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하벤 길마 - 하버드 로스쿨을 정복한 최초의 중복장애인
하벤 길마 지음, 윤희기 옮김 / 알파미디어 / 2020년 7월
평점 :
우리는 생애 한 시기에 장애인이 되기도 한다.
사고를 당하거나 나이가 들어 신체기능이 퇴화되었을 때, 어린 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등등이다.
특히 어린 자녀를 유모차에 태우고 버스와 지하철을 이동할 때 진짜 불편했던 기억이 남는다.
그리고 몇 년 후 저상버스가 도입되었을 때 어린 아이를 함께 태우거나 유모차를 이용할 때 감동도 받았다. 한 편으로 저상버스가 없을 때 불만만 토로하고 복지부나 시에 저상 버스 도입에 대해 건의해볼 생각을 못했을까? 저상버스는 장애인뿐 아니라 다리가 불편한 노인, 임산부, 어린 아이들처럼 모두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교통수단이다.
시각과 청각 모두 점차 기능을 상실한 중복장애인 하벤 길마의 이야기다.
에티오피아에 독립하려고 30년동안 싸운 에리트레아 출신인 엄마는 살던 곳을 떠나 수단에 난민생활을 했었으며 에티오피아를 떠나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홀로 공부하면서 시행착오를 했던 아버지를 닮은 하벤길마는 가족의 지지와 사랑속에서 온실화초처럼 보호만 받지 않고 다른 부모와 달리 많은 자유를 허락하여 비교적 자유롭고 유복한 과정에서 성장한다.
부모를 설득해 말리에 학교를 세우는 자원봉사를 가거나 집에서 멀리 떨어져 대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의 독립, 어려움 등을 일화를 통해서 그려낸다. 일상적인 삶의 과정은 하벤 길마를 장애인이란 평면적이고 납작하게 일차원으로 묘사하지 않고 우리들이 어려움의 난관 앞에서 고민하고 해결하려고 분투하듯 분투해온 공동체의 한 사람의 여정임을 보여준다.
위계적 억압체계를 생각해보게 하다
눈 먼 세상에서 외눈박이 사람이 자동으로 왕노릇하는 세상처럼 시력이 더 좋은 사람에게 더 많은 특혜가 돌아가는 체계인 시력의 위계가 시각장애인 사회를 분열시키고 억압하는 데 활용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고 시각장애인 교육 프로그램에서 그런 억압체계를 잘 깨닫고 거부하고 저항하도록 가르친다고 한다. 수준 높은 교육이 아닌가 생각된다. 내가 학교에서 시민으로서 그런 힘에 저항하는 교육을 받아본 기억이 없다.
시력, 청력, 신체가 자유로운 사람들에 맞춰진 세상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 어떤 위계적 힘을 행사하는지 미처 깨닫지 못한 부분을 건드린다.
조금 뜬금없지만 최근 이슈가 되어 세상을 시끄럽게 한 정의연사태가 떠오른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인권을 위해 싸운다는 정의연의 문제점엔 그런 위계적 힘들이 작용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활동가들의 ‘선의와 정의’가 ‘위계’로 변질된 지점은 대체 무엇일까? 할머니를 피해자로 고통받는 사람으로 돋보이게 하고 강조하면서 모금하고 활동했던 활동가 대 피해 생존자의 구별이 위계를 영속화한 것은 아닐는지…… 할머니 역시 피해 생존자이면서 활동가였지만 정의연 활동가와 철저하게 구별되어진 측면이 부각된 사건이었다고 생각된다.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장애 이야기 필요성
맨 뒷장에 장애를 지닌 사람들을 위한 글과 핸디캡을 극복한 성공한 장애인들이 장애인들의 실질적인 삶을 대표할 수 없음을 상기시키며 가장 큰 장벽은 사람이 아닌 환경이며 교육과 취업과 사회 통합의 기회를 확대를 통한 실제적인 지원을 통해 장애인을 소외시키지 않는데 초점을 맞춘다. 사회에서 장애인들에게 상처를 주고 소외시키는 표현이나 문제점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