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의 종말 - 평균이라는 허상은 어떻게 교육을 속여왔나
토드 로즈 지음, 정미나 옮김, 이우일 감수 / 21세기북스 / 201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평균의 종말

토드 로즈 지음

책소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 대다수는 평균을 활용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방법인 표준시스템을 매우 신뢰하며 의존한다. 오늘날 사람들의 각종 지표로 활용되는 평균법의 유래는 천문학의 평균법을 사람들에게 응용하려고 시도했던 과학자 아돌프 케틀러가 시초이며 수학자 프란시스 골턴은 케틀러의 평균적 인간 개념을 정상을 판단하는 믿을 만한 기준일 뿐만 아니라 계층과 유형을 서열화하는 개념으로 활용하였고 이런 개념이 전세계 사람들의 평가지표로 여전히 유효하게 작용하는데 표준시스템을 널리 확산하고 제도화하는데 기여한 사람은 20세기 산업계에 표준시스템을 정착시킨 테일러다. 테일러주의는 물건을 균질 하게 안정적으로 대량생산하는데 노동자보다 시스템이 효과적임을 산업사회에서 보여주었고 그런 방식의 효율성은 변화하는 경제에 발맞춰 학교교육과 직업선택 등의 인간의 생애게 깊숙이 개입하여 표준시스템에 벗어나면 비정상으로 간주하며 부적응자란 꼬리표를 붙이며 열등한 사람으로 분류되며 성공적인 사람들의 삶엔 보편적용 가능한 방식이 있을 것이란 믿음을 주며 각종 지표들을 만들어서 개인을 지표에 끌어올리거나 그 이상을 도달하는데 주력하도록 격려했다.

평균주의의 주된 연구 방법은 여러 사람을 종합적으로 조사한 후 그 그룹의 패턴(평균이나 기타 통계치)을 살펴보고 그 그 그룹 패턴을 활용해 개개인을 분석하고 모형화하는데 지능검사, 신체 치수 규격에 적용하여 개개인을 평가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런 규격에 맞는 실제적인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성격이나 기질, 도덕성과 같은 성품도 상황이나 관계에 따라 다 다르며 뇌를 사용하는 부위도 개 개인별로 다 다르다. 평균적인 동일한 IQ 점수를 가진 사람이라도 다차원으로 검사하면 지능의 강점과 약점이 다 다르며 둘쭉날쭉하다. 평균주의의 함정은 올바른 하나의 정상적인 경로가 있을 것이라는 규범적 사고관을 심어주어 아이들의 발달과 배움에는 단 하나의 올바른 경로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아이들은 개별적인 속도에 맞춘 독자적인 경로에 따라 학습함을 밝히면서 평균주의의 오류들을 밝혀내고 있다.

표준지표, 표준화가 테일러주의 공장을 모델로 한 시스템에서 가져와 우리 인생의 경로와 교육과정에 그대로 적용되어 평가되었음을 알았고 평균치에 따른 표준모델에 맞는 인간상에 맞는 개개인은 존재하지 않음에 솔직히 충격 받았다. 일차원저인 표준적 기준이 한 인간의 다양성을 어떻게 축소하고 왜곡시켜 우리가 세상을 보는 눈을 제한했는지 깨닫게 한다. 자연 생태계의 자율성과 다양성을 직관적으로 이미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보였던 진실을 저자는 분석을 통해 보여준다. 들쭉날쭉하고 맥락적인 개개인에게 맞는 교육과 직업은 무엇일까? 저자는 교육에 있어서는 학위가 아닌 자격증 수여, 성적 대신 실력의 평가와 학생들에게 교육 진로의 결정권을 허용해주기처럼 완벽하지는 않지만 개개인의 다양성을 더 포함시킬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저자의 대안은 평균주의 시스템만큼이나 미심쩍어 보인다. 변화하는 시장에 대응하여 평생을 수십 개의 자격증을 따야 하는 자격증 쇼핑시대가 열릴 수 있다. 또한 선택의 역설처럼 너무 세분화된 자격증은 선택하는데 내게 진짜로 필요한지도 알 수 없이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한다. 자격증과 자신의 진정한 재능과의 상관관계는 어느 정도일까? 그것도 알 수 없다. 직업에 따라 소득격차가 심한 사회에서 그리고 그 직업에서 최고만이 모든 것을 독식하는 사회에서 개인의 재능과 자질을 꽃피우는 게 가능한지 여전히 의문이 남는다. 모두가 자신의 재능과 능력을 발휘하면 그 분야에 최고가 될 것이라는 것도 허상이다. 꼭 최고가 되는 길만이 성공이라는 사고관도 상투적이다. 두 번째 맥락적인 인간이 자신이 몸담을 직업의 세계와 유사한 방식으로 경험을 쌓는다고 해도 역시 실제 직업의 경험은 아니다.  

이윤 획득을 가장 큰 경제목표로 삼는 자본주의체제의 변화 없이 체제 안에서 몇 가지 구조만 바꾼 개인맞춤으로 개개인의 진정한 자신으로 살아가는 것이 양립가능한지 여전히 의문이다.

혼돈 속에서 질서를 부여하고 예측하고 싶어하는 인간의 자의적인 개입이 개개인의 사람과 자연의 생태계의 본성과 더욱 멀어지게 하며 더 많은 혼돈을 낳게 하는 역설을 마주한다 애초에 관리와 통제가 불가능한 살아있는 생명에게 공장의 제품처럼 적용가능 하리라는 믿음 자체가 주술이다.

 인상적인 것은 인간의 성격과 도덕도 맥락적이며 빠른 속도가 재능으로 연결되지는 않으며 다차원적이기 때문에 개개인의 인간 구성원의 존재가 소중하다면 개개인의 인간이 행복한 사회로 가기를 희망한다면 인간의 삶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직업과 교육에서 그리고 사람관계에서 단편적인 평균주의의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명백한 오류이며 우린 그 동안 오류의 세상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인간을 평가하는 척도에 의문을 던지고 과학적으로 납득 가능하게 오류를 밝혔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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