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탕색은 산뜻한 노란색이고 분홍색 얼굴과 초록색의 갈기 사이에 작은 크기로 약간 튀어나온 사파리 동물들의 표지가 인상적이다.
머리말과 작품해설을 보지 않고 궁금증을 간직한 채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 하나만 가지고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책은 소제목 없이 1부와 2부로 나누어져 있다. 1부는 야생동물공원 감독관의 딸인 파트리샤라는 아이의 기묘한 만남으로 시작으로 아프리카 케냐의 야생동물원 감독관 블리트와 그의 가족들의 모습들의 성격들을 조금씩 보여준다. 정확히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하는지 실체가 파악되지 않고 앞으로 전개될 흥미로운 사건들이 곧 펼쳐질 것 같은 기대감을 가져다 준다.
1부에선 이 책의 관찰자이자 여행자인 화자를 통해 나타나는 이들 가족들 사이의 불편한 기류와 아버지와 딸의 의미심장한 시선들에 관한 내용이 파악되지 않고 희미한 안개처럼 모호하다. 글의 호흡이 길지 않으면서도 내가 아프리카의 동물들을 보고 있는 것 마냥 세밀하고 농담 짙게 동물들과 대 초원의 경관을 표현해내고 있다. 1부의 전개가 빠르지 않음에도 글이 지루하지 않고 아름다운 글에 도취된다.
사자의 딸, 마녀의 딸이라고 원주민들 사이에 소문이 도는 파트리샤가 정글의 왕 사자와 대화하고 사자 곁에 머문다는 사실을 안 화자는 그 사실에 매혹되어 공원에 더 머물게 된다.
2부에선 화자가 파트리샤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자 ‘킹’과 조우하고 직접 만나게 된다.
솔직히 눈앞에 사자가 있다면 능숙한 조련사가 있어서 가까이 간다거나 만질 수 없는데 눈앞에 난폭하고 거친 야수인 ‘사자’가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두려움 이상의 공포감이 느껴진다.
파트리샤가 동물과 대화하는 특별한 능력이 있어도 원주민도 두려워하는 맹수를 어떻게 애완동물 다루듯 할까 궁금했는데 어미한테 버려져 죽어가는 ‘킹’을 와캄바족 후손인 사냥꾼 키오로가 파트리샤에게 건네주어 정성 들여 키운, 사람에게 길들여진 사자이다. 어린 새끼 사자에서 어른 사자로 자란 ‘킹’에 대한 파트리샤의 엄마 시빌의 두려움과 반대로 ‘킹’은 야생으로 보내지지만 파트리샤와 지속적인 교감을 이루고 있다. 그 둘 사이는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강한 유대와 친밀감으로 강하게 연결되어있다.
2부에선 전개가 대단히 빠르고 역동적이며 여러 모험들이 펼쳐진다.
저자가 일반 여행객들의 접근금지구역인 가시덤불 숲을 헤치고 야생 사자 ‘킹’과 친구하기, 랜드로버로 물소의 공격을 피하기 등의 모험은 손에 땀이 날 정도의 긴장감과 스릴감을 안겨준다.
파트리샤와 파트리샤 가족의 일화가 한 축으로 전개되고 다른 한 축은 마사이 부족의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삶이 전개된다.
자연의 원시성을 간직한 채 동물과 사람들이 함께 공존하는 아프리카의 부족 중에 백인의 문명과 규칙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신들의 전통성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마사이족은 실로 경이롭다.
P 169
“마사이족은 봇짐 하나도 궤짝 하나도 없이, 바람막이용 천막 하나 없이. 음식을 준비하기 위한 취사도구 하나 없이, 짐 보따리 하나 없이, 구속 받는 것 하나 없이 이동했다.”
“보잘것없는 가축들이 유일한 재산인 마사이족에게는 가난이 남기는 어떤 전통적인 흔적들인 두려움이나 배고픔, 슬픔 따위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작가의 글에서 마사이족의 예찬이 느껴진다. 자연의 동물을 사랑하는 블리크 조차 감독관으로서 보호하는 동물에 조차 “나의 사자”라는 소유에 대한 강한 집착을 보이는데 최소한의 것만 소유하는 마사이족의 삶은
너무도 많은 것을 무겁게 소유한 나의 삶에 조용한 경종을 울린다.
도구도 없이 그들의 집인 마니에타를 쇠똥으로 짓는 제작과정도 흥미롭다. 동물의 부산물인 쇠똥을 개어 집을 짓는 그들만의 문화양식은 신선하고 놀라왔다. 마사이족이 잠시 머무는 마니에타는 쉽게 허물어져 다시 자연의 흙으로 돌아가 순환된다. 그들은 화려한 도구 없이도 주어진 자연물을 이용해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들이다.
숨이 붙어있는 죽어가는 마사이족의 늙은 족장을 들판에 아무렇게 방치하고 동물의 밥이 되도록 방치하는 장례문화는 형식을 중시하는 현대인들에겐 경악스럽지만 ‘파트리샤’는 그들의 관점에서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인다.
대도시의 교육과 문명을 거부하고 자유롭게 자연에서 ‘킹’과 영원히 살고 싶어하는 ‘파트리샤’와 파트리샤의 마음을 이해하는 아빠 블리크, 자식의 교육과 미래를 걱정하는 엄마 시빌과의 갈등이 긴장감을 유발하고 칼과 창으로 사자를 잡는 전통을 갖고 있는 마사이 부족의 전사들의 풍습은 ‘파트리샤’의 행복한 유년시절이 곧 끝나감을 알리는 복선이 되기도 한다.
마사이 부족의 젊은 전사 ‘오리우냐’가 ‘파트리샤’에게 청혼하면서 오리우냐는 오랜 전통대로 사자 ‘킹’과 싸우는 과정 속에 파트리샤가 사랑하는 ‘킹’이 죽고 극도의 슬픔을 간직한 파트리샤는 엄마의 뜻대로 대도시의 기숙학교로 돌아가는 걸로 끝을 맺는다. 파트리샤의 장난스런 놀이는 마사이족 전사의 중요한 전통의식으로 확대되어 사람을 공격하는 사자 ‘킹’을 아빠 블리크가 총으로 쏘게 된다.
“자신의 의무는 가장 소중한 동물보다 가장 천한 인간을 보호하는데 있다.”는 블리크의 말속에 고통스럽게 총을 쏠 수 밖에 없는 그의 내면이 들어난다.
파트리샤의 행복한 유년생활은 비극으로 끝마치는데 앞으로 파트리샤와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될까?
이전처럼 다시 행복할 수 있을까? 강한 여운을 남기고 끝나는 마지막 페이지를 아쉬움을 남긴 채 덮었다.
문명화된 눈이 아닌 자연 속에 살아가는 원주민들의 삶을 색안경 없이 순수하게 수용하는 신비로운 아이 파트리샤의 자연과 동물의 사랑이 잘 느껴지는 아름답고 매력적인 소설이다.
[더 라이온]은 자연에 대한 경이와 애정을 최고로 담아낸 저자의 헌사로 만들어진 책이라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