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믿음을 아느냐 김남국 목사의 창세기 파헤치기 2
김남국 지음 / 두란노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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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을 하자마자 어려움을 만나 "하나님이 계신 게 맞나요?" 하고 묻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대답해 줍니다.

"맞아요."  "하나님이 내게 왜 이러실까요?"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그 일만 생기면 하나님을 의심하고 원망하잖아요. 그것을 극복할 때까지 겪게 하실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문제만 만나면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회의에 빠지곤 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바로 자신의 믿음의 양입니다. ​바로 그 부분에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그 문제를 반복적으로 건드리시어 하나님이 내 문제보다 크신 분임을 알려 주시는 겁니다.

 아브람은 여호와를 믿었습니다. 이때 믿음이 처음 등장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믿음이란 자기 신념과 확신이 아닙니다.

아브람이 고백한 믿음이란​ '이제부터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의 원인과 결과가 하나님께 있음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 안에 잡혀 있음을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환란이 없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은 환란보다 더 크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실로 힘을 얻는 사람이라면, 어떤 환란이라도 버티며 잘 이겨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하나님의 약속을 놓아 버리면 타락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시기에 하나님의 역사를 맛보는 동안에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랐습니다.

내 지혜와 내 방법대로 산다면 믿음은 절대로 자랄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손을 내려놓는 순간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을 보면 믿음이 생기고 자랍니다.

"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구나" 하고 때닫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일하심으로 자라납니다. 믿음이 자라니까 또 말씀을 따라 준수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믿음을 증명함으로써 앞으로 이삭을 통해서 오게 될 수많은 믿음의 사람들에게 믿음이 어디까지 자라야 하는지를 보여 주고자 하셨습니다.

문제는 '이삭을 바치기 싫은'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삭을 두고 자기 자신과 싸웁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할 때에는 그 방법마저도 하나님의 뜻대로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알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이삭을 지으신 하나님이시니 앞으로 이삭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부어 주실 것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것을 고백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루실 게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아브라함도 예수그리스도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평생의 숙제는 믿음을 이어 갈 자가 누구냐였습니다.

신앙은 자기의 믿음을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믿음은 나에게서 증명되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다음 사람이 세워질 때 증명되는 것입니다.

당신의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이라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려야 합니다.

진째 하나님의 영광이 되도록, 거기에 묘하게 자기 영광이 끼어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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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도의 진실 - 쓰시마인가 대마도인가 미래한국영토포험총서 1
한문희.손승호 지음 / 푸른길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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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마도는 본래 우리 땅이다."

삼국 시대에 대마도에는 고구려에 속한 인위가라, 백제에 속한 계지가라, 신라에 속한 좌호가라가 있었다.

즉, 늦어도 서기 400년대 초반부터 대마도는 한반도의 명백한 부속 도서로 존재 하였던 것이다.​

대마도가 한반도에 형성되었던 국가와 가졌던 연결관계는 일본 열도와 가졌던 그것에 비해 훨씬 강력하였다.

달리 말하면 한반도의 국가가 주(主)이고 대마도는 종(從)의 입장이었다.

일본은 종의 입장에 있던 ​대마도를 통해 한반도의 국가와 교류하고자 하였다. 이렇게 해서 대마도는 한반도와 일본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였다.

​이 징검다리의 성격은 13세기에 들어서면서 한반도를 침략하고 대륙으로 진출하고자 하는 왜에 의해 변화하였고 결국 왜구들의 본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고려말 조선 초 대마도에 창궐하는 왜구를 몰아내기 위한 정벌로 대마도는 경상도에 속한 지방이 되었고 우리나라의 영토가 되었다.

1399년부터 대마도주는 궁궐과 관청의 수요를 충당할 수 있도록 토산물을 공납으로 바쳤고 조선 정부는 백미를 하사하였다. ​

 이와같은 주종관계는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전까지 꾸준히 지속되었지만,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지배력이 약화되었다.

조선의 대마도에 대한 영향력이 다소 약화되었지만 대마도가 일본의 지배하에 넘어간 땅은 아니었다.

조선이 대마도를 실효적으로 지배하였다는 사실은 조선시대 제작된 다양한 지도와 문헌을 통하여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따.

대마도가 본래 우리의 영토였음을 지지해 주는 자료는 독도가 우리나라의 영토임을 보여주는 자료보다 훨ㅆ니 더 많이 존재한다.

심지어 일본에서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한반도를 침략하기 위하여 정벌해야 할 대상지에 대마도를 포함시켰을 정도이다.

하지만 조선 말기까지도 대마도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자 조선 정부에서 관직을 받은 대마도주가 대마도를 일본에 복속시키는 결과가 발생하였다.

이후 조선의 국운이 기울면서 메이지 정부는 일방적으로 대마도를 나가사키 현에 편입시켜 버렸다.

 

 국제법상 한 국가가 영토를 획득하는 방법에는 선점, 시효, 할양, 정복, 첨부 등의 5가지가 있다.

선점의 원리를 적용하여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을 펼 수 있다. 그러나 시효라는 관점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그 기원의 선의나 악의를 불문하고 일정한 사태가 일정 기간 지속되면 그 사태를 적법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이다.

즉 영토의 실효적 지배와 영토권의 응고 과정이라는 측면에서 대마도에 대한 타국의 주권 행사가 불가능한 상황이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대마도에 대한 영유권 회복에 대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대마도는 대한민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며 일본에 정식으로 반환을 요청하였다.

패전국 일본에 대한 연합국의 처리 과정에서 우리의 영토를 확보하기 위한 전략이었으나 일본의 요시다 내각은 당시 연합군 최고사령관 맥아더의 손을 빌어

한국정부의 반환 요구를 저지하였다.

또한 1949년 2월 16일 제헌국회에서 '대마도 반환 요구에 대한 건의안'이 국회의원 31명에 의해 제출되어 같은 해 2월 19일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었다.

그러나 국제 관계를 고려하여 임시 보류하기로 가결하고본회의에 회부하지 않기로 하였다.

최근에는 2008년 12월 10일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에 대마도가 우리 영토라는 결의안이 상정되었으나,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지도의 일부가 대마도가 우리의 영토라는 영유권을 주장하기에는 그 증거력에 다소 한계가 있다는 의견과 함께 소위원회에 회부되었고 결국 18대 국회의 임기 만료로 폐기되고 말았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전 국민적 의식과 달리 대마도가 우리 땅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국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지리적 역사적 국제법적 관점에서 우리나라 영유권 주장의 정당성은 충분하다.

대마도는 일본보다 한국에 가까운 곳이다.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

우리는 일본에 의해 간도 일대를 중국에 빼앗겼으며 오래전부터 우리의 땅으로 여겨왔던 대마도를 일본에 빼앗겨 버렸다.

이제 우리는 영토에 대한 개념을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새롭게 정립하고 과거 우리 선조들의 삶의 터전을 되찾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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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구원인가? - Why Salvation Why 시리즈 2
조정민 지음 / 두란노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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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그게 도대체 뭐야?

전도를 하려고 처음 꺼내는 단어인데 솔직히 많은 분들이 구원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구원이란 무었일까요?

구원이란 풀려남이다 / 택하심이다 / 부르심이다 / 돌이킴이다 /​ 죄사함이다 / 거듭남이다 / 양자됨이다 / 의로움이다 / 인내함이다 /  함께함이다 / 성화됨이다 / 영광됨이다.

 구원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해 죄사함을 받은 후 돌이킴으로 거듭나는 모든 과정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되는 절차였음을 깨닫는 것이 중요합니다.

크리스천은 종에서 양자가 되었다가 다시 종이 되는 삶을 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자유인이 되었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어 드리기 위해 스스로 종이 됩니다.

 

 구원받고도 또다시 죄로 돌아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피 흘리기까지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유혹에 또 빠집니까?

죽도록 싸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왜 약속을 쉽게 저버립니까?

목숨 걸고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무릇 지킬 만한 것은 목숨을 걸지 않고는 지켜지지 않습니다.

​ 구원의 과거가 부르심, 죄사함, 거듭남, 양자됨이라면 구원의 현재는 의로움, 거룩함, 성화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 소망 때문에 이 땅에 사는 것이 의미 있고 가치 있으며 그 영광의 무거움에 비춰 이 세상에서 겪는 고난의 가벼움이 느껴지게 됩니다.

책을 다 읽고 구원의 정의와 특징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하나님의 영광됨에 대하여는 설명이 조금 부족하다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다음 책에서 또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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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를 걷다 - 나를 지우고, 나를 세우는 힐링 여행 산문집
동길산 지음, 조강제 사진 / 예린원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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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태어나 초중고와 대학을 모두 부산에서 나온 지은이 '동길산' 그에게 부산의 포구는 특별나다.

앞으로 나아가느냐 뒤로 물러서느냐, 나아감과 물러남의 경계인 포구에서 그 동안의 삶의 여정을 돌아본다.

젊은 날의 추억과 아픔, 아련한 향수와 미래를 꿈꾸던 포구, 그 기억 속 20개 포구이야기로 들어가보자.

해운대구 청사포.

푸를 청, 바다가 푸르고 바다에 물든 갯바위가 푸르다.

청사포엔 해안을 따라 좀 높거나 나지막한 턱이 있다. 육지와 바다 경계인 셈이다.

삶은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마음이 무거운 그대. 청사포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을 서 보시라.

갈매기가 낮은 옴팡진 갯바위처럼 눈높이를 바꾸면 기댈 언덕이 있으려니,

바닷게가 파 둔 깊숙한 갯벌처럼  발상을 바꾸면 솟아날 구멍이 있으려니,

삶은 고해, 바다의 파도가 밀려오다간 밀려가듯이 고해의 파도 역시 밀려오다간 밀려간다.

포구(浦口​). 포의 입, 바다의 입, 바다의 입이 사람을 깨문다.

사람의 마음을 깨문다. 깨물고서는 사람을 놓아주지 않는다.

사람의 마음을 놓아주지 않는다. 물과 뭍이 맞물린 곳에 선 사람이 젖고 사람의 ​마음이 젖는다.

작가의 옛기억과 생각을 옅보며 부산의 포구들이 머리 속에 이미지를 꾸려 갈때, 멋진 사진작가 조강제님의 사진이 포구 설명 사이에 끼어 있습니다.​

막연한 상상에서 벗어나 한 컷 한컷의 사진 속의 포구를 보고 있노라면 동작가님의 글이 더욱 가슴을 아리게 파고 듭니다.

또하나, 각 포구에 문인들이 남긴 시를 하나씩 소개하며 작가님과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도록 안내해 주고 있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각 포구를 소개할 때 지도도 같이 넣어 주셨다면 '아~ 이곳이구나!'​ 하고 조금 더 쉽게 다가왔을텐데 하는 점입니다.

쓸쓸한 가을 낙엽이 뒹구는 가을 바람을 맞으러 포구로 나가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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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돌파 - 시련을 이기게하는 희망복음!
조봉희 지음 / 나침반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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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물중 "고난"하면 떠오르는 인물하면? 바로 "욥"이 생각납니다.

그런데 욥 이야기를 읽고 있으면 너무 어마어마한 고통이다보니 우리 피부에는 그리 와 닿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교회에서는 욥의 영성과 신앙이 대단하다고 치켜세우지만, 사실 성경을 읽다보면 욥의 친구들의 인과응보의 사상에 더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거기에 욥의 허무주의에 빠져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하며,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체념을 할 때면 욥에 대한 실망이 절정에 이릅니다.

이렇다보니 성경의 욥이야기를 읽을때면 은혜가 아니라 조금은 아니 왜? 이런 인물이? 하는 생각이 들고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조봉희 목사님의 고난돌파​ 책을 읽으며 그동안 이해 되지 않던 부분과 욥의 영성에 대해 깨닫게 되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고통의 사람 욥이 그처럼 간곡하고 애절하게 절규하며 호소해보지만, 하나님은 욥에게 결코 고난의 이유를 설명하지 않으신다.

사실 성경 전부는 고난에 대하여 원인의 쟁점보다는 반응의 쟁점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다.

즉 '고통스러운 일은 이미 일어났다. 그러니 이제 너는 어떻게 하겠느냐?'이다. 그렇다.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느냐 보다, 내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욥기의 주제는 고난에 대한 사람의 인내가 아니다. 우리가 고난 테스트에 합격하기까지 기다려주시는 하나님의 인내가 욥기의 더 큰 메시지다. 

고난은 하나님의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과 섭리의 범주라는 것이다.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누구나 받아들여야 하는 선물(?)이다." <7~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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