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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똘똘하고 경이로운 것들 ㅣ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3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7년 6월
평점 :
이 책을 접하면서는 '수의사 이야기구나!' 그러면 동물들이 등장하겠고, 그에 따라 일반 감동적인 한 소설에 지나지 않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헤리엇 시리즈가 있길래 도대체 어떤 매력이길래 시리즈로 나오는지 알고 싶었다.
책표지는 참 따듯하면서도 아늑하고 평온해보인다. 그래서 뭔가 힘겹게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편안함을 기대하게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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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막연한 기대감으로 잡은 이 책의 시작은 아래와 같다.
뭔가 생명에 대한 진정성과 소중함 그리고 경이로움이 저 4줄안에서 느껴진다.
그리고 기독교인이 늘 그렇듯이 저 안에서 마음에 깊은 울림을 가지고 이 책을 읽어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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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제임스 헤리엇은 1916년 출생하여 수의과 대학을 졸업한 후에 수의사 조수를 시작으로 평생을 요크셔 푸른 초원의 수의사로 살았다. 그 중간에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을 위해 공군에 입대하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의 군생활과 수의사로서의 생활이 번갈아가며 이야기되고 있다. 수의사, 군인.... 정말 다른 삶으로 보이지만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과 소소한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보면 둘다 인간이 살아가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저자가 그것들로 두 곳의 삶을 연결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재치와 유머러스함으로 상황과 인물을 잘 표현하여 때론 재미있게 때론 감동적으로 때론 사색적이 되게 하는 참 다채로운 매력을 가진 책이다.
이 책이 많은 화이트칼라 혹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이 접하는 직업군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생소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사는 삶 또한 사람이 사는 삶으로써 그가 느끼는 감정과 생각은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개인적으론 남자가 아니어선지 군대이야기는 살짝 따분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수의사로써의 이야기를 펼치기 위하여 시작된 이야기가 많아서 신경쓸만큼은 아니었다. 혹여나 남자들은 군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할지도...^^;
챕터 1부터 TV 동물농장 뺨치게 감동적인 스토리는 애초부터 내 눈물샘을 자극해서 기어이 눈믈을 빼내었다. 더이상 필요가 없는 늙은 암소를 필요한 만큼 쓰고 가축상에게 팔았는데 나중에 그 암소가 주인의 집으로 달려온 모습은 생각지도 못하게 처음부터 감동적이며 내 마음을 숙연하게 했다.
또한, 내 자식이 태어나는 과정의 기쁨과 당혹감(챕터 9), 고객 중에 정말 진상고객이 있기도 하고(짠순이 베크부인, 챕터11), 상사와의 미묘한 갈등관계(챕터19) 등은 세대와 상황이 다르지만 묘하게 동질감을 갖게 한다. 예상치 못하는 깨알같은 반전과 소소한 재미를 주는 대목들은 극과 극을 달리는 전개는 아니지만 영화나 드라마 못지 않은 일들로 우리의 삶과 비슷한 그의 삶을 이야기해준다. 그 과정이 묘한 긴장감과 이완을 반복하면서 소설의 매력에 점차 들어갈 수밖에 없게 한다.
그리고 우리와 다른 삶을 다룬 이 책이 주는 앎의 즐거움도 있다.
다른 나라이고 현실과는 달라진 상황일 수도 있겠으나, 우리가 매일 아무 생각없이 먹는 우유가 이런 식의 유통의 과정을 겪으며 우리 입 속으로 오겠다는 생각은 들기도 한다. 내 개인적으론 이런 이야기도 재미있게 느껴졌다.
큰 낙농회사를 대신하여 우유를 수집하는 운전자들은 모두 난폭하고 거친 사람들이었다. 평소에는 아마 다정한 남편과 아버지겠지만, 잠시라도 기다리게 하면 분노를 폭발시켰다. 그렇다고 그들을 탓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넓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농가를 방문해야 해씩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그들이 화가 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들의 분노는 보기만 해도 간담이 서늘해질 정도였다. p.361
간간히 구제역과 AI 바이러스에 대해 뉴스에서 많이 접하곤 한다. 하지만 그것이 우리 먹거리나 물가에만 영향을 준다고 해서 꺼려지는게 사실이다. 그 구제역에 대해서는 사실 우리 일반인들에게 관심없다. 그냥 우리에게 피해를 주지 않길 바라며 뉴스를 보곤 했는데, 구제역이란 병명하에 가해지는 살처분이 더 큰 피해를 막기 위하여 어쩔 수 없이 강행되어지는 것이고, 그것이 농가에 큰 피해를 보게 하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자신이 애써 키워온 가축들이 비록 이후에 자신의 생계와 식용을 위해 사용된다 할지라도 심혈을 다해 키우고 돌보아왔을텐데 그 상실감과 허탈감은 말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회복되는 동물도 많습니다. 하지만 구제역은 전염성이 아주 강하거든요. 여기 돼지들을 치료하고 있는 동안 이 일대 가축이 모두 구제역에 걸릴 것이고, 순식간에 전국으로 퍼질 겁니다." p.401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구제역 발생은 자기와 관계가 먼 이야기, 신문에서나 읽을 수 있는 일일 뿐이다. 하지만 시골 사람들에게 구제역 발생은 조용한 농장과 들판이 납골당과 화장터로 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곧 단장의 아픔과 파산을 의미한다.
p.404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몇년 동안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던 친정아빠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비록 헤리엇과 같이 수의사는 아닌 목축업자(?)셨다. 아빠가 가졌던 동물에 대한 애정과 죄책감 등을 어릴 땐 귀담아 듣지 않았었는데, 헤리엇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조금씩 엄마를 통해 주어들은 아빠의 스토리들이 떠올랐다. 헤리엇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동물은 절대 사람의 상황을 감안해 배려하거나 봐주지 않는다. 밤에 함께 자다가 사슴에게 일이 생겨 뛰쳐나가시던 아빠, 사슴의 먹이를 위해 뜨거운 낮에도 땀을 비오듯 쏟아내며 풀을 베던 모습, 새끼가 나왔다며 혹은 역아라며 이야기하시던 모습등이 책을 읽는 내내 오버랩되어 떠올랐다. 숨겨진 분들의 수고를 통해 우리의 밥상에 올라오는 음식들에 대해서 일말의 생각없이 소비 해오던 마음들이 죄송스럽게 느껴진다.
이 책을 읽으며 동물을 통한 생명의 경이로움, 그리고 생각지도 못한 감동, 그리고 여러 과정을 견디고 극복하는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에 여러 복합적인 감정과 긴장 가져보며 흥미로운 세계에 들어갔다온 기분이다. 또한, 런던만 생각하던 영국에 대한 이미지를 새롭게 하게 되어 초록초록한 그 곳이 머리 속에서 힐링받은 느낌이다. 휴가지에서 읽을 만한 책으로 혹은 분주하거나 따분한 일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추천한다. 솔직히 말하면, 그다지 대상을 잡지 않아도 모두에게 사랑받을 만한 고전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 책이다. 다른 시리즈도 소장하며 읽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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