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맛있는 시 - 외롭고 힘들고 배고픈 당신에게
정진아 엮음, 임상희 그림 / 나무생각 / 2019년 4월
평점 :
작년 홍사용문학관에서 시인과 함께 하는
에코산책을 했다. 산의 둘레길마다 시를 걸어두고 시인이 쓴 시를 시인이 직접 읽어주며 그 시의 의미를
소개하며 산책하는 여정으로 나태주 시인과 함민복 시인의 시를 직접 맛볼 수 있었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지만 직업을 ‘시인’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3년을 매일 써도 한 권에 7~8천원으로 판매되며 판매지수를 보니
다른 책보다 인기가 없었다. 배고픈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나태주 시인은 교사였기에 비교적 안정적이었다면 한민복 선생님은 탄탄한 직장을 그만두고 배고픈 시인이 되었다. 나태주 시인의 시적 표현이 참으로 예쁘고 정겹다면 한민복 선생님의 시는 선생님의 삶이 담담하게 흘렀으며
고달프지만 고달픔에서만 끝나지 않는 깊은 감정이 내게 스몄다. 새색시처럼 쑥쓰러워하시면서 말을
아끼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시인이 쓴 시가 만인이 함께 읽으면 더 이상 시 한 개가 아니라
만개며 의미도 만개가 된다고 말씀을 아끼시던 선생님의 시는 진한 맛이다.
중이염으로 고기를 먹으면 고름이 나오는 어머니가
가난한 아들의 여름나기를 염려하며 설렁탕을 먹자 청하고 소금을 많이 넣어 짜다며 국을 더 받아 아들에게 가득 붓는 모습이 생생하게 시로
표현된다.<눈물은 왜 짠가>-함민복
시인
너무나 짜서 맑아진, 너무 오래 달여서
서늘해진, 고통의 즙액만을 알아차리는 ? <어떤
항아리> 나희덕
애지중지 마음을 쓰고 지극정성을
다해야 간장은 제대로 맛이 든다. 맑아지고 서늘해지고 짠맛 속에 감칠맛과 단 맛이 깃든다 107쪽
서로 다른 시지만 지극정성의 마음이 느껴지면서
짠맛 이상의 ‘맛’이 느껴지는 시다.
엮은이의 시선으로 함께 읽어나가는 맛있는 시
라디오
<시 콘서트>의 방송 원고를 쓰면서 매일 아침 시를 읽으며 하루를 시작했다는
저자가 고른 시들은 상처받은 마음을 다독여 준다. 소재가 ‘음식’과 ‘맛’이 들어가는 ‘시’와
‘그림’이 어울어진 시들로 고통으로 배고픈 ‘허기’를 채워준다.
외로워서 밥을 많이 먹는다던 너에게
권태로우서 잠을 많이 잔다던 너에게
슬퍼서 많이 운다던 너에게
나는 쓴다.
궁지에 몰린 마음을 밥처럼 씹어라.
어차피 삶은 너가 소화해야 할 것이니까
<밥> 천양희
천양희님의 <밥>은 밥심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에게 용기를 북돋아준다.
엄재국의
<꽃밥>은 앙상하게 마른 할머니가 아궁이에 불지펴 밥짓는 모습을 꽃밥으로
담아낸다.
장작에 불붙는 형상을 ‘꽃’으로 표현하고 그 꽃으로 이팝꽃처럼 하얕게 끓어서 만개한 꽃밥으
피어나는 생명을 이어주는 ‘밥’이 되어가는 과정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냄비에 밥을 짓기 때문에 밥물이 흘러 넘치지
않게 불 앞에서도 지켜보는데 때로는 그 잠깐의 시간도 아깝다고 다른 일을 하다가 렌지주변에 끓어 넘친 밥물로 물을 이루거나 밥타는 냄새가 나
가보면 새까맣게 타버린 밥을 만난다. 그 앞에서 세심하게 기울여야지만 꽃밥이 되는데 그런 꽃밥은
밥알이 촉촉하고 통통하게 살아서 가족들이 잘 먹는다.
매일 하는 밥짓는 과정이 의미 있는 시간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한편의 아름다운 시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밥’과 관련된 시를 잠깐 소개했지만 이 책엔 커피, 만찬, 냉념,죽, 김치,
된장, 두부, 등등 우리가 일상적으로 먹는 소재들을 매개로 마음이 투명해지고 가벼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