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무게 책꿈 2
사라 크로산 지음, 신예용 옮김 / 가람어린이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물의무게

사라 크로산 지음

 

매장이 운문시처럼 별도의 제목이 달려있고 간결하고 짧은 호흡의 문장에서 리듬이 발견된다. 코번트리 폴란드에 사는 엄마와 카시엔카를 두고 메모 한 장 달랑 남기고 영국으로 훌쩍 떠난 아빠를 찾아 폴란드에서 영국으로 이민 온 엄마와 카시엔카가 겪는 이야기를 담아낸 책이다.

비교적 안정적인 삶을 등지고 낯선 영국땅에서 좁고 허름한 스튜디오에서 임시 거주지를 마련하여 불편한 생활을 시작한다.  화자이자 주인공인 카시엔카가 학교에서 따돌림과 괴롭힘을 당하지만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는다. 심지어 선생님조차 외면한다. 그러나 이웃 사촌인 케냐출신 이민자 카로노의 낙천성과 같은 이미자로서의 동질감, 가족의 문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대화의 상대로 숨구멍을 어느 정도 틔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 수영장에 만난 남자아이 윌리엄의 관심과 애정은 카시엔카가 자신의 문제를 제대로 바라보도록 용기를 주며 카시엔카는 엄마 몰래 수영시합을 준비하면서 수영에 몰입하고 수영하는 자신의 모습을 아름답게 여긴다.

나는 물의 언어에 능숙하다 물은 낯설고 위험하다. 여기 물속에서는 숨조차 제대로 쉬기 힘들다. 물속에 선 채 헤엄을 치는 건 긴장을 풀었을 때만 가능하다. 싸우려 들면 가라앉기 십상이다. 내 자신을 믿고 이곳과 내 몸을, 팔다리의 힘을 믿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침묵이 바로 이런 것이다. 물의 무게가 나를 가로지른다. 나를 온통 감싼다. 물속으로 잠겨 드는 안전한 침묵을 느낀다. 수영장 밖에서는 못생겨 보일 수도 있지만 물속에서 팔을 저을 때만큼은 나는 분명 아름답다. 224

책 제목인 물의 무게는 이 책에서 이 페이지 한 부분뿐이다. 왜 물의 무게일까? 궁금했는데

낯선 물속에서 훈련을 통해 물의 언어에 익숙해지며 자신의 힘으로 똑바로 설 때 행복감을 느끼듯 일상에서도 회피하거나 기만하지 않고 똑바로 서려는 소녀의 용기를 보았다.

피부가 노랗거나 검은 사람들이 유럽에서 은근히 혹은 노골적으로 받는 차별들을 들어봤다. 그러나 유럽 백인보다 더 하얀 독일 위쪽에 있는 폴란드인이 더 하얗기 때문에 눈에 띄고 인종차별을 받는 장면들에 놀랐다. 병원 청소부로 일하는 엄마의 어색한 영어식 발음을 싫어하는 환자들을 위해 엄마는 일터에서 침묵을 강요당한다. 영악한 클레어의 괴롭힘, 그리고 방조하는 동정심 클럽의 학급 아이들과 괜찮냐고 물어봐 주지 않는 모른척하는 선생님. 자신의 슬픔에 빠져 딸의 상황을 제대로 도와주지 못하는 엄마.

이민자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날선 시선들, 친구들의 정서적 학대와 폭력, 부모의 이혼, 사춘기 소녀의 첫사랑 같은 진부한 소재들을 진부하지 않게 담담한 문체로 그려내서 카시엔카의 고통이 더 크게 와 닿았다. 문장들은 짧고 간결하지만 독자인 내게 강렬하게 카시엔카와 엄마가 겪는 고통을 세밀하게 보여준다.

나는 엄마를 다시 온전하게 만들 수 없다. 아빠가 엄마의 조각을 빼앗아 가 이제 엄마의 한 모서리는 뾰족해졌다. 부서졌다. 본문 206

새 가정을 꾸린 아빠와 더 이상 합칠 수 없는 현실적 상황을 인식한 엄마의 고통 그리고 그것을 지켜보는 카시엔카의 고통이 저 짧은 몇 개의 문장에 응축돼있다. 저자의 글은 간결하여 긴 서사직접적인 감정의 언어로 말하지 않는다. 복잡하고 긴 호흡의 서사를 과감하게 생략하고 은밀한 성장기 소녀의 시를 훔쳐보는 기분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책을 여러 번 읽지 않는데 이 책은 시처럼 맘에 드는 한 페이지를 여러 번 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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