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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기억을 보라 - 비통한 시대에 살아남은 자, 엘리 위젤과 함께한 수업
엘리 위젤.아리엘 버거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0년 4월
평점 :
나의 기억을 보라
엘리 위젤 /아리엘 버거
그가 평생에 걸쳐 천작한 일 중 하나도 자신의 경험과 그 의미를 다음 세대에 전달하고 홀로코스트의 목격자로서 다른 사람들을 위한 또 다른 목격자가 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는 동시에 그런 경험의 전달이 가진 한계 또한 잘 알고 있었다. 295쪽
위대한 이야기는 살아 숨 쉽니다. 한자리에 멈춰 잇지 않고 계속 움직입니다. 심지어 숨소리까지 들릴 정도지요. 게다가 우리를 완전히 감싸 안습니다. 도덕적 진화는 자연적 선택이 아니라 이렇게 이야기를 통해서 정말로 진행됩니다. 298쪽
절망이 전염될 수 있다면 기억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갈망하는 미래에 대한 기억조차 전염될 수 있다. 그리고 목격자의 이야기를 경청함으로써 우리 모두 목격자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도 역시 목격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68쪽
홀로코스트로 가족과 마을, 마을주민들을 잃어버린 희생자이자 어린 소년들이 죽어가는 것을 본 목격자인 엘리 위젤이 신앙과 믿음을 저버릴 수 있는 환경에서도 경건파 유대인의 신실한 믿음과 신앙을 버리지 않고 개인사, 민족적 고통을 뛰어넘어 사람들이 죽어가는 현장을 찾아가서 호소하고 알리는 일을 멈추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 즉 그의 삶의 목적이기도 하다.
엘리 위젤이 경험과 기억을 전달하기 위해 배우고 가르침을 선택한 이유와 율법을 중시한 전통파 유대인의 믿음을 가진 엄마와 규율이나 율법보다 개인적 자유를 더 중시하는 아버지의 이질적인 교육으로 배움에 대한 혼란과 회의감을 가졌던 제자 아리엘 버거가 엘리 위제를 만나면서 그의 제자로서 그가 배웠던 강의 방식을 독자들이 직접적으로 강의를 듣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준다.
정동파 유대인으로서 믿음이 신실하지만 배움과 현실의 간극을 알고 있었기에 회의적이였던 아리엘 버거가 신앙과 배움 그리고 불안전한 개인의 약점을 받아들이고 통합해 가는 과정, 엘리 위젤이 믿음과 의심, 저항과 광기, 행동주의의 실천과 같은 주제들_평생을 천작해 왔던 자신의 실제적인 고민들을 어떻게 극복하며 배움과 삶에서 통합해왔는지 날실와 씨실처럼 이어져 하나의 문양을 직조하는 살아있는 이야기다.
감상
난 이 책을 다 읽고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 결정할 수가 없었다. 어떤 언어도 이 위대한 이야기들을 전달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경건파 유대인이란 신앙적 믿음이 강한 홀로코스트 당사자이자 목격자가 내게 전하는 이야기는 많은 떨림과 울림을 준다.
세월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광주 5.18, 제주 4.3, 위안부 할머니의 목소리와 이야기를 듣고 우리 모두가 목격자가 되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진다.
일본에 의해 성착취는 없었다. 돈을 벌기 위한 매춘부였다며 살인자들의 조작된 말과 글로 희미해진 진실을 퇴색시키려는 일본인들과 그들의 후원을 받는 지식인들, 할아버지와 부모가 일제식민지 때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동포들을 억압했던 기억을 부정하며 일제시대를 근대화로 미화하려고 역사교과서부터 바꾸려고 했던 뉴라이트 지식인들과 정치인들.
내 딸이 일본에 끌려 갔어도 일본을 용서할 것이라며 어르신들 일본을 용서하십시오라고 말한 엄마부대 주옥순 같은 사람들처럼 가해자를 대변하는 언어들과 정치행동을 뛰어넘는 방법들은 무엇인가?
잊지 말아야 하며 잊지 않기 위해서 배워야 하며 목격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하고 전달해서 그들의 아픔을 함께 하고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하는 개인적 책임감을 느낀다.
나는 한국사회에 비친 기독교인들, 사이비교들, 불교인들의 해악을 통해 종교에 냉소적이었다. 그런데! 경건파 엘리 위젤의 랍비 이야기나 구약성경의 이야기에 간간이 나오는 히브리어의 어원을 들으면서 무지에서 온 편견이었음을 배우게 된다.
실제 엘리 위젤에게 강의를 배운 학생 중 수습 목회자 한국인은 유대인들의 선민의식을 지적했는데 선택받은 민족이란 의미로 쓰이는 세굴라는 특별하지만 특권을 누리는 존재가 아니다면서 원래 의미를 들려준다. 내가 인상깊게 읽은 부분은 구약성경 히브리어의 어원들은 단어들이 상호 모순적이다. 말과 말이 서로 부딪히기 때문에 의문을 갖게 하고 탐색하게 한다.
성경은 유대인들의 뿌리이자 과거의 역사가 아닌 그들의 삶의 토대, 사유방식, 세대에게 전승하면서 이전 세대를 뛰어넘게 하는 가르침이다. 내게는 다른 나라 사람들의 이야기라면 그들은 자신의 이야기이며 자신의 현재와 미래의 방향성을 담고 있는 살아있는 이야기이다.
나는 엘리 위젤의 강의에 사용된 문학과 랍비 이야기, 구약성경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옛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고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