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이 제갈량에게 말하다 2 - 우연한 사건이 운명을 바꾼다 현대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 열전
천위안 지음, 정주은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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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를 읽고 자란 삼국지 키드들에게 가장 인기가 높은 인물, 제갈량. 하늘과 구름, 심지어 귀신까지 이용해 모든 전장을 승리로 이끈다. 뿐만 아니라 그와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을 바보 심지어 분을 못 참아 죽게 만드는 교묘한 말솜씨는 두말해 잔소리가 된다. 그런 그가 유비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만나 세상을 호령하며 삼국을 쥐락펴락했다. 그런 그에게도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까? 당시 사람들은 왜 제갈량을 사람이 아닌 신으로까지 받들었을까? #심리학이제갈량에게말하다 #심리학이제갈량에게말하다 책을 통해 알아보자!


유비에게 제갈량을 추천해 준 사마휘. 그는 '와룡과 봉추 중 하나만 얻어도 능히 천하를 편안케 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적벽대전 이후 큰 공을 세웠지만 오나라에서 인정받지 못하던 봉추(방통)은 오나라를 버리고 유비에게 귀탁한다.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긴 싫고 그렇다고 라이벌이 생기는 것이 두려웠던 제갈량은 봉추를 촉으로 부르며 추천장까지 써 줬지만 그가 촉으로 왔을 땐 오히려 몇 개월 자리를 비우며 봉추의 애를 태웠다. 신선과 같이 생긴 제갈량에 비해 못생긴 외모에 땅딸만한 키의 봉추는 유비의 눈에 차지 않았다. 또 봉추의 오만한 성격으로 인해 유비는 그를 한가한 지방의 현령으로 배임지를 결정한다. 유비의 박대에 화가 났지만 자신의 유능함을 증명할 길이 없었던 봉추는 배임지에서 일을 내팽개친 채 술에 취해 버린다. 이러기를 100일이 지나자 고을 사람들의 원성이 유비에게까지 전해지게 된다. 봉추를 벌하기 위해 장비와 손건이 파견되지만 술에 취한 채 100일 동안 밀려 있던 일들을 반나절만에 현명하게 처리하는 모습을 보이자 장비까지 그의 현명함에 굴복하게 된다. 이후 제갈량이 지방 순찰을 하고 돌아와 봉추를 지방 현령으로 배임시킨 것에 대해 유비의 잘못을 지적하며 그의 라이벌을 조정으로 다시 불러들인다. 이렇게 라이벌을 자신의 발아래 두기 위한 제갈량의 술수는 자칫 봉추를 놓칠 뻔한 위기를 맡기도 한다.


서천의 맹주 유장, 그는 유약하고 능력이 모자라 그의 부하 장송이 배반을 하게 된다. 위험한 형국인 유장을 돕기 위해 같은 성을 지닌 유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형주를 어렵게 얻었지만 남을 돕기엔 힘이 부족했지만 유비는 새롭게 얻은 방통과 황충, 위연을 데리고 서천으로 향한다. 제갈량의 독주와 기존 무관들의 힘을 누르기 위한 대책이었다. 또한 기존 세력에 비해 공을 세울 수 없었던 신진 세력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이기에 그들은 최선을 다할 것이었다. 역시 방통은 천하의 귀재였다. 서천을 도모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유비에게 진언했지만 도덕적 관점에 얽매여 결정을 못 했다. 이런 그를 위해 방통은 서천을 취해야 할 마땅한 근거를 마련하여 유비의 마음을 돌리게 한다. 그런 방통이지만 공을 세우기 위한 욕심이 앞섰는지 제갈량이 보낸 천문 해석을 무시한 체 서천을 공략하다가 죽고 말았다. 천하를 얻기 위해 꼭 필요했던 방통이지만 그가 죽음으로 인해 라이벌이 사라진 것에 안도했을 제갈량.

위나라의 조비가 한헌제를 퇴위시키고 자신이 황제로 등극하고 국호를 위로 고쳤다. 이 소식을 들은 제갈량은 한나라의 정통성은 오직 유비만이 이을 수 있기에 그를 황제로 추대했다. 하지만 유비의 우유부단함과 도덕적 한계에 부딪쳐 황제 추대는 물 건너 간다. 여러 번 문무 대신을 동원해 유비를 움직이려 했지만 번번이 실패한 제갈량. 어떤 방법도 통하지 않자 제갈량은 그의 주특기인 심드렁한 판매자 전략을 구사한다. 유비가 "끝끝내 황제가 되기를 거부한다면 모든 것을 그만두고 병석에 누울 것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퇴청해 버린다. 제갈량이 없인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유비이기에 결국 제갈량을 찾아간 유비. 제갈량의 출사표 이야기와 그동안의 이야기를 듣던 유비는 제위에 오를 마땅한 명분이 없어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병석에 누운 제갈량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던 유비는 제갈량의 병이 다 나으면 다시 논의하자며 자리를 피하고자 하였다. 이때 승상부에 대기하고 있던 문무백관들이 몰려나와 바닥에 엎드리며 유비를 황제로 추대하기에 이르렀다. 상황이 이쯤 되자 유비도 더는 거절하지 못하고 신하들의 청을 받아들이며 한마디 하였다. "나를 불의에 빠뜨린 것은 바로 경들이오!" 끝내 의롭고 바른 척했던 유비는 이렇게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관우가 오나라에 의해 죽임을 당하고, 이에 대한 복수를 위해 출정하려던 장비마저 부하들의 손에 죽게 되자 독이 오른 유비는 오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출정한다. 맹렬한 복수가 시작되며 무자비한 공격으로 전장에서 승리를 쟁취하는 유비, 한껏 승리에 취한 유비는 전세를 둘러보지 않고 복수에 눈이 멀었다. 하지만 오나라의 더위에 느슨해진 촉군을 오나라의 반격에 결국 적벽 전투와 버금가는 피해를 입고 철군하게 된다. 두 동생의 복수에 실패한 유비는 죽음을 앞두고 제갈량을 부른다. 촌각을 다투는 시간에도 유비는 자신의 아들 유선을 제갈량에게 부탁한다. "만약 유선이 도울 만한 사람이거든 도와주고, 그 재주가 모자라 도울 만하지 않거든 그때는 제갈량이 성도의 주인이 되시오."

유비는 삼국에서 사람 보는 눈이 가장 정확한 사람이었다. 그는 제갈량이 충성스럽고 절개가 곧은 고결한 사람임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제갈량의 지배욕이 매우 강하다는 점도 잘 알고 있었다. 제갈량과 관우의 미묘한 관계는 서로 통제권을 쥐려는 경쟁에서 비롯되었다. 유비는 자신의 아들 유선을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유선의 지력과 능력은 그저 제갈량의 손바닥 안에서 놀 정도밖에 안 됐다. 그래서 제갈량을 믿지만 '만에 하나의 경우'를 염려해 이와 같은 예방조치를 내린 것이다.

제갈량은 융중에서 나오기 전 스스로 관중과 악의에 비유했다. 제갈량이 자신을 관중과 악의에 비유할 때, 관중과 악의는 모두 자신이 모시는 주군이 살아있을 때 웅대한 포부를 실현했다. 이들과 자신을 비교하려면 마땅히 유비가 살아있을 때 목표를 실현해야 했다. 그런데 유비가 죽은 것이다.

아무리 대단한 재주를 지녔다고 할지라도 유비를 다시 살릴 수는 없었다. 제갈량이 유선을 도와 천하를 평정해 한황실이 중흥을 실현한다 해도 스스로 자신과 한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였을까? 신중한 제갈량이지만 오나라 정벌에 온 정신을 몰두한다. 자신의 육체적 정신적 한계까지 몰아가 여러 차례 정벌에 나서지만 천문과 하늘의 뜻은 그에게 있지 않았다. 결국 자신의 생명까지 잃게 된다.


제갈량이 천하에 이름을 떨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제갈량의 삶의 족적을 따라오며 그의 심리를 살핀 결과, 제갈량은 결코 전지전능한 신도 아니고 결점 하나 없는 완벽한 사람도 아니었다. 종종 교활한 속임수를 썼을 뿐만 아니라 형주를 '빌리겠다'라며 억지를 부려서 고지식한 노숙을 가지고 놀았다. 몰인정하게 독한 수단을 써 주유를 격분시켜 죽이기까지 했다. 또한, 그는 편견에 좌우되는 인물이기도 했다. 위연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제갈량은 자나 깨나 위연을 반역자로 만들 궁리만 했으며, 심지어 죽기 직전에는 심혈을 기울여 위연을 '반역자'로 만들 함정을 파기도 했다.

그는 사람을 쓰는 데 있어서도 결코 완벽하지 않았다. 마속과 양의는 모두 제갈량의 신임을 한몸에 받은 사람들이나 결국에는 둘 다 제갈량의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그는 고삐 풀린 말처럼 오만하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항상 '채찍'을 휘둘렀다. 이 때문에 관우, 위 연, 유봉, 요립 등이 모두 큰 고초를 겪었다. 언제나 자신의 지혜와 지략을 과시하고 싶어 했으며 걸핏하면 격장법을 써서 부하들의 자존 심을 자극했다.

그도 나약하고 무력한 때가 있었다. 이때는 그도 빳빳이 쳐든 고개를 숙이고 신령에게 도움을 간청했다.

제갈량은 지극히 이기적인 사람이 아닐까 싶다. 대권을 자기 손에 틀어쥐고 끝없이 북벌을 감행한 것도 단순히 유비가 죽으면서 남긴 당 부 때문만은 아니었다. 반드시 자신의 포부를 실현해 강자아, 장량, 관 중, 악의와 같은 위대한 사람보다 더 큰 공을 세우고자 하는 욕망이 컸던 탓이 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지극히 이타적인 사람이었다. 수십 년 동안 제갈량은 나라를 집으로 삼아 오로지 촉한을 위해 제 한 몸을 아끼지 않았다.

우리는 그의 출중한 용모와 신선 같은 풍모를 기억한다. 비범한 지략과 깊은 학식도 기억한다. 우리는 그가 평생 한 주인에게 충성을 다 한 것을 기억하며 그가 '몸을 굽혀 모든 힘을 다하며 죽은 후에야 그만둔' 것을 기억한다. 그가 세찬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와 같은 삶을 살다 간 것도 기억한다. 우리는 그가 바람처럼 자유분방한 삶을 살다 간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가 살아있는 전설이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우리는 그의 수많은 실수와 단점을 잊었다. 그가 이룬 공적이 사실 강자아와 장량만 못했고 관중과 악의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을 잊었다. 제갈량이 성공을 거둔 것은 그가 인간의 심리 법칙을 훤히 꿰뚫어보고 능수능란하게 활용한 덕분이다. 제갈량이 실수를 한 것도 그 또한 인간인 탓에 인간의 심리 법칙에 제약을 받은 탓이다.


제갈량은 살아 숨 쉬는 인간이었다. 인간이기에 실수를 저지를 수 있다. 제갈량이 실수를 저질렀다고 해서 그의 완벽함을 의심해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제갈량의 완벽함에 홀려 그의 실수를 가려서도 안 된다. 그가 결코 완벽한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사람들은 그가 완벽하기를 바란다. 이 세상에 적어도 한 명은 완벽한 우상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가 이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사람이기를 바란다. 제갈량은 그만큼 영예를 누리기에 충분한 사람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각의 선택성'은 인간의 본성으로 버리려야 버릴 수 없다.

그동안 생각해 보지 못했던 제갈량의 심리와 인간적인 모습까지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심리학이제갈량에게말하다 책을 통해 삼국지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되어 정말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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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 삶의 의미와 행복을 찾아가는 인생 수업
장재형 지음 / 미디어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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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인생의 절반을 살아왔지만 행복이 뭔지 딱히 말하기 어렵다. 과연 행복이란 게 있기는 한 지 의문도 든다. 인생이란 후회밖에 없다는 비관주의가 나를 지배해서일까? 어떻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나는어떻게행복할수있는가 책을 통해 알아보자!


우리는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원한다. 하지만 정작 행복한 삶이 무엇에 달렸는가를 모른 채 걱정과 고민으로 가득 찬 상태로 오늘 하루를 보낸다. 행복하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해도 짧은 인생인데, 이리저리 헤매며 방황하는 가운데 에너지를 소진한다. 무엇보다 행복한 삶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점이 우리를 더욱 불행으로 이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원하는 꿈에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까?

청춘의 시절에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오로지 열심히 공부만 했고, 졸업 후에는 좋은 직장에 취직하기 위해 취업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때가 되면 사랑하는 누군가를 만나 결혼도 해야 했고, 토끼같이 귀여운 아이를 낳고 키워야 했다. 좋은 옷, 명품 가방, 멋진 외제차를 소유하고, 좋은 집에 살며, 남부럽지 않은 전문 직업을 갖게 되면, 영원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고 살아왔다. 하지만 삶이 주는 기쁨과 고통이 엇갈려 올 때, 가끔은 발길을 멈추고 '나는 단 한 번뿐인 인생을 하루하루 잘 살아가고 있는가?' 하고 생각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과연 자신의 진정한 꿈을 아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또 안다고 해도, 그 꿈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 자신의 신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리가 겪는 고통의 원인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마음의 안정을 얻을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우리를 옭아매며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고뇌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바로 '현재 이 순간'에 있다. 행복은 지금 이 순간이 주는 선물이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지속 가능한 행복감이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행복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현존하는 이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닫는 것이 중요하다.

행복은 어느 날 우연히 찾아오는 것도 아니며, 행복한 삶을 방해하는 운명의 여신이 부리는 장난에 대항할 방법도 없다. 진정으로 행복해지고 싶다면 자신이 몰입할 수 있는 것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간절히 원했던 어떤 것을 한 번 성취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것이 평생토록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전 생애를 간절함으로 가득 채워야 할 것이다. 인간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구체적인 인간상이 없었다. 인간은 그 본질 즉, 목적이나 이유가 정해져 있지 않은 채로 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다.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존재의 이유와 의미를 만들어가는 주체가 바로 인간이다. 선택은 오직 자기 자신만 발견하기 위한 것이고 자기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만약 잘못된 선택으로 비록 후회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미래에서 과거를 다시 찾으려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이 아쉽고, 저것을 선택하면 이것이 아쉬운 것이 인생의 영원한 딜레마일 수밖에 없다. 원래 세상에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없다. 단지 우리의 믿음 즉, 생각이 그것을 결정할 뿐이다. 우리는 '만일 그때 그런 일을 겪지 않았더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텐데'라는 생각을 수시로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일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믿음이다.

우리의 인생은 한 줄기 빛처럼 재빠르게 지나간다. 내 삶이 현재 행복한가하고 가늠하기엔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 톨스토이는 “과거는 이미 없는 것이며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것이다.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지 현재의 이 순간뿐이다. 그리고 그곳에, 그 순간에 우리의 모든 삶은 존재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한순간에 자기의 온 힘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삶이 '카르페 디엠 Carpe Diem'이다. 카르페 디엠은 '현재를 잡아라'로 번역되는 라틴어다. 이 말은 '현재를 즐겨라',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라는 뜻이다. 지금 이 현재의 삶에 집중해 보자. 지금 먹고 있는 음식, 지금 하는 일, 지금 내 눈앞에 있는 사람에 충실해야 한다.

자신의 운명을 미래의 막연한 희망에 맡기지 말고, 현재의 삶을 느껴야 한다. 기쁠 때는 마음껏 기뻐하고, 슬플 때는 마음껏 눈물을 흘릴 수 있어야 행복한 사람이다. 또한 시련에 부딪혔다면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앞으로 다가올 것들에 또다시 희망이라는 단어를 품고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라. 절망이 다시 희망으로 바뀌는 삶의 변화를 위해 절망을 뚫고 나아가 보자.

시간과 공간은 무한하지만, 육체를 지닌 우리 인간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다. 또한 끝없는 변화 속에서 영원한 것을 찾을 수 없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인간은 절망에 빠질 수밖에 없다.

누구나 영원히 살 것처럼 생각하며 산다. 항상 보다 좋은 것을 꿈꾸며 살기도 하고 동시에 과거에 놓쳐 버린 것들에 대해 후회와 고통 속에 살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 인생은 지금 말하는 순간 영원히 과거 속으로 흘러가버린다. 생존을 위해, 살기 위해 발버둥을 치다가 결국 대부분 자신의 삶을 즐기지도 못한 채 공허한 삶만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인간의 생애는 희망에 의해 끊임없이 기만당하면서 죽음의 품속으로 뛰어드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삶이 슬픈 것은 결국 시간에 얽매인 삶을 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절대로 자신의 고통스러운 삶과 겨루어서 무릎을 꿇어서는 안되는 존재라는 것을 헤밍웨이는 말하고 있다. 왜 우리는 어차피 죽음에 이르는 유한한 삶을 살면서 닿을 수 없을 것 같이 요원한 희망을 좇는 것일까?

죽음이란 무엇일까? 우리는 죽음을 직접적으로 경험할 수는 없다. 따라서 죽음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없다. 단지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만 알뿐이다. 즉,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피할 수 없다. 우리 마음대로 죽는 시기를 늦출 수도 없다. 또한 타인에게 대신 죽어 달라고 부탁할 수도 없다. 죽음을 앞둔 사람은 홀로 그 두려움을 맞이해야 한다. 삶의 끝자락에서 인생을 잘못 살았다고 후회해 봤자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 비록 죽을 운명이라는 짐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지만, 그 하루하루가 마치 자신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삶에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 현재에 충실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야 한다. “죽음을 통해 단 한 번뿐인 이 삶을 사랑하라!"

고전을 통해 인생에 대해, 행복에 대해, 죽음에 대해, 깨달음에 대해 설명했다. 아직까진 알쏭달쏭하지만 내 안에서 뭔가 '어?'하는 느낌이 든다. 책 속에 소개된 고전이 낯설긴 하지만 그 속에 인생의 지혜가 담겨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그 책들을 찾아 읽고 싶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그렇지만 #나는어떻게행복할수있는가 에 대한 대답은 조금은 찾은 것 같다.

#미다어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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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의 심리학 수업
황양밍 지음, 이영주 옮김 / 미디어숲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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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후반에 이직을 하며 받은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두통에 심장 쪼임 증상까지... 더 참지 못하고 병원 치료를 받으며 2주가 지나며 조금은 회복되었다. 어떡하면 스트레스를 잘 다스릴 수 있을지 #한밤중의심리학수업 책을 통해 알아보자!


#미디어숲 출판에서는 중국 출신 작가들의 심리학 책을 자주 소개한다. 하지만 왠지 중국 하면 우리보다 못 산다는 근거 없는 하대감이 작용한다. 심리학 하면 미국이나 유럽이 아니겠어? 맞다! 미디어숲에서 소개하는 중국 작가들의 책을 보면뭔가 허전하고 허접하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독자도 20대 초반이나 중반까지 사회 초년생을 대상으로 하기에 나 같은 아저씨가 읽기엔 다소 싱겁게 느껴진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 2~3쪽으로 마무리하니 더욱 읽을거리가 없다. 책을 다 읽었지만 이 책에선 건진 게 아무것도 없다. 독자에게 그리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 없다. 만약 내돈내산 했으면 엄청 후회했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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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게 ‘좋아요’를 눌러주세요 - 흔들림 없이 나답게 나만의 인생을 사는 법
츠지 슈이치 지음, 한세희 옮김 / 밀리언서재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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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에 쫓겨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있어서 '나'라는 존재는 무엇일까? '나'라는 존재는 삶을 살아가는 이유이지만 우리는 너무 모른 채 살고 있다. 그렇기에 목표, 꿈, 성공을 위해 나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며 그것들을 달성하면 행복할 거라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섰을 땐 공허와 허무만 밀려올 뿐이다. 그럼 한 번뿐인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흔들림 없이 나답게 나만의 인생을 사는 법을 이야기하는 #나자신에게좋아요를눌러주세요 책을 통해 답을 얻어보자!


자기긍정감의 원래 의미는 '나의 모든 모습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를 긍정하려면 어쩔 수 없이 남과 비교하거나, 외부의 평가에 집착하는 인지적인 뇌가 발동한다. 바로 이것이 사회문제를 낳는 원인입니다. 반면 자연계는 조화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생명 하나하나에는 자기존재감은 있지만 자신을 긍정하기 위해 성공에 집착하는 욕구나 욕망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인간의 뇌가 폭주한 것이 자기긍정감에 대한 맹신'입니다. 인지적인 뇌는 존경의 욕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는 남에게 인정받고 존경받음으로써 자기긍정감을 얻으려 애씁니다. 말 그대로 '이러다 죽겠다'라고 고통스러워하면서까지 말입니다. 왜일까요? 존경의 욕구는 끝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개미지옥에 빠진 것처럼 끊임없이 타인의 존경을 바라고 채우려 합니다. 인지적인 뇌가 남과 비교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욕망 때문에 언제나 불만족스러운 것입니다.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존경의 욕구, 타인에게 의존하는 불안정한 자기긍정감, 무리한 자기현시욕이라는 개미지옥의 미로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열쇠는 '자기존재감'입니다. 나라는 존재 자체에 몰입하면 타인에게 의존할 필요 없습니다. 남의 존경을 받거나 남이 나를 인정하는 일에 집착하지 안으므로 나를 과대 포장할 필요도 없습니다. '지금 나에게 있는 것' 자체가 살아가는 에너지의 원천이 됩니다. 이것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남의 기준으로 자신을 평가하여 긍정하거나 가치를 매길 필요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기 존재의 가치를 찾는 것을 어려워합니다. 지금까지 인지적으로 진화하고 교육받은 탓에 동기부여가 될 만한 것을 외부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이미 내 안에 존재하는 것'을 발견하는 '뇌의 능력'이 떨어진 것이 문제의 원인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관점을 달리하면 누구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여기에 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없는 것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발견하기만 하면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똑같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하나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에게나 있는 선천적 능력입니다. 어딘가에서 따로 배울 필요도 없고 후천적인 능력처럼 남과 비교할 일도 없습니다. 이쯤에서 인지적인 뇌와 비인지적인 뇌의 사고가 무엇이 다른지를 비교하여 정리해 봅시다.

먼저 인지적인 뇌는 사건과 같이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에 주목합니다. 반면 비인지적인 뇌는 나의 마음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인지적인 뇌는 부족함을 보지만, 비인지적인 뇌는 있는 그대로를 봅니다. 인지적인 뇌는 남과 비교하지만, 비인지적인 뇌는 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리고 인지적인 뇌는 과거나 미래를 분석하지만, 비인지적인 뇌는 지금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렇게 둘의 역할은 다릅니다.


우리는 인지적인 뇌를 활용해 외부의 자극을 받아 노력하고 에너지를 냅니다. 그래서 '어떻게 동기부여를 할 것인가?’, ‘왜 의욕이 생기지 않지?'라는 외부의 조건에 의존합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평생 불안하고 초조할 뿐입니다. 의욕이나 동기부여의 원천을 밖에서 찾지 않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을 토대로 동기부여하는 것을 '내재적 동기(intrinsic motivation)'라고 합니다. 이때 내 안에서 동기부여를 하는 에너지의 원천은 '좋아한다'라는 감정입니다. 이 감정은 내 안의 고유한 원동력입니다. 나만이 좋아하는 감정을 발견했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한 번 찾아봅시다.

나만의 '좋아하는 감정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도 나 자신이며, 이는 비인지적 사고방식으로 발견한 나만의 것입니다. 이 감정은 모든 사람들이 가지고 있고 살아가는 데 원동력이 됩니다. 그리고 나를 움직이는 이 원동력이 바로 삶의 목적입니다. 삶의 목적은 내 안에 있습니다. 우선 나에게 '왜'라고 질문하는 것부터 시작해 봅시다.

나는 '왜' 그 행동을 했을까?

나는 ‘왜’ 그 목표를 정했을까?

나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나는 '왜' 그것을 했을까?

나는 '왜' 이기고 싶은가?

비인지적인 관점으로 바꾸는 습관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일까?'를 발견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인지의 세계에서 살면 본연의 모습인 'Being'보다 '무엇을 해야 한다'는 'Doing'만을 고집하게 됩니다.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좋은 대학에 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남에게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경기에서 이기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머릿속이 이러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은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므로 자기긍정감을 기르느라 바쁩니다. 하지만 앞서 이야기했듯이 자기긍정감을 지속적으로 얻기는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한계가 있습니다. 결과에만 집중하는 'Doing'보다 내 안에 존재하는 본연의 내 모습인 'Being'을 발견할 수 있는 비인지적 사고를 활용해 보세요. 지금 이 순간은 내 것으로, 자기존재감의 원천입니다. 지금 이 순간은 항상 백지상태로 존재하며, 새하얀 도화지에 마음대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나 자신뿐입니다. 따라서 '지금을 충실히 살아야지'라며 비인지적으로 생각하는 순간이 바로 나만의 인생을 살 수 있는 출발점입니다.


#나자신에게좋아요를눌러주세요 책에서는 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 역시 어렵다. 그동안 자기긍정감으로 살아왔기 때문이기에 더 그렇지 않을까? 책을 읽는 동안 오히려 더 개미지옥에 떨어진 듯 아리송하기만 하다.

#밀리언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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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퀴벌레를 오해했습니다 - 싫어하던 바퀴벌레의 매력에 푹 빠진 젊은 과학자의 이야기
야나기사와 시즈마 지음, 명다인 옮김 / 리드리드출판(한국능률협회) / 202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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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즈 하나!

이 녀석을 본 사람은 누구라도 살인 본능을 느낀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꺄악~ 소리를 지르며 의자 위로 올라간다. 심지어 이 녀석을 박멸하기 위한 특수 조직도 있다. 이 녀석은 누구일까? 정답은 바로 바퀴벌레. 그런데 동그랗지도 않는데 왜 바퀴벌레라고 이름 지었을까? 바퀴벌레의 이름의 유래가 궁금해 검색을 해보니 신기한 것들이 눈에 들어온다.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아름다운 그 얼굴 라 쿠카라차 라 쿠카라차~.’ 명랑한 멜로디로 친숙한 이 노래의 제목 ‘라 쿠카라차’는 스페인어로 ‘바퀴벌레’라는 뜻. 흥겨운 멜로디만 기억하고 있는 사람에겐 충격일 테지만, 사실이다. 영어로 바퀴벌레를 뜻하는 ‘cockroach’ 역시 ‘라 쿠카라차’에서 유래했다.[네이버 지식백과] 지구의 숨은 지배자 - 바퀴벌레 (KISTI의 과학향기 칼럼)

바퀴벌레의 이름은 벌레는 뜻하는 바구미와 비슷하다는 데서 온 우리 고유어란 소리도 있고 발이 수레바퀴처럼 잘 움직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지만 아직 확실한 건 없다. 출처 : 광주드림(http://www.gjdream.com) 더 검색을 해도 특별한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었다.


#내가바퀴벌레를오해했습니다 책을 보기 전까지는 바퀴벌레에 대해 혐오스럽다 생각했다. 또 바퀴 한 마리만 있어도 집에 거의 백 마리의 바퀴벌레가 살고 있다고 믿어왔다. 책을 읽으며 이 모두 사실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었고, 왜 바퀴벌레를 혐오스럽게 생각하는지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건 바퀴벌레의 외모 때문이지 않을까? 검은 갑옷을 입은 채 엄청 빨리 빛을 등지고 도망치는 모습이 그리 좋아 보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바퀴벌레가 생태계에서 썩은 동물이나 식물을 먹어 청소하는 청소부의 역할을 하고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야나기사와시즈마 는 어려서부터 생물을 좋아해 자연과학부에 들어 활동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막연히 생물과 관련된 일을 하겠다는 생각에 곤충관에서 일하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곤충관에 전시하기 위해 바퀴벌레를 사육하겠다는 다짐에 경악을 했다. 같은 사무실에서 바퀴벌레와의 합방은 그에게도 무리였다. 하지만 동료가 쉬는 날 바퀴벌레에게 먹이를 주며 바퀴벌레와 관계가 시작된다.

2017년 3월 곤충관 업무의 일환으로 야에야마 열도의 이리오모테섬으로 방문하며 바퀴벌레와 인연이 깊어진다. 그곳에는 히메마루바퀴가 있는데 암컷은 공벌레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 수 있다는 도감의 설명에 꼭 히메마루바퀴를 수집하겠다 다짐한다. 이리오모테섬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목표하던 벌레 채집이 완료되었다. 또 없을까 싶어 헤드라이트로 도로변의 나무를 비추다 나무줄기에 까만색 타원형이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뭘까 싶어 바짝 다가갔는데 길게 뻗은 더듬이가 보였다. 그렇게 찾고 싶어 하던 바로 히메마루바퀴였다.

이렇게 신기한 바퀴벌레들을 모아 전시를 하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점점 발전해 정말로 3~4월 사이 곤충 비수기에 특별 전시를 하게 되었다. 다양한 바퀴벨레들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접속해 신기한 바퀴벨레들을 구입하며 전시관을 꾸몄다. 특이한 생김새 때문에 바퀴벌레가 아닌 줄 알고 만졌던 아이들에게 바퀴벌레라 알려주니 모두 경악하며 손을 띄는 모습에 약간은 상처를 받았다. 조금 특이하고 예쁜 바퀴벌레가 있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이 들었다.


2018년 채집 출장지로 일본의 최서단에 위치한 요나구니섬으로 결정되었다. 여러 종류의 생물들 중에 일본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수수께끼 루리바퀴'가 서식한다는 정보를 알아냈다. 일본보다는 대만에 더 가까운 요나구니섬에는 다양한 생물들이 존재했다. 그러나 '수수께끼 루리바퀴'는 아무리 찾아봐도 눈에 띄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 밤에 한 수목에서 1센티미터 정도의 크기에 털이 난 갈색 생물을 발견했다. 오매불망 기다리던 바로 그 루리바퀴였다. 간신히 채집한 '수수께끼 루리바퀴'는 아직 유충이라 전반적으로 갈색이었다. 보통의 루리바퀴와 뭐가 다른지 차이점을 알아내려면 성충으로 부화시켜야 했다. 다행히 암수 한 마리씩을 채집했으니 이참에 번식까지 성공하면 금상첨화다. 그 후 한 달이 지났다. 루리바퀴보다 한 둘레 더 큰 몸통, 에메랄드그린으로 빛나는 날개에 선명하지 않은 빨간 무늬를 가진 아름다운 수컷 바퀴벌레가 부화했다. 뒤이어 부화한 암컷도 일반 루리바퀴보다 컸다. 게다가 루리바퀴라면 있어야 할 배의 노란 무늬가 보이지 않았고, 색깔도 전체적으로 어두워서 완전히 다른 종으로 보였다. 루리바퀴와 나란히 놓고 보니 완전히 다른 바퀴벌레이다. 미기록종이라는 확신이 들자 심장이 두근거렸다. 처음 발견된 종이었다. 주위의 도움을 받아 논문을 작성하여 학계에 보고했고, 논문이 통과되어 공식적인 이름으로 'donanensis tokaraensis'라 이름을 붙였다.

책을 읽으며 다양한 바퀴벌레의 그림을 보면서도 왠지 거부감이 들기에 아직까지는 바퀴벌레에 대한 편견이 깨지지 않았다. 그래도 인류의 적으로만 알고 있던 바퀴벌레에 대해 조금을 이해할 수 있어 좋은 기회였다.

#리드리드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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