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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애 ㅣ 김별아 근대 3부작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7년 6월
평점 :
최근 개봉했었던 영화 <박열> 덕분에 이 책을 집게 되었다.
강렬한 포스터에 거칠지만 시원한 얼굴을 내민 이재훈의 얼굴이 그 캐릭터를 말해주는데 그러한 유쾌해보이는 이면에 슬픔과 아픔이 있는 역사를 영화가 이야기 했다면, 소설은 어떻게 박열이란 인물을 이야기할까 궁금했다.
배우가 좋아서 영화도 보고 싶었지만, 시공간을 넘어서는 배경과 인물에 대한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는 책에서만 줄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먼저 책을 선택했다.
나는 이 책을 세 파트로 나누고 싶다.
박열과 후미코의 어린시절, 박열과 후미코가 만나기 전, 박열과 후미코가 만나고 난 후...
이책은 박열과 후미코를 번갈아가며 그들의 상황을 시간에 따라 전개한다.
먼저 박열과 후미코의 어린시절은 정말 참혹하고 혹독한 현실이 느껴진다. 박열의 경우, 일제강점기의 조선의 아이들은 일본어를 쓰고, 일제의 감시와 통제 아래 마음껏 말할 수도, 표현하기조차 어려웠던 나날이었다. 지금을 사는 우리에겐 상상할 수도 없는 시기였다. 내가 경험했더라도 그러한 상황들이 참담하고 치욕스러웠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적인 상황에도 유교를 언급하느라 여념없는 어른들에 대해 어린 아이의 어처구니 없어함과 한심히 느끼는 모습은 참 답답하다.
아버지를 여의고 더욱 비참해진 그의 어린시절은 안타깝지만 호랑이 근성과 같은 그에게는 그나마 선택의 의지가 있었음은 다행이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그러한 선택으로 그는 도전했고, 치열하게 고민했고, 그의 삶을 헛되게 살지 않았다.
장녀인 내가 본 주관적인 견해는 가정이 어려울 때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무언가 헌신을 해야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형이 많은 그의 위치에 있어서는 부담이 덜 했을 것이고, 또한 그의 주관과 가치를 따라 일본행을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이기에 가능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호랑이굴에 뛰어든 그의 일본행 결심은 어쩌면 용기있고, 결단력 있어보인다. 주저없이 비참한 상황에서 취재를 위해 마다하지 않았던 환경에서도 그는 살아남고, 살아남아 일본의 만행과 현실을 알리기 위해 힘썼다. 그러한 부분들이 우리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안타깝기도 했다.
후미코의 어린시절은 여자의 입장에서 본 것이어서 사실 더 비참함이 말할 수 없었다. 우리가 으례 일제치하에 있던 역사를 가진 한국인으로써 생각하는 일본인은 죄의식없음과 뻔뻔함을 생각하게 될 때가 많은데(단편적으로 판단한 건 죄송하긴 합니다만...), 일본인의 한 여자로 봤을 때는 정말 치욕스럽고 불행하기 그지 없는 삶을 살았다. 정말 부모가 어떻게 저럴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무기력하고 치졸하고 책임감없어보이는 그녀의 부모는 정말 막장의 끝(?)과 같다. 과거에는 다 그런 환경에선 어쩔 수 없던걸까? 싶기도 하지만, 여성과 어린이의 인권이 비교적 나아진 그때와는 너무도 다른 시대에 살고 있는 나로써는 그런 환경과 시대적인 상황들이 다소 이해가 가지 않았다. 시대와 나라는 정말 운좋게(?) 태어났다 싶을 정도로 읽는 내내 찝찝함과 괴로움과 비통함의 탄식이 절로 나왔다.
사실 그들의 어린시절의 참혹함이 너무도 커서 그 장면에서 한참을 빠져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후의 박열과 후미코가 그들의 방향을 찾아가는데 부분은 내게 긴장감이 확 풀려버리기도 했다.
어쨋든 그들의 삶에서 치열히 고민하고, 애쓰며 살아서 결국 반역과 반란의 길을 걸었던 것은 그들의 참혹한 삶이 시작이었기 때문에 안쓰러우면서도 그들의 선택이 수긍이 된다. 그들의 방황과 고뇌끝에 찾아가게 되는 그들의 길은 결국 그들을 만나게 한다.
그들의 사랑은 애처롭지만 단단하고 힘이 있었다. 그들의 행동은 순수했고, 열의에 찼으며, 한결같았다.
결코 억압과 권력에 으스러지지 않고, 당당했고, 품위있었다.
남들과는 다른 결합이었기 때문에 개성넘쳐보이기도 한다.
잡지 비밀출간을 그들의 신혼여행으로 하는 것은 참 기발하기도 하고 과연 그들답다 싶다.
단체를 만들고 총기를 받으려는 여러 상황 중에 결국 그 둘은 일본 천황 암사을 시도했다는 이유로 결국 옥에 갇힌다.
그들의 종신형의 감옥생활은 안타깝지만 나름대로 잠잠히 그들의 해야할 바를 다 했다.
1926년 도쿄의 대심원 대법정에서의 박열의 논리적이고, 당당한 부르짖음은 덤덤하고 가슴울리는 한마디한마디가 되었다.
바로 이 소설의 클라이막스로 팽팽한 긴장감과 더불어 통쾌함을 주는 선언낭독이다.
안타깝게도 후미코는 자살로 그녀의 삶을 마감했다.
조금만 더 견뎌냈다면,,, 그들의 삶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들의 모순된 삶에 대한 태도와 결론은 참 가슴아프게 다가온다.
이 책을 통해서 여러가지 감정(슬픔, 분노, 사랑, 배신감 등등)을 느꼈다.
그와 더불어 기억에 남는 것은 여러가지 사상과 모임의 모습들이었다.
지난 학창시절에 학업을 위해 암기해왔던 것들이 아니라 모임의 모습, 그리고 주인공들이 한 행동을 하기까지 고민하고 선택한 사상들의 흐름이 즐거운(?) 공부가 되었다.
그리고 얼마전에 다녀온 평창동, 북악산, 경복궁 등의 모습이 내게는 한 풍경으로 그리고 그윽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남기게 된 장소인 반면에 그 당시엔 초라하고 씁쓸한 모습의 곳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 참 뭐라 말할 수 없는 감정들이 마음에 복작거렸다.
슬프고도 한탄스러운 역사를 뒤로 하고 살아남은 우리에게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 소설을 통해서 조명되었다. 나라를 위해서 혹은 이 시대에 참혹함과 현실을 알리고저 애쓴 숭고한 행위가 역사뒤에서 가려져있었다. 그러한 인물을 그 시대를 시간과 공간을 복원해준 작가에게 감사하다. 또한 여러 모습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해 애쓰신 열사들께 존경과 감사를 표하고 싶다.
열은 가슴을 휘젓는 불뭉치를 제어할 수가 없었다. 모두가 슬프고 초라한 노예였다. 때리는 자도 맞는 자도, 미워하는 자도 미움받는 자도, 식민지에 예외란 없었다. p.33
"나는 일본으로 갈거야!"
"왜 하필 일본이야?"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로 들어가야지!"
p.62-63
크로폿긴은 울부짖듯 질문했다.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진흙 같은 빵 한 조각 때문에 투쟁할 때, 나만이 고상한 즐거움을 누리는게 옳다고 할 수 있을까?"
p.92
고독은 소리 없이 높아지는 만조의 바다와 같다. 파도들이 흰깃을 치며 외로워, 외로워 물밀어 든다. 정말 외로운 사람은 차마 외롭다고 털어놓지 못한다. 그 한마디에 간신히 지켜온 방파제가 무너져 버릴까봐, 말하지 못해 더욱 외로워진다. p.111
"지배자와 부자의 민중에 대한 수탈, 타민족에 대한 강대국의 지배, 피압박 민족인 조선 민족 사이에서 볼 수 있는 백정에 대한 차별 또는 노동자들 사이에서 볼 수 있는 고참 노동자의 신참에 대한 압정 등 극히 무의미하고 강렬할 우월감, 정복욕, 지배욕, 따라서 가장 우매하고 추악한 약육강식! 이것만이 인류의 빼놓을 수 없는 참된 본성이며 자연의 대법칙이다.(...) 나는 너희의 증오를 사랑으로 보답할 만큼 천진난만하지 않다. 나는 너희의 이기심에 대해 자기 양보를 할 정도로 미친 사람이 아니다. 너희의 폭행에 무저항으로 보답할 만큼 선량하지도 않다. 그것은 모두 추악한 위선이다. 이같이 비굴한 태도는 용서받지 못할 너희들의 죄악을 묵인하고 그에 대해 암흑의 조력을 주는 셈이 된다. 나는 그런 일은 하지 않겠다!" p.244
"천황이란 자는 국가라는 강도단의 두목이다! 약탈 회사의 우상이며 신단이다! 나는 폭탄으로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실권을 가진 모든 계급 및 간판을 전멸시키려 했지만, 이것이 가능하지 않았기에 천황과 황태자를 투탄 대상으로 삼았다. 조선인의 입장에서 그들을 대상으로 삼은 이유는 첫째, 일본 민중에 대해 일본 황실의 진실을 알리고 그 신성을 땅에 떨어뜨리기 위함이며 둘째, 조선 민중에 대해 일본 황실을 무너뜨려서 독립에 대한 열정을 고취하기 위해서이며 셋째, 침체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일본의 사회운동에 대한 혁명적인 기운을 고취하기 위해서였다. 그러기 위해 황태자의 결혼식에 폭탄을 사용하는 것이 일본에 대한 조선 민중의 의지를 세계만방에 표명하기에 가장 적절한 기회라고 생각했다.(...) 나는 법률이나 재판의 가치를 전혀 인정하지 않으므로 형법 73조에 해당하는지 아닌지는 아무 상관없다. 그건 너희들 마음대로 하라!" p.246
그는 언제나 죽고 싶어했고 그녀는 언제나 살고 싶어 했다. 그랬던 그는 살아남았고 그녀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모순! 모순! 견딜 수 없는 삶과 죽음의 모순이었다. p.286
인간은 한 가지 이유만으로 살아가지 않듯 한 가지 이유만으로 죽지않는다. 후미코의 삶을 이해한다면 그녀의 죽음까지도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혁명, 저항, 투쟁, 자유의지, 그리고 사랑....
그녀의 짧은 생애는 뜨거운 것들로 충만했다. 상처의 잿더미 위에서 영원히 푸르른 나무를 꿈꾸었던 그녀에게 죽음은 결코 죽음이 아니었다.
p.28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