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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언어의 온도 : 말과 글에는 나름의 따뜻함과 차가움이 있다
이기주 지음 / 말글터 / 2016년 8월
평점 :
라디오에서 이 작가님을 소개하는데 '이기주의 ㅇㅇㅇ'라는 식으로 이기주의라는 말을 끄집어 내서 한참을 웃었다.
그러면서 관심갖게 된 작가님이었다.
그리고 처음 접하게 된 책은 언어의 온도! 바로 이 책이었다.
그 후에 각 책 소개글이나 서평 등에서 이기주 작가님의 이름을 자주 발견하게 되었는데, 하나같이 호평이었다.
짧막한 주제로 그의 생활이나 현실 상황들에 대해 본인의 사색을 적은 글들이 모인 책이다.
얼핏 책에서 봤을 때, 이 작가님이 과거에 기자생활을 하셨다고 본 것 같은데,, 그 때문인지 각 상황을 급히 지나치지 않고 상황을 재발견하게 된 그의 관찰력과 집념이 엿보인다.
나도 작가님처럼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병원에서 진찰을 받아보았다. 자동차 정비를 받아보았고 말이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마치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인물들의 이야기가 감동처럼 그의 귀를 통해, 글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진다.
혹시 이런 상황을 그의 창작으로 써내어 우리에게 그의 사색을 나누고자 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
내가 보지 못한, 듣지 못한, 느끼지 못한 것들이 그의 오감각은 놓치지 않았다.
깨알같이 작가는 독자들에게 농을 던지거나 떠보며 장난스레 말을 걸기도 한다.
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설마 이걸 모르는 건 아니겠지?
등등....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 상황들이 그의 사색을 거쳐 우리에게 자신의 깊은 생각을 나누어 주고 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고 있다.
왜 이기주 작가님의 책 좋죠?
라고 말하는지 알 것 같다.
정제되고 곱게 다져지고 걸러진 단어를, 글을 이루어내어 차곡차곡 쌓아내듯 글을 쓰셨다는 느낌이 든다.
그의 글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겠고,
곱씹어보며 되짚어보며, 시간에 따라 생각해보고 또 보고 싶은 글들이 이 책에 있다.
이 책은 바쁜 와중에 한 템포 쉬며 커피전문점에서 커피를 마시며 펴들고 읽다 멍때리며 생각하다가 하기 참 좋은 책이다.
그렇게 우리를 위로하기도 하고, 우리를 격려하기도 하는 듯한 책이다.
우리의 몰랐던 마음과 행동을 돌이켜보게 만드는 책이다. 짧막한 글들이 부담스럽지 않게 나뉘어져 한숨한숨 골라 쉬며 읽을 수 있을 책이다.
이 책도 휴가 중에 읽으면 딱 좋겠지요?^^
"게다가 '할머니' '할아버지' 같은 호칭 싫어하는 분도 많아요. 그래서 은퇴전 직함을 불러드리죠. 그러면 병마와 싸우려는 의지를 더 굳게 다지시는 것 같아요. 건강하게 일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은 바람이 가슴 한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어요. 병원에서는 사람의 말 한마디가 의술(醫術)이 될 수도 있어요." 25p
"이 꽃은, 여기 이 화단에 피어 있어서 예쁜 건지도 몰라. 주변 풍경이 없다면 꽃의 아름다움이 반감될 걸세. 그러니 꺾지 말게. 책상 위에 올려놓는 꽃은 지금 보는 꽃과 다를 거야."59p
"위폐는 진짜처럼 보이기 위해 꾸민 흔적이 역력해요. 어딘지 부자연스럽죠. 가짜는 필요 이상으로 화려합니다.
진짜는 안 그래요. 진짜 지폐는 자연스러워요. 억지로 꾸밀 필요가 없으니까요."72p
주위를 둘러보면 영화 속 마스터처럼 깊은 상처가 있을 법한 사람들은 타인을 향해 섣부른 위로를 하지 않는 듯하다.
그들은 위로를 정제한다. 위로의 말에서 불순물을 걸러낸다고 할까. 단어와 문장을 분쇄기에 넣은 뒤 발효와 숙성을 거친 다음 입밖으로 조심스레 꺼내는 느낌이다.
위로의 표현은 잘 익은 언어를 적정한 온도로 전달할 때 효능을 발휘한다. 짧은 생각과 설익은 말로 건네는 위로는 필시 부작용을 낳는다.86p
"예, 그런데 운전하면서 자동차의 발에 해당하는 타이어를 참 피곤하게 만드는, 피곤한 운전자가 많아요. 운전에 '3급'이라는 게 있어요. 급출발, 급가속, 급정지인데요. 이걸 밥먹듯이 하는 운전자들은 성격이 삐딱하고 과격한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그들이 끌고 온 차량을 살펴보면 아니나 다를까 타이어 상태가 엉망이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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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의 증언처럼 사람 성격은 아주 사소한 데서 드러나는 법이다. 그건 감추려 해도 감출 수 없고 즉흥적으로 변조(變造)할 수도 없다. 이러한 이치는 우리네 일상뿐만 아니라 사물의 본질과 삼라만상에 꽤 깊이 관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본질은 다른 것과 잘 섞이지 않는다.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엉뚱한 방식으로 드러나곤 한다.94-95p
정해진 길이 없는 곳을 걸을 때 중요한 건 '솔직함'이 아닐까 싶다. 눈치와 코치에만 연연하다 재치 있는 결정을 내리기는 커녕 삶을 그르치는 이들을 나는 수없이 봐왔다.
가끔 마음속에 도사리고 있는 내 욕망과 상처를 끄집어내 현미경 들여다보듯 꼼꼼하게 관찰해봄 직하다.
솔직히 말해, '솔직하기' 참 어렵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 한다. '남'을 속이면 기껏해야 벌을 받지만 '나'를 속이면 더 어둡고 무거운 형벌을 당하기 때문이다.
후회라는 형벌을....119p
질문을 허용하지 않는 문화가 외부로 향하는 건 그렇다 치자. 문제는 그런 태도가 내부로 향할 때다. 질문하는 법을 잃어버린 이들에게 선택지는 크게 두 가지인듯 하다.
순응 아니면 체념이다.122p
맞다. 질문만으로 현실의 문제를 일시에 해소할 수는 없다. 다만 질문은, 답을 구하는 시도만을 의미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 좋은 질문은, 무엇이 문제인지 깨닫게 한다. 그리고 문제를 인식하는 순간이야말로 문제를 해결하는 첫번째 발판인지도 모른다. 124p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일은 고치는 행위의 연속일 뿐이다. 문장을 작성하고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서 괜찮은 글이 자연 발생적으로 생겨날 리 없다.
좀더 가치 있는 단어와 무장을 찾아낼 때까지 펜을 들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지루하고 평범한 일에 익숙해질 때, 반복과의 싸움을 견딜 때 글을 깊어지고 단단해진다.172p
기다림은 그런 것이다. 몸은 가만히 있더라도 마음만큼은 미래를 향해 뜀박질하는 일.
그렇게 희망이라는 재료를 통해 시간의 공백을 하나하나 메워나가는 과정이 기다림이다. 그리고 때론 그 공백을 채워야만 오는게 있다.
기다려야만 만날 수 있는 것이 있다.202-203p
차라리 슬퍼할 수 있을 때 마음에 흡족하도록 고뇌하고 울고 떠들고 노여워하자. 슬픔이라는 흐릿한 거울은 기쁨이라는 투명한 유리보다 '나'를 솔직하게 비춰준다. 때론 그걸 응시해봄 직하다.
'나를 아는 건' 가치 있는 일이다. 나를 제대로 알아야 세상을 균형 잡힌 눈으로 볼 수 있고 내 상처를 알아야 남의 상처도 보듬을 수 있으니 말이다. 220p
'앎'은 '퇴적'과 '침식'을 동시에 당한다.
살아가면서 자연스레 알게 되는 지식이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깎이고 떨어져 나가는 지식도 많다. 252p
우린 무언가를 정면으로 마주할 때 오히려 그 가치를 알아채지 못하곤 한다. 글쓰기가 그렇고 사랑이 그렇고 일도 그렇다.
때로는 조금 떨어져서 바라봐야 하는지도 모른다. 한 발뒤로 물러나, 조금은 다른 각도로. 소중한 것일수록..
256-257p
우린 어떤 일에 실패했다는 사실보다, 무언가 시도하지 않았거나 스스로 솔직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더 깊은 무력감에 빠지곤 한다.
그러니 가끔은 한번도 던져보지 않은 물음을 스스로 내던지는 방식으로 내면의 민낯을 살펴야 한다.
'나'를 향한 질문이 매번 삶의 해법을 제공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삶의 후외를 줄이는 데는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살다보니 그런 듯하다.
324-325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