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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 - 소래섭 교수와 함께 읽는 일상 속 시 이야기
소래섭 지음 / 해냄 / 2017년 9월
평점 :

지난 번에 해냄 출판사에서 나온 최영미 시인의 <시를 읽는 오후>를 읽어본 적이 있다.
그 책을 읽고 내 개인적으로는 접하지 못했던 여러 서양시와 관련한 내용을 알게 되어서 참 유익했는데, 그 중에 한국시가 소개되지 않은 것을 아쉬워했었다.
그런 내 마음을 알기라도 했듯이 이 책 <우리 앞에 시적인 순간>은 한국의 여러 현대시를 소개하며 그와 함께 저자가 에세이 형식으로 써내려 간다.
시는 몇 가지의 단어를 엄선하여 우리에게 강력한 메세지를 저자의 의도를 드러낸다. 그런 면에서 시는 참 매력적이고 신비롭다. 시인은 천재같기도 하고 또한 한 단어를 고르기 위한 노력을 했다는 자체만으로도 엄청나 보인다. 그렇지만 나는 시에 대해 여전히 어렵고 두렵다. 이해하기 쉽지 않고, 섣불리 읽어지지 않는 가까이 하기엔 먼 불편함이 여전히 있다.
그런 설명이 없으면 이해불가한 나같은 사람에게 시를 먼저 대하기에 앞서 친절하게 따듯하게 안내하는 이 책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이 책은 시를 통하여 우리의 일상을 재조명한 책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 듯하다. 우리가 놓쳤던 삶의 파편들을 하나하나 깨우쳐 주는데, 시와 저자의 사색이 어우러져 깊고 풍성하게 느껴진다. 시에 대해서 작가의 의도와 시대적인 상황들 뿐 아니라 좀처럼 알기 힘든 은유적인 의미 또한 독자들에게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썼다. 여러 참고할만한 시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다.
보통의 '~다'를 사용하는 서적들과 달리 저자는 존대어를 사용한다. 그것이 담담하고 따듯하게 그리고 촉촉하게 느껴진다.
내용을 약간 이야기하자면, 시란 어떤 것인지 말한다. 나의 경우 그동안 시가 어떤 것인지 막연하게 느껴졌었는데,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시라는 것을 보며 뭔가 확실한 것을 찾은 것 같았다. 시는 평범한 것을 시적으로 보고, 아이처럼 다르게 보는 것, 널리 깨어있는 상태라고 하는데 역시 우리의 관점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생각하며 삶에 대한 접근, 의식을 의지적으로라도 새롭게 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또한, 독서에 관심이 많은데 그와 관련된 글은 참 인상적이었다. 요즘 많은 사람이 정독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는 중에 저자는 꼼꼼하게 읽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오히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런 견해가 새롭게 느껴졌는데, 그런 태도를 책을 신성시하는 태도라고 저자는 말한다.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독서를 위해서는 책의 그런 권위에서 해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에 대한 권위를 다루는 내용을 보고 나는 책에 대해 갖고 있던 권위를 의식한 것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책에서 길을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찾아야 한다는 말은 지금도 내 마음에 깊은 울림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한글과 관련하여 쓴 글에서는 한글이 진보적이고 시대적으로 의식을 새롭게 하는데 영향은 끼치지 못했지만, 세계역사에서 보면 글자는 분명 서민들의 의식을 깨우치게 하고 혁신적이게 한 원동력이 되었다는 글을 보고 의문이 들면서도 씁쓸했다. 왜 우리는 한글이 있어도 변화하기 힘들었고, 당시 사회적인 구조를 개혁할 수 없었을까? 그렇다해도 분명 한글은 우리의 존재와 의식을 모두가 깨우치고 나아갈 수 있게 한 근본적인 우리의 글자임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한글에 대한 의미에 대해 다시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다.
재미있는 시도 많이 소개되고 또, 몰랐지만 참 괜찮은 시도 꽤 있는데다가 삶의 것들과 잘 연결되어 이해하기 쉽게 쓴 이 책이 내게는 참 유익했다. 마치 에세이 집과 시집을 섞어놓은 것 같은 이 책에서 지루하지도 이해가 안 되지도 않는 깊은 깨달음과 울림을 주는 책이었다.
내게는 참 소중한 책들 중 한 권이 되었다.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시적인 것들이 무엇인지, 시인이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습니다. 이 작품에 따르자면 우리가 접하는 것은 무엇이든 시적인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시적인 것으로 빛나지는 않습니다. 평범한 것을 시적인 것으로 만드는 시인의 시선에 의해서만 시적인 것이 탄생하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시적인 것을 발견해 내는 시인이 될 수 있을까요? 아이처럼 대상을 다르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달 또한 익을 수 있고, 개미 또한 우리처럼 소중한 생명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널리 깨어 있는' 상태입니다.
결국 우리 삶을 시적인 것으로 가득 채우는 사람은 시인이며,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시인이 못 되면 또 어떻습니까. 시인 엄마나 시인 친구라도 될 수 있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든지 시적인 것들로 빛날 것입니다.
p.40-41
화자가 구조의 손길을 뿌리칠 정도로 고립을 자처하는 또 다른 이유는 고립이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할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는 "고독할 때 비로소 사람은 참다운 자신을 느낀다."라고 말했습니다. 다른 존재들과 어울려 살아가야 하는 것이 인간의 운명이지만, 진정한 자신의 모습과 대면하기 위해서는 고독을 견뎌야 합니다. p.58
피에르 바야르는 책이란 읽을 때마다 다시 꾸며지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보기에 교양은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책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할 줄 아는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책 속에 길이 있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떤 책에는 길이 없고, 또 어떤 책에는 길이 매우 많습니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 오히려 길을 잃어버리기도 하죠. 결국 책 속에서 찾아야 할 것은 '길'이 아니라 '자기 자신'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다면, 그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게로 가는 길입니다. 책은 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위해서 읽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자신의 이야기로 다시 꾸며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창조적이고 비판적인 독서이며, 그럴 때 비로소 독자는 작가나 예술가가 됩니다. 모든 사람이 작가나 예술가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은 더 풍요롭고 행복하고 아름다워질 것입니다. p.67-68
사람들은 자동문처럼 책을 읽기만 하면 원하는 답을 얻을 거라고 기대합니다. 책을 통해 손쉽게 다른 세상과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책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적극적으로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책을 통해 만나게 될 또 다른 세상은 결국 자기 자신을 향해 있습니다. 각각의 책이 자신의 일부를 내포하고 있으며 자신에게 길을 열어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바로 훌륭한 독자입니다. 그래서 책 이야기가 아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것, 혹은 책들을 통해 자기 이야기를 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책을 잘못 읽는 것보다 책을 통해 자기 자신을 오독하는 것을 두려워 해야 합니다. p.73
자신도 함께 변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몸에 꼭 맞거나 마음에 쏙 드는 것들을 찾아낼 수 없습니다. 사람들 사이의 관계는 더욱 그렇습니다. 누군가에게 자신을 맞춰 가려는 배려와 용기가 없다면, 상대방도 같은 마음일테니 항상 그저 그런 사람만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요? 더구나 사람이란 구두보다도 백배는 더 자주 변하는 법이니 백배는 더 많이 변할 각오를 하지 않는다면 이상적인 관계란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p.100
그러므로 한글날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고 한글의 우수성을 되새기는 날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한글날의 의미는 이날이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역사의 주인공이 될 수 있는 유력한 수단을 얻게 된 날이라는 점입니다. 한글로 인해 우리는 더 나은 세상에서 살게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쓰는 것, 그리하여 정치가들이 국민의 욕망을 무시하지 못하게 하는 것,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한글날을 기념하는 가장 바람직한 방법입니다.
p.134
눈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릴 때에는 좋지만, 많이 쌓이면 통행이 불편하고 녹으면 질척거린다는 이유에서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눈을 싫어하는 진짜 이유는, 그것이 녹을 때마다 우리에게 아픈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의 이면에 처절한 괴로움과 고통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기 때문입니다. 애써 부인하려 하지만 그것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눈은 지독한 추위와 맞닥뜨리게 하는 현실을 뿐입니다. 그래서 이 작품을 읽고 나면 눈 내리는 풍경의 이면과 눈이 만들어 내는 환상 너머에서 들리는 현실의 소리에 대해서 생각하게 됩니다. p1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