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두 사람
김영하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5월
평점 :
절판


이번에도 단편소설이다.

작가의 책을 지난 번에 읽고 상당한 매력을 느끼기도 했고,

최근 TV에 나오시는 작가님을 보면서 모든 작품을 읽어보았으면 하는 마음에 선택한 2번째 책!


이번에는 지난 번에 확 읽어먹어치우지만은 않고 조금 소설 내의 장면 그리고 의미 등을 생각하며 읽었다.

나는 <오직 두 사람>이라는 책 제목에 근거하여 소설을 읽으면서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앞 세 편에서 오직 두 주인공의 삶과 상실에 대해 쓰였기 때문에 제목을 그것으로 잡았으리라 예상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오직 두 사람만을 그린 것이 아니어서 잘 못 짚었구나 싶었다.


이 책은 2014년부터 우리의 마음을 꾸욱 눌러 아리게 만드는 그 사건을 기점으로 전후에 쓰여진 소설들을 담고 있다. 그 기점을 통해 달라진 소설들을 보며 작가자신도 달라짐을 발견한다. 어떤 것은 어이없이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어떤 건 착찹함과 씁쓸함, 안타까움을 느끼게 한다.


아주 특별해 보일 것은 없는 주인공들이지만 그들의 일상을 통해, 그 안의 사건들을 통해 보이는 그 인물들은 하나하나가 참 못나보여 안쓰럽다. 그들이 처한 고통과 상처 그리고 현실 앞에 처절하고 무력해보이기까지 한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그 상황을 생각해보게 하고, 그 상황 속에서 인물들이 갖는 감정과 한계를 보게 한다. 그 안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우리도 그들과 같은 현실적이고, 한계 앞에서는 한없이 나약한 사람이라는 것,,, 살기 위한 본능은 우리도 그들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수상작인지 모르고 읽었던 <아이를 찾습니다>는 내가 엄마이기 때문에 더더욱 공감이 되는 이야기였다. 일상적인 삶에서 엎어진 한 가족의 삶을 보며, 그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두려움이 느껴졌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끝없는 좌절과 불행함들을 통해 인간의 나약함과 한계를 보며 그 앞에서 우리의 경우 어떠한 삶을 살아낼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봤다. 아들을 찾았음에도 낯설고 해결되지 않는 상황, 보이지 않는 희망 속에서 나아갈 힘조차 없는 주인공의 한마디 한마디는 마음을 저리듯 울리게 한다. 특히 결말에 있어서는 그것이 또 다르게는 새 희망으로 바뀔 수도 있으나, 주인공을 끝까지 바닥으로 치닫게 하는 것 같아서 안타까운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견딜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은 지나고 보니 어찌어찌 견뎌냈다.

정말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은 바로 지금인 것 같았다.

언젠가 실수로 지름길로 접어드는 바람에 일등으로 골인하고서도 메달을 빼앗긴 마라토너에 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대했던 것과 전혀 다른 것이 결승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때, 그것은 누구의 잘못일까?

윤석은 화장실에서 들려오는 훌쩍임을 들으며 생각한다.

어디서부터, 왜, 모든 것이 어그러졌을까?

마트에 가자고 한 아내의 잘못인가?

부주의하게 카트의 손잡이를 놓아버린 자기 잘못인가?

아니면 화장품 가게에서 클렌징크림을 산 아내의 잘못인가?

p.66

미라가 정신병원에 가면 성민이는 절대로 돌아오지 못한다,는 비이성적인 믿음

이 믿음은, 성민이만 돌아오면 미라의 병은 깨끗이 낫게 되리라는 또다른 믿음과도 이어져 있었다.

그런 믿음을 차치하고라도 윤석은 미라를 버릴 수가 없었다.

사람들은 미친 아내를 떠맡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실은 윤석이 저신 나간 아내에게 기대고 있었다.

아무 소용이 없는 줄 알면서도 매일 전단지를 돌린 것처럼,

남들이 보기엔 아무 희망도 없는 부부관계에서 그는 삶을 지탱할 최소한의 에너지를 쥐어짜내고 있었다.

그에게 미라는 카라반의 낙타와 같은 존재였다.

목표와 희망까지 공유할 필요는 없었다.

말을 못해도 돼. 웃지 않아도 좋아. 그저 살아만 있어다오.

이 사막을 건널 때까지.

그래도 당신이 아니라면 누가 이 끔찍한 모래지옥을 함께 지나가겠는가.

p.71

모르지. 본 적도 없고 만진 적도 없어. 마치 기독교에서 말하는 영혼처럼. 내 내부에 있다는, 인간마다 고유하다는 그것에 대해 나도 이전엔 아무 관심도 없었지. 너를 잃은 후에야, 방바닥을 기어다니며 너의 갈색 머리카락을 주워본 후에야 나는 유전자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지. 그게 내 아이를 다시 찾아줄지도 모른다고 믿었지. 그리고 그 결과로 지금 네가 내 앞에 앉아 있지. 그런데 나는 네가 아주 낯설고 너 역시 그렇겠지. 우리가 네 배내옷에서 찾아낸 머리카락과 네 구강에서 긁어낸 세포에서 나온 유전자가 일치하면 그게 한 사람이라는 증거라는데, 우리는 그걸 믿어야 한다는데, 반드시 믿어야 한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다는데, 왜 그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를 않을까?

p.76


다른 이야기지만 작가의 재치와 남다른 인식이 보이는 장면도 몇 있었다. 한가지 예를 들자면, <오직 두 사람>에서 주인공의 오빠가 명언이나 상투어를 뒤집어서 새로운 말을 만드는 것이 오랜 버릇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서 작가님이 이런 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해본 적이 여태 없었는데 그렇게 뒤집어서 하는 말들이 또 신기하게도 말이 되는 걸 보면서 인식의 전환이 새로운 것들을 창조해 낸다는 점에서 재미나기도 했다.


"해봐. 이상하게 다 말이 된다니까."

오빠가 사람들에게 장담하면 그때마다 사람들이 이것도 해보라, 저것도 해보라며 문장을 던져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오빠는 빙글빙글 웃으며 "즐길 수 없다면 피하라"고 답하고요.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라고 <어린왕자>의 유명한 구절을 제시하면,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다면 그게 바로 사막이다"라고 받아요.

가끔 어떤 격언은 뒤집어 놓으면 더 의미심장해 보이기도 하더라고요.

예를 들어, '금이 침묵이다'같은 말이 그래요.

오빠가 해고를 당하던 날, 인사팀의 입사동기가 그러더래요.

"힘내라. 위기가 기회라잖아."

오빠가 뭐라고 했을지 언니도 이제 아시겠죠?

"웃기시네. 기회가 위기야."

p.13 

 <인생의 원점>, <최은지와 박인수>에서 나오는 주인공은 사랑과 위선으로 그들을 철저히 보호하였지만, 역시 우리는 나 자신이 우선일 수밖에 없는 이기심을 본성으로 탑재한 인간임을 보여준다.

'아하하!! 사랑이라는게 그렇지... 네가 나이먹어봐라. 가정이 있어봐라. ...'라는 말이 나오게 우리의 가면에 대해 처절히 조소하는 듯한 느낌이다. 우리의 그러한 이기심과 위선들이 소설을 통해 까발려진 듯하다.


"할 수 있다고 믿는 것과 실제로 할 수 있는 일은 큰 차이가 있어.

대부분의 사람이 그래. 지금은 날 위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겠지만 말야. 물론 그마음이 진심이란 것 알아. 하지만 진심이라고 해서 그게 꼭 행동으로 이어진다는 법은 없어."

p.92

자신만 아무일 없이 무사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게 문득 기가 막히게 좋았다. 행복감이 솟구쳤다. 엄청난 유혹을 이겨내고, 위기로부터 자신의 안전을 지켜냈다는 것에 자부심마저 들었다. 인생의 원점 따위가 무슨 소용이냐, 그런 정신적 사치가 아니라 살아 있다는 것, 그게 진짜 중요한 거야. 그는 이제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이 들었고, 어릴 적 위인전이나 읽으며 헛된 꿈을 꾸던 감상적 어린아이와 결별했다는 생각이 들어 뿌듯하기도 했다.

p.108

 해피엔딩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아쉬울 수도 있지만, 사건에 부딪히는 인물들을 보며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을 엿볼 수 있고, 우리의 삶이 축소된 삶이 소설안에 녹아 우리의 삶을 반추하게 해주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읽을만하다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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