적 지식과 엮어서 지적으로 풀어낸다.
<식물, 세계를 모험하다>책은 식물의 모험에 모종으로 연루된 인간들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며 정복의 대상이자 동물보다 인간의 흥미를 끌지 못했던 식물이란 생명체가 자신의 DNA를 전달하고자 하는 놀라운 발상들과 강인한 생명력을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