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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말을 쏘았다
호레이스 맥코이 지음, 송예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0년 6월
평점 :
1930년의 대공황은 일자리가 없어 굶주린 가난한 사람들이 돈을 벌 수만 있다면 생존하기 위해 모든지 할 수 있는 사람들로 넘쳐났고 그런 사람들의 심리를 알고 돈을 벌기 위해 주최측은 댄스 마라톤이란 서바이벌 대회를 연다.
폭 9미터, 길이 60미터의 댄스플로에서 144쌍의 남녀가 1시간 50분동안 춤추고 10분 동안 쉬는 것을 반복하는 대회 규칙이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한 커플만이 우승 상금을 받을 수 있다.
춤추는 시간이 누적될수록 탈락자가 발생하고 남아있는 커플이 줄어든다.
경기에 참가하는 동안 공짜로 밥과 로고가 박힌 협찬 옷들이나 스폰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남녀가 한 쌍이 되어 추는 마라톤 댄스는 무릎이 땅에 닿거나 멈추면 안되며 사람들은 10분안에 밥도 먹고 얼굴도 씻고 화장실도 가고 쪽잠을 자는 극한의 경쟁시스템이라 댄스장 밖에는 간호사와 침대가 준비된다.
감독이 되고 싶은 주인공 로버트와 빈곤뿐 아니라 고모부의 성착취과 고모의 학대속에서 심성이 뒤틀리고 세상을 비관하여 죽기만을 희망하는 주인공 글로리아를 우연히 만나 커플로 참가하면서 참가자들의 댄스마라톤대회의 모습을 극사실주의로 그려내고 있다.
이 책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챕터의 제목은 주인공이 1급살인죄로 기소되어 진행되는 과정을보여주며 챕터의 내용은 댄스 마라톤대회의 누적시간과 커플수가 줄어드는 리얼리티 쇼의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가망없이 다친 말의 고통을 끝내기 위해 사람들은 말을 쏘잖아요, 안 그래요? 207쪽
인내심으로 견뎌야 하는 가망 없는 사람들이 살아가는 시대에 살인자는 누구일까?
부조리하고 위선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건 여간 불편하지 않다.
코로나가 방아쇠가 되어 경제가 더욱 악화되고 있지만 2020년는 글로벌경기침체와 세계경제에 대한 어려움에 대해 미리 예고되어 있었다. 지금의 상황은 1930년 경제공황 및 전시상태와 맞먹는다.
경제 대공황시절의 댄스 마라톤 대회 다큐멘터리 유튜브 짧은 영상을 책에서 소개하고 있어함께 보니 경악스럽다. 그 돈을 받기 위해 경기에 참가한 가난하고 절박한 사람들이 경쾌한 음악과 달리 지쳐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움직임이 느려지고 탈진직전의 상황에서의 춤과 그걸 관람하고 열광하는 사람들, 그리고 경기에서 낙오되지 않고 올라온 사람들에게 옷을 협찬해서 광고하는 기업들의 기묘한 참상을 매우 리얼하게 책에서 그려내고 있다.
그 잔혹한 댄스 마라톤 대회는 대공황시절이 지나도 계속 열렸으며 지금도 열리고 있다. 이번엔 소아HIV와 에이즈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기금마련 사회공헌 행사로 탈바꿈했으며 글로벌 기업인 CJ의 한식브랜드 비비고와 페이스북 같은 유명 기업체가 참가자들이 착용하는 티셔츠에 로고를 노출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댄스 마라톤 대회처럼 대공황의 처절하게 가난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근 10년동안 서바이벌 리얼리티쇼가 생겨나고 청중들이 열광한다.
인천국제공항 비정규직을 정규직 전환으로 공시생들과 일자리를 얻지 못하거나 준비하는 청년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경제가 수축된 사회에서 리얼리티 쇼에서 우승을 다투는 가수에게 열광하고 그들의 노래를 함께 흥얼거리며 그들의 재능과 인내에 감동하는 현대인들의 모습과 오버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