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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적 금융 사회 - 누가 우리를 빚지게 하는가
제윤경.이헌욱 지음 / 부키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나는 기억한다. 부동산 거품이 한창인
2005년도에 분양가 보다 높은 주택대출을 해서 투자하라는 부동산업자의 말에 우리 부부는 너무 놀랐다. 은행에서 집값의 120%를 대출해주는데 왜 자기 돈으로 집을
사냐는 업자의 말 속엔 빚을 아무렇지 않게 권유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
집을 살 때 자기 자본은 주택의 50%도 못 미치고 대출해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신용카드 무이자 할부도 껄끄럽고 부담스러워서 할부를 절대로 하지 않기에 내 집을 살 때 무리하게 대출받을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다. 그러나 내 지갑에는 여러 은행에서 권유해서 만든 카드로 넘쳐나고
체크나 직불카드보다는 신용카드를 많이 쓰면 각종 포인트와 할인을 해주며 빚을 만들게 하는 이상한 사회에 살고
있다. 미국보다도 신용카드를 많이 쓰는 이상한 사회.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부채라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얼음을 걸어가고 있는 우리의 미래는 불안하고 암울하다.
그런데도 올해 정부는 직장도 없는 20대들에게 돈을 빌려서 집을 사라며 사실상 DTI 규제를 풀어버리면서 거품과 가계부채를 늘리는 정책을 내놨다.
[약탈적
금융사회]는 정부와 금융기관이 어떻게 사람들을 빚의 늪에 빠지게 하고 개인에게만 책임을 부여하는지
상세하게 고발하고 있다.
저축하고 빚이 없는 사람보다도 대출을 많이 이용한 사람의 신용도가 높은 이상한 사회.
성실하게 납부해도 불가피하게 연체하면 집을 빼앗은 약탈적인 기업.
이 책에서 내 상식을 점검했던 부분은 악천후 기후에 등산로를 차단하여 산행통제를 통해 인간의 자율권을 침범하면서도 인명을
보호하는 국가가 금융에서는 한없이 무기력하게 수수방관하며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부분이다.
약탈적이고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대부업체들의 무리한 채권추심에 대해 의문조차 하지 못하고 빌리면 당연히 갚아야 한다는 통념에
세뇌되어서 나 역시 무리하게 돈을 빌려 쓴 사람들에 대한 도덕적인 지탄을 함께 일삼았다.
우리는 빚을 무리하게 빌려 갚지 못하면 개인적인 책임으로 돌리고 그 사람을 비난하는데 익숙하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너무도 쉽게 대출을 권하는 금융회사와 규제 없는 정부는
책임이 없는 걸까? 개인의 책임이 더 큰 걸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언론과 금융회사의 광고로 우리의 의식을 어떻게 조작하고 통제하는지 내가 아무리 합리적인 소비를 하고
있다고 자부하더라도 그 그물망에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깨닫게 된다.
채무자 스스로 죄책감과 과도한 채권추심에 시달리고 있는데 채무 당사자들의 연대체 결성을 촉구하는 방안은 상당히 어렵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부실화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스 대출을 과감하게 정리하고 건설사의 구조 조정도 진행해야 한다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정리하자는 건지 솔직히 의문이다.
경기가 침체되고 이직하기도 어려운 현실조건에서 건설사 구조조정은 실업자를 양산할 수 있을 텐데 어떻게 정리하자고 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선진국의 사례를 통해 불법 고리대와 대부업체의 연30퍼센트의 고이자 제한법의
문제점을 자세하게 다루며 평범한 사람이 어떻게 빚에 의해 한 순간에 몰락하게 되는지 안타까운 사례들도 함께 보여준다.
빚을 작정하고 떼먹으려는 사람보다는 실직이나 질병에 의해 빚을 갚지 못하고 가혹한 채권자의 채권추심으로 현대판 노예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 그들은 내 이웃이고 나의 가족일 수도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신용소비자들을 보호하고 부당한 대출금리에 저항하며 현실적인 파산제도와 실패해도 일어서서 제기할 수 있는 개인회생제도가
자리잡을 수 있도록 연대해야 함을 잘 보여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