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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의 작사법 - 우리의 감정을 사로잡는 일상의 언어들
김이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3월
평점 :

어떻게 저자를 알게 되었는지는 사실 기억이 안난다.
어느 인터넷 기사의 파편 중에 발견했는지,,어찌됐든 저자를 작사가로 알게 되었고, 매체를 통해 노출이 된 것을 보고 상당한 미인임에 또한번 눈길이 갔다.
그러다보니 그가 낸 책도 자연히 알게 되었다.
전문가가 되려면 10년은 투자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게 반영이 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일이 가장 많을 때 아주 솔직하게 쓰겠노라고 다짐했던지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그는 한 권의 책을 채울 수 있을만큼의 이야기를 갖고 이 책을 냈다.
책 제목의 '작사법'이란 단어를 보면, 마치 어떤 전공이나 전문서적의 제목에 쓰일 것 같지만, 책을 훑어보니 그런 딱딱한 전문지식을 나열한 책으로 보이지 않았다. 책 가장자리 중 세로면의 끝은 노란띠로 포인트를 준 것이 보통책과는 다르게 예쁘고, 책 표지의 노란색도 감성적이고 따뜻한 느낌이었다.
노래를 들을 때 유감스럽게도 가사를 잘 듣는 편이 아니어서 이 책에서의 작사법이 딱 관심있는 부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의 작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가수들의 일면도 알고 싶었고, 대중음악의 세계는 어떨지 막연한 기대와 호기심이 있었다. 그와 더불어서 가사에 대한 호기심도 살짝 들었다.
문장자체가 정리정돈 한 듯 깔끔했다. 아마 운율과 리듬을 다루는 직업에서의 습관인지 몰라도 읽는 사람에게는 참 편했다. 그리고 이해하기 쉬워 배려받았다 싶다.
그와 더불어 놀란 것은 (그간 작사를 안들은 탓이어서 새롭게 알게 된 면일지 몰라도) 어쩜 이렇게 가사를 잘 썼나 하는 것이다. 주어진 곡음에 자신이 표현하려는 말을 알맞게 조절해야 하는 한계만연한 작업이 작사이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은유와 비유, 직설 등을 골고루 잘 활용해 듣는 이로 큰 감동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것이 바로 작사다. 너무 쉽게만 불러왔던 가사가 그녀의 섬세한 작업으로 한층더 깊이있는 곡이 되었음이 놀랍다.
이 책에서 저자는 작사가 들어가는 전후 음악이 만들어지기는 과정부터 자신이 작사한 곡이 어떻게 나오게 되었는지까지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그래서 대중음악이 탄생되는 과정들에 대해 막연하게만 생각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이해가 된다.
많은 사람들의 대화와 고민작업 끝에 만들어진 한 곡에 얼마나 많은 노력과 땀이 들어갔을지 알만하다.
특히 저자가 자신의 작사하는 법을 일일히 나열하고 설명한 것이 참 인상적이다.
작사를 하는 세세한 과정과 개인의 노하우 부분은 '이렇게까지 상세할 필요가??'라는 생각도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던 부분이었다. 아마 음악계에 종사하고자 꿈을 꾸는 사람이라면 얼마나일지는 모르지만, 꽤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저자는 마냥 자신이 경험한 느낌, 사실에 의존하지만은 않았다. 그것을 경계했다. 그런 주관적인 것들은 가사들 모두가 비슷하게 만들어 진부할 뿐 아니라, 더이상 할 이야기꺼리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오히려 가수의 성별, 나이, 성격, 환경등을 그들의 입장에서 섬세하게 고려하고 고민했다. (물론 가수들의 동의하에 말이다.) 노래가 진정 가수의 이야기라고 생각이 될 때 우리는 더 깊은 공감을 하게 된다. 더 그 노래를 애정하게 된다. 저자가 바로 가수의 상황과 심정을 헤아리는 작사가였기에 가수들은 더욱 감정을 실어 몰입해 부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만약 누군가가 나를 깊이 관찰하고 내 이미지를 파악해 내게 맞는 가사를 만들어 주었다면 어떻겠나? 그 가사를 받아서 부르는 내내 얼마나 행복할까? 얼마나 그 곡에 애정을 갖고 부를 수 있을까? 그 가사에 얼마나 깊은 심정을 전달 할 수 있을까?
작사법, 가요계의 음악탄생사에서 자신의 개인사, 그리고 남들은 입에 올리기 조심스러워하는 19금(?)이야기까지 이 책은 어떤 단편적인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저자가 이제는 자신이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었기 때문에 한번은 자신의 모든 것들을 털어놓고 싶고 남겨두고 싶어하는 이야기인 것 같다. 자신은 팔리는 가사를 써왔다고 하지만, 자신의 사색과 고민이 그녀의 가사에 깊은 문장으로 스며든 것이 가볍게만 보이진 않는다. 오히려 깊이 있고, 잘 헤아렸으며, 꿰뚫어보았다. 그리고 충분히 겸손하며 솔직했다.
가수가 녹음하는 단계 직전에 놓여 있는 과정이 '작사'다. 즉 작사가들은 데드라인에 매우 가까이 있다.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일이 드물다는 뜻이다. 너무 촉박하고 힘들 때는, 안 써도 된다. 나 아니더라도 가사를 맡길 사람은 많을 테니. 하지만 작사가가 이 기한을 맞추지 못하면 자신의 기회와 신뢰를 잃는 것이다. 따라서 작사가에게는 빨리 쓰는 것 또한 능력치 중 하나이다.
p.88
가사를 '잘 쓰겠다'고 덤빌 때와 '좋은 가사'를 쓰겠다고 덤비는 데에는 차이가 있다. 좋은 가사를 쓰겠다고 마음먹을 때에는 나의 간절함이 들어간다. 무엇이 더 좋은 것인지는 비교할 수 없다. 내가 어떤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작업 결과물이 그대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잘 쓰겠다고 덤빈 가사가 거절당할 때도 있고, 큰 고민 없이 쓴 가사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때도 있으니까. 하지만 명확한 것은 '좋은 가사'를 쓰고 싶다는 마음은 내가 그 가사를 부를 사람에 대한 신뢰가 클 때만 든다는 것이다. p.206
나이들어가며 함부로 나의 솔직한 속내를 터놓지 않는 것은, 꼭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숨기고 싶어서가 아니다. 그것이 유발하는 크고 작은 파도(이를테면 앞으로의 나에 대한 판단 등)들까지도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모든 걸 말할 수 있기 때문에 점점 더 신중해질 뿐이다.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가 어떻게, 얼마큼 힘든지 알아버리는게 싫다. 나로 인해 또다른 걱정이 생기게 하는 걸 테니까.
이렇듯 진짜 솔직함이란 귀하다. 내가 마음만 먹어서 될 일도 아니고, 상대와 합이 맞아야 오갈 수 있는 것이기에.
p.214
작사가는 감정에 대해 이야기 할 때, 절대적 또는 객관적 시각을 지니기 보다는 다양한 인간상에 자기를 투영해볼 줄 알아야 한다. 옳은 선택이야 누군들 몰라서 안하겠는가. 이상적인 사랑, 현명한 이별만을 이야기하려 해서는 공감을 얻는 가사를 쓰기 쉽지 않다. p.218-219
나를 통으로 생각하지 말고, 어떤 특정한 순간의 '나'를 분리해서 생각해본다면 누구에게나 지질하고 과민한 면들은 있게 마련이다. 그 모습들을 외면하지 말고, 직시하라. 그런 면이 작가인 당신에게 훌륭한 도구가 되어줄 것이다. p.249
외면하고만 싶은 자기의 일면을 극대화하여, 특정 상황 속에 던져넣어보자. 진짜 내 이야기를 쓰려고 하면 대중 입장에서 볼 때 이야기는 평면적으로 흘러가기 쉽고, 작품 수가 늘어날 수록 똑같은 얘기만 쓰는 사람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마냥 지어만 내기엔, 많은 사람들의 공감대를 끌어낼 만큼 당신의 세계관이 충분히 넓지 않을 수 있다. 즉, 현실과 창작 사이에서 밸런스를 잡는 것이야말로 작사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말이다. 자신의 일부를 토대로 상상을 덧칠해 만든 캐릭터는 극적인 동시에 사실적일 수 있다. 게다가 어딘가 모난 캐릭터는 입체적인 가사를 만들어내기 좋다. 특히 '지질하다'거나 '쿨하지 못하다'고 평가받는 감정일수록, 연애사에 이입했을 때 공감을 사기 좋다. 찌그러진 곳, 날이 선곳, 모난 곳들이야말로 살아있는 가사를 만든다. 사람은 사랑에 빠지거나 실패하고 나면 누구나 그러니까..
p.249
소심한 사람들에게는 늘 시간이 부족하다.
내 온 마음을 말로 전할 시간은 좀처럼 주어지지 않으니까. 굵직한 이야기만 하면 이 사람이 내 본심을 다 몰라줄 것 같고, 그렇다고 세세한 파동들가지 다 말해주려하는 건 상대에 대한 민폐다.
자고로 말이란 건 줄일수로고 좋고 생각은 오래할 수록 잘 익는 법.p.250
당신에게는 어떤 트라우마가 있는가. 스스로 인지하지 않는다면 이상한 종류의 공포로, 또는 두려움으로, 심지어는 자격지심으로 변질되어 당신을 못난 사람으로 만들고 있을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모습을 솔직하게 대면해보자. 그래서 몇 가지 트라우마가 발견된다면, 일석이조의 행운이 오는 셈이다. 좋은 가사 테마와 조금은 건강해진 자아!
p.306
나는 내 그릇에 맞는 글을 써야 남들의 마음도 움직일 수 있다고 믿는다. 더 좋은 가사를 쓰려면 더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나의 신조는, 대단히 훌륭한 취지보다는 현실적인 욕심에 기초해 있다. 남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작사만'하는 사람으로서 살아남을 것이 아닌가.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