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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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쿠다 히데오는 '마돈나'에 대해 어떤 소설을 썼을까?

막연히 궁금했고, 작가의 이름을 보고 덥썩 집어왔다.


5개의 단편소설을 보니, '마돈나'는 딱 한 소설의 제목이며 딱 한번 나오는 단어였다.

마돈나와 같이 매혹적인 건 아니지만, 마돈나의 이름에 걸맞게 매력적인 여성이 등장한다.

도모미! 마돈나와 같은 여성이 부서에 등장함으로 남자들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를 둘러싼 남자들의 유치하고 기막힌 티격태격 충돌기가 재밌게 그려졌다.

마음은 은밀한 거라 남들은 모르는 중년 아저씨의 발칙한 마음을 드러낸 이 소설이 신선했다.

그이유인 즉슥, 쌩판 배나온 아저씨같은 중년도 자기도 모르게 사랑을 빠지는구나!라는 (남들은 다 아는데 나만 모르는 것 같은?) 사실을 알아서?


5개의 단편 소설의 주인공들은 40대 중반으로, 하나같이 대기업에서 자신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살아온 가장들이다. 굳이 MBTI로 말한다면 ISTJ !!

그들의 성실함과 착실함을 깨부수는 주변인물들이 등장하며 소설은 다채롭게 중년 남성들의 삶을 그려냈다.


이 책이 출간된 게(그것도 우리 나라에) 2007년이기 때문에 다소 현실의 간극(회사문화, 성차별, 성희롱을 대하는 태도 등)은 시대적인 느낌이 남아있다. 여성에게 차 심부름을 시킨다거나, 아내에게 여행을 가지 못하게 하고, 무시하는 듯한 말투는 2022년을 사는 여성으로써 보기에 거북스럽긴 하다. 오히려 그 보수적인 문화를 깨어보려는 시도들이 이때부터 하나하나 있었겠구나 싶다. 별생각없이 읽었는데, 오쿠다 히데오스러운 쉬운 문장, 묵직한 현실을 살짝 꼬집어 유쾌하게 돌려 그려낸 이야기에 몰입해 읽었다. 단편 드라마 5편을 재밌게 본 것 같았다.


마지막 작품인 파티오를 읽으면서는 오효이 씨 그리고 노부히사의 아버지와 비슷한 연배인 친정아빠가 많이 생각이 났다. 아버지에게 전화를 주저하는 노부히사의 모습은 나와도 같았고, 자식에게 혹은 누구에게도 피해주지 않으려고 자기 보호하는 아버지나 오효이 씨의 모습이 친정아빠와 비슷해 보였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모습으로 우리 친정아빠도 당신의 삶을 잘 살아내시겠구나 안도하기도 했다.


나는 보수적인가? 아니면 나는 기존의 문화와 달리 내가 생각하는 생각으로 살 것인가?

나는 누구와 비슷하며 어떤 삶을 살 수 있을까? 이들처럼 기존의 문화와 대치해서 살아볼 용기는 있을까?

생각해보기도 한 책이었다.

아무튼 가독성은 끝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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튜브
손원평 지음 / 창비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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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발상과 날카로운 지적인 돋보였던 작가님의 책에 매료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을 주저 않고 집어들었다. 손원평 작가님의 작품들은 작가님이 내셨던 제목처럼 '프리즘' 같다. 작품의 결이 다채롭다.


주인공 김성곤 안드레아의 여러 자살시도가 어처구니 없이 막히며, 다시 살아보기로 결심한다. 라이더로 일을 하고, 소소하게는 굽은 허리를 바르게 펴서 바른 자세를 갖도록 매일 사진찍으며 노력했다. 그리고 자신의 피자집에서 알바로 있었던 진석과 함께 있으면서 유투버로의 삶을 살며, 자신이 살아온 경험을 토대로 새로운 시도로 사업계획을 구상한다. 그리고 여러 분투끝에 결국은 성공으로 자신의 삶을 이끌어냈다. 그런데 왜 그는 끝내 자살을 결심했을까?


여기까지 읽으면서 뭔가 번지수를 잘못 찾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자기개발서처럼 뭔가 성공과 그 기준으로 이끄는 것처럼 보이는데다가, 인물들의 너무 올바르고 자연스럽지 못한 성공을 향한 행동들이 내겐 부담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을 열 때마다 자세를 바르게 고치려고 나도 모르게 허리와 어깨를 폈던 게 우습지만 사실이다. 자기개발서의 설득에 홀린 듯 하면서 '이건 소설인데... 내가 성공을 알려고 이 책을 읽은 건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까지였다면 나는 이 책의 리뷰를 쓰는 게 지금보다(지금도 아니 매번 리뷰쓰기는 어렵다.ㅠㅠ) 더 힘들었을 것 같다. 이 책은 '성공'의 삶을 지향하고 그걸 목표로 제시하는 책은 분명 아니다.(한때 루저였던 인물들이 성공을 앞두고 올바르게 행동하는 모습에 저같이 혹시 손발이 오그라드는 분이 계시다면 조금더 힘을 내세요!! ^^)


물론 원하는 것을 이루고 난 뒤에도 다시 가라앉을 수 있다. 영원토록 따듯한 바닷물 위에 아무런 노력도 없이 둥둥 떠있는 속 편한 삶이란 없으며, 혹여 그 비슷한 것이 어딘가 존재한다면 장담컨대 그 삶의 이름은 행복이 아니라 권태와 무기력 일 것이다. 우린 실내 수영장이 아니라 풍랑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언젠가 또 비바람을 만나야 하고 그러면 또 헤쳐 나와야 한다. 자신만의 기술과 혜안을 가지고. p.272


읽다보니 우리는 실내수영장이 아닌 풍랑 속의 삶을 살고 있다는 말이 맞다. 또한 '인생은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인생은 어떤 것이 복이 되고, 어떤 것이 화가 된다고 단정짓기 어렵다. 이런 삶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풍랑을 거쳐가며 인생을 대해야 할까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이다. 또한, 인생 앞에서 우리의 노력과 뭔가를 해석하려고 애쓰는 모습은 헛될지도 모르겠다. 그저 겸손하게 삶을 대하며 그저 충실하게 살아가야 하는 거 아닐까? 그렇다고 삶을 허무하게 바라보는 건 아니니 오해마시길.


삶의 가장 큰 딜레마는 그것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삶은 방향도 목적도 없이 흐른다. 인과와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이 종종 헛된 이유는 그래서이다. 찾았다고 생각한 정답은 단기간의 해답이 될지언정 지속되는 삶 전체를 꿰뚫기 어렵다. 삶을 관통하는 단 한가지 진리는, 그것이 계속 진행된다는 것뿐이다. p.238


작가님은 오래전 포털의 질문란에 '실패한 사람이 다시 성공하는 이야기를 추천해달라는, 그런 이야기가 자신에게 너무 필요하다'는 글을 보고 이 작품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었단다. 나또한 성공하는 이야기는 궁금해 했지만, 실패한 이가 다시 성공하는 것에 대해선 나또한 들어본 적도 궁금해 한 적도 없는 것 같다. 매체에서 확 두드러졌던 이들의 이야기는 한순간 번쩍였다가 어딘가로 사라졌고, 그저 그들은 성공했던 어떤 영웅처럼 회자 된다. 이 책을 읽으니 그렇게 우리의 시선을 확 끌었던 평범했지만, 훌륭하게 성공을 일궈낸 이들의 현재 모습이 궁금해진다. 가끔은 꺾어진 그들의 근황을 우연히 보기도 했다. 그들의 삶에서 모든 성공의 끝이 성공에서 끝나지 않음을 그리고 우리가 죽는날까지 인생을 늘 성공으로 끝맺게 가꿔가기란 쉽지 않다는 걸 헤아려 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이라고 뭐가 다르랴.

잘 되어가는 듯 보여도 어쩔 수 없는 상황(코로나, 자연재해 등 여러 알 수 없는 환경)에 무너지게 되는 삶의 굴곡을 누가 피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우리들 모두가 그러한 삶을 살고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굴곡 속에서 '다시 일어나 보시라'는 응원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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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긴밤 - 제21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대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83
루리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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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지 못하게 독서모임이라는 걸 이끄는 사람이 되어 첫 책으로 이 책을 선정했다.

다들 엄마들인데다, 그림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시고 이 책은 최근 많은 이들이 좋다고 했던 책이니 어느 정도의 안정성을 깔고 들어가는 책이었다. 그 덕에 나는 이 책을 세 번째 읽고 말았다.


매사에 무덤덤한 편이라 책이나 경험을 통해 감정을 끌어올리려고는 하지만, 그게 잘 안 된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내게 그렇게 큰 임팩트를 주는 책은 아니다. 잔잔하면서도 그윽한 슬픔이 맴돌고, 서로를 교감하며 아껴주는 착한 장면의 책이다. 그저 내가 겪어보지 못한 상실과 아픔, 그리고 그 수많은 아픔의 밤을 나는 그저 헤아리고 또 헤아려볼 뿐이다. 지난 두 번을 읽는 내내 잠잠한 마음이었고, 이번에도 그랬다. 그저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기분으로 이 책도 그렇게 담담하게 나아가는 맘으로 읽었다.

억지로 이 책에서 느낀 감정을 끌어내지 않겠다.

그저 받아들이고, 공감을 표했다.

장면장면을 쓰다듬는 마음으로 이해했고 어루만지면서 아픔을 나누며 읽었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의 긴긴밤을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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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식물 - 그들에게 내가 꼭 필요하다는 기분이 소중하다 아무튼 시리즈 19
임이랑 지음 / 코난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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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갑작스럽게 인왕산 자락길을 나선날, 들른 '초소책방'에서 골라 읽은 책이다. <아무튼>시리즈 책들은 기획부터가 신선한데다 주제가 생활과 밀접,친근한 에세이로 가득하다. 읽으면 거의 '재밌게 읽기'는 성공할 만한 책들이라 생각없이 집어도된다. 비치되어 있는 책들이 거의 환경에 관한 책들이었는데, 두께로보나 쉽게 다가기로 보나 이 책이 내게 주어진 시간엔 읽기 좋다고 여겼다.

'식물'에 대한 이야기는 전문적이거나 플랜트 러버들이나 보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심심하면 말할 듯한 대사 '난 선인장도 죽인 사람이야!'를 뱉은 사람이 나였기 때문이다. 몇 년 전만해도 식물 이야기는 내 관심을 끌만한 이야기는 아녔다.


3년 전, 키우기 쉽다고들 말하는 고무나무 화분이 첫 대형화분으로 들어왔다. 뭣 모르고 환기시켜준다고 바람 쐬주다가 최후엔 가지 세 개 중 한 가지에 달린 마지막 잎새(?)가 떨어져 버렸다. 나는 남편의 비웃음('뭐야!! 고무나무는 쉽다던데 그 마저 죽인 거야?? 깔깔깔'라고 했지!!!! 잊지 않겠습니다!!!)과 함께 식포자가 되었다. 그러다 이사를 했고, 아이들이 학교에서 수시로 가지고 오는 화분과 씨앗 그리고 집들이 선물로 받은 각종 화분들이 우리집에 줄을 지어서면서 죽일 수 없어 살리고자 행동을 재개했다. 식물에 대한 짝사랑을 다시 해볼 기회를 갖게 된 낸 거였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말이 맞던가? 나는 근 2년간 고추, 상추, 토마토, 수박, 강낭콩, 바질, 해바라기까지 성공적으로 키워냈다. 우리집에 들어온 여인초와 스투키는 1년이 넘게 생존 중이며, 수중식물인 스킨답서스, 테이블 야자, 개운죽, 싱고니움까지 쑥쑥 잘 자라게 돌봐주고 있다. 세상에 식물 똥손이란 없다. 키우고 죽여보며 관심을 가져봐야 식물을 키우는 노하우가 스스로에게 베일 뿐이다.


'정말 세상에 쉬운 식물은 없구나.'

식물과 사람 사이에도 분명 궁합이 존재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식물과의 궁합은 생년월일만으로는 알아볼 수 없다. 나에게 어떤 식물이 가장 잘 맞는지는 많이 키워보고 또 많이 죽여보며 알아가는 수밖에. p.121


그녀의 이 위로의 말을 2년 전에 읽었더라면 남편의 비웃음에도 콧방귀끼며 두고보라고 큰 소리쳤을 텐데 아쉽다. 식물에게 죄책감을 가득안은 쭈구리로 식물에게 몰래몰래 사랑을 베풀다 식물생장에 성공(?)을 이루고 난 지금에야 누구에게나 식물초보 땐 실패담들이 하나쯤은 있음을 알았다.

이 책에서 새롭게 안 동식물의 정보는 흥미로웠다. 에세인데 감성적일 뿐 아니라 은근히 지식도 전달해 주잖아!! 비에 질소가 풍부하다니 비가 오는 날에 담겨진 비를 보면 버리기에 바빴는데, 식물들에겐 고로쇠물과 같은 존재라니!! 머리 속에 꼭꼭 기억해둔다. 옮겨심는다고 식물이 성장하던 때마다 다이소에서 흙을 사다 채웠다. 나도 옆 화단에서 흙 좀 퍼오면 안 되나 생각했는데, 그러면 안 되는 이유를 이 책을 통해서야 알게 된다. 영양부족! 배수불량!!


물 주라는 정보, 흙의 습도를 재는 방법 등. 정말이지 내게는 하나도 도움이 안 되는 정보였다. 어떨 땐 그 말을 순순히 듣고 줬다가 죽인 적도 몇 번 있고, 손가락을 아무리 후벼파도 이게 건조한 건지 습한 건지 감이 안 잡혔다. '습한 것도 같고, 건조한 것도 같고 그러니 물주자!' 이런 결론만 내렸으니 결국엔 다 죽고 말았지...


테라스에 식물들을 내놓고 키우면서부터 나는 비를 좋아하게 되었다. 번개가 치는 날에는 비에 질소가 풍부하게 담겨 있다고 한다. 질소는 비료의 훌륭한 원료로 사용되기 때문에 식물 애호가들은 비를 보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돈 주고 사서라도 식물에게 뿌려줄 영양분이 하늘에서 내리니 비 오는 날이 반가울 수밖에. p.19


초보 가드너들이 식물을 죽이는 가장 흔한 이유는 과습이다. '일주일에 몇 번 물 주세요' 하는 말을 무작정 따르다 보면 식물은 서서히 익사하게 된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마치 먹은 음식이 완전히 소화되고도 전에 더 많은 음식을 억지로 계속 입에 밀어 넣는 꼴과 같다. 흙의 상태를 파악하고 흙이 적당히 말랐을 때 물을 줘야 식물 뿌리가 건강하게 자란다. p.31

초보 시절엔 흙을 돈 주고 사려니 어색했다. 지천에 널린 게 흙인데 산이나 들에서 한 삽 퍼 와서 쓰면 안 되는 걸까 궁금했다. 알고 보니 땅에서 퍼올린 흙 속에는 수많은 벌레와 세균이 존재하기 때문에 집 안에 두기엔 곤란한단다. 영양분도 부족하고 배수도 불량하다. 산에 사는 식물들에게는 괜찮을지 몰라도 집 안에서 사는 식물들에게는 해로운 흙이다. 친구가 던졌던 명언이 생각난다.

'원래 사람이 안 키우는 식물이 제일 잘 커.'


씨앗이 내 손에 들어와 흙에 심고, 하루가 다르게 싹이 트고, 줄기를 뻗어나가며,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는 매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이건 키워본 사람만 안다. 그 아이와 나는 한마디 말이 없어도 잘 자라줌으로 그 아이의 생명력을 드러내고, 나는 사랑스레 쳐다보며 아이를 쓰다듬는다. 그걸로 충분한 교감이 된다는 사실! 저자의 말처럼 내가 물을 주고 신경썼을 때만큼 식물은 정직하게 성장하고 살아간다. 거기서 진정한 힐링을 맛보는 것이다.


나는 이제 이 즐거움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때와 영영 다른 사람이 되었다. 예전의 나는 예전의 나로서, 지금의 나는 지금의 나로서 스스로를 사랑하고 혐오한다. 그 커다란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옥수수를 심고 온 정성을 다해 길러 따 먹어봤다는 경험 때문에 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하나도 없다. 단지 수확 직후부터 빠르게 당도가 떨어진다는 옥수수를 최고로 맛있게 먹어보려고 물을 팔팔 끓여두고 테라스에 올라가 옥수수를 땄던 기억 그 자체가 즐겁고 사랑스럽다. 얼기설기 이빨 빠진 것처럼 엉성하게 자라준 옥수수 덕분에, 단맛이 하나도 없었지만 너무 기쁘게 베어 먹었던 수박 덕분에, 스스로를 혐오하는 어떤 밤에 그 혐오를, 나를 달래줄 고마운 카드가 한 장 더 생겼다. p.115



꽃집을 지나치면 꽃들을 훑어본다. 화분을 펼쳐놓은 인도를 지나다 보면 식물 하나하나를 눈여겨 본다. 그만큼 내게 식물이 내뿜은 색을, 그가 담고 있는 생명력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의 문장문장을 공감하고 이해한다.


식물을 키우려고 포기하고자 했던 삶에 의욕을 가진 것까지는 아니지만(이미 내게는 식물 대신 아이가 있으니까), 아직은 저자만큼 식물에 따라서 비를 맞게 하고, 해를 쬐주려고 가장 필요한 순서대로 배열을 한다던가, 벌레 하나하나를 잡아줄만한 열정과 에너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식세계에 입문한 사람으로써 식물이 주는 잔잔한 기쁨과 행복을 누릴 줄은 아는 이라 자칭 할 수 있기에 <아무튼, 식물>은 너무나 즐겁게 읽힌 책이었다. 주변의 식집사들에게 선물해주고픈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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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할머니
심윤경 지음 / 사계절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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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윤경 작가님이 쓴 에세이 신간이라고 해서 집어 들었다. 그의 이름만으로도 충분히 읽고 싶은 책이었다.

이 책은 할머니와 동거하며 12손자녀의 막내로 사랑을 듬뿍 받은 심윤경 작가의 할머니와의 삶을 고찰(?) 하며 쓴 에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았는지 알 수 있는데, 사랑을 어떻게 분량으로 표현할 생각을 했을까 싶을 정도로 초반부터 글이 마음을 콩콩 두드린다.


나는 친척들 사이에서 공식적으로 '할머니가 가장 사랑하셨던 아이'라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 열두 손자녀들 중에 내가 가장 막내였으니까 원래부터 풍성했던 그분 사랑의 잔여분을 내가 모두 털어 받았던 것 같다. 양으로 따지자면 그것은 3~4인분은 충분히 되었을지도 모른다. ... 할머니의 사랑은 뭐랄까. 어린 나에게 '쌀 한 말' 같은 느낌으로 들렸다. 많고 풍성하고 좋은 것이겠지만 그래서 그걸로 뭘 어쩌란 소리인가 싶은 기분이었다.p.19



소설가의 글이라지만 글이 찰지달까? 읽으면서도 감칠맛 나는 글이라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아무리 소설가여서라지만, 탁월한 비유와 섬세한 캐치를 글로 변환한 표현력은 정말이지 내가 좋아하는 작가님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만하다. 소설가 특유의 관찰력과 해석, 재치와 센스 넘치는 단어 선택에 있어 소설 <설이>에 이어 이번에도 반했다. 그러니 인덱스 테이프가 촘촘하게 페이지를 채우고도 남지!!



실은 그런 혼란스러움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육아에 답을 알 수만 있다면, 그것이 정답이라고 누가 정해주기만 하면 힘들더라도 참고 꾸역꾸역 할 텐데. 낯가림 때문에 몸과 마음이 힘든데 내가 지금 잘하는 것인지 알 수도 없고, 심지어 아이를 망치는 중일 수도 있다니. 그건 너무 가혹했다. 젊고 경험이 없던 나에게는 어딘가 믿고 의지할 확실한 무언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는데, 아이를 키우는 문제에는 확실함이라는 게 아예 없다시피 했다. 몸이 힘든 것 이상으로 그런 혼란들이 더 괴로웠다. p.46



... 산소로 향하는 야트막한 오솔길을 천천히 오르며 나는 속으로 일행들의 나이를 계산해보았다. 큰고모 94세, 둘째고모 91세, 아버지 87세, 막내고모 82세, 할머니의 직계 자손 네 사람의 나이를 합하니 354세였다. 79세 엄마까지 합하면 433세. 사촌언니와 내 나이까지 더하니까 548이라는 숫자가 나왔다. 이만하면 심벤저스라고 부를만한데. 나는 속으로 감탄했다. p.87



"늦었어요?"

아이가 드디어 벌새 같은 엄지질을 멈추었다. 늦었어요?라니. 다 알아서 한다던 그 아이의 머릿속에는 최소한의 시간 가늠조차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이게 사춘기 아이다. 알아서 하지 않을 자에게는 알아서 하겠다는 말의 사용을 법으로 금해야 한다. 나는 이를 악물고 발바닥부터 솟구쳐오르는 용암이 입 밖으로 뿜어나오지 않도록 애를 썼다. p.133



... 나는 또 "알아서 한다며! 네가 다 알아서 한다며!!"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서도 기다렸다는 듯이 자동차 열쇠를 챙겨 들고 번개보다 빨리 달리기 시작했다. 이게 사춘기 아이의 엄마다. 우리는 서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 말과 행동을 주고받으며 서로 이해하지 못해 미쳐 돌아가는 환상의 짝꿍들이다. p.133



할머니가 사용한 단어들은 참 매력적이었다. 작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나 심플하고 단순하며 거창할 것 없없으나, 상대를 안도하게 할 수 있고 안정감을 주는 '할머니어(외국어, 외계어.. 같은 표현)'를 한눈에 알아볼 수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심윤경 작가님의 할머니는 작가님의 책을 통해 다시 살아나신 듯했는데, 그 생생한 사랑이 읽는 이의 마음도 따뜻하게 한다.


이렇게 책에 쓰인 다른 집 할머니의 모습을 생각하니 우리 할머니들(친할머니와 외할머니)도 생각이 났다. 친할머니는 유아시절의 내가 당신한테 달려가면 자신의 치맛자락이 더러워질까 저리가라고 했던 까칠하고 자기 중심의 할머니였다. 내가 5살 때 돌아가셨고, 뭘 알지도 못하면서 남들따라 엉엉 울었던 기억이 지금까지 있기는 하다.


대학시절 집이 학교와 멀어 그나마 가까운 외할머니댁에서 살았던 적이 있었다. 그때가 외할머니와의 관계가 있던시기였다. 그때의 우리 할머니도 손녀에게는 (작가님의 할머니처럼) 많은 단어를 쓰거나 말이 많은 할머니가 아니었다. 외향적인 할머니의 바쁜 스케줄과 대학의 자유로움에 빠진 내가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은 아침 일찍 혹은 늦은 밤이었다. 어렸던 나는 할머니의 연약한 잔소리를 듣기 싫어했고, 살가운 손녀딸 스타일은 아닌지라 할머니와 마주침이 어색해 방안에 틀어박힐 때가 많았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LA갈비를 챙겨오시고, 두부는 자주 사두셨던 외할머니, 텁텁하지만 자신만의 사랑으로 자신의 사랑을 꿋꿋이 표현했던 분이었다. 작가님처럼 세심하게 시선으로 할머니의 사랑과 캐릭터를 언어화하진 못하지만, 작가님의 할머니 덕에 나 또한 할머니 두 분을 떠올려 볼 수 있었다.


작가님의 할머니의 주언어 였던 '뒤야쓰(됐어~)', '저런!', '장하다!' 이런 표현의 단어는 나도 아이한테 틈틈이 사용해 보려고 되뇌고 있다. 짧지만 아이의 행동에 대응하기에 적확한 단어 같다. 잔소리의 맥시멈함을 줄이고, 짧고 간결하지만 부담스럽지 않은 단어로 아이를 무한정으로 받아들이고, 어루만져 주고 싶다.


이 책을 읽으면 할머니의 육아는 분명 세련되지도 육아전문가의 것처럼 학문으로 정리되지 않는다. 거기에는 온전한 용납과 사랑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엄마의 육아에서 이런 부분이 발현되기는 물론 쉽지 않다. 하지만, 육아에는 역시나 답이란 없고, 아이에게 줄 수 있는 한 최고는 '수용과 이해, 즉 사랑'이라는 것을 이 책을 읽고서 또 한 번 깨닫게 된다. "아이는 부모의 빈틈에서 자란다"라는 말이 기억이 남는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라면

할머니의 심플하고 적합한 육아 스타일에서 그 어떤 육아서보다도 나은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

섬세하고 감칠맛나는 표현력과 공감할만한 내용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에겐 선물이라도 해서 들려주고 싶은 책이다!


** 자신을 키워낸 할머니만의 육아 이야기를 돌이켜보면서 작가님의 양육 세계에 대입해 보고, 또 자녀를 키워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니멀해도 절제되어 적절했던 할머니의 단어와 손녀를 향한 온전한 사랑이 담겨있는 이 에세이는 '아름다운 할머니 이야기'이기에 틀린 제목은 분명 아니다. 다소 심심하고 아쉬운 제목에 살짝 망설여질 수도 있겠다. 개인적으로 심윤경 작가님의 책이 잘 팔렸으면 하기 때문에 그걸 기대한다면 조금은 감성을 자극할 제목이었다면 좋지 않았을까 생각했다.(출판을 위해 애쓰신 분들껜 죄송합니다.) 한편으론 작가님의 '나의 아름다운 정원'이란 소설에서 비롯된 제목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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