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은 그의 혀끝에서 시작됐다 - 심리학자와 언어전문가가 알기 쉽게 풀어낸 말의 심리
박소진 지음 / 학지사 / 2012년 2월
평점 :
절판


학지사

2012.03.14

 

비극은 그의 혀끝에서 시작됐다

 

 

결혼 후 시댁과의 갈등이 쌓여 남편과 정말 사소한 행동과 말로 치고받고 싸운 적이 있었다. 싸운 동기는 실로 어처구니없는 사소함이지만 누적된 갈등에 의한 불똥은 엉뚱한 곳에 불붙어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갔다. 조롱과 빈정으로 시작된 말은 거친 욕설로 고점을 찍고 결국 치구 받는 난투극으로 치달았다. 물리적인 힘에 밀린 나는 남편에게 남긴 상처보다 훨씬 큰 상처를 전리품으로 얻고 KO됐다. 그때는 남편한테 제대로 때려보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힘에 눌렸다는 사실이 그렇게 분하고 억울해서 싸움이 끝났을 때는 두 번 다시 물리적인 행동을 하지 못하도록 각서도 받고 누구 상처가 더 심하네, 어쩌네 하면서 상처의 크기를 재는 해프닝으로 마무리됐지만 당시를 반추해보면 참으로 심각했고 비참했다. 언어도 폭력이 될 수 있음은 조롱과 비난이 섞인 욕설은 상대를 자극하여 물리적인 폭력까지 불러일으키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거친 욕설은 몸싸움을 예고한다.

층간소음에 의한 이웃 간의 언쟁이 살인을 부르기도 하지 않는가?

그러나 다혈질적인 몇 사람을 예외로 두면 말싸움 이전에 누적된 다른 갈등이 이미 내재하고 있었다. 인간사이의 비극은 단순히 잘못 나온 말 이전에 어떤 심리상태가 존재하는 것이다.

[비극은 그의 혀끝에서 시작됐다]라는 비장한 글 제목의 묵직함에 이끌려 보게 된 이 책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말로 인한 비극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또한 우리에게 이렇게 중요한 말을 심리학자와 언어전문가가 어떻게 풀었을지 몹시 궁금했고 사람들의 말 이면의 심리를 알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한 것과 책 내용은 많이 달랐다. 책은 제목에서 풍기는 무겁고 날카로운 느낌과 달리 가벼운 심리에세이 수준이다.

소소한 자신의 경험에 저자의 심리학적 지식이 결합되었지만 그 수준은 깊지가 않고 살짝 건들이면서 주관적인 감성을 적어놓는다. 내면적인 통찰보다는 심리학과 언어이론을 쉽게 풀어 쓴 글 정도 되겠다.

저자가 평소에 생각하고 강의했던 글을 책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거꾸로 책 집필을 제의받아서 고민 끝에 20~30대의 설문 등을 토대로 만들어진 책이라 깊이감에 있어서 한계가 보인다.

그러나 영화와 책과 상담 등의 사례를 통해 여러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언어의 심리적 동기들과 심리학적 방어기제의 사례를 배울 수 있다.

내가 어떤 페르소나(가면)를 사용하고 있고 어떤 방어기제를 사용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겠다.

하지만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

챕터2 진실 혹은 거짓의 소제목 공부하나도 안 했어요에서는 소제목과 내용이 전혀 상관이 없다.

“후쿠시마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능 물질이 한국에 상륙한다.”는 문자 메시지를 허위사실 유포로 근거 없이 결론을 내린다. 그 당시에 국내언론에서 방사능에 대한 관련 내용은 제대로제공하지 않았고 편서풍의 예만 들면서 문제없다는 기상청의 보도만이 있었다. 반면 독일과 노르웨이에선 방사능 시뮬레이션을 통해 한반도에 방사능이 미치는 정도를 데이터로 제공하고 있었고 그 시뮬레이션에선 특정 날짜에 한반도를 덮쳤던 데이터기록이 존재한다. 방송에서 보도된 자료만으로 허위사실 운운은 적절한 예도 아니고 불쾌하기만 하다. 현재 일본의 방사능유출은 계속되고 있고 바다사이를 두고 있는 옆 나라인데 국내뉴스보도 하나로 허위사실이라니 이런 예민한 사안을 경박하게 다룬듯하여 씁쓸하다.

챕터3분석과 공감에선 남녀의 성차를 융의 심리학적인 이론으로 풀어쓰고 있지만 조금 식상하다

트렌스젠더 등의 다양한 성적 정체성을 갖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성차에 따른 사회적 역할의 경계도 어느 정도 해체된 시대를 살고 있기에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안간다.

또한 저자의 어두운 공간인식의 개별적인 사례를 “여성”이라는 성으로 일반화하는 오류도 범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책에서 나름 건진 내용들이 있다.

아름답고 육감적이었던 섹시아이콘의 대명사 먼로의 가족사와 그녀의 삶을 통해 그녀가 왜 그렇게 어린나이에 결혼할 수 밖에 없었는지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었다. 먼로의 죽기 직전의 표정을 통해 저자는 기본적인 ‘희로애락’을 적절히 표현하고 사는 삶이 가장 건강한 삶이라고 말하고 있다.

저자의 이 말만큼은 의미있게 다가왔다.

희로애락을 적절히 표현하고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다음과 같이 심리학자로서 조언하고 있다.

‘자신의 감정을 적절히 표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감정들을 수용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에 대해 느끼고 생각할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후에 타인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을 정확하게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참 어렵지만 성숙하고 건강한 인간관계를  위해 꼭 필요한 조언이 아닐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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