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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세상에서
가장
느린
달팽이의
속도로
김인선 글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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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음악 그리고 여자와 자연을 사랑했던
블로그 작가의 글모임이다. 이름있는 잡지사와 출판사에서 일했던 저자의 유일한 책이다. 글도 잘 쓰니 책 한 권은 있을 법 한데 이 책이 유일하다.
김인선이란 작가의 소개도 평범하지 않다. 신선처럼 세상에 초탈한 듯하면서도 지독한
곤궁함으로 친구에게 연탄불 땔 비용을 빌리러 갔다가 욕만 바가지로 들었을 때의 그 기분을 나는 잘 모른다.
학창시절을 다 아는 벗에게 갈 정도로 곤궁했다면 빌려줬음 좋았을 텐데 벗 역시 돈이 없었는지 빌려주지 않았다. 벗이 미웠다. 정말 힘들어서 왔을 텐데 훈계를 보태 매몰차게
돌려보냈으니…… 관련 없는 독자인 나보단 김인선 작가를 잘 아는 벗이니 더 후회할 것이다.
기묘하고 재미있는 이야기_ 그는 진짜
신선이었을까?
이야기가 일반 글과 많이 다르다. 어디까지 사실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상상의 산물일까?
첫 이야기부터 기묘하다. 저수지에 익사한 사람들을 진짜로 본 것처럼 묘사한다.
괴담수준의 이야기를 태연하게 쓰고 있다.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하는 저자의 심리가 묘하기도 하다.
이웃 여성들이 부엉이로 보이기도 해서 여성들의 인상착의를 부엉이로 묘사하기도 한다.
고향 산자락에서 칩거하며 텃밭을 일구는 생활이라
고즈넉하며 심심할 듯 한데 저자의 눈에 비친 풍경들과 사람들의 표정, 행동들에 대한 표현들이 정말
익살스럽다. 곤궁하여 자조하지만 비참하거나 추하지 않고 독자들에게 해학미로 되돌려 준다.
원한 삶은 아니지만 좌절하거나 우울해하지 않고
텃밭을 일구며 즐거움을 발견하며 글에 담는다.
얼마 안 되는 돈으로 꽃을 살 정도로 꽃을
좋아하는 저자가 든 꽃을 장터에서 만나는 여인들이 탐내는 듯한 묘사가 얼마나 구수하며 재미있는지 박장대소하게 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로 나눠서 계절별
주변의 자연을 소재로 저자의 소소한 일상과 자연에 대한 마음을 잘 담아내고 있다.
살아있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이
가득하다.
로드 킬 당해 죽은 고라니를 들고 와 묻어주려고
애쓰거나 저수지의 오리들을 걱정하는 마음, 아버지가 잡초라고 다 베어버린 과꽃을 잊지 못하는
마음, 옷 더미에 며칠 동안 갇힌 개구리를 구조해주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칠 생명들을
그러지 못한다. 쓸쓸하고 그날이 그날처럼비슷할 것만 같은 단조로운 일상의 풍경을 환상기담으로 만드는
문장을 접할 수 있다.
표지와 삽화가 시선을 끈 책!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초현실주의가 가득한
표지삽화가 먼저 눈에 띈 책이다. 표지만큼 저자의 글은 실재지만 실재하지 않는 듯 둥둥
떠있다.
감상
작가의 글을 군데 군데 펼쳐 읽으면 연암
박지원이 계속 떠오른다. 문장에도 연암의 일화가 있기는 하지만 풍류가 그렇다. 맨 뒷장 벗의 해설을 통해 박지원에게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실재는 헛것처럼 가볍고 헛것의 무게가 훨씬 무거운 그의 글들은
기묘하지만 자연과 동식물에 대한 그의 관심과 꽤 날카롭고 유머러스한 글들이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