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과 천둥
온다 리쿠 지음, 김선영 옮김 / 현대문학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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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건지, 원래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요즘 출판되는 책들 중 상당히 많은 책들이 일본 작가들이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에세이 소설 등의 저자에 일본인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러면서 드는 생각은 꽤 방대한 분야들을 주제로 다루는 일본인들의 전문성, 다양성이 놀랍다는 것이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어 함부로 말하기 굉장히 조심스럽지만,

사회적인 주제, 인간의 심리, 남녀의 관계가 많은 주제로 사용되는 우리나라의 책들을 생각하면

국가적으로도 차별성이 느껴지는 듯해서 재밌기도 하고 약간 아쉬운 면도 있다.

오래 전이지만 일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클래식을 상당히 전문적으로 다루는 걸보며 '이런 드라마가 있다니!!'라는 생각에 재밌게 봤었다.

이젠 클래식을 다루는 책이 출간되었는데, 그 책이 무려 구상만 12년이며, 11년의 취재, 7년간의 집필 끝에 완성되었다.

그렇게 오랜 기간을 들이며 나온 책임을 생각할 때, 작가의 끈기와 노력 끝에 드디어 독자들에게 읽을 기회가 왔다는 것이 내게는 너무 감격스럽고 기대되는 일이었다. 우리 나라에선 이렇게 클래식을 다루는 책이 있었나?라는 생각도 들고 너무나 반갑기만 하다. 또한 몇 년 전에 쇼팽콩쿠르에 조성진 군이 1위를 했던 것도 있고 해서 콩쿨를 다룬 이 책은 특히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독자들의 관심을 받는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온다 리쿠의 소설은 처음 읽어봤다. 처음부터 저자의 책을 700페이지 가까이 되는 책으로 시작해도 될까 싶다가도 좋아하는 주제를 다룬 책인데다, 주변의 평이 워낙 좋고 쉽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라기에 집어 들었다. 다른 책들과 읽는 바람에 읽는데 시간이 걸렸지만, 콩쿨의 과정에서 다루어지는 각 개인들의 생각과 상황이 절묘하게 클래식 음악과 어우러져서 음악 못지않은 감동과 섬세한 감성을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심리적인 묘사와 상황, 음악과 관련한 본질을 찾아가는 과정들이 우리가 경험하는 것과 다르면서도 비슷할 수 있는 것이기에 흥미롭고 인상적이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인물들이 음악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저자가 얼마나 오랜 기간 이 책을 위한 노력과 시간을 기울였으며, 음악에 대해 상당히 고심했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콩쿨이라는 주제로 시작했지만, 정작 저자는 콩쿨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던 것 같다.


저마다 다른 음악을 가지고 있는데 며칠 후에는 또 누군가 떨어진다.

선택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갈린다.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비교당하고, 순위가 매겨진다.

"콩쿨는 정말 부조리 해."

p.284

그렇게 음악에 대해 순위를 내리는 부조리함함을 이야기하는 인물들의 대화는 사실 작가가 가졌던 생각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런 순위로 판단되는 우열에서 나타나는 '천재'라는 존재도 심사위원들을 통해서 기프트로 봐야할지 저주로 봐야할지 혼동과 의심을 갖게 한다. 사실 개인적인 취향일 수 있는 예술의 세계에서 어떤 기준과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예술가들에게 굉장히 잔인한 행위로 보인다. 예술가 고유의 표현, 개성이 그것만으로도 당연히 인정받아져야함에도 불구하고 거기에 대회라는 것을 적용하여 가치가 평가되는 것은 당사자들에게 상당히 괴로운 일이 될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갖는 회의적인 시각들이 이해가 되고, 나또한 그러한 매정함이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또한, 음악과 문학을 비교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하는데 문학 역시 예술이지만 그 가치가 어떤 수상 등으로 판단되어지는 것에 대해 작가가 가진 생각이 이책에서 다루는 음악의 그것에 반영된 것이 아닐까 내 나름 생각해봤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 해본다.

만약에 대회, 콩쿨 등 평가 프로그램이 사라진다면 어떨지 말이다.

그런 것들이 정말로 아주 오랜 과거에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예술가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이 원하는 예술세계를 마음껏 펼칠 수 있었을까?

자신의 개성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그것들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을 수 있었을까?


물론 평가하는 것들로의 자유로움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소비하는 소비품으로 가치가 매겨지고 그 안에서도 인기와 비인기로 나뉘어졌으며 다른 예술들을 의식하면서 예술의 세계에 몸담을 수 밖에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과거엔 어쩌면 장소와 환경의 제약을 받아서 에술의 세계에서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 못한 예술인들도 많지는 않았을까?


책에서 4명의 인물이 나온다.

가자마진. 그는 그야말로 집에 피아노 한대 없는 양봉가 집의 아들로 아버지의 직업의 특성상 이동을 하며 다니고 연습 또한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기회가 되는대로 빌려서야 할 수 있다. 하지만 타고난 음악 천재다.

아이덴 아야. 엄마의 원조에 힘입어 재능이 일찍 발굴된 천재소녀다. 엄마의 부재로 오랜 공백기를 갖은 천재가 콩쿨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이르렀다.

마사루 누가 봐도 훈남에 훤칠한 하지만 실력 또한 못지않은 실력자다.

다카시마 아사키.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결국은 회사원으로 진로가 바뀐다. 하지만 이번 기회가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콩쿨에 도전한다.


대략 이런데 그들이 콩쿨에 지원하게 된 계기, 그들이 음악과 함께한 여정. 그들이 가진 경험과 실력에 근거한 예술성은 각자 다르다.

모두 자신의 색채를 가지고 연주에 임하고 있고, 그 고유함을 이 콩쿨에서 인정받는다.

그들이 음악을 사랑하고 갖고 있는 고뇌와 고독함, 극복은 저마다 다르다.

소설 초에 그런 이야기들을 접하고 나면 이들에게 도대체 콩쿨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하지만 저자는 가자마 진이라는 알 수 없는 신이 내린 천재성을 가진 한 소년을 통해 콩쿨이라는 것이 평가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생각해보게 한다.

천재는 타고나는 것이고, 더 이상 그를 뛰어넘을 사람은 없고, 유일무이해 보인다.

그냥 그 존재는 거기서 어떤 의미도 찾을 수 없다.

아무런 과정도, 바탕도 없는 음악성이 다분한 천재가 여태까지 전문가들이 다져온 음악의 세계에 혜성과 같이 등장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혼란스럽다.


예선과 본선에 이르기까지 그냥 각자의 실력을 드러내기만 해 보이는 콩쿨이라는 곳은

단지 거기에 의미가 있지 않은 듯하다.

콩쿨의 시작에서 끝까지 수많은 과정과 내적 갈등과 극복과 깨달음이 있는 시간으로 저자는 주목한다.

천재를 통해서 단지 순위를 가치를 매기는데 그치지 않고

그런 천재의 등장은

다른 이에게 새로운 음악의 세계에 눈을 뜨게 하고, 다시 음악을 시작할 결심을 갖게 하며,

포기했던 자신의 길을 재발견하게 한다.

또한 콩쿨은 다른 이들의 음악을 접하며 다양한 예술의 세계를 경험함으로 보다 신선한 자극이 됨과 동시에 자신의 음악 세계에 대해 더욱 자신의 색깔을 갖게 한다.

그런 의미에서 콩쿨과 천재라는 것은 회의적인 저자의 시각이 다시끔 정리된다.

​거기서 기프트라는 것을 본 것이다.

콩쿨이라는 특성상 정말 다양한 나라, 개성, 해석이 모이게 된다. 그것들이 음악이라는 매개체로 공유돼 서로 대화하게 한다. 음악을 통해서 알 수 없었던 개인들 고유의 특성들을 보게 된다.

그런 것들을 서서히 알아가고 음악의 길을 찾아가는 모습은 감동이 되기도 하고, 희망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에겐 자연으로 돌려주는 일이고,

누군가에겐 새롭게 자신의 길을 찾는 것이고,

누군가에겐 다시 본연의 자리를 찾는 것이고,

누군가에겐 즐기는 최고의 것이고,,,


나에게는 음악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설레는 것이었고, 이별을 통보한 매정한 남자 같은 것이었고, 나조차도 거절 받기 싫어 손을 놓아버린 것이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음악은...

그 자체로 즐기는 것이고, 더욱더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것이고,

또 지금 즐길 수 있는 최선의 것들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다카시마 아사키가 느낀 콩쿨 내에서의 열등감, 음악을 향한 애정은 비음 악인으로써 공감이 되기도 했다.

당연히 음악전문인들의 세계가 되어야 할 콩쿨에 비음악인이 나타난 것은 어쩌면 소외되고 혜택을 누리지 못한 비주류에 대한 저자의 배려이자 새로운 용기를 주는 인물이 아니었을까 싶다.

사실 현실적으로 보게 되는 주부로써 한 가정의 가장이 음악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말리고 싶은 상황이라고 웃으며 말하겠지만,

하여튼 그의 용기와 도전에서 그리고 길을 찾아가는 고뇌 어린 독백들에서 음악을 향한 사랑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콩쿨과 천재...

그것들, 그들을 통해서 소개되는 음악에서

새로운 세계를 접할 때 감격과 기쁨, 삶의 동력이 된다.

잔인함을 떠나 그들 안에서 더욱 자극이 되고 소통이 되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성하게 해주길 기대하는 게 되었다.

음악을 더욱 즐겁게 들을 수 있는 보충된 곡과 음악가들에 대한 설명과

과장되어 보이지만 음악을 모든 상상력을 끌어내 글로 표현.

여러 인물과 사물에 대해 통찰력을 갖고 자신만의 시각으로 보여준 것.

그리고 음악의 본질을 생각함으로

이 책에 깊은 인상을 갖고 나서

이 책의 문을 열고 나올 수 있었다.  



 ​  


봐, 비슷하잖아. 콩쿨와 신인상의 난립. 똑같은 사람이 인정받기 위해서 온갖 콩쿨와 신인상에 응모하는 것도 똑같아.

그걸로 먹고 살수 있는 사람은 양쪽 다 극히 일부지. 자기 책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 자기 연주를 남에게 들려주고 싶은 사람은 바글바글한데, 둘다 사양산업이라 읽을 사람도 들을 사람도 한 줌밖에 안돼.

미에코는 쓴 웃음을 지었다. 세계적으로 팬들의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클래식 음악계에서 젊은 팬의 확보는 절실한 과제다.

마유미는 말을 이었다.

하염없이 키를 두드려대는 것도 비슷하고,

언뜻 보면 우아해 보이는 점도 비슷해.

사람들은 이미 완성된 화려한 무대밖에 보지 않지만, 그걸 위해 평소 아찔하리만치 오랜 시간을 얌전히 틀어박혀 몇 시간씩 연습하거나 원고를 써야 해.

....

그런데 콩쿨도 신인상도 자꾸 늘어나기만 해.

급기야 다들 필사적으로 신인을 찾지. 이유? 둘다 그 정도로 지속하는 게 어려운 장사라 그런거야. 평범하게 하면 탈락하는 치열한 세상이니까 항상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피를 수혈해야 해. 안그러면 바로 관계자들이 줄어서 시장 자체도 줄어들어. 그래서 모두들 언제나 새로운 스타를 찾는 거야. 투입 비용이 달라, 미에코는 그렇게 반박했다. 소설은 및천이 들지 않으니 괜찮지만 우리가 얼마를 투자한다고 생각해?

....

악기값, 악보값, 레슨비, 발표회비용에 꽃다발 값에, 의상까지, 유학 비용에 교통비, 어, 또 뭐가 있지?

경우에 따라서는 대관료나 인건비도 떠맡아야 하지. 시디 제작도 자비 제작에 가까울 때가 있고. 전단지나 광고비도.

가난한 사람은 꿈도 못 꿀 장사야. ..

세상어디를 가도 음악은 통해. 언어의 장벽이 없어.

감동을 공유할 수 있어. 우리는 언어의 장벽이 있으니까, 음악가가 정말 부러워.

p.25-26


그걸 경험한 사람이 아니면 전달되지 않고, 글자 그대로 말로 설명할 수도 없다. 하물며 그만한 투자를 하고도 결코 수지가 맞지 않는 이 바닥에서, 일단 '그 순간'을 경험하면 그런 고생은 전부 잊어버릴 정도로 크나큰 환희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그렇다.

결국 누구나 '그 순간'을 원한다. 한번 '그 순간'을 맛보면 그 환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만큼 '그 순간'에는 완벽한, 지고한 경험이라 할 수밖에 없는 쾌락이 있다.

p.27


그보다 부러운 건 중국 참가자에게서 느껴지는 탄탄한 자기 긍정이다. 일본인은 좀처럼 갖기 어려운 정신이다. 일본인이 말하는 '본연의 모습'은 타인에 대한 콤플렉스나 자신감의 부재, 불안한 자아 정체성에서 달아나기 위한 핑계다. 다양한 갈등을 거쳐 손에 넣을 수 있는 '본연의 모습'을 저들이 처음부터 당연하게 갖고 있는 건 혹시 중화사상과 일당독재 체제 때문일까, 그런 생각을 하고만다. ...

흔히 말하는 한류스타를 볼 때도 드는 생각인데 가나데는 그들에게서 올곧은 정열과 이런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항상 일종의 '처연함'을 느낀다.

그들이 민족적으로 갖는 '격렬함'과 '처연함'은 드라마틱한 클래식 음악과 궁합이 좋다.

p.183-184


선생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하면 이 음악을 드넓은 곳으로 데리고 나갈 수 있을까요?

소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살랑살랑 몸을 흔들며 가만히 선생님에게 속삭였다.

언젠가 반드시 선생님과 약속한 대로, 음악을 데리고 나가겠어요.

p.310


흔히들 심사위원은 심사하는 입장이면서 동시에 심사 받는 입장이라고 한다. 심사 내용으로 그 사람의 음악성이나 음악에 대한 자세가 드러나기 때문이다.

안다고 생각했다.

미에코는 울적한 마음으로 생각했다.

심사는 두려운 일이라는 것을. 자기의 음악성이나 인간성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너새니얼이 그런 것처럼, 지금까지 결코 그것을 실감하고 이해했던 건 아니었다.

p.319


정말이지, 이토록 부조리하고 잔혹한 이벤트가 또 있을까?

...

이토록 잔혹하고, 재미있고, 매력적인 이벤트가 또 있을까?

예술에 점수를 매길 수 있는가? 그렇게 묻는다면 누구나 '우열을 가릴 수 없다'고 대답하리라. 물론 누구나 머리로는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속으로는 우열이 갈리는 순간을 보고 싶어 한다. 선택받은 자, 승리한 자, 극히 일부에게만 허락된 기프트를 보고 싶다. 거기에 많은 노력이 들수록 환희와 눈물은 보다 감동적이고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무엇보다도 거기에 이르는 과정을, 사람들의 드라마를 보고 싶은 것이다. 정점을 찍고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사람을 보고 싶은 동시에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사람들의 눈물을 보고 싶은 것이다.

p.366


음악은 행위다. 습관이다. 귀를 기울이면 거기에는 언제나 음악이 가득하다....

p.374


"실례지만 꽃꽂이라는 건 모순 아닌가요? 그야말로 자연계에 있는 것을 꺾고 따다가 살아 있는 것처럼 꾸미잖아요. 어떤 의미로는 살생을 해서 인위적으로 살아있는 것처럼 꾸미다니, 모순되지 않나요?"

....

"모순되지"

"하지만 애초에 우리는 무언가를 살생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모순된 존재야. 우리가 생존하기 위한 기본, 먹는다는 것 자체가 그렇잖니? 먹는다는 것 자체가 그렇잖니? 먹는다는 행위의 즐거움은 죄악과 종이 한 장 차이다. 나는 자연을 그릴 때 언제나 꺼림칙한 죄책감을 느껴. 그래서 완성한 순간을 최고의 작품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단다."

p.499


가자마 진이 터뜨린 것은 음악교육이 아니다. 그가 가진 재능이 기폭제가 되어 다른 재능을 감추고 있던 천재들을 일깨운 것이다. 틀에 박힌 연주나 그저 기교만 뛰어난 연주가 아니라 진정 개성적인 재능을, 가자마 진의 연주를 촉매 삼아 개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호프만이 설치한 폭탄.

그 결과가 바로 지금 눈앞에 있는 천재의 연주인 것이다.

그랬나...

우리는 이미 수많은 '기프트'를 받았다. '재앙'이 아니었다.

멋진 '기프트', 호프만이 보낸 선물을 이토록 명확하게, 바라 마지않던 형태로 받지 않았나.

미에코는 자신이 눈물을 글썽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야의 연주가 훌륭하기 때문만이 아니라 호프만의 유지가 이토록 똑똑히 전해졌다는 사실에 감격한 것이다.

그랬던가.

환희에 넘쳐 연주하는 아야의 모습에 가자마 진의 연주가, 마사루의 연주가, 호프만의 연주가 차례로 겹쳐졌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한없는 환희로 가득한 '기프트'인 것이다.

이런 요행이 또 있을까.

그것을 이 자리에서 직접 느낄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멋진 체험인가.

p.579-5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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