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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복하는 가족
오에 겐자부로 지음
오에 유카리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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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 원년의 풋볼>을 읽고 저자의 이력을 알게 되면서 장애를 가진 아들 히카리와 가족의 이야기를 꼭 읽고 싶었다.
이 책이 국내 소개되었을 때 잔잔하고 따뜻한
수채화로 채색된 일러스트도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부인이 그림을 그리고 남편이 쓴 글인 [회복하는 가족]은 오에 겐자부로 가족의 일상적인 기록이지만 동시에
한 가족에게 닥쳐온 도저히 헤어나올 수 없는 절망으로 부서져 해체 위기 상태에서도 재생하는 뭔가를 발견하고 집요하게 탐색한다.
가벼운 자폐부터 중증자폐까지 자폐스펙트럼이 매우
넓고 치료방법도 다양하며 많은 사람들이 자폐라는 장애를 알고 있다. 그래도 내 아이가 자폐진단을
받으면 사형선고를 받는 기분이지 않을까?
63년도에 첫 아이가 뇌 탈장으로 대수술을 받아야 하고 대수술을 받더라도 오래 살 수 없으며 살더라도
중증장애로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면 나와 우리 가족은 어떤 선택을 할까? 과연 더 나은 선택이란게
있을까?
28살 전도 유망한 젊은 소설가와 그 가족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벅차지 않았을까? 2019년로 옮겨와도 오에 겐자부로 가족의 일은 평범한 가족이 감당하기 힘들다. 이 책엔 고통과 절망만 가득했을 것 같은 부서진 가족의 우울한 고백사가 아닌 히카리의 존재를 한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살아가는 과정을 담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노벨상을 받은 대문호이며 전업
작가이자 강연자다. 보통의 전업작가들은 방해 받지 않을 독립된 공간을 가진다.
어린 자녀를 기쁨으로 키우던 우석훈 작가조차도
아이와 함께 하면 글쓰기가 어려워 집 밖의 독립된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오에 겐자부로는 예외적으로
독립된 공간이 아닌 가족과 늘 함께 하는 집안의 방에서 작업을 한다. 치매에 빠진 장모가 현관과 문을
몇 분 간격으로 오가며 저자가 그 간격을 100회까지 세다가 도중에 포기하는 일화나 히카리를 복지
작업장에 데리고 가고 데려오는 시간은 3시간이다. 누적되어
길에 버려지는 시간들은 글을 쓰는 작가에겐 아깝게 낭비되는 시간이다. 평범한 가정과 크게 다르지 않은
오에 겐자부로 가족의 일상은 매우 담백하고 잔잔하지만 잘 읽어보면 많은 어려운 고비들이 굽이굽이 나타나며 전업작가로서 평생의 고민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의 삶의 중심축엔 히카리가 늘 존재하지만 이 책엔 히카리뿐 아니라 그의 삶에 피부로 다가온
예술의 습관이나 작가들과 작품들, 그가 만나온 사람들에서 받은 인상을 작가로서 탐색하여 풀어내고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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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문구
우리는 젊은 시절에 히카리와 함께하는 이런 인생을 꿈꾸었던 것은 아니다. 게다가 지금까지 인생에서 아내와 내가 만난 최악의 곤경이란 것이 지금은 극복하여 그것을 추억으로 떠올릴 일도
아니고, 오히려 더 새로이 팽창될 가능성을 가친 채 그 줄기가 이어지고 있고, 바로 그것이 지금 우리 인생에 긴장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주체이기도 하다.
본문
262쪽
슬픔이건 고통이건 일단 하나의 형태로 표현했다면 그것을 더욱 탐구하여 앞으로 밀고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만든 음악이나 문학에 의해 혼의 어둡고 깊은 곳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그 불행, 동시에 그 표현 행위에 의해 자기 스스로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불가사의 이것을 행복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데, 이것이 겹치고 또 겹치면서 표현자에게 예술의 심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본문
273쪽
감상
이 책은 여러 관점으로 읽을 수 있는 풍부한
책이다.
자녀를 기르는 부모는 교육의 단서를 얻을 수
있으며-자녀를 부모의 소유가 아닌 한 인간으로 수용하며 함께 살아가는 문제- 문학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여러 문인들과의 교류와 작품을 만날 수 있으며 오에 겐자부로란 작가의 글쓰기
방식도 읽어 낼 수 있다.
작가의 글쓰기 방식과 음악을 작곡하는 예술
방식의 보편성을 탐색하는 작가의 글이 매력적이다.
점차 늘고 있는
ADHD와자폐아동을 둔 부모와 자녀와의 교감, 감동도 만날 수 있으며 히카리란 중증
자폐아동들도 남을 염려하는 섬세한 마음과 음악 작곡에 대한 진진한 자세를 가지고 있으며 그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충분히 한 사람의 몫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책을 다 읽고 오에 히카리의 음악을 유투브로
찾아서 들어봤다. 94년도 베스트 음반임에도 찾기가 힘들었다.
3곡을 겨우 찾을 수 있었고 들어 봤는데 피아노와 플롯의 선율이 아름답고 편안하다.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와 히카리는 서로 뗄 수 없는 존재다. 오에 겐자부로와 히카리는
샴쌍둥이처럼 깊게 연결되어있다. 히카리는 음악적 감각으로 작가는 언어감각으로 치유받는다.
히카리는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와 그 가족의 사랑과 헌신으로 단단하게 생을 받아들이며. 아버지 오에 겐자부로의
글과 입으로 세상과 소통한다.
보통 사람과 다른 중증 장애를 가진 인물이
가족의 사랑과 헌신으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여 우뚝 서는 과정은 그 자체가 경이롭다. 이런 감동적인
사례는 비단 히카리뿐만 아니라 세상에 많다.
그가 위대한 이유는 히카리란 지적 장애 아들을
통해 세상을 응시하는 시야의 확장이다.
그가 젊었을 때 가졌던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가 히카리란 아들의 존재로 공존과 공생에 대한 탐구로 이어졌으며 그는 세상으로 다가가 적극적으로 실천한다.
당신은 어떻게 괴로운가요?
당신은 어떻게 아픕니까?
276쪽
이렇게 물어봐 줄 수 있을 때 아픔은 표현할 수
있는 출구를 만난다. 드러낼 수 있는 고통과 아픔은 그 고통과 아픔의 강도를 넘을 수 없다.
상처받고 아픈 사람들을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외면하는 일이야 말로 잔인하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고립이나 배제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문제는 우리 사회의 큰 숙제다.
특히 역사나 특정 시기의 희생자들, 세월호 아이들, 제주43의 희생자와 그 상처받은 가족들, 다른 성정체성을 가진
사람들, 장애를 지닌 사람들, 노인들 더 나아가 4차산업의 로봇과 기계에 밀려나 일하고 싶어도 일할 수 없는 사람들.
나를 괴롭히는 소음 유발자 이웃, 심지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나쁜 범죄자까지도 우리가
관심이 있던 없던 존재하는 한 그들에게 더 큰 폭력으로 억압할 것인가? 그들의 존재와 상처에 대해
우리는 어떤 자세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개인이 좀처럼 내릴 수 없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