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섬으로 가다 - 열두 달 남이섬 나무 여행기
김선미 지음 / 나미북스(여성신문사)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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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나무, 섬으로 가다

김선미지음

첫 애가 5~6살쯤 시부모를 모시고 가평 리조트에 며칠 머물다가 갔던 곳이 남이섬이다. 여름날이라 넓은 수목원처럼 많은 나무로 둘러싸인 경치를 세세하게 둘러보는 일은 쉽지 않았다. 유모차도 없어서 남편과 내가 번갈아 아이를 엎고 걸어갔던 그곳에 대한 기억은 제주도와 동남아에서 본 이국적인 야자수나무와 무성한 잣나무다. 구경꾼들을 신경쓰지 않고 오르내리며 잣나무 열매에서 잣을 먹는 청솔모와 바닥에 떨어진 수북하게 쌓인 잣나무 열매 껍질의 단편적인 기억과 쓰레기를 이용한 설치미술작품등이 기억난다. 남이섬에 대한 기억은 이것이 전부다. 계절의 변화에 따른 남이섬의 풍광을 알지 못한다.

<소개>

다산 정약용의 <산행일기>에서 남이섬이고 했고 <산수심원기>에선 남이서라고 해서 남이 장군의 넋을 기리는 곳이 이름의 어원이고 지금은 테마파크로 나미나라공화국이란 독립된 국가처럼 국가이름으로 명하며 입장할 때 출입국관리소를 통해 들어가기에 이국적인 정취와 함께 타국을 여행하는 분위기가 든다.

이 책은 나무의 푯말이 없어 전문가가 아니면 나무의 수종을 알지 못하는 남이섬의 나무들을 달마다 찾아와 나무의 꽃잎과 잎, 수피를 꼼꼼하게 살피며 스스로 생각하다가 낮에 찍은 이름 모를 나무사진을 도감과 대조하여 힘들게 알아나간다. 휴대폰으로 찍으면 이름을 바로 알려주지만 저자는 씨름하며 알아가는 수고의 기쁨을 오롯이 느끼며 그런 자발적인 공부의 과정과 결실을 독자들과 나눈다.

저자는 테마파크인 남이섬이 아닌 나무의 섬으로 나무의 모습을 달마다 관찰하며 그 변화를 섬세하게 적어나간다.

사람처럼 어른 나무가 되려면 20년이 걸리는 2월의 튤립 나무는 열매와 꽃이 모두 툴립처럼 생겨 튤립나무인데 200년동안이나 꽃을 피운다고 한다. 씨앗들이 싹이 트려면 7년을 기다리는 느린 이 나무가 섬 곳곳에 많이 자란다.

영국에선 메이플라워로 불리고 아기위나무, 찔구배나무, 뚱광나무, 이광나무 등 이름도 다양한 4월의 산사나무, 공작 수컷의 꽁지를 땅과 수평으로 펼쳐놓은 것처럼 가지를 뻗고 있는 5월의 층층나무는 조그만 틈이 생기면 가장 먼저 공간을 선점해 자라서 층층나무 밑에는 다른 식물이 자라기 힘들다고 한다.

작은 꽃잎을 보호하면서 곤충을 유인하기 위해 꽃처럼 보이는 총포가 있는 산딸나무와  가짜 꽃을 둘러 곤충을 유인하는 백당나무꽃을 통해 세상의 모든 중심은 변방의 묵묵히 자기 역할을 하는 희생으로 빛이 난다는 나무의 욕망과 진화의 몸부림에서 세상의 이치를 깨달아간다.

나무의 학문적인 분류와 계통도로 식물학적 지식도 얻어가지만 이름의 유래와 어원을 통해 나무와 인간과의 오랜 관계를 알게 되며 꽃피는 시기, 꽃과 잎이 나오는 시기, 열매 맺는 시기와 방법이 저마다 다르며 각각의 속도와 방법대로 열심히 살아가는 나무를 통해 열매를 맺는 시기가 일반 참나무의 두 배나 걸리는 상수리나무처럼 느린 아이의 성장을 기다려야 함을 배운다.

인상깊은 글

우리는 해마다 봄이 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만 성장을 멈춘 겨울나무에서 새순이 돋고 꽃이 피는 일은 매번 부활처럼 다가온다 106

곤충과 새들 그리고 땅속 균류까지 함께 살아가는 생태계 전체를 이해해야 한다. 층층나무 한 그루가 작은 우주다 121

반복되는 자연의 부활을 통해 유한한 삶에 역동적인 리듬을 부여하며 때로 흔들리더라도 삶을 지속시키며 나무 한그루와 관계한 생태의 촘촘한 그물망을 통해 우리는 우주의 신비를 발견하며 경이감을 느낀다.

다른 생명에 빚이 없다면 그것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 361쪽 인용

 

모래땅 남이섬을 울창한 나무의 섬으로 일군 나무를 심은 사람들, 속도를 줄이고 리듬있는 작은 탐험으로 인도한 저자에게. 소우주를 품은 각각의 나무 공동체에게 빚이 있음에 감사하며 기꺼이 다른 생명의 빚이 되고자 한다.

감상

조상들처럼 절기에 따라 직접 장을 담그거나 재철의 식재료를 직접 키우지 않기에 절기에 둔감한데 한국의 12달의 전통적인 절기에 따른 계절적 감각을 섬세하게 담아내며 관광객으로 잠시 스쳐 지나가는 독자들은 절대 알 수 없는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살아가는 숲의 생태계와 남이섬으로 한 달에 한 번 낯선 나무들을 찾아가는 저자의 탐험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소소한 생활의 발견으로 연장되는 순간의 기적을 잔잔하고 그윽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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