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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강 나라에서 현기증 도시까지 ㅣ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5
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공나리 옮김 / 솔출판사 / 200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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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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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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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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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수아 플라스 글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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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시리즈 다섯째 시리즈 [붉은강 나라에서 현기증까지] 책은 이전 시리즈의 다음 알파벳 인 R~V로 시작되는 각 나라의 지형과 그 나라의 알파벳 모양을 따르고 있는 나라들의 기행을 보여주고 있고 전체
오르배 섬 사람들이 만든 지도책 시리즈의 후반부로 접어들었음을 알파벳으로 가늠해본다.
[붉은 강 나라]”조아오”라는 노예사냥꾼을 통해 서구 문명인들의 가혹하고 잔인함을 보여준다. 실제
유럽인들은 아프리카나 아메리카의 원주민들을 노예로 착취하여 부를 얻어왔다.
높은 성벽과 중심가를 통해
철저하게 분리하고 구분 짓는 백인들과 달리 성벽도 중심가도 없는 평화로운 붉은 강 나라의 모습은 중심과 주변부 같은 구분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동물과 대화하는 “왕 중의 왕”은 사라진 옛 글들을 읽고 쓸 줄 아는 학회의 우두머리이기도
하다.
자연과 인간을 구분 짓고 자연을
정복해야 하는 존재로 여기는 문명인들이 동물과 대화하는 왕중의 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다양한 인간의 특성을 이해할
수 있는 수많은 언어들이 사멸했고 사멸해 가는 현실과 달리 “왕중의 왕”은 옛 언어를
기억하는 존재이다. 인간과 자연을 더 많이 이해할 수 있는 존재인 것이다.
이 짧은 이야기에는 딱히 서양문명의
오만을 비판하려는 의도들은 책 어디에도 볼 수 없지만 글의 문맥들의 흔적에는 문명인인 서양인들의 야만성과 잔인함이 왕중의 왕과 붉은 강 나라의
문화 풍습을 통해 대비가 된다.
잔인한 노예상인 “조아오”가 우연히 붉은 강 나라로 들어가 그들의 풍습과 문화에 동화되고
상처투성이 노예들의 악몽을 통해 죄의식에 시달리기도 한다. 왕중의 왕은 자신의 주민들을 노예로 팔았던
“조아오”를 처벌하지도 않고 말씀부 장관인 아보헤 바아와
우정을 쌓기도 한다.
호리병에 자신이 경험했던 일들을
다 쏟아내면 자신이 한 말과 기억을 망각하는 “말의 장례식”이란
의식이 인상적이다.
[셀바섬]은 거대한 한 그루의
나무로 이루어진 섬이다. 인류의 문명이 닿지 않는 자연의 원시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아마존의 열대림이
떠오른다.
셀바섬으로 성년식을 치르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사람의 수액을 빨아먹는 무시무시한 나무 뱀파이어인 덤불인간과 하늘을 나는
호랑이의 사냥으로 용맹성을 검증하는 성인식을 통해 성인으로 입문하는 셀바섬의 풍습을 볼 수 있다.
[현기증도시]는 V자형으로 신분이 낮고 가난한 아래층도시와 부자들이 사는 위층의 도시로 이루어진 빌딩숲의 도시나라다. 빽빽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고 사람들도 북적거려 지도만 봐도 현기증이 생기려고 한다. 아래층 도시사람들은 위층 도시에서 조각이나 파편이 떨어질 때 머리를 보호하기 터번을 쓴다.
도시건물을 수리하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날아다니는 석공”의 모습은 기괴하고 특이하다. 길게 땋은 머리 타래 앞에는 갈고리가 세 개 혹은 4개가 달려있고
땋은 머리는 밧줄처럼 휘둘러 꽂고자 하는 벽의 위치에 갈고리를 정확히 꽂고 자유롭게 공중을 이동하면서도 현기증을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날아다니는 석공들의 움직임은 중국 기예단이 연상된다.
아래층 도시 사람들을 현혹하고
세상의 종말을 부르짖는 “반짝반짝 동맹이 종파”의 도시 붕괴를
막기 위해 날아다니는 석공 이즈카다르의 모험이 시작된다.
도시전체를 지탱하는 중심 돌인
“반짝반짝 돌맹이”란 표현도 재미있고 돌 하나로 도시가 사라진다는
이야기는 환타지 동화처럼 호기심을 자아내게 한다.
세계 곳곳의 신화와 전설에서
채집하여 모은 이야기와 작가의 상상력이 재현된 그림의 정교함에 놀라게 된다.
글이 먼저 나와서 각 나라의
부족들의 모습을 묘사하고 마지막 장에 부족들의 모습이나 풍습을 보여주기 때문에 내가 상상한 모습과 그림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지 맞춰보는 즐거움도
준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나라와
지도지만 각 나라의 신화와 전설들이 그의 작품에 녹아있다. 지금은 사멸한 원주민들의 삶이 그의 작품
어느 한 귀퉁이를 장식하고 있다.
서구인들이 채집한 자료들은
어디서 어떻게 얻은 것일까? 원정과 탐험이라는 말로 그럴듯하게 포장되었지만 실제로는 침략과 수탈은 아닐까? 서구인들의 침략의 역사로 우리들은 환상적인 이야기를 만나게 되었지만 다양한 원주민들의 삶들이 파괴되고 사라지게
한 원인이라는 아이러니로 씁쓸한 마음이 든다.
이렇게 기괴하고 독특한 풍습의
이야기로 나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도 좋지만 서구식으로 동화되지 않고 그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면 더 많은 풍습과 더 많은 언어들이 존재했을 것이며
인간과 자연을 이해하는 연결고리들이 많았을 텐데 아쉬움과 슬픔이 밀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