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정청래 - 정청래의 정치현장보고
정청래 지음 / 자음과모음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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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정치인하면 먼저 떠오르는 건 싸이의 '환희'라는 곡입니다.

"동서로 갈라 여야로 갈라 싸움은 똑같고 사람만 달라. 이러지 말라는 모두의 바램은 말짱 꽝 빛 바랜지 오래야~

하구 맨날맨날 하는 말 국민여러분 I'm sorry 야, 다 뻥이야. 걱정해봤자 얼굴붉히며 소리질러 봤자

뻔할뻔자 백팔백번 귀에 못 박히도록 애기 해 봤자 변하는 거 봤냐. 그냥 쟤네 저러고 살라고 내버려두고 그 열정과 수고 쌓여있는 분노 끄집어내 아니면 병된다."

 정치인에 대한 실날한 비판과 자태를 잘 표현한 가사입니다.

저 역시 정치인 국회의원 하면 생각나는 건 "국회의사당과 함께 셋트로 해외로 무상 수출해 버리고 싶다" 는 생각이 듭니다.

솔직히 '정청래'라는 사람에 대해 들은 바도 없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왜 제가 이 책을 읽었을까요?

아마도 무료로 책을 준다는 소식에 귀가 솔깃하였고, 뭐하는 사람인데 욕 먹을거 뻔히 알면서 책을 냈을까 하는 호기심입니다.

 책을 받아 들고 자기 자랑이 이어지겠지 생각했는데 나의 편견은 조금은 사라졌습니다.

10남매 중 열 번째 막내로 태어난 늦둥이, 1988년 조통특위장으로 첫 징역, 농축산물 수입개방 반대로 미대사관저 점거농성으로 두 번째 징역.

안기부에 끌려가 죽도록 두들겨 맞고 두 번째 감옥살이를 하다 머릿 속을 사로 잡은 주제 "통일".

통일에 기여하는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

그에 대한 답은 '정치'였다. 그렇다면 국회의원?

학생운동으로 징역을 살고 있던 스물일곱 청년의 미래와 삶에서 언제 실현될지도 모를 국회의원을 목표로 인생을 산다는 것은 실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운동권 경력과 감옥살이 전과로 취직도  어려운 현실에서 공부 하나 잘한 경력으로 학원을 창립하고 지역주민과 교감을 쌓고 인지도를 높였다.

학원사업을 같이 했던 30년 지기 친구와 "10년 후 우리는 무엇을 할까?" 라는 말을 하다가 종이에 그 계획을 썼다.

이 친구와 장난처럼 써본 '10년 후 인생설계서'였지만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이 친구가 나에게 한 말이 있다.

"너는 인생설계서대로 정말 실천하며 살았어. 10년 후 나의 인생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해야 할 노력과 과정을 적고 그대로 해냈다"

평탄치 않은 현실과 고비를 넘어 2004년 만38세 제17대 국회의원 출마, 당선.

 책의 다른 내용보다는 이 대목이 가장 인상에 남습니다.

시골 깡촌에서 태어나 가진 것 없이 상경하여 학생운동 하다 호적에 빨간 줄가고 상심하고 놀란 부모님은 몸져 눕다 돌아가시고.

특별한 직업도 갖을 수 없는 현실을 살아가기 위한 방​법을 생각해 내고, 꿈 과 이상을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그 정신.

'늘 처음처럼' 이라는 말을 달고 사는 그이기에, 생각과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그의 삶에서 사람 냄새가 난다.

늘 속고만 살아 더 이상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닫고 살았지만 그래도........ 여운을 남기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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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더 풍성하게 하라 - 감옥으로부터 온 기쁨의 서신 빌립보서 1
화종부 지음 / 두란노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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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과 어그러진 관계에서 비롯되는 모든 인간관계의 어그러짐과 이 땅에서의 모든 불행은 모두 죄가 만들어 낸 주제입니다.

죄가 왜 이런 불행을 만들어 내는가 하면, 하나님이 죄와 충돌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십자가 앞에서 그렇게 필사적으로 기도하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죽음 속에 우리의 죽음과 똑같은 요소만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긍휼로부터, 자비로부터 완전히 끊어져서 버림 받는 하나님의 심판과 저주와 징계가 주님의 십자가 죽음 속에 있기 때문에 그렇게 절박하게 피하기를 간구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자신을 속죄 제물로 드리신 현장입니다.

 사람이 죽자 살자 돈을 버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 떳떳하게 설 수 없는 가장 치명적인 죄인이라는 사실에 직면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무 자격도, 공로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어떤 형태로든지 가리고 덮고 꾸미고 싶어 합니다.

인생의 진짜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벌거숭이로 설 수 없다는 깊은 절망감이 인생을 성공에 대한 끝없는 집착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신 귀한 해결책, 사람을 사랑하시고 아끼시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열어 놓으신 아들 안에 있는 참생명의 길을 믿고 영접해서 모셔 들이고, 주님의 생명 싸게 안으로 피하여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나 이 구원은 완성품이 아닙니다.

구원이 시작되고 구원이 완성되는 시점이 있는데,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과정이 '성화의 과정'인 것입니다.

구약이나 신약이나, 지상을 사는 성도의 최후의 영광은 보고 믿는 것이 아닙니다.

손에 만질 수 없어도,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해서 믿는 것, 그것이 신약을 사는 성도에게는 최고의 영광 중 하나입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과해야 하나님의 위로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알아야 사람을 위로하는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아프고,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내는 그 아픔은 정말 말로 다할 수 없지만, 그런 고통을 한번 믿음 안에서 지나가 보세요.​

선하시고 실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그 아픔과 상처를 통해 그곳에서 향이 나게 만드시는 순간에, 많은 사람이 여러분의 영혼을 통해 살아나는 것을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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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번의 순종 - 핍박과 순교의 땅에서 날아온 삶의 도전장
이시온 지음 / 규장(규장문화사)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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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의 순종도 어려운데 천 번의 순종이라. 제목부터 부담으로 다가옵니다. 어떻하면​ 이런 순종이 가능할까요?

세상 사는 것이 버겁고 무겁다. 성공을 위해 달려왔지만 영혼은 병들어 가고, 체면을 위해 좋은 차와 집을 구했지만 여전히 빚 가운데 허덕인다.

예수를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이 아무런 차이도 없는 이 세대 과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은 인간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한 가지 꼭 필요한 성품을 가르치신다.

그것이 바로 인내이다. 약속을 지키지 않고 떠나가는 인간을 향한 끊임없는 기다림, 그 기다림은 소망을 동반한다.

언약을 하지만 그 언약이 깨질 것을 이미 알고 계시며, 그럼에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것을 소망하며 기다리는 인내가 바로 하나님의 인내이다.

우리에게도 인내가 필요하다. 하나님의 인내가 없다면 이 세상을 변화를 경험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순종은 주님의 성품에서 나온다. 주님은 하나님께 순종하셨고, 우리에게서도 그 순종을 원하고 기다리신다.

 하나님의 꿈 안에 복음 없이 죽어가는 수많은 영혼 그들이 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꿈을 분별할 수 있다면 우리는 최고의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순종은 죽음보다 강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은 내 인생을 드리고 그 앞에 순종하며 살 수 있는 분을 만나는 것이다.

주님의 눈물 한 방울이 모든 것을 말해주듯이 순종은 주님의 눈물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을까?

기도만이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길이라고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친밀한가?

구원의 확신이 자기 만족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기준인가?

다시 시작된 기독교에 대한 방황의 시작, 뻔한 결말을 알지만 하나님의 인내에 기대어 반항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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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믿음을 아느냐 김남국 목사의 창세기 파헤치기 2
김남국 지음 / 두란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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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자마자 어려움을 만나 "하나님이 계신 게 맞나요?" 하고 묻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맞아요."  "하나님이 내게 왜 이러실까요?"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 일만 생기면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잖아요. 그것을 극복할 때까지 겪게 하실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문제만 만나면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회의에 빠지곤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자신의 믿음의 양입니다. ​바로 그 부분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문제를 반복적으로 건드리시어 하나님이 내 문제보다 크신 분임을 알려 주시는 겁니다.

 아브람은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이때 믿음이 처음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자기 신념과 확신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고백한 믿음이란​ '이제부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과 결과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 안에 잡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환란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환란보다 더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실로 힘을 얻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란이라도 버티며 잘 이겨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약속을 놓아 버리면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기에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는 동안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랐습니다.

내 지혜와 내 방법대로 산다면 믿음은 절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손을 내려놓는 순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 믿음이 생기고 자랍니다.

"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구나" 하고 때닫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자라납니다. 믿음이 자라니까 또 말씀을 따라 준수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증명함으로써 앞으로 이삭을 통해서 오게 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믿음이 어디까지 자라야 하는지를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문제는 '이삭을 바치기 싫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삭을 두고 자기 자신과 싸웁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때에는 그 방법마저도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니 앞으로 이삭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부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게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브라함도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평생의 숙제는 믿음을 이어 갈 자가 누구냐였습니다.

신앙은 자기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은 나에게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다음 사람이 세워질 때 증명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진째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거기에 묘하게 자기 영광이 끼어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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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진실 - 쓰시마인가 대마도인가 미래한국영토포험총서 1
한문희.손승호 지음 / 푸른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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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이다."

삼국 시대에 대마도에는 고구려에 속한 인위가라, 백제에 속한 계지가라, 신라에 속한 좌호가라가 있었다.

즉, 늦어도 서기 400년대 초반부터 대마도는 한반도의 명백한 부속 도서로 존재 하였던 것이다.​

대마도가 한반도에 형성되었던 국가와 가졌던 연결관계는 일본 열도와 가졌던 그것에 비해 훨씬 강력하였다.

달리 말하면 한반도의 국가가 주(主)이고 대마도는 종(從)의 입장이었다.

일본은 종의 입장에 있던 ​대마도를 통해 한반도의 국가와 교류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해서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이 징검다리의 성격은 13세기에 들어서면서 한반도를 침략하고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왜에 의해 변화하였고 결국 왜구들의 본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려말 조선 초 대마도에 창궐하는 왜구를 몰아내기 위한 정벌로 대마도는 경상도에 속한 지방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1399년부터 대마도주는 궁궐과 관청의 수요를 충당할 수 있도록 토산물을 공납으로 바쳤고 조선 정부는 백미를 하사하였다. ​

 이와같은 주종관계는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전까지 꾸준히 지속되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지배력이 약화되었다.

조선의 대마도에 대한 영향력이 다소 약화되었지만 대마도가 일본의 지배하에 넘어간 땅은 아니었다.

조선이 대마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였다는 사실은 조선시대 제작된 다양한 지도와 문헌을 통하여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따.

대마도가 본래 우리의 영토였음을 지지해 주는 자료는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보여주는 자료보다 훨ㅆ니 더 많이 존재한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를 침략하기 위하여 정벌해야 할 대상지에 대마도를 포함시켰을 정도이다.

하지만 조선 말기까지도 대마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자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받은 대마도주가 대마도를 일본에 복속시키는 결과가 발생하였다.

이후 조선의 국운이 기울면서 메이지 정부는 일방적으로 대마도를 나가사키 현에 편입시켜 버렸다.

 

 국제법상 한 국가가 영토를 획득하는 방법에는 선점, 시효, 할양, 정복, 첨부 등의 5가지가 있다.

선점의 원리를 적용하여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다. 그러나 시효라는 관점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 기원의 선의나 악의를 불문하고 일정한 사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면 그 사태를 적법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즉 영토의 실효적 지배와 영토권의 응고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대마도에 대한 타국의 주권 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 회복에 대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마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일본에 정식으로 반환을 요청하였다.

패전국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처리 과정에서 우리의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나 일본의 요시다 내각은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의 손을 빌어

한국정부의 반환 요구를 저지하였다.

또한 1949년 2월 16일 제헌국회에서 '대마도 반환 요구에 대한 건의안'이 국회의원 31명에 의해 제출되어 같은 해 2월 19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었다.

그러나 국제 관계를 고려하여 임시 보류하기로 가결하고본회의에 회부하지 않기로 하였다.

최근에는 2008년 12월 1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대마도가 우리 영토라는 결의안이 상정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지도의 일부가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영유권을 주장하기에는 그 증거력에 다소 한계가 있다는 의견과 함께 소위원회에 회부되었고 결국 18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전 국민적 의식과 달리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지리적 역사적 국제법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영유권 주장의 정당성은 충분하다.

대마도는 일본보다 한국에 가까운 곳이다.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일본에 의해 간도 일대를 중국에 빼앗겼으며 오래전부터 우리의 땅으로 여겨왔던 대마도를 일본에 빼앗겨 버렸다.

이제 우리는 영토에 대한 개념을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새롭게 정립하고 과거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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