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 치매, 그 사라지는 마음에 관하여
린 캐스틸 하퍼 지음, 신동숙 옮김 / 현대지성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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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같은 사람입니다

린 캐스틸 하퍼 지음

기억력은 인간 정체성의 주춧돌이다. 이 능력은 인간이 학습하고 자신의 역사를 기록하고 삶을 이어 가면서 얼마나 많은 진척을 이루었는지 가늠할 때 쓰는 인간 고유의 수단이기도 하다. 기억이 없다면 우리는 업무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없을 뿐 아니라 양치를 할 수도 없고 집까지 운전해 오지도, 삶속에서 알고 지낸 사람들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우리가 기억을 소중히 여기는 이유이자 치매나 뇌안개에 빠져서 기억을 잃을 때 슬퍼하는 이유다.  214쪽  <미라클 브레인 푸드>

스스로와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 물건들과 단절된 사람을 이전과 같은 사람이고 부를 수 있을까?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은 치매와 암일 것이다. 나이 들어 기억력이 둔화되는 것과 치매는 확연히 다르다. 물건을 어디다 두었는지, 물건을 구입하고 가져오지 않는 건망증과 달리 가족도 자신도 잃어 버린다. 솔직히 치매에 대한 공포가 있다. 개인적으론 나 자신을 잃어버려 나체로 돌아다니거나 집안을 뒤죽박죽 어지르거나 가스불을 키고 잊어 가스가 새거나 심지어 화재를 일으키고 밥을 먹고도 배고프다며 누군가를 구박하거나 욕하는 단계까지 생명을 연장하고 싶지는 않다. 치매가 나이듦의 한 과정일까? 사실 치매는 치매에 걸린 당사자보다는 이전의 모습을 기억하는 가족들이 수용하기 어렵지 않을까 생각된다.

치매를 정신의 부재, 죽음에 앞선 죽음이라고 정의하는데 이런 정의는 사회에 만연한 학대와 방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자신이 돌보는 사랑하는 가족이 이미 떠나버렸다고 생각해서 존재하지 않는 사람처럼 대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이미 사망당한 취급을 받는 치매인들에 대한 사회적 시선으로 그들은 사회적으로 고립되어 세상에서 배제된다. 그러나 저자는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치매인과의 다양한 만남을 통해 그들에게 씌워진 사회적인 망각에 관한 은유와 담론들을 내밀하게 살피며 치매인은 각자의 독특한 존재 방식을 갖춘 개인들임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에게 공포로 다가오는 심각한 질병인 치매는 치매가 의사에게 진단받을 수 있는 병이 되기 전엔 지금처럼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되기 전이었다.

19세기 후반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의료사업이 발전할수록 나이가 들면 자연히 생기는 증상들에 경멸적인 의미를 부여하며 즉각적이고 명백한 용도에만 관심을 집중하며 그 가지 기준을 화폐로 평가하는 경제는 사회적 효용성이 있는 시기이 이전이나 이후를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소외시킨다.

직접적이며 확실한 방식으로 경제활동에 기여하지 않는 모든 유기체는 위기에 처해있다  85쪽

세상이 어떤 가치도 제공할 필요가 없다고 쉽게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을 포용할 수 있어야만 비로소 내가 한 인간으로서 성숙할 수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15쪽

치매가 있는 노인들을 짐으로 생각하는 사회에 대해 저항까지 생각이 미치지는 않지만 쇠약해 지는 내부모와 시부모, 그리고 늙어가는 나의 정신 또한 쇠락해 가는 과정을 질병이 아닌 그것도 삶의 한 과정임을 생각하게 하며 나에게도 차별이나 배제의 시각들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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